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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44화 (144/373)

학사재생 144화

제 144화

구구구구-!

무너지고 있는 동굴 안.

“끝이, 끝이 아니다. 나는 천마다. 결코 패배하지도, 무너지지도 않는다.”

“참, 비슷한 말을 몇 번이고 하네. 그만 끝내자.”

어차피 죽일 목숨, 길게 끌 것도 없다.

검을 들어 올린 황준우의 몸에서 다시 한 번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려는 때였다.

쏟아지고 있는 바위 너머 약 십 리(十里, 1리=0.4Km) 밖, 처음 보는 얼굴이 쓰러진 누군가를 등에 업은 채 다급하게 뛰어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누구지?’

그 순간 용중호의 검에서 또 한 번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죽어라, 건방진 놈!”

전력을 쏟았는지, 검은 늑대의 형태를 띤 마기가 머리 위로 떨어지던 바위를 박살내며 황준우의 머리 위를 덮쳤다.

“한 수가 더 있었네.”

달려오면서 바위를 박살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늑대는 처음보다 기운이 강해진 상태다. 주변의 기를 흡수하는 마공의 특성이 묻어나는 엄청난 위력.

거기에 더해 황준우의 세상이 다시 한 번 암전되었다.

천마신검의 공능이 아니었다.

검은 장막으로 세상을 뒤엎어 황준우의 기운마저 흡입하기 시작한다.

‘북명마공을 이용해서 암막(暗幕)을 펼치고, 공간 내로 흡정마공을 회전시킨 건가? 잠깐, 그게 끝이 아니잖아?’

황준우는 저도 모르게 짧은 감탄을 흘렸다.

천마신검의 공능만큼, 아니 오히려 이번이 더 놀랍다.

북명마공과 흡정마공.

양측 모두 천마신교 내에서도 신공절학이라 취급되는 절세무공이다.

용중호는 그 두 가지 무공을 합쳐 전대 천마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무공을 완성한 것이다.

‘저 늑대…… 북명강기로 만들어진 거였지.’

어느덧 머리 바로 앞.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해진, 떨어지는 바위를 몸에 부딪치는 것만으로 산산조각 분해시키는 산만 한 흑랑(黑狼)이 존재했다.

놈의 이빨은 이미 황준우의 머리끝에 닿아 있다.

빠르게 휘둘러진 수왕검에 늑대의 머리가 사라졌다.

“끝이 아니다!”

용중호가 피를 토하며 소리쳤고, 사라졌던 늑대의 머리가 주변의 기운을 흡수하여 다시 생성된다.

크기는 더욱더 불어나기 시작한다.

조금 더 있으면 정말로 하늘을 덮을 수준의, 거대한 마기 덩어리가 완성된다. 근처에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마기의 응집체가 지상에 나타나는 것이다.

대단하다.

황준우는 인정했다.

용중호는 분명 천재다.

지금 보이는 것은 천마신교의 절세신공을 하나로 합쳐 만들어 낸 용중호의 독문무공.

이는 조화의 극을 벗어난 조율의 경지에서도 엄두를 내기 힘든 수준이다.

순수한 파괴력으로만 치자면 황준우의 천조신공보다도 우위.

이 무공이야말로 용중호가 가진 모든 집착과 분노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터였다.

덕분에 황준우는 하나 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러진 천마신검이 거칠게 몸을 떨고 있다.

청홍검이 기운을 증폭시킬 때와 비슷한 느낌.

하나 훨씬 더 거칠다.

불안전하지만 거대하다.

‘아마 불안전한 건 부러진 탓이겠지?’

그렇다면 역시, 명력을 가진 무구에는 아직 황준우가 모르는 비밀이 많다고 보아야 한다.

“크흐흐…….”

감탄하는 사이, 웃음을 흘린 용중호가 점점 더 거대해지며 기운을 불려 가는 흑랑의 중심으로 파고든다. 주변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그 힘은, 제 주인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흑랑과 용중호가 하나가 되었다.

[보아라, 이것이 하늘의 마. 지배자의 위엄이다.]

