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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45화 (145/373)

학사재생 145화

제 145화

신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고, 그사이 황준우는 지상으로 내려섰다.

“무사하셨군요.”

“그러고 보니 걱정을 많이 끼쳤겠구나.”

황석후가 부드럽게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보다시피 아주 멀쩡하고, 건강하단다. 일이 너무 바빠 연락을 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무사하시면 됐어요.”

황준우가 안도의 미소를 보였다.

어찌 됐든 황석후가 무사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마음속에 남아 있던 작은 걱정마저도 완전히 털어지는 느낌이었다.

“저 녀석이 아버지를 찾은 건가요?”

황준우의 손가락이 신아를 가리킨다.

“저 녀석이라니! 저, 저, 어린놈이 예의를 모르고는……!”

신아가 발끈하며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너는 예의를 알아서 멀쩡한 사람을 두고 저게 인간 맞는지 의심부터 하냐?”

살짝 찔린 표정의 신아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높이 들어 올린다.

“흥…….”

“하는 짓은 영락없는 계집아이구먼.”

“이게 정말!”

“준우야.”

“예, 아버지.”

성을 내는 신아를 뒤로한 황준우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저래 보여도 신녀님께서는 나이가 벌써…….”

“시끄러!”

신아의 목소리가 이전에 비해 몇 배는 커졌다.

마치 짧은 시간 동안 도술이라도 펼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놀란 황석후와 황준우가 동시에 돌아보았고, 얼굴을 붉힌 신아가 씩씩거리는 콧김을 내뿜으며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여인의 나이를 함부로 밝히려 하다니! 내 너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내가 신녀께 뭘 배운 적은 없습니다만.”

“시, 시끄럽다! 쓸데없이 진실에 집착하는 놈! 어쨌든 그 부분은 비밀이다.”

“하지만 아들이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신녀께…….”

“괜찮아! 난 괜찮아! 그러니 그 나이 많다는 소리 좀 그만해라. 거, 여자에게 자꾸 나이, 나이 무슨…… 쯧쯧.”

“…….”

황석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것에 집착하는 쪽이 신아였지만, 굳이 더 말을 하지는 않기로 했다. 실상 본인이 괜찮다면 그만 아니던가?

“그나저나 저 오기 전에도 꽤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황준우의 두 눈에 짙은 호기심이 깃들었다.

용중호를 쓰러트린 이후, 남은 흑영사를 모두 제거하여 탁기를 물린 후 함정을 무너트리는 데까지 시간을 지체하고 나오니 황석후의 기운이 확실히 느껴져 황급히 달렸다. 그리고 들은 대화가 팔각수, 그리고 보패에 관한 이야기였다.

“음…….”

황석후의 두 눈에 잠시 고민이 깃들었다.

시선은 신아를 향한다.

“알아도 될 자격은 충분한 것 같구나. 아니, 오히려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입장이지.”

신아가 고개를 주억여 수긍했다.

사실 쉽게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황준우의 능력을 본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신선이 아닌 인간 중에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른 유일한 인물. 솔직한 마음을 풀자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부탁하고 싶은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음, 이야기가 길어지겠구나. 우선 자리를 옮기자꾸나.

현재 위치는 신아와 대술사가 격전을 벌인 숲길 한가운데였다.

긴 이야기를 하기는 좋지 않은 위치.

“부축해 드릴까요?”

걸음을 옮기기 전 황석후의 물음에 콧방귀를 뀐 신아가 고개를 젓는다.

“흥, 필요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상처 가득했던 신아의 몸이 어느덧 말끔히 회복되고 있었다. 여전히 피가 묻은 흔적은 남아 있었지만 새로 돋아난 살 위에 붉은 흔적만 묻은 상태. 눈에 보일 정도의 피부 재생을 보며 황준우 역시 눈을 가늘게 떴다.

“너도 인간이라 할 수준은 아니구먼, 뭘.”

