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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36화 (136/373)

학사재생 136화

제 136화

쾅! 쾅! 쾅!

“어서 빨리 뛰어라!”

연달아서 장풍을 쏘아 내는 그의 앞에 토병들이 먼지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린다.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뛰쳐나간 동창 이십사수가 주고치의 팔방을 둘러싼 채 정면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후방을 지킨다!”

나머지 황궁무인들이 그 뒤를 빠르게 따랐다.

기세는 장작에 불을 땐 듯 화려하게 타올랐다.

마차나 말을 타고 달려드는 토병들의 기세가 제법 위협적이었지만, 효찬의 장풍 앞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기에 탈출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흐음…… 어떻게 동창의 내시가 풍제의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거지?”

언제 나타난 걸까?

토병들의 머리 위, 팔짱을 낀 중년인이 미소를 짓고 있다.

“뭐, 뭐야!”

황궁무인들 사이로 가장 먼저 소란이 일었다.

시선을 올려 중년 사내를 확인한 효찬의 얼굴 역시 크게 일그러졌다.

갑작스러운 사람의 등장보다, 그가 허공에 유유자적 서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걸렸다.

“적이요, 아군이요?”

효찬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났기에 불안한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혹시 모를 기대를 한 것이다.

그 마음 한편에는 눈앞의 중년인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글쎄. 적어도 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사이는 절대 아니겠지.”

스스슥-!

허공에서부터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오는 중년인이 허리춤에서 한 자루 검을 뽑아 들었다.

흑룡의 문양이 새겨진 묵검.

누군가의 상징과 다름없는 그를 확인한 효찬의 눈이 크게 떨렸다.

“천마신교! 천마! 그대가 어찌……!”

“어차피 우리가 황궁하고 사이가 좋았던 적은 없지 않나? 새삼스럽게 여기지 말라고.”

중년 사내, 용중호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넓은 동공이 크게 울렸다.

“크악-!”

“쿠웨엑-!”

내력이 약한 무인들은 무릎을 꿇으며 핏물을 쏟았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고 한들 표정이 딱히 좋지만은 않았다. 고작 일보(一步)로 이토록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는 보법은 천하에 있어 단 하나뿐이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그나마 큰 탈이 없는 이들은 효찬을 비롯한 동창 이십사수의 고수들뿐.

하나 그들 모두가 힘을 합친다 한들 눈앞의 용중호를 막을 수 있을까?

효찬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황자전하만이라도…….’

천마군림보의 영향으로 마찬가지로 피를 쏟은 와중에도 최대한 의식을 놓지 않은 채 정면을 직시하는 주고치를 곁눈질로 바라본 효찬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내 무덤인 것 같구나.’

각오를 다진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군.”

그런 효찬의 기세를 읽은 듯 입가로 웃음을 그린 용중호가 묵검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놈은 내가 맡는다. 모두 황자님을 모시고 탈출하라.”

“이 자리에서 누구 하나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용중호의 입가로 명백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아야 아는 법.”

효찬은 말을 줄이고는 곧장 자랑하는 장풍을 쏘았다.

강기가 실리지는 않았지만 용중호가 알아보았듯 풍제의 풍신공(風神功)의 힘이 담긴 강력한 일격이다. 토병들을 일순간에 먼지로 만들 정도의 강대한 위력이 담긴 일 장. 물론 고작 그 정도로 용중호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만 작은 피해 정도는 끼치지 않을까 싶었지만, 웃음을 그리는 천마 용중호는 여전히 검을 들어 올린 채 제자리에만 서 있을 뿐이다.

대신하여 효찬의 장풍을 막아선 것은 용중호의 발끝 그림자로부터 흘러나온 검은 장막이다. 출렁이듯 움찔거리며 효찬의 장풍을 한 번에 집어삼킨 검은 장막이 다시금 그림자로 녹아든다.

“아…… 북명강기(北冥?氣).”

수많은 신공절학들 중에서도 가히 천하의 정점에 위치해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천마의 독문심법을 이용한 절대의 강기. 풍제 본인이 아닌, 효찬의 풍신공으로는 그를 뚫을 방법이 요원해 보였다.

심지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마침 숫자도 딱 맞는군.”

기회가 보이면 곧장 달아나기 위해 눈치를 보는 동창 이십사수를 보며 웃음을 흘린 용중호의 검이 전면을 향해 뻗어졌다.

스스슥-!

용중호의 등 뒤, 허공이 갈라지며 묵빛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는 강기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스물셋.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천마 본인까지 합치면 본인이 말했던 대로 동창 이십사수 전원과 같은 숫자다.

“고작 강기의 검들로 우리 동창 이십사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소?”

천마 본인의 무공의 높음이야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나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닌 강기의 검 따위에 모두가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그 오만을 후회하게 해 주겠소.”

“과연, 말만큼이나 실력이 될지 두고 보지. 자, 즐길 여유가 얼마 없으니 이만 진짜 시작해 보자고.”

용중호가 정면으로 뛰쳐나가 효찬의 손바닥과 검을 마주하자, 그의 뒤를 따르듯 스물세 자루의 검이 춤을 추며 나머지 동창 이십사수와 격돌했다.

굉음과 함께 갑작스럽게 토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고치와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던 주연하는 안색을 굳히고는 검을 뽑아 정면에 섰다.

“길을 뚫고 나간다! 물러서지 마라! 두려움이 없다면 토병은 우리의 적수가 아니다!”