용중호가 입을 열자, 거대한 흑랑에게서 웅장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천마의 강림이다.]

기운이 폭발하듯 황준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검은 야수가 황준우의 몸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우우웅-!

공명음과 함께 수왕검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검은 기운으로 형성 된 검은 늑대의 머리 위로 검은 구멍이 크게 뚫렸다. 그 틈새로 황준우의 신형이 날아오른다.

기다렸다는 듯, 어느덧 재생성 된 흑랑이 다시 한 번 공격을 감행했다.

황준우의 손을 따라 수왕검이 거칠게, 그리고 분노한 듯 움직인다.

놈의 형상 때문이다.

용중호가 천마강림이라 지칭한 무공이 가진 늑대의 모습. 불쾌할 만하다.

‘그래, 수왕검. 네가 짐승의 왕이라는 걸 보여 줘라.’

수왕검이 울부짖듯 공명을 토한다.

파바밧-!

거대한 흑랑을 산산조각 낼 듯 베고, 베고 또 벤다.

[크아아-!]

재생과 분절의 반복.

그 속에서 용중호의 비명이 울려 퍼진 순간, 황준우가 수왕검을 움직이고 있는 오른손이 아닌, 반대쪽 왼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 보이는군.’

거대한 마기와 탁기에 가려졌던 자연지기의 길.

황준우의 왼손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기운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오른손으로는 수왕검을 이용한 전투, 왼손으로는 자연지기를 이용한 조율의 시작이다.

‘역시 마기네. 기운의 형성이 굉장히 꼬여 있잖아.’

거대한 늑대의 본질, 검은 마기의 형상은 마치 엉킨 실타래와 같았다.

또한 거대하다.

얼마 전, 와룡촌에서의 성장으로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자연지기의 총량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조율했어야 할 수준이다.

‘어마어마하네.’

혀를 내두른 황준우의 양손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자, 부서지고 잘려 나가던 검은 늑대의 모습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

기운의 변화를 눈치챈 용중호가 흡정마공을 더욱 강력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어딜.”

황준우는 짧은 웃음과 함께 흡정마공의 원리조차 풀어헤쳤다.

하는 김에 북명강기마저 흩어 버린다.

굳이 거친 방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집중력이 조금 필요해서 그렇지.’

상단전이 활성화되며 아릿해지는 느낌은 그리 유쾌하진 않기에 자주 하지는 않지만, 애초부터 조율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조화를 압도하는 군림의 힘.

[이, 이럴 순 없다.]

웅장하고 거대했던 용중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거대해지던 흑랑은 이내 그저 평범하고 검은 마기의 덩어리가 되었다. 크게 얽혀 있던 것 같던 마기의 실타래는 어느덧 곳곳으로 흩어져, 흩뿌려지고, 바스라진다.

애초에 자연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힘.

그를 꼬고, 얽히고설키게 하여 강제로 버텨 내고 있던 것뿐이다.

“끝이네.”

마지막 한 자락, 뭉쳐 있던 마기의 실타래의 끝 부분을 황준우의 왼손이 잡아당겼다.

스르륵-!

무너지듯 지상으로 떨어진 용중호가 몸을 떨었다.

“나는, 나는 천마다. 결코 패배하지 않으며, 무릎 꿇지 않는다. 오로지 독존, 독존뿐이다!”

동시에 그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폭발했다.

“크아아-!”

모든 잠재 능력을 풀어헤친 그가 반으로 잘린 천마신검을 들고 앞으로 뛰쳐나가는 순간이었다.

날아든 수왕검이 단숨에 그의 목을 꿰뚫었다.

“꺼어억-!”

벌어진 입, 붉어진 눈.

무너진 용중호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내가…… 하늘의…… 마.”

유언치고는 너무 쓰다.

마지막까지 스스로가 만든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용중호의 시신 앞에 선 황준우가 수왕검을 뽑아 들어 핏물을 허공에 털었다.

“살아서 못 한 사죄, 지옥에서는 꼭 해라.”

