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177화
제 177화
그가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던,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던 고향만이 진정으로 남은 욕심이었다.
미련이었다.
무욕이라고?
못된 제자는 그리 말하였지만 틀렸다.
위자청은, 무당의 검선은 또 한 번 그때와 같은 무신이 천하 아니, 무당을 위협할까 걱정이 되었다. 때문에 떠나지 못했다. 그것을 무욕이라 속이며 스스로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하니 우화등선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련을 남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 어찌 신선을 읊으랴.
때문에 기껏해야 가면을 쓰는 게 전부였다.
진짜 신선이 될 수가 없었다.
방금 전, 황준우의 투박한 말에서 얻은 진리가 없었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도 몰랐을 이야기였다.
“남은 것은 남는 이들에게 맡겨야 되는 것이거늘…….”
찬란한 휘광에 휩싸인 위자청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진짜 우화등선이야?”
황준우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깃들었다.
너무 뒤를 생각하며 싸우는 꼴을 보아하니, 끝을 보지 못할까 던진 말이었는데 깨달음의 단서가 되어 버렸다. 작금의 위자청은 마음에 담고 있던 모든 것을 벗어 던진 채 진짜 신선이 되어 가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대로 본 영감이 물러난다면 얼마나 분할꼬…….”
허공으로 떠오른 위자청이 이제야말로 진짜 신선 같은 웃음을 지은 채 황준우를 향해 말한다.
“약 올리는 거야? 성질나면 그 상태로 죽여 버릴 수도 있어.”
제법 살벌한 음성에 위자청의 몸이 살짝 굳어졌다.
황준우의 입가로는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씩 영체화되어 가는 위자청을 보며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기실 황준우를 제법 즐겁게 하고 있었다.
‘신선도 죽일 수 있다.’
마냥 손해인 것처럼 말했지만, 위자청의 우화등선 과정을 지켜보며 황준우는 영문을 알 수 없던 신선이란 존재에 대해 제법 많은 정보를 얻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기본적으로 영체(靈體)에 가깝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유체(遺體)가 있다는 사실. 지금 보이는 대로라면 만약 신선 혹은 그와 비슷한 존재와 맞서게 될 상황이 온다 한들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큼, 어찌 그대 같은 인물에게 무신의 재능이 깃든 건지…….”
“나 같은 놈이니까 무신이 될 수 있던 거야.”
두 눈에 번들거리던 살기를 갈무리한 황준우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위자청의 우화등선은 이미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니 마음만 먹었다면 이미 하늘로 사라졌을 터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억지로나마 지상에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야 불 보듯 뻔했다.
“나름 보답이란 거지? 보여 줘 봐.”
마지막 깨달음까지 더한 위자청의 모든 심득(心得).
황준우가 처음부터 보고 싶어 했던 그것을 위자청은 세상에 선보이려 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조금 그렇고…… 따라오시게나.”
그 말과 함께 주변을 둘러본 위자청이 유령처럼 늘어져 인적이 드믄 곳을 향했다.
태호의 한가운데라고 하지만 떠다니는 배들도 많고 주변 마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이 위에서 잘 싸우던 인물이 갑자기 자리를 옮긴다면 그 뜻은 뻔했다. 다음으로 선보일 위자청의 심득이 그 모든 것을 위협할 만한 수준이란 뜻이다.
“기대되는걸.”
신선으로까지 닿는 깨달음을 얻은 위자청의 심득은 불과 반각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또 다른 위력일 것이다.
황준우는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그 뒤를 따랐다.
거대한 빛무리가 폭발하듯 터진 뒤, 드넓은 평야에 거대한 검의 흉터가 남았다. 그 틈새 아래에 묻힌 채 위를 올려다보면 마치 거대한 협곡 사이에 들어 온 것과도 같은 기분도 든다.
훗날 이 흉터가 검의 흔적임을 알아본 이들에 의하여 검로(劍路)라고 불리는 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길의 중심.
공명을 토하는 한 자루 검을 들어 올린 자세로 멈춰 버린 것만 같던 황준우가 깊은 한숨을 토했다.
“휴우우…….”
동시에 그의 옷자락이, 머리카락이 수십 아니, 수백 등분으로 조각 나 먼지처럼 흩뿌려진다. 실제로 먼지를 가득 뒤집어써 시커멓게 변한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것이 검선의 마지막 심득이었나? 굉장하잖아.”
하늘 높은 곳,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내며 검을 휘두른 위자청이 웃는 얼굴로 떠오르고 있었다.
말은 없었다.
표정에는 어떠한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등선해 버린 그가 남아 있던 자리에는, 입고 있던 옷자락과 검 한 자루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오랜만에 진짜 위기라는 걸 느꼈어.”
오태악이 불의 화신이 되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당시의 황준우에게는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득했다.
한데 이번에는 심장이 섬뜩한 감정을 느꼈다.
그만큼이나 위자청의 검은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말마따나 검의 종사다운 마지막 심득이었다는 뜻이다.
협곡의 사이를 훌쩍 뛰어넘어, 지상으로 올라온 황준우가 풀려 버린 머리를 다시 묶어 올리며 위자청이 남긴 마지막 흔적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봐야 옷이랑 검인가.”
황준우의 얼굴에 잠시 고민이 깃들었다.
사실 좋은 인연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위자청은 악연(惡緣)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백두산까지의 추격, 그리고 다음 세대로 남긴 진무영까지. 무엇 하나 황준우에게 있어 도움이 된 적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한 수는 멋졌다.
황준우는 그것을 인정했다.
무인 대 무인으로서 감탄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배운 것도 많았다.
“덕분에 검이란 게 어떤 건지 명확하게 감을 잡았어.”
세간의 무인들은 황준우를 검의 종사로 생각한다.
