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151화
제 151화
“아니, 검제 남궁천.”
어울릴 수 없는 사이다. 물과 기름이 한데 섞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무림은 아주 가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는 한다. 진시황릉이라는 큰 미끼가 던져졌는데도 이 자리에 검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경우다.
“이상해.”
진무영은 이런 일단의 상황이 기이하다 여겼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
하나 접근하기도 쉽지가 않다.
‘근래 들어 남기 인근의 정보가 묘하게 단편적이었지.’
우연이 아니라 손을 쓴 것이다.
누가 했을지야 뻔했다.
“서왕.”
결코 주인을 모셔서는 안 되는 쥐들의 왕.
그가 마음먹고 정보를 차단한다면 진무영이라고 하여도 원하는 바를 얻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번처럼 직접 부딪치는 것이 최선의 수라고 보아야 했다.
조금씩 느려지는 걸음 속, 진무영의 머릿속은 해답을 찾아 나간다.
“태양궁을 빨리 움직여야겠군요.”
남궁세가와 태양궁.
일반적으로 둘 사이의 전력을 비교하면 승기는 남궁세가에게 있다. 오태악이 자신만만한 것을 보니 믿는 수단쯤은 있는 것 같지만 남궁세가의 저력은 결코 우습지 않다. 언제든지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상대였다면 남궁세가는 이미 오래전에 남기의 입지를 빼앗겼을 터였다.
“그 정도로는 안 되죠. 그래서야 그를 알 기회조차 없지 않습니까.”
어려운 일이다.
하나 이미 생각해 두었던 방법이 있는 만큼 불가능은 아니다.
무엇보다, 너무나 즐거웠다.
고작 사람 하나를 알기 위해 엄청난 일을 벌일지도 모르지만 아쉽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오른다.
‘내 생에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걸음을 느긋이 옮기며, 메마르는 입술을 핥은 진무영의 눈에 달뜬 감정이 차올랐다.
2. 성채를 준비하다
“갑자기 웬 오한이야.”
조율의 경지에 오른 무인에게 결코 있을 수 없는, 짧은 오한이 스쳐 지나가는 감각에 내력을 이용해 화기(和氣)를 북돋은 황준우는 미간을 찌푸린 이후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어쨌든 항산마서가 현재는 가장 중요하니까…….’
갑작스러운 사태였던 진무영, 사마정 그리고 흑백쌍노가 연관되었던 사건을 해결했으니 본래의 목적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마술사를 비롯하여 가짜 진시황릉을 뒤덮었던 탁기의 근원인 항산마서 모두 눈에 뜨일 정도의 불쾌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한데 보이지 않는다.
분명 주변에 있을 것이라는 직감은 드는데, 거대한 장막이 존재를 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하다. 어지간하면 이 정도로 느낌이 오면 맞는데…….”
고작 직감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 무인의 육감은 굉장히 뛰어났다. 특히 황준우의 경우는 타인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감각적인 면이 월등했다. 그 사실을 황준우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에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두 시진, 세 시진, 하루 밤낮이 더 흐를 때까지도 쉴 새 없이 개미굴까지 헤치고 다닌 황준우가 높은 나무 위에 서 팔짱을 꼈다.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틀린 건가?’
부정하고 싶지만 지금 놓인 현실이 그랬다.
“아니면 내가 찾지 못할 정도로 잘 숨었다고?”
이편을 차라리 더 부정하고 싶다.
까다로운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조금만 더 찾아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뒷머리를 살짝 긁적인 황준우가 나무 아래로 뛰어내리려 할 때였다. 코앞으로 불쑥 익숙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솟아올랐다.
“어려서 그런지 진짜 체력도 넘치나 보네.”
“굳이 그렇게 튀어나올 필요는 없지 않나?”
“네가 높게 있던 탓이잖아.”
“뭐, 그건 사실이지.”
주변을 한눈에 살피기 위해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올라와 있었다. 애초에 허공답보로 하늘을 날듯이 돌아다닐 수 있어도 깊은 생각을 하는 중에는 무언가라도 발밑에 있는 게 좋았다.
“그러고 보니 너, 아버지랑 말할 때랑 뭔가 다른 느낌인데.”
“딱히 늙어 보이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
“제법 솔직한데?”
“흐흥, 네가 여인의 감성을 어찌 알겠느냐.”
“방금은 할머니 같았어.”
“시끄럽다.”
어쨌든, 나름 귀여운 구석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꼬맹이를 여자로 보지는 않는다.
아무리 속이 늙었다고 해도 겉모습은 영락없는 소녀가 바로 신아였다.
‘애초에 내가 누구랑 연애를 한다니…….’
황준우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사실 못할 일도 아니다. 언젠가는, 누군가와, 그런 일도 있을 터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딱히 아직 누군가와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경우도 결단코 아니었다.
황준우 역시 예쁜 여자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예를 들자면 주연하.’
잠시 떠오른 얼굴에 피식 미소를 지은 황준우가 팔짱을 꼈다. 지금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바쁜데 왜 찾아온 거야?”
“아직까지 못 찾은 것 아냐? 그러면 쓸데없는 고생이라고 말해줘야 할 것 같아 말이다.”
“그걸 왜 네가 판단해?”
“마술사들은 천하를 통틀어 숨는 것에 가장 능통한 녀석들이다. 말한 바 있듯 놈들이 마음먹고 숨으면 신선들도 못 찾을 정도지.”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랑 말할 때부터 궁금했는데 신선이란 게 진짜 있는 거였긴 한가보네?”
황준우는 마술사들이 숨는 데 능통하다는 말보다는 다른 쪽에 관점을 두었다.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그러니까 원시천존이라든지, 서왕모, 뭐 그런?”
