학사재생 182화
제 182화
다만 그 근본이 과격한 무림문파인 까닭에 이를 제대로 행할 줄 아는 경우가 적을 뿐.
당절운은 그런 의미에 있어 후기지수 수준에서는 제법 괜찮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당협이라는 별호도 얻은 것이고 말이다.
“검존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니 속되게 보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헛된 말이나 할 거면 그만해. 나도 이유가 있어서 조금 들어준 건데, 짜증나는군.”
“그, 그것이 아니라…….”
“입 닫아.”
황준우는 냉정하게 말한 후 다시 당문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녀와, 다급한 표정으로 전음을 보내는 당절운이 보인다.
‘애초부터 저를 높이고 여자 아이는 낮춘 걸 보니 저쪽이 생각보다 거물인가 보군.’
사실 황준우는 당문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따지자면 대다수의 무림인들이 상대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름보다는 별호로 상대를 지칭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호를 얻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무명(武名)이 생기는 순간이라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 있어 황준우도 당협이라는 별호는 들어 보았다. 반면 당문혜라는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이 자리에서 중요한 인물은 당문혜다. 당절운은 그를 억지로 감추려 하고 있었지만 너무 수가 어설펐다.
‘당협이 억지로 감추려 할 만한 여자 아이라…….’
심지어 성정은 제멋대로다 못해 표독스럽지만 얼굴은 제법 예쁘장하다.
“독미호. 그렇군. 네가 독미호야.”
황준우의 서늘한 음성에 당절운의 몸이 굳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 결혼도 두 번이나 했다지? 한데 남편들은 모두 죽었고.”
당문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독미호라는 별호가 참 잘 어울리네.”
“죽여 버리겠어!”
어찌어찌 충격을 헤어 나온 듯, 다시 한 번 당문혜가 날뛰려는 순간이었다.
“크아악!”
“저, 적!”
황준우의 등장에, 또 다른 무림인의 등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당가의 무인들이 비명과 함께 경악을 내질렀다.
차가운 눈빛으로 가장 정면에서 날뛰는 홍산의 뒤를 이어 흑백쌍노, 경호가 도달하여 각자의 강기를 자랑했다.
“모두 초절정고수!”
“빌어먹을! 독을 써!”
당가 무인들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이미 독을 쓰면 안 된다는 제한을 따질 때는 한참 전에 지났다. 상대에게 걸리지 않는 것보다, 살아남는 바가 우선인 건 당연했다.
애초에 당문혜 본인도 황준우를 공격할 때 독을 썼지 않던가.
이 자리에 모이 당가의 무인들 중 그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하수는 없었다.
먼저 죽인 열을 제외하고도 팔십 명 이상의 당가 무인.
그리고 경호, 홍산, 흑백쌍노 네 사람과의 난전이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팔짱을 낀 황준우는 난전으로부터 살짝 거리를 벌렸다. 직접 처리한다면야 순식간일 테지만 그래서는 네 사람을 데려온 의미가 조금도 없다.
말했듯 황준우는 이번 전투에서 네 사람의 실전 감각을 더욱 크게 자극시킬 생각이었다. 때문에 경호에게는 청홍검마저 봉인했다.
예전과 달리 무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청홍검의 경우에는 지금의 경호에게 있어 너무 과했다. 자칫하면 도구의 의지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 됐든 황준우의 생각에 있어 당가의 무인들은 일종의 훈련 상대, 그리고 경각심을 자극하는 데에 있어 아주 훌륭한 편이었다.
처음 네 사람의 급습에는 당황했던 이들이 거리를 벌리고 암기를 날리며 은근슬쩍 독을 뿌리는 솜씨가 아주 제법이다.
네 사람이 초절정, 그중에서도 제법 상위에 위치한 실력이 아니었다면 벌써 하나 정도는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독에 대한 경험이 적은 경호와 홍산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난색이 드러나고 있었다.
상대가 쉽게 거리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난감할 터였다.
‘어디 한번 고생해 보라고. 죽기 직전에는 구해 줄 테니까.’
물론 예상외의 실력을 발휘해서 이겨 준다면 더욱 고마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황준우에게 당문혜가 다시 달려들었다.
분명 네 사람이 급습하는 순간, 짧은 혼란을 통해 당절운이 도망가자며 그녀를 이끄는 것이 보였다. 해서 지금쯤 꽁지 빠져라 도망가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황준우를 향해 다시 달려들고 있다. 뒤를 살펴보니 당절운이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을 한 것이 보였다.
“독하고, 고집도 세군.”
거기다 재능까지 있으니 무공으로서 대성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아아…….”
아무래도 경호와 일행들이 도착하기 전 해 놓았던 도발이 제대로 먹힌 듯했다. 붉어진 얼굴을 한 당문혜의 두 눈이 녹색 빛으로 변했다.
“독안(毒眼). 독인으로서도 벌써 독성(毒星)에 오른 건가. 진짜 대단하군.”
독인의 경지는 무공과 또 다르다.
그중에서도 독성이라 함은 진정 상대에게 맞출 수 있다면 초인조차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죽어, 죽어!”
미친 것처럼 광분하여 소리치며 손을 내뻗고 암기를 뿌리는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잠시 그를 감상하듯 바라보던 황준우는 권갑으로 당문혜의 손을 낚아챘다.
“……!!”
동시에 당문혜의 표정에 밝은 화색이 돌았다.
작금 그녀의 손은 독성의 경지에 걸맞은 지독한 독이 분포되고 있다. 같은 독인이라 하여도 쉽게 견디기 힘들 이 독을 잡았으니 황준우의 권갑과 손은 끔찍한 모양으로 변하여 녹아 내릴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기대는 글렀어.”
