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161화
제 161화
“흐음…… 진무영의 목적이라…….”
단순히 남기를 흔들어 놓고자 함인가?
아니면 만금장의 움직임을 바랐는가.
듣고 보니 황준우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하나 전왕처럼 골머리가 아픈 것 또한 아니었다.
“까짓거, 부딪쳐 보면 알겠지. 속셈이 있으면 전쟁 중에 어느 정도 표가 나지 않겠어?”
“그렇기는 합니다만…… 상대를 모른다는 것은 불안 요소인지라…… 악!”
걱정 가득한 음색을 흘리는 전왕의 등을 황준우의 넓은 손바닥이 찰싹 두드렸다.
“네가 모든 걸 알려고 할 필요는 없어, 전왕. 물론 그러면야 좋겠지만 진무영도 쉬운 상대는 아닌데 그게 마음대로 다 될 리가 없잖아. 이럴 때는 그냥 나를 믿으라고. 까짓것 내가 생각지 못한 조금의 변수쯤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아…… 그럴 리가요.”
전왕은 황준우의 말마따나, 너무 완벽하게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잘해 내고 싶다는 의중이 앞선 탓이다.
“마음이 앞서는 것도 좋지만, 너무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돼. 우린 사람이잖아.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은 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야. 때문에 아버지가 경호가, 홍산이, 그리고 네가 나를 채워 주는 거야.”
“주공…….”
눈치 빠른 전왕은 벌써부터 감격 젖은 눈으로 황준우를 올려다본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몇 가지 실수해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한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야. 아참, 그리고 이것 받아.”
여느 때와 같은 자신감으로 콧대를 높인 황준우가 품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들었다.
“무공서입니까?”
“뭐 펼쳐 보기도 전에 알아?”
“지금쯤 준비해 두셨다면 그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서 헤헤.”
“맞아.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전왕 네 전용이야. 한 번 봐봐.”
“제 전용 무공…….”
책은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 펼쳐서 본 내용 역시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느낌은 아니었다. 되도록 간결하게, 무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까지 잘 풀어 놓은 내용이 전왕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사실 대단한 상승무공은 아니야. 익히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 데 더 중점을 두고 만든 경우거든. 그래도 내가 조금 도움을 주고, 한 십 년 열심히 익히면 절정지경 정도까지는 올라갈걸? 그 뒤로는 상당히 막막해지겠지만 말이야.”
“그렇습니까?”
전왕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공서의 내용에 빠져들며 다른 생각과 근심을 모두 잊었다.
황준우는 대단한 상승무공이 아니라고 말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공절학의 기준이었다. 이미 한참이나 늦은 나이에 무공을 처음 접해 보는 전왕조차 간단하게 익히면서도 십 년 만에 절정의 경지에 올릴 수 있는 무공은 어딜 가도 상승무학 취급을 받는다.
절정의 경지까지는 쉽지만 그 이후로는 힘들다는 마공(魔功)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는 하여도, 운기법 자체는 정통에 기인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정도의 대문파조차 탐낼 수준인 것이다.
기실 늦둥이 제자를 비롯하여 재능이 없는 이들을 최소 일류에서 절정까지는 보장하고 키워 주니, 다른 의미에 있어 신공절학이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을지도 몰랐다. 무공은 잘 모르지만, 무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전왕은 이 무공서의 가치가 황준우가 말한 것처럼 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 제자가 최소 일류에서 절정 수준인 무림 문파가 있다면, 그야말로 천하를 떨게 할 수준이 아니겠는가?
‘이걸 어찌 잘 풀어서 병력을 육성시킬 때 사용할 수 있으면 더 좋겠구나.’
언제나 그렇듯 황준우가 높은 곳을 볼 때 전왕은 낮은 곳을 살폈다.
“저…… 무공 이름이 뭡니까?”
자연스럽게 한참을 무공 서적에 빠져 있던 전왕이 고개를 들며 황준우에게 물었다.
“아직 못 정했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 정확하게는 쓸데없이 화려한 이름만 떠올라서. 나 이런 쪽도 재능이 없나 봐. 그냥 편하게 전왕기공(全王氣功)은 어때?”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돼요.”
“단호하네. 마치 우리 경호 같아.”
“마치 자긴 아니라는 듯 말씀하시네요.”
듣고 있던 경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전왕은 심각한 표정으로 무공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혼자만 익힐 거면 기실 황준우가 말한 전왕기공, 혹은 엄청나게 화려한 천하제일궁극지공(天下第一窮極之功) 등의 이름을 사용해도 아무렴 상관없었다.
문제는 전왕이 나중에 이 무공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려 한다는 점이었다.
“아, 근데 주공.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이것 남들한테 알려 주면 안 되나요?”
“응? 남들한테? 별로 상관은 없는데. 어차피 대단한 무공도 아니고. 한데 말했다시피 오로지 너만을 위한 무공이니까…… 섭섭하지 않겠어?”
황준우의 물음에 전왕이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전혀요. 써먹을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욕심 때문에 썩힐 수야 없지요. 음음, 그렇군요. 역시 이름을 제법 신중하게 정해야겠어요. 듣기만 해도 확 끌릴 법한 이름으로 말이죠.”
“그런 거면 천하제일궁극지공 같은 화려한 건 어때?”
“너무 과장돼도 안 좋습니다. 적당히 마음이 끌리고, 사기 같아 보이지도 않는 쪽으로 생각해 봐야죠.”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은 전왕이 턱수염을 쓸어내리기 시작한다.
“농담이었는데 굉장히 진지하게 받는다.”
“헤헤, 그랬습니까. 제가 지금 생각이 많은지라…….”
“괜찮아, 괜찮아. 열심히 생각해.”