“뭐, 그런 셈이지. 말을 할 때 조금 공경심이란 게 있으면 좋겠다만…….”
“그건 네 기준이고.”
잠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쌍심지를 추켜세운 신아였으나, 곧 고개를 주억였다.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진짜 인정이 빠르네.”
“흐흥, 그것이 이 몸의 장점이니라.”
칭찬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정말 이용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신선들이 진짜 있다는 거네. 이 지상에 말이지.”
“지상에 있는 건 아니다. 나 같은 지선이라면 모를까 위의 신선들은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황준우의 의문은 타당했다.
어째서 신선은 움직이지 못하는가?
없다면 모를까, 존재한다면 자유로워야 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다.
“신선들만의 율법이 있다. 내가 그것까지 네게 설명해 줘야 할 이유는 없을 텐데.”
신아의 말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이 부분은 확실히 이야기하기 싫다는 표를 낸 것이다.
“그런데 지상에도 못 오는 신선들이 못 찾는다고 나도 못한다고 말한 거야?”
황준우는 이야기를 조금 돌렸다.
“지상에 직접 오지는 못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아주 복잡한 절차를 통해 관련할 수 있다.”
“그 아주 복잡한 절차는 물어도 되려나?”
“쉽게 말하면, 강신(降神)을 하면 된다만…… 필요한 것이라고 해야 하나, 조건이 너무 복잡하고 많다.”
“흠…….”
“에잉, 귀찮다. 쉽게 말해 어차피 신선들이 지상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니라. 기껏해야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지. 그 대다수가 마술사나 균형을 크게 어긋나게 하는 대상들을 제제할 때 정도고 말이다.”
길게 말한 이후, 한 번 더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신아가 작은 입을 다시 한 번 열었다.
“어쨌든, 마술사들이 사용하는 은폐술은 신선들의 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천 년의 역사 동안 다듬어진, 하나의 초고도술법(超高度術法)이다. 네가 아무리 어떻게 인간으로 남았는지 모를 입신의 경지라 하여도 힘든 일이라는 뜻이지.”
“으흠…… 이해했어.”
짧은 신음을 흘린 황준우가 고개를 주억였다.
머릿속으로는 신아의 말로 인해 떠오른 생각이 빠르게 정리된다.
‘그러니까 이 말은 나는 원래 우화등선(羽化登仙)했어야 된다는 말이지?’
시기는 예상이 된다.
수왕검을 처음 잡고 조율경에 오르던 그때.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황준우는 본래 겪었어야 할 우화등선을 하지 않았다.
아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우화등선했다면, 지금의 즐거운 삶을 만끽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문득 황석후가 황준우를 향해 진심으로 안도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과한 농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당시 황석후는 제법 진지했을 터였다.
‘허허…… 아버지.’
평범한 사람답지 않은 대처와 유연성은 황석후 역시 한 명의 천재인 탓도 있지만 이런 사실을 실제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황준우는 그런 신선들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신아의 의견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의 나로는 힘들다는 거군.”
황준우는 그 상황을 간단하게 받아들였다.
근래 들어 할 수 없는 일이 제법 늘었다.
아쉽기도 하지만, 역시 이런 일이 있을수록 의욕은 더욱 불타오른다.
‘금방 뛰어넘어 주지.’
의욕은 불의 기름이 되어 황준우를 더욱 크게 자극한다.
“너는…….”
신아는 그런 황준우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이는데, 타박하기가 쉽지 않다.
‘정말로 인간의 몸으로 신선을 뛰어넘으려 한단 말인가?’
상식을 뛰어넘는 일인데, 해낼 것 같다.
“재수 없는 놈.”
황준우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신아가 콧방귀를 뀌었다.
“자, 그러면 네가 궁금한 건 다 끝난 거야?”
“아, 뭐. 대충은.”
“이제 내가 질문을 해도 될 차례네.”
“뭐 물어볼 게 있어?”
“애초에 그러려고 찾아온 길이다.”
“말릴 생각이 우선이 아니었구먼.”
“그건 두 번째 목적.”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황준우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주억였다.
받은 것이 있는 만큼 제법 성실하게 질문에 답할 생각이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정말로 진지한 표정이 된 신아가 그런 황준우의 두 눈을 직시한다. 검은 물결처럼 찰랑이는 두 눈은 모든 거짓을 지우고 진실만을 꿰뚫을 것 같은 빛을 흘린다.
“대체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 진지하게…….”
“파(巴)의 일족의 술법, 누구에게 받은 거야?”
“네가 익힌 술법 말이다. 팔괘술이지 않느냐.”
황준우는 의아했다.
‘팔괘술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건가?’
그리고 따로 분류를 나눌 정도의 술법인가라는 의문도 있었다.
“대답하지 않을 생각이냐?”
“아, 아니. 뭐. 어려울 건 없으니까. 이건 제갈세가의 가주한테 받아서 배운 거야.”
황준우는 품에서 팔괘술법서의 책을 꺼내 보였다.
놀란 표정으로 잠시 그를 무섭게 노려보던 신아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그건 사본이로군. 그래도 진짜 팔괘술을 익히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잘 만들어진 녀석이야. 제갈량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게냐.”
“너야말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한데.”
질문을 받았는데, 오히려 궁금한 건 황준우 측에서 생겼다.
신아는 그런 황준우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너, 팔괘술법서가 어떤 것인지 모른단 말이냐?”
“그냥 술법 서적 아니야?”
태연한 대답에, 자신의 이마를 짚은 신아가 뒤로 넘어갈 듯 비틀거렸다.
무슨 도술을 사용했는지 공중에 떠올라 있는 만큼 더 위태해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힘없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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