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132화
제 132화
4. 진시황릉(秦始皇陵)
강소 소주에서 섬서 서안까지.
빠른 말을 타고 쉴 새 없이 달려도 두어 달은 훌쩍 필요할 거리를 황준우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만에 주파했다. 자연지기로부터 전환되는 끊임없는 내력과 유령신보라는 희대의 경공술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준우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축지(縮地)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시간을 반으로 더 줄일 수 있었겠지.’
술에 대해 알게 된 이후 진짜 축지법(縮地法)이라는 신묘한 능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경공과는 그 원리 자체가 달랐다. 이미 제갈량이 보여 주었던 이름 그대로 땅을 접었다 펴는 축지법은, 내력을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황준우가 직접 만든 유령신보보다도 더욱 빠른 이동 속도를 자랑하는 상승의 술이었다.
물론 아직 하급에 속하는 광구의 술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황준우로서는 말 그대로 꿈에만 그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다는 생각을 한 것은 역시 이번 일에 황석후가 연관되어 있는 탓이 컸다.
조금이라도 빨리, 한 걸음에 더 멀리.
전생에도 가져 본 적 없던 조급함이 황준우의 마음에 붕 떠올라 있었다.
“사마정.”
서안에 도착하자마자 혈안서를 따라 지하에 위치한 사마정의 비밀공간을 찾았다.
“무신을 뵙습니다.”
붉은 눈을 빛내며 주변으로 몰려든 혈안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사마정이 부복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황준우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리 혈안서를 통해 황석후에 대하여 제일 순위로 조사해 놓으라고 하였다.
다행히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진시황릉으로 직접 들어가신 것 같습니다.”
하나 내용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진시황릉에?”
황준우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잠시 생각에 몰두했다.
‘보물에 욕심을 부리실 분은 아니야.’
아무리 진시황릉의 보물들이 탐이 난다고 하여도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까지 욕심을 부릴 성격은 못 된다. 솔직히 말해 그딴 것 없이도 만금장의 금력은 이미 천하에 비견할 적수가 없다.
“들어간 이유는 알고 있어?”
“자세한 건 아닙니다만.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대화를 들은 이가 있다고 합니다.”
“지켜?”
진시황릉을?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무런 짐작이 가지 않았다.
황석후와 진시황릉, 연관 관계가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 탓이었다.
“그 외로는?”
“진시황릉이 무슨 목적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위치가 밝혀진 것 역시 사실인 듯합니다. 꼬리를 쫓는 중입니다만, 아직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호, 그러니까 진시황릉은 미끼다?”
“만약 진짜 진시황의 무덤이라 한들, 그 용도는 미끼로 사용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황준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진시황릉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함정이라는 뜻이다.
‘대체 누굴까?’
황준우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하무림에 그런 음흉한 놈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는가? 넘치고 넘치는 게 그런 녀석들이다. 아직까지 사마정이 알아내지 못했다면 직접 부딪치는 것이 최선이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더 알아낸 것 없어?”
“……죄송합니다.”
사마정이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황석후의 뒤를 쫓기 위해 혈안서를 진시황릉에 풀어 놓았지만 벌써 열 마리가 넘게 돌아오지를 않는다. 직접 들어가기에는 황궁의 눈이 너무 매섭다.
긴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일단 알겠어.”
황준우는 가볍게 고개를 주억이며 그런 사마정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수고했어. 최선을 다한 것 아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
“무신이시여…….”
잠시 사마정을 향해 흐릿한 미소를 보인 황준우가 등을 돌렸다. 원하는 정보는 알았으니 또다시 움직여야 한다.
“일단 진시황릉에 직접 들어가야겠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들어간 혈안서도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위험하겠지.”
황준우는 무슨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사마정을 돌아보며 웃음을 보였다.
“아…… 그렇군요.”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흘린 사마정의 얼굴에도 흐릿한 웃음이 떠오른다. 저도 모르게 한 발 앞서 나가 버렸다. 예전과는 다른, 조금은 부드러운 것 같은 분위기에 잊고는 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근대 무림에 유일하게 무신이라 불리는 사내다.
“위험한 쪽은 나의 적이다.”
무신의 적.
사마정이 고개를 주억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아직 누가 이런 장난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쉽게는 넘어갈 수 없을 거야. 알려 줘야지. 만금장을 건드린다는 게 어떤 건지 말이야.”
이후 황준우가 한 걸음을 떼고, 그의 기척이 사라졌다.
“아……?”
사마정으로서는 감히 그 방향조차 쫓을 수 없었다.
덕분에 사마정은 준비해 놓았던 물건을 채 꺼내 놓지도 못했다.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 사마정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황제의 직인이 찍힌 진시황릉 입장 허가 칙령.
제법 그럴싸한 모습에, 옥새의 모양을 본 딴 도장을 찍었지만 놀랍게도 가짜다.
추적 중에 있지만 이 가짜 칙령을 뿌린 이들의 꼬리는 사마정으로서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다만 이번 진시황의 무덤을 발견한 자들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쯤은 들었다.
“세 개쯤 풀렸다고 했던가.”
아마 황제가 이 사실을 안다면 추후에라도 엄청난 역풍이 몰아칠 것이야 분명하다. 하나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 또한 사실. 나름대로 위장 신분까지 준비했던 사마정은 화로에 불을 붙여 칙령을 불태웠다.