가볍게 손을 내저은 황준우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괜히 전왕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찌 사용할지 모르겠으나, 전왕이라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한 바 있듯, 각자가 잘하는 일에 충실하면 그보다 훌륭한 인간관계는 없는 법이었다.
‘도착할 때까지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황준우의 생각은 자연스레 합비, 남궁세가로 향했다.
일반적인 전쟁이라면, 선전포고를 받은 쪽은 수성(守城)을 선택할 터였다.
공격하는 측보다 방어하는 측이 유리하다는 것은 군부의 무인이 아니라 일반인도 아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궁세가와 열화궁의 전쟁은 다르다.
이는 무림의 전쟁인 탓이었다.
황궁으로부터 어느 정도 권리를 인정받은 무림세력이라고는 하지만 멋대로 도시와 성을 사용하여 전쟁을 벌일 수는 없다.
양민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도 안 된다. 주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고, 위험한 무기인 화약도 당연히 금기(禁忌)다.
무림의 사정은 어디까지나 무림 내에서 해결할 것.
국가가 무림인을 존중하는 수준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의 도를 넘어서면 황궁의 무인들과 군부가 움직인다.
때문에 대다수의 무림세가는 깊은 산이나, 숲 속에서 본적(本籍)을 두고는 했다. 혹시나 있을 전쟁에서 유리한 고점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한데 현재의 남궁세가는 몇 년 전 본래의 영지를 만금장에 판매하고 합비에 엉덩이를 붙였다.
당연하게도 합비를 수성의 용도로 사용한다는 경우는 말도 안 되었다.
결국 남궁세가에서는 총 삼천오백의 병력이 빠져나와 진군하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의 전력(全力)이 아니라 한들 그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남궁세가는 이번 사태를 통해 전통의 저력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매일같이 다투기만 하던 가주인 남궁호량과 남궁호욱이 하나가 되어 항전(抗戰)을 외치며 제 세력들을 아낌없이 내놓은 것이다.
사정을 잘 아는 가문의 인물들에서부터, 세간의 호사가들까지 과연 전통의 남궁세가라며 박수를 쳤다.
실제는 황준우의 명령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힘을 합친 것이지만, 보기 좋은 그림이니 아무렴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선봉에는 손을 맞잡은 가주 남궁호량과 남궁호욱이 섰다. 언제나 적대하던 두 사람의 어깨가 나란한 것을 목도한 남궁세가 무인들의 어깨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사기가 오르니,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다.
두 사람은 행군을 멈출 때면 의견을 담합하기 위해 회의용 막사를 따로 펼치고는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막사 내부에는 먼저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무신의 전령을 뵙습니다!”
남궁호량이 말했다.
“가장 위대한 쥐의 왕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궁호욱이 더욱 부풀려 화려하게 말하며 공수를 취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 사람에게로 나눠지는 권력의 배분은 황준우에 의해 이루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지시를 황준우가 따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때그때 사마정 개인의 판단하에 권력의 추가 움직인다. 두 사람으로서는 어찌 됐든 사마정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자연스레 남궁호량은 곁눈질로 남궁호욱을 노려보았다.
‘가증스러운 놈. 쥐새끼의 발바닥까지 핥아 제 자리를 보존하려고 하는구나.’
정작 남궁호욱 본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올려 사마정을 바라보며 말한다.
“분부하신 대로 좋은 그림을 만들어 사기를 진작시켰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우리 남궁세가는 백번 싸우더라도 한 번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흥. 마치 혼자 다 한 것처럼 말하는군. 그리고 과장도 심해. 어찌 전쟁에 십 할 확률이란 게 존재한단 말인가?”
“하면 가주는 우리가 전쟁에서 패배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남궁호량의 일침에 남궁호욱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음성으로 반문했다.
“누가 진다고 했는가, 누가! 자네가 하는 말이 그 정도로 신빙성이 없다는 걸 지적해 주고 싶었던 것뿐일세.”
“그만.”
남궁호욱이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려는 순간, 사마정이 손을 들며 말했다.
자연스레 서로를 견제하던 두 사람이 입을 닫고 시선을 돌렸다.
“이미 전한 바 있듯 열화궁의 병력에 기병이 추가되었다. 살펴본 바로는 북방의 초원 민족들 같더군.”
사마정의 말에 두 사람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대체 어찌?”
남궁호량이 눈을 붉혔다.
“누가 외곽 놈들 아니랄까 봐 자존심도 없군. 어찌 북적(北狄)을 중원까지 끌어들인단 말인가!?”
남궁호욱 역시 크게 진노한 듯 열변을 토했다.
“감정을 쏟아 낼 때가 아니다. 싸워서 승리하는 법을 강구해라.”
“옳은 말씀입니다.”
“음, 불쾌한 기분에 잠시 이성을 잃었습니다. 실례를 했군요.”
두 사람이 재빨리 얼굴을 바꾸며 깊은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사마정의 어투는 언제나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또한 권위적이었다.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 때에 좋은 해답을 내면 그만한 보상이 돌아온다는 사실에 적응되어 버린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보다 앞서 나가는 것을 중요시했다.
권력의 노예이자, 고독에 의하여 목숨을 저당 잡힌 두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강자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존재였다.
짧은 침묵이 지나고, 먼저 입을 연 측은 남궁호량이었다.
“가장 좋은 작전은 역시 무신께서 오실 때까지 시간을 버는 일입니다.”
“기병들이 각자 말에 사람을 하나씩 더 태워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남궁세가는 이 싸움을 오래 끌고자 했지만, 열화궁은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자 한다. 단순한 성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먼 타지까지 전쟁에 나선 열화궁의 입장에서야 최대한 빨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금전적, 정치적 입장에서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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