지선인 신아의 회복력 역시 인간이라고 하기는 부조리함이 많은 수준이다. 거기다 황석후가 가지고 다니는 최고급 금창약으로 회복력을 증가시킨 덕도 컸다.

“흐흥.”

“칭찬 아닌데.”

황준우는 어째서인지 즐거워하는 신아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자자, 그만하고 가자꾸나.”

그사이 먼저 앞선 황석후가 손을 까딱였고 황준우가 재빨리 그 옆에 섰다.

문득 시선을 돌려 자신과 키가 비슷해진 아들을 바라보는 황석후의 눈과 입에 미소가 걸렸다.

‘훌륭히 장성(長成)했구나.’

처음 키워 보는 아이.

그리고 남들과 다른 모습.

많은 생소한 일이 그를 고민케 하고 힘들게도 했지만 아들은 어느덧 그의 옆에 설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힘든 서안행이었지만, 기분은 참으로 좋았다.

“헉, 헉…… 빌어먹을!”

무너지는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리는 무덤을 빠져나온 거친 인상의 장년인이 등에 업고 있던 중년인을 바닥에 던져 놓는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비명을 내지르는 중년인을 황궁의 누군가가 보았다면 당장 장년인을 향해 검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중년인이 바로 황자, 주고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친 상황이라 한들 황자를 그런 식으로 던져서는 안 된다. 상식적으로도, 예의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장년인, 독고문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애초에 주고치가 누구인 줄도 몰랐다.

단지 그 동공에 홀로 쓰러져 있는 데다, 입은 옷도 범상치 않아 우선 데리고 나왔을 뿐이다.

“쓸모없으면 오히려 큰일인데…….”

주고치는 함정에서 독고문이 건진 유일한 소득이었다.

보물을 노리고 뛰어들었는데 웬 이상한 놈들이 싸움을 하고 있더라. 심지어 그중 하나는 아직은 한참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그 무공이 마치 하늘에 닿은 듯했다. 그가 숨겨 놓았던 보물을 이용해 기척을 감춘 채로도 몇 번이고 들킬까 가슴을 졸였는지 몰랐다.

‘유령각(幽靈角)이 없었으면 분명 들켰다.’

독고문은 품에 숨기고 있는 짐승의 뿔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사실 소유자 본인, 독고문도 정체를 모르는 유령각은 이십 년 전 우연으로 얻은 보물이었다. 본래 그는 무인이기 이전에 소매치기였는데, 어떤 부랑자의 품에서 훔친 것이 바로 이 유령각. 처음에는 짐승의 뿔이라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그 모양이 제법 예쁘고 촉감이 좋아 자주 쓰다듬고 놀았는데, 그러자 놀랍게도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다. 당시 독고문을 두렵게 하던 흑도의 두목은 물론이요, 이름 난 고수의 눈도 손쉽게 피해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천하를 오시하는 조화경의 고수, 무림군주들조차 그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독고문이 수로왕이 된 데에는 이 유령각의 도움이 컸다. 목숨을 걸 만한 보물이 있는 곳에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오갈 수 있으니, 그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천하강호의 영약, 보물, 무공을 훔치고 다닌 그의 두 번째 별호는 유령신투(幽靈神偸)였다. 그를 그만두고 수로에 올라 수로왕이 된 데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바로 유령각의 힘이 점점 약해진 탓.

처음에는 한 번만 쓰다듬어도 그의 기척을 완전히 지워 주던 유령각이 때로는 발동하지 않는가 싶더니, 일주일 뒤에는 또다시 사용이 가능했다. 그렇게 이어지던 것이 또 어느 순간부터는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횟수에 제한이 있었던 모양.

그래서 독고문은 어쩔 수 없이 물길에 올랐다.

나름대로 그간 쌓은 부와 무공, 심지어 재능까지 갖추고 있던 그는 어렵지 않게 당시 장강의 지배자였던 전대 수로왕을 죽이고 제 이름을 천하 모든 물길에 새로이 새겼다.

