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141화
제 141화
전신이 푸른빛으로 떠오른 시체의 모습.
황준우의 입가로 어이없는 웃음이 걸렸다.
“이거 방금 전까지 살아 있었잖아?”
“이형(二形)의 술이다.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로군.”
황준우의 옆에 서며 이를 간 신아가 손을 휘저어 세웠던 신벽을 무너트린다.
“술사들은 참 신기하네. 아무것도 몰랐으면 진짜 난감할 뻔했어.”
“네놈도 술을 익혔지 않느냐?”
“어? 표가 나?”
“어이없는 질문이로군. 너는 네가 바지에 똥을 싸고 다니면서도 모른 척할 수 있느냐?”
“그 모습에 하는 비유 치고는 너무 저렴하네.”
황준우가 혀를 찰 때였다.
구구궁-!
마침 상대가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려 주었다.
막다른 길이었던 벽이 무너지고 새 입구가 드러났다.
그 내부 풍경을 꿰뚫어 본 황준우와 신아의 입에서 동시에 욕이 흘러나왔다.
“저런!”
“천인공노할 놈!”
하나가 된 듯 두 사람이 동시에 앞으로 뛰쳐나간다.
힘겹게 뒤를 쫓아, 두 사람 바로 뒤편에 섰던 신일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
“저, 저는 어쩌라고?”
쫓아가기에는 더 이상 체력적으로 무리다.
다행히 스승인 신아는 그를 무작정 버리지는 않았다.
[모자란 도력(道力)으로 무작정 쫓아오려 하지 말고 몸을 숨기고 있거라. 마술사는 나와 이 건방진 녀석이 잡겠다.]
본래 도움이 되고자 쫓아온 신일로서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황을 쫓기에는 이제 인선의 초입에 들어선 그의 경지가 너무나 미약했다.
“방해나 안 하는 게 도움이지, 뭐.”
신일은 조용히, 은폐의 술을 펼쳤다.
콰과과광-!
진무영과 용중호.
오칠과 멸부, 마창.
무림을 뒤흔들 수준의 초고수들의 격돌이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이 천마신교 측이 유리해지고 있으나, 용중호의 심사는 크게 불편했다.
‘저놈, 나를 상대로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거냐?’
현재 진무영은 마기에 노출되어 시야가 어지러운 와중에도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은 물론, 자주 위기에 처하는 오칠을 향해 도움의 손길도 내뻗고 있었다. 용중호를 상대로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부터는 전력을 다하겠다.”
용중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경고했다.
자칫하면 마의 관, 혹은 이 무덤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생각하여 아껴 두었던 힘을 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거 참, 무섭군요.”
진무영이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여전히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
“언제까지 웃을 수 있나 보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쥔 용중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하겠다는 말이 농은 아닌지, 그 기세가 지금까지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여유롭던 진무영의 얼굴도 살짝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
기세를 피어 올리던 용중호의 고개가 갑작스럽게 뒤로 크게 돌아갔다.
“대술사…….”
“대술사?”
영문을 알 수 없는 용중호의 말에 진무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스르륵-!
주변 공간을 집어삼킬 듯 퍼져 나가던 용중호의 기운이 순식간에 갈무리된다.
“멸부, 마창! 물러나자!”
갑작스러운 명령이었지만 두 사람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날아오는 오칠의 화살을 쳐내고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용중호의 뒤편에 선 것이다.
‘완전한 종주가 되었군.’
한데 왜 물러났을까?
방금 전 피어오르던 기세는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어쩌면 진무영 역시 최선을 다해야 할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었다.
“갑자기 왜 물러나는 걸까요? 혹시 보물이 위험한 상황이라 그런 거려나.”
용중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대신해서 갈무리했던 기세가 다시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전처럼 과격한 수준은 아니군.’
하나 위협적인 수준에는 충분히 해당된다.
검을 뽑은 진무영과, 활을 들고 옆에 선 오칠이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이었다.
“얌전히 쉬고 있어라. 곧 다시 찾아올 테니 말이다.”
용중호의 등 뒤에서 흘러나온 검은 장막이 거대한 동공을 순식간에 뒤덮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장막이 펼쳐진 듯했다. 아니, 세계를 뒤덮은 듯했다. 그 속에 갇힌 오칠이 몸을 휘청거린다.
“크윽!”
신음을 흘리는 그의 허리를 재빨리 받친 진무영의 눈이 미묘한 빛을 흘렸다.
“미, 미안합니다. 선장.”
“괜찮습니다.”
“내 최대한 힘을 내 보겠소이다.”
오칠은 그리 말하며 간신히 두 발로 땅을 디뎠지만,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극한의 마기에 노출되었을 때보다 더한 공황을 가져오는 미지의 풍경. 천마가 만든 이 풍경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이는 숨은 고수를 포함하여 셋이 되지 않을 듯했다.
“정말…… 강해졌군요.”
진무영은 입맛을 다셨다.
하나 그리 불쾌해 보이는 느낌은 아니었다.
예상외의 함정에 걸려 제법 고초를 겪고 있지만 얻은 게 더 많았다.
일단 은연중에 짐작만 하고 있던 천마신교의 현재 상황을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진시황릉에 대한 진실을 얻었다.
“탈출합시다.”
“여기서 더 얻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물과 수로왕이…….”
“보물은 이곳에 없습니다.”
진무영은 확신했다.
이것이 그가 이번 격전을 통해 용중호를 통해 얻은 진실.
감정을 떠내기 위해 변화무쌍한 연기를 한 성과가 제법이다.
“만약 진짜 진시황의 보물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런 힘을 쓸 생각조차 못 했겠지요.”