피식 웃은 황준우가 당문혜의 어깨를 반대 손으로 짓눌렀다.
무릎이 박살나는 격통을 느끼며 비명을 내지른 당문혜가 쓰러졌다. 황준우는 그를 감상하듯 바라보며 팔짱을 낀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두 발을 쓰지 못한다. 단순히 무릎을 부러트린 것이 아니라, 평생을 걷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개자식,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제법 지독한 고통이 전신을 감싸고 있을 텐데도 목소리에는 아직도 표독함이 어렸다. 그 성품만큼은 어지간한 마인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당가에는 당문혜와 같은 성정을 가진 무인들이 제법 많았다.
독이라는 특수함을 다루다 보니 생긴 특징일지 모르겠으나, 덕분에 그들은 정도(正道)의 마가(魔家)라는 모순적인 이름으로까지 불렸다.
“죽여 버리겠다라…….”
황준우는 여유롭게 당문혜의 앞에 섰다.
그 순간 품에서 암기를 꺼낸 그녀가 또다시 일격을 가했으나 이번에는 팔을 꺾었다.
“끄악!”
비명을 토하며 침을 질질 흘리는 그녀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본 황준우가 물었다.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쩌지. 힘들어 보이는데?”
황준우의 차가운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당문혜의 표독하게 솟은 양 눈에 물방울이 맺혔다. 슬픔이나 고통의 눈물이 아니다.
분함으로 가득 차오른 눈물이었다.
“죽여…… 죽여 버릴 거야…….”
“죽이려 한다면, 죽음을 각오하였다고 봐도 무방한 거지?”
만약 당문혜가 황준우가 아닌, 다른 일행들을 향해 덤벼들었다면 조금은 지켜봤을 것이다. 네 사람에게는 아주 위협적인 솜씨의 적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황준우에게 직접 덤벼든 이상 봐줄 용의는 없었다.
“아, 안 되는데…….”
그런 황준우의 곁으로 다가온 당절운이 암기를 강하게 움켜쥐며 신음하듯 목소리를 흘린다.
“안 덤벼?”
그를 잠시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 황준우가 물었다.
“그, 그만두시지 않는다면…….”
황준우의 입가로 조소가 흘렀다.
“당협이라더니, 가당치도 않은 별호였군.”
명백한 비웃음에 몸을 떠는 당절운의 고개가 떨어진다.
“죽일…… 거야!”
그 순간, 당문혜의 몸에서 독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황준우의 동작도 신속했다. 순식간에 그림자에서 황금빛 강기가 솟아나와 폭발하는 강기를 빨아들여 집어삼켜 버린다. 동시에 이마 위로 흐른 식은땀을 훔친 황준우가 웃음을 흘렸다.
“방금 건 자칫하면 위험했어.”
물론 황준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주변을 비롯한 당가의 무인들, 그리고 일행들 이야기였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전신은 독기를 상징하는 녹빛으로 물들었으며, 부러진 무릎이 닿은 대지를 비롯한 주변이 녹아내렸다. 그 힘이 사방으로 비산하여 퍼져 나갔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는 황준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 복수심에 눈이 먼 그녀가 힘을 자제하지 못하고 폭주한 것이다.
물론 그 대가는 참혹했다.
“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당문혜의 얼굴이 이 전의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뭉개지고 있었다.
치이익-!
살 타들어 가는 끔찍한 냄새가 황준우의 코를 자극한다.
“아악! 이건, 이건 아니야! 내 눈! 내 코! 내 입!”
당문혜는 스스로의 얼굴을 더듬으며 절망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인이라고 제 외모가 더 중요했던 거냐.”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친 황준우는 손을 뻗어 단숨에 당문혜의 아랫배와 윗배를 강하게 두드렸다.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인에게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단전과, 독인의 심장인 독단(毒團)이 터져 나갔다.
한쪽 팔에 이어 양다리, 심지어 외모와 무공, 그리고 독까지 모두 잃은 그녀는 전신을 감싸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침을 흘렸다.
비명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내지를 힘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황준우는 진액이 섞인 눈물, 콧물을 짜며 바닥을 기고 있는 당문혜의 한 손 위로 발을 올렸다.
“으어 안 대…….”
당문혜가 새는 목소리로 고개를 내저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 남은 한 손이 자신의 마지막 수명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느낀 듯하다.
황준우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목숨은 거두지 않는다.
당문혜가 보였던 언사와, 행동.
모든 것이 황준우를 정도 이상으로 자극했다.
간단하게 숨을 거두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다.
사는 것이 더욱 고통으로 만드는 일.
죽음이란 단순히 명계(冥界)로의 여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때로는 삶이 죽음을 뜻할 때도 있다.
“이게 내가 너에게 내리는 죽음이야.”
황준우는 당문혜에게 그러한 죽음을 선고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렇지?”
“……!!”
입 안을 맴돌다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끔찍한 비명이 당문혜의 가슴을 집어 삼켰다.
당문혜가 살았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꼴이 된 이후 당절운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양팔을 늘어트린 채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남은 당가의 무인들은 경호, 홍산, 흑백쌍노에 맞서 제법 유리한 고점을 점하기도 했지만 당문혜의 죽음을 깨닫는 순간 현저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손무의 삼십육계에 금적금왕(擒賊擒王)의 수가 괜히 끼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어때? 당가의 독인들과의 싸움은?”
황준우의 질문에 흑백쌍노가 먼저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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