무너진 용중호의 시체.

그를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본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7. 만금장

“빌어먹을 놈들, 땅속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거친 숨을 내뱉는 소녀가 거친 욕을 흘린다.

몸 곳곳에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이 보였다.

“괜찮으시오?”

그런 신아에게 다가온 이는 점잖은 인상의 장년인이다.

아마 이 자리에 황준우가 있었다면 깜짝 놀랐을 터였다.

장년인은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버지, 황석후였으니 말이다.

“네가 보기엔 괜찮아 보이냐? 오려면 조금 일찍 오든지. 빌어먹을.”

지쳤다는 듯 제자리에 주저앉은 신아의 예리한 시선이 황석후의 등 너머,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향했다.

“우라질 놈. 누가 마술사 아니랄까 봐 지독하더군.”

시체의 바로 옆에는 무언가를 살피는 거대한 덩치의 여선위가 보인다.

“우리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어. 금창약이나 내놔라.”

흐릿하게 웃은 황석후가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뭐 하는 게냐?”

“직접 바르시려고요?”

“당연한 것을. 내 많이 늙어 지치긴 했지만 아직 코찔찔이 어린이한테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푸하하, 그래서 내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인상을 찌푸리는 신아의 팔을 붙잡아 금창약을 펴 바르기 시작한 황석후가 말한다.

“대표두가 아들 녀석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더이다.”

“하긴, 조금 전부터는 과하더라. 백 리 밖에서도 알겠어. 네 아들은…… 신선이냐?”

“그래 보이십니까?”

황석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닌 것 같으니 묻는 거다. 어떻게 된 놈이 인간의 몸으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오른 거지? 저건 초인의 영역조차 벗어난 괴물 아니냐?”

“거, 말씀 좀 조심하십시다. 아무리 신녀(神女)라고 하여도 남의 아들한테 괴물이 뭡니까, 괴물이.”

“흥…….”

콧방귀를 뀌면서도 은근히 미안한지 귓불까지 붉히는 신아다. 황석후는 금창약을 바르는 반대편 손으로 그런 신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 마라.”

“딸아이 같아서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딸도 있다고 했지?”

“딸은 저 정도는 아닙니다.”

“흐흥…… 그거 뭐, 다행이구나.”

“왠지 기분 좋아 보이시는군요?”

하지 말라 한 주제에 은근히 얼굴을 붉히며 황석후의 손길을 즐기던 신아가 얼굴을 굳히고 볼을 부풀릴 때였다.

“없습니다.”

그사이, 시체의 수색을 끝낸 여선위가 얼굴을 굳히며 다가와 말한다.

“없다고?”

신아가 쏜살같이 물었다.

“몇 번을 재확인했지만, 확실히 없습니다.”

“황산마서만 갑자기 사라지는 게 말이 돼?”

신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만류하는 황석후의 손을 뿌리치고는 몸을 일으켜 직접 시체에게로 다가갔다.

한데 진짜 없다.

실상 여선위쯤 되는 고수가 찾아서 없으면 거짓일 리가 없었다.

다만 신아는 그만큼이나 지금의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설마 이놈도 인형이었나?”

혼잣말을 중얼거린 신아의 눈이 가늘어진다. 문득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항산마서란 것이 그리 위험한 물건입니까?”

“위험하지.”

다가온 황석후의 물음에 아랫입술을 꽉 깨문 신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덧 천리안(千里眼)의 술을 펼친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많았으나, 마술사로 의심되는 이는 없었다.

“젠장, 진짜 놈이 살아 있다면 꽁꽁 숨었겠군.”

“사람을 풀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만, 마음먹고 숨은 밀교 놈들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이를 아득 간 신아의 두 눈에 곤란한 감정이 깃들었다.

“대체 마서의 정체가 뭐요?”

“항산의 팔각마(八脚魔)의 보패(寶貝)다.”

“항산 팔각마의…….”

“아버지!”

놀란 황석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 황준우가 하늘을 밟아 뛰며 모습을 나타냈다.

“저거, 저게 인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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