마지막 순간, 용중호는 정말 무덤을 무너트릴 작정이었다.
진시황의 보물이 있는 진짜 무덤이라면 결단코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오칠은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독고문이 조금 안타깝긴 하겠지만, 이것이 진무영의 선택이라면 존중할 생각이었다.
“걱정 마세요. 그는 살아 돌아올 겁니다. 나름의 방비는 해 두었으니까요.”
진무영은 오칠의 걱정을 안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준 후 검을 뽑아 들었다.
생각도 정리되었고, 결정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꼭 붙잡으십시오. 한 번에 탈출합니다.”
오칠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진무영의 검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고, 어둠이 갈라졌다.
찌이익-!
어둠속에 비추는 빛을 경건하다 느끼며 올려다보는 오칠의 어깨를 진무영의 팔이 휘감았다.
“갑니다.”
두 사람은 빛을 향해 뛰어들었다.
6. 하늘의 마(天魔)
쿠르릉-!
굉음을 내며 다시금 닫히는 석벽 너머, 달려오는 황준우와 신아를 본 대술사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대체 저 괴물은 뭐지?’
지선, 신아는 예상했던 범주다.
때문에 놀랄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던 황준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다.
‘분명 어디에도 없었는데…….’
마술을 통해 함정 곳곳에 눈을 설치해 둔 대술사였다. 거기다 아직 살아 있는 흑영사들 또한 기운을 흘려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데 어디에도 황준우는 보인 적이 없었다. 때문에 함정을 눈치채고 벗어났다고만 생각했다. 굳이 의미 없는 일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한데 갑작스럽게 모습을 나타났다.
심지어 경계하고 있던 지선과 함께였다.
‘좋지 않아.’
상대는 천안을 연 절대고수.
어린 나이를 감안해서 쉽게 보기도 힘들다.
오히려 실제로 보니 느껴지는 충격은 처음 보았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천마와 동격?’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석벽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짧게 마주쳤던 눈빛을 떠올린 대술사가 등을 돌렸다.
‘얼마나 버틸까?’
평범해 보이는 석벽이지만 마술로 펼친 방진(防陣)이 펼쳐진 상태였다. 대술사가 펼친 방진의 방어력은 일반적으로 초절정고수의 강기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수준이다. 조화경의 고수라고 한들 못해도 일 각 이상의 시간은 잡아 둘 수 있어야만 한다.
한데도 왜 이리 불안할까?
석벽을 때리는 무거운 충격에 눈살을 찌푸린 대술사가 등을 돌렸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놀랐는지 주문을 외우고 있던 마술사들이 모두 그를 돌아보았다.
“적이 온다.”
대술사의 말은 짧았다.
하나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쏟아지던 시체를 놓고, 펼치던 주문을 그만둔 마술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육망성의 진법에 갇혀 새로운 흑영사의 모습으로 화하던 시체들은 검은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린다. 그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 대술사가 입을 열었다.
“마술의 부흥을 위하여.”
“피와 어둠의 맹세를 위하여.”
대술사의 짧은 말에, 마술사 모두가 합창하듯 목소리를 흘린다. 그런 그들과 짧은 시선을 교환한 대술사는 서둘러 밀실의 깊은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마술서와 생황만 회수해서 달아난다.’
밀교의 마술사들은 귀하다.
오랜 시간 핍박 받아 오며 음지에서 자란 만큼 그 수가 굉장히 적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런 마술사들 중 3분의 1에 속하는 엄청난 수였다. 하나 그들 모두를 잃더라도 기운을 충전시킨 마술서와 생황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물론 최고의 결과는 천마의 합류가 제때 이루어져 적을 물리치고 원하는 결과를 모두 얻는 것이다.
한데 아무래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불안해. 느낌이 좋지 않아.’
입술을 깨문 대술사가 문득 뒤를 돌아본 순간이었다.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폭음이 일었다.
구구구-!
밀실 내부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엄청난 기운이 대술사의 살 끝까지 닿았다.
‘역시…….’
일 각은 무슨 반 각도 걸리지 않았다.
피부가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끼는 대술사의 걸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으악!”
“마의 영광을 위하여!”
비명과 고함, 괴성이 뒤섞이며 귀를 때려 온다.
아랫입술을 질근 깨문 대술사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감히, 감히. 대계를 이렇게 망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훌륭했다.
예상외의 변수는 오로지 곤륜의 도사들뿐이었다.
어디서부터 냄새를 맡았는지 귀신같이 쫓아온 그들의 존재는 성가셨다. 조심성 많은 대술사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정도의 제약을 가져왔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뿐이었다.
결국 시간이 흘러 탁기가 함정을 지배해 나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술사에게 유리했던 상황.
때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다.
주의를 기울이고, 또 기울였으니 만약의 경우도 없어야 했다. 한데 갑작스럽게 등장한 정체 모를 청년 고수 하나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이를 악문 대술사는 순식간에 밀실의 끝에 도달했다.
갑작스러운 비명과 엄청난 기운의 파동.
그 모든 것을 느끼는 와중에도 생황의 연주에 집중하고 있던 마술사가 고개를 들었다. 대술사는 그런 마술사를 지나쳐 곧바로 벽에 그려진 작은 육망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건…….”
곧 대술사의 눈이 부릅뜨였다.
육망성의 밑바닥에 위치해 있던 검붉은 기운이 절반 이상 차올라 있다. 심지어 지금도 계속해서 차오르는 중이었다.
‘대체 왜?’
그만큼이나 용중호와 진무영의 격돌이 큰 힘을 가져왔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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