이 비밀은 오로지 독고문의 것.

친한 형제들조차 모르는 일이다.

‘분명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무영이 알고 있던 것은 의외다.

그의 지시에 맞춰 연기를 하고 용중호를 속이기로 결심한 것은 역시 진무영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진 탓이었다. 어쩌면 그의 손에 유령각이 쥐어진 것마저 진무영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도 안 되지.”

헛생각일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독고문이 몸을 천천히 일으켜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려는 주고치를 깨우려 할 때였다.

“살아 나오셨군요. 생각보다 지하의 기운이 강력해서 걱정했었습니다.”

“선장?”

진무영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지친 표정의 오칠과 함께한 그는 독고문과 쓰러진 주고치를 바라보고는 두 눈에 이체를 발한다.

“그리고…… 보물도 건지셨고.”

“보물?”

진무영이 고개를 주억였다.

“예. 이건 생각지 못한 굉장한 보물입니다.”

입가로는 진한 미소가 번졌다.

황석후와 황준우, 신아와 여선위가 서안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고급 주루인 청하루에 들어섰다.

주변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주인인 황석후가 건물을 통째로 비우라 하였으니 말이다.

“청하루 이거, 다른 십대상단 중 하나인 청하상단 것 아니었어요?”

황준우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청하루의 루주가 나서 황석후를 직접 주인이라 칭했으니 잘못 들은 것은 아닐 터. 지금까지의 황준우로서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음식을 알아서 내오라 한 후, 황준우와 눈을 마주친 황석후가 즐겁게 웃으며 묻는다.

“여전히 고약한 성격이구나. 어찌 저렇게 수수께끼를 좋아할까. 이곳은…….”

“아, 잠깐만. 내가 맞힐 거야.”

신아가 답을 알려 주려 했지만 손을 든 황준우가 막았다. 애초부터 황준우 역시 황석후와의 이런 질답을 즐기고 있던 탓이다.

“이런 변태 부자를 보았나.”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찬 신아가 고개를 돌렸다.

괜한 신경을 써 봐야 그녀만 손해일 뿐이었다.

“가정이 몇 가지 떠오르긴 하는데…….”

“하는데?”

황준우의 물음에 황석후가 웃음을 보이며 묻는다.

“그중 직감이 가장 많이 가는 쪽이, 제일 어이없는 답이 나오네요?”

“말해 보거라.”

“청하루 아니지, 청하상단. 설마 아버지 거였어요?”

황준우는 스스로 말해 놓고도 어이가 없었다.

만금장만 하여도 천하제일상가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리곤 한다. 물론 상가의 한계는 명확히 있다고 평하지만, 그래도 천하제일이다. 그 엄청난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이번 생을 통해 깨닫게 된 황준우였다.

권력자나 무림인들이 자주 무시하고는 하지만, 결국 돈의 힘은 권력 혹은 무공에 못지않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 강해지고 말이지.’

어중간한 졸부들의 수준에서는 모르는 일이다.

천하를 아우르는 거부가 가진 힘이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만금장에는 분명 그런 기색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천하제일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자면 고작 만금장의 사업만 가지고는 의아한 일이었다.

“흠…….”

먼저 나온 찻물로 가볍게 목을 축인 황석후가 흐릿한 웃음을 흘렸다.

“맞혔다.”

“…….”

깔끔한 인정이다.

이전처럼 감추려 하는 기색은 없었다.

놀란 황준우였지만, 마음을 빨리 가다듬었다.

언젠가 황석후와 했던 대화가 떠오른 탓이었다.

‘눈에 보이는 게 삼 할이라고 하셨지?’

그렇다면 청하상단으로도 모자라다.

침을 꿀꺽 삼킨 황준우가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한 후 인상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십대상단 중 대체 몇 개가 아버지 소유예요? 셋?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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