그래서 별호도 만금검존이다.
위자청 역시 황준우가 검으로 종사의 영역에 닿았다고 생각하고 그리 말했다.
하나 이는 모두 틀린 이야기였다.
황준우는 검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보다 무(武) 그 자체를 포용하고 있었다. 또한 세계 그 자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이라는 하나의 무구만으로는 황준우라는 그릇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반면 위자청은 평생을 오로지 검만을 바라보며 산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을 벗어 던지며 마지막 검의 심득을 얻었다.
순수하게 검에 대해서는 위자청이 황준우보다 깊은 경지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황준우는 그것을 보았고, 몸소 느끼며 검의 길에 대하여 확실한 답을 찾았다.
악연으로 시작 되었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이 최악이라 불릴 요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검을 통해 황준우 역시 심득을 얻었으니, 이제와는 진짜 인연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여간에…… 마음에 드는 영감은 아니야.”
혀를 찬 황준우가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지면의 일부가 반원형으로 깊게 파였다.
또 한 번 손을 휘둘렀을 때에는 허공섭물이 시전되어 위자청이 남긴 의복과 검이 파인 지면으로 날아든다.
몇 번 더, 손을 휘둘러 무덤 형태로 흙을 쌓아 올린 이후에야 황준우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제법 괜찮은 선물을 받은 데에 대한 나름대로 보답이라고 생각해 둬.”
등을 돌려 떠나려던 황준우가 잠시 멈칫했다.
이후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손을 쓰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의 빚 따위 남겨 두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거니까, 괜한 생각은 하지 말라고.”
끝까지 투덜거리는 입은 멈추지 않았다.
황준우가 떠난 지 반 시진이 지난 검의 길.
“검선지묘(劍仙之墓)라…….”
작은 봉분 무덤 앞, 제법 정교하게 세워진 흙 비석에 쓰인 예리한 글을 읽어 내린 진무영의 눈이 호선으로 휘었다.
“그분께 이만큼이나 인정받다니, 생각보다 더 굉장하시지 않습니까. 스승님.”
두 눈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불똥이 튀긴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번쩍이며 휘둘러진 강기가 담긴 검은 흙으로 쌓은 비석에 맞닿았다.
폭음이 일고, 손에 느껴지는 반탄력에 깜짝 놀란 진무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쳤다.
“이건 또 뭡니까. 자연기(自然氣)를 흙 전체에 둘러 놨다고요? 이깟 비석 따위에?”
심지어 진무영의 강기로도 베이지 않을 수준의 탄탄함을 유지하고 있다.
비석이 이럴진대 무덤이라고 다를 리는 없다.
오히려 더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 순간 황준우는 진심으로 위자청을 인정한 것이다. 때문에 그의 이름을 천하에 남겨 주었다. 위대한 한 명의 무인으로서 기억되게끔 말이다.
“하핫!”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얼굴의 반을 한 손으로 가린 진무영이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러면, 이러면 안 되지요. 너무 나아가도 좋지 않아요.”
가슴어림을 뜨겁게 달구던 감정을 힘겹게 진정시킨 진무영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뜨겁던 숨 역시 단숨에 가라앉았다.
검에는 어느새 그가 깨달은 조율의 힘이 자연스럽게 휘감겼다.
“천하인 모두에게 스승님의 이름을 남기는 것은 이 못난 제자가 대신 하겠습니다. 하니 그분의 가슴에서는 이만 물러나시고…….”
서걱-! 퍼버벙.
자연기를 두른 비석을 일검에 베고, 봉분을 파헤친다.
“편히 잠드시지요. 스승님.”
그 끝에 위자청이 남긴 흔적 중, 검을 한 손에 쥔 진무영의 입가로 호선이 그려졌다.
“태극검(太極劍).”
원하던 조각 중 하나를 손에 넣었다.
두 번째는 옷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옷자락을 털었지만 떨어지는 것은 무엇도 없었다.
잠시 진무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구궁패(九宮牌)는 어디 갔지?”
착각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검을 더 휘두르며 주변을 파헤치고 찾아보았지만 목표로 했던 두 번째 조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 참…….”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뒷머리를 긁적인 진무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간은 살짝 일그러졌다.
“일단은 태극검이 전부인 건가요.”
마음 같아서는 구궁패까지 찾아 완벽을 기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결국 진무영은 아쉬운 감정을 접어 놓고는 대신하여 동쪽 먼 곳, 어딘가에 있을 황준우를 떠올리며 읊조렸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저도 당신께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조급해 말고 기다려 주세요.”
어느덧 검어진 하늘에서는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3. 암쟁(暗爭)
강소 일대의 전체에 갑작스럽게 빗물이 쏟아진다.
투두두둑.
무덤까지 완성한 이후,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위자청과의 일전을 다시 한 번 복기하던 황준우가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참, 영감. 등선하는 날 한 번 고약하게 골랐구먼. 그래도 오래 쏟아질 비는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네.”
누구나 대다수 생각하는 소나기 예측이 아니었다.
황준우는 자연의 흐름을 통해 명백하게 물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서쪽에서부터 다가온 이 비는 당장은 다소 거세 보이는 비지만 오랜 시간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나고 나면 오히려 맑게 개일 터였다.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느낌이네.”
괜한 감상에 빠져 혼잣말을 흘린 황준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막상 지나가고 나면 마음이 깔끔하게 털리는 기분도 들 터였다.
“눈앞에서 우화등선을 봐서 그런가, 쓸데없이 감상적이 되어 버렸어.”
그리 말하며, 또다시 침상에 누우려던 황준우의 시선이 문득 방문을 향했다.
검은 신영 하나가 쏟아지는 빗물 사이로 우두커니 서 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