용맹하게 선봉에 나선 그녀의 외침에 용기를 얻은 황궁 무인들이 토병들을 빠른 속도로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기세는 순식간에 올랐고, 길을 뚫는 속도도 빨랐다.

다만 주연하 일행 역시 토병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황궁 무인들의 활약과 주연하의 지휘, 그리고 함께 온 금의위 고수 다섯의 맹활약이 한데 합쳐져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키고는 있지만 너무 늦다. 게다가 당장에야 기세가 좋지만 토병들과 다르게 인간에게는 체력적 한계라는 것이 있다.

‘이 상태로는 힘들어.’

주연하의 마음이 다급해질 때였다.

“마(魔), 불(不), 명(明), 로(路), 실(失), 결(結)!”

주연하가 선봉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이곳저곳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내려놓던 청년이 양손을 지면에 맞대고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주연하 일행의 주변으로 옅은 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공격을 감행하던 토병들의 움직임이 점점 굼떠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헉, 헉. 지금입니다, 누님!”

식은땀이 가득 흐르는 이마를 닦은 청년이 거친 목소리를 흘리자 그의 옆에 서 부축을 한 주연하가 고개를 주억였다.

“고마워, 휘!”

“별말씀을.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제갈세가에서 주연하를 따라 함께 황궁에 온 청년, 제갈휘가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곧장, 두 눈에 독기를 품은 채 토병들이 멍하니 서 있는 방향 중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쪽으로 가시면 곧장 탈출할 수 있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아 진법의 효력이 길지는 않으니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돼요.”

“알았어. 다들 이쪽으로!”

처음 겪는 진법의 신묘함에 놀라움을 느끼는 황궁 무인들과 금의위를 이끌고 주연하가 또다시 선봉에 섰다. 검을 휘두르거나 싸울 필요 없이 빠르게 뛰기만 하면 되니 속도는 확실했다.

그러던 와중.

문득 허공을 지나쳐 가던 신형 하나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멈춰 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선을 마주한 탓일까, 주연하도 상대를 알아보았다.

‘황준우?’

어째서 그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의문은 많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또한 황준우는 별다른 대화 대신 가볍게 웃음만 보이고는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뒤를 향해 시선을 보낸 주연하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할 사람이 따로 있지.’

지금은 스스로의 몸이나 잘 챙겨 빠져나가는 게 그를 돕는 일일 터였다.

스르륵-!

일만,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많았을 토병들이 잔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다.

모래 먼지만 가득 쌓인 길을 여유로운 걸음으로 나선 다섯.

그 중심에 위치한 진무영이 살짝 볼을 긁었다.

“아무래도 이거, 함정에 빠진 것 같군요.”

“진시황의 무덤이 아닌 게요?”

독고문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기관이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멈추어 있던 토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사태이기는 했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무림군주라는 명성, 혹은 그에 가까운 별호를 가지고 있는 초고수들.

고작 흙장난으로 만든 병사들은 한 끼 식사 후 운동거리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거슬리는 것은 진무영의 말대로 이 자리가 함정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진짜 진시황의 무덤이 아니라는 것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진시황의 보물, 또는 그의 이름이 깃든 무언가를 바랐던 입장에서야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제 실수인 것 같군요.”

진무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섬서 서안.

‘분명 진시황의 무덤이 있다면 이곳이리라고 확신했는데.’

한데 함정에 걸려들었다.

명백한 실책이었다.

“물러날 겁니까?”

궁왕, 오칠이 물어왔다.

진짜 진시황의 무덤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헤맬 이유가 없다. 들어오기 전 밝힌 바 있듯, 가짜 칙령을 사용하기 위해 신분도 감춘 만큼 가능하다면 최대한 발을 빨리 빼는 게 좋았다.

“선장도 실수를 하는군.”

오태악이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차무열 역시 꽤나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래서 사람이 실수를 하면 안 된다니까.’

그리고 다루는 사람들은 최대한 수족(手足)과 같아야 한다. 각자의 자존심이 높은 무림군주들은 모이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것이 사실.

“휴우,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누가 일을 벌였는지는 확인해야겠지요. 쓸데없는 헛고생을 시킨 벌도 줘야 할 테고.”

“그렇다면 나는 이만 물러나겠소.”

차무열이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물러설 사람은 이만 가셔도 좋습니다. 제 실책에 대한 보답은 따로 연락드리도록 하지요.”

“먼저 가서 기다리겠소.”

냉정한 듯 돌아섰지만 마지막 순간 굳어졌던 차무열의 표정이 살짝 풀리며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나름대로 실리를 챙겼으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일 터였다.

“킁, 그러면 나도 이만 물러나겠소.”

경쟁 관계인 차무열이 빠지자 흥이 식었는지 오태악도 물러나는 것을 선언했다.

“열화궁주께도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남궁세가 일은…….”

“그건 내가 하겠소. 설치는 노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선 것도 있으니 말이오.”

오태악의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감사합니다. 최대한 돕겠다는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기대하겠소.”

그렇게 오태악, 차무열이 떠났다.

“남은 두 분은 함께 가시렵니까?”

“나야 뭐, 괘씸한 녀석 얼굴이 한 번은 보고 싶긴 하군요. 흘흘.”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니오?”

오칠과 독고문, 서로의 품은 생각은 분명히 달랐지만 어쨌든 여기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사람은 셋.

처음에 비해서는 반에 가까운 인원이 줄었지만 전력으로만 치자면 여전히 무지막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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