“이런 것쯤이야 상관없겠지.”
황궁 무인들의 감시가 예리하다고?
아무리 기감이 좋은 실력자가 십이 시진을 쉴 새 없이 지킨다고 하여도 황준우가 마음먹고 숨어 들어가고자 하면 잡을 수 없다.
가짜 칙령이 불타오르는 지하의 중심.
다시 혈안서들 무리에 앉은 사마정의 눈과 귀가 번쩍였다. 언제나 그렇듯 혈안서들의 찍찍거리는 소리가 마치 사람의 음성처럼 그의 귀와, 뇌를 파고든다.
그중에서 필요한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정보를 조합하여 진실을 완성한다.
황준우가 직접 진시황릉에 들어갔지만 그가 할 일은 아직도 많았다.
현재 이 자리에 모인 무수히 많은 세력들.
그리고 그 와중에 우연치 않게 잡게 된 이름 한 줄기.
‘활협단.’
냄새가 난다.
여태까지 그저 은연중에 쫓아야만 했던 정, 사, 마의 비밀 연합 세력.
현재의 중원 무림을 움직이는 실세의 꼬리를 드디어 잡았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황준우가 돌아오기 전에 명확한 몸통 정도는 알아내고 싶다.
의지를 담은 사마정의 눈에서 붉은빛이 넘실거렸다.
진시황릉이 한눈에 보이는 허공 위.
높은 나무를 박차고 몇 번의 허공답보 끝에 선 황준우가 눈을 빛냈다.
“진짜 감시가 보통이 아니네.”
자그마치 진시황의 무덤이라 그럴까, 진을 친 황궁의 병사들이 삼십 리(1리 = 0.3KM) 바깥까지 주둔하며 감시망을 펼치고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이상의 무림인에게 있어 일반 병사들의 눈을 속이는 일쯤이야 어려울 것은 없다. 문제는 역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늘어나는 황궁의 무인들이다.
정식으로 무공을 익히고 수련한 그들의 시선이 사방 곳곳에 펼쳐져 있다.
아무리 잠행공(潛行功)이 뛰어난 고수라 하여도 이 정도로 눈이 많으면 힘들어진다.
진짜 몸이 투명해지거나, 상대가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또 한 가지 방법에 속했다.
“가 볼까.”
하나 더, 지금의 황준우처럼 허공답보를 섞어 하늘을 날아가는 것 역시 쫓기 힘들 터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엄연한 비상식에 속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태연하게 하늘을 날아, 진시황릉으로 추정되는 검은 동굴 입구를 향해 나아가던 황준우의 걸음이 문득 멈추었다.
‘어, 저 녀석?’
황궁의 무인들 사이, 어딘가를 향해 다급하게 뛰어가는 제법 익숙한 인상이 보였다.
“역시 살아 있었네, 전왕.”
황준우는 피식 웃고는 잠시 그의 뒤를 쫓았다.
혹시 사마정은 모를 정보를 황궁에 속한 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 탓이었다.
“어휴, 정말 큰일 날 뻔했네.”
혼잣말을 하며 인기척이 드문 숲속으로 파고든 전왕이 바지를 주춤주춤 내리기 시작한다.
‘저 녀석 설마 그렇게 급하게 뛰던 게…….’
아니나 다를까. 수풀 사이에 완전히 주저앉은 전왕의 얼굴에 곧 평온이 찾아왔다.
“아…….”
황준우는 기쁨이 섞인 짧은 신음까지 흘리는 그를 잠시 기다려 주었다. 아무리 따르는 인물이라 한들 볼일 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은 민망하지 않은가? 전왕처럼 심장이 약한 경우는 놀라서 뒤로 넘어져서 못 볼 꼴 보거나, 재수 없으면 심장병이 생길 수도 있었다.
“으으, 시원해.”
근처의 두터운 풀잎을 꺾어 뒤처리를 하고는 다시 바지를 주섬주섬 올린 전왕이 몸을 일으킨다.
그때가 돼서야 황준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읍!!”
놀란 전왕이 소리를 지를 듯하며 뒤로 넘어가려는 걸 재빨리 움직인 황준우가 등을 받쳐 주고, 입을 막아 버렸다.
쿵쾅쿵쾅쿵쾅.
‘이 녀석은 늘 볼 때마다 이러네.’
나름대로 놀라지 않게 기척을 드러내며 나타났는데도 이렇다.
당장 터질 것처럼 뛰는 전왕의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운을 불어넣어 준 황준우가 천천히 그의 입에서 손을 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직후, 신발 끝에 묻은 묘한 감각에 황준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조금 진정된 전왕은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알을 굴리다, 황준우가 밟은 자신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사색이 되었다.
“무, 무…….”
“괜찮아. 괜찮으니까 진정해.”
물론 속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설마하니 뒷걸음질 치다가 똥을 밟을 줄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무신 황준우가 말이다.
‘이게 말이 돼?’
상식적으로, 아니 비상식적으로도 이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발밑에 느껴지는 감촉과 냄새는 진짜였다.
정말로 밑바닥을 찍을 정도의 불운(不運)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 제갈량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배를 잡고 바닥을 구르며 웃었을 터였다. 팔괘술법서의 가치를 상응하지 못하여 있을 수 있다는 작은 화가 이토록 갑작스럽게, 그러고 어이없게 터져 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사정을 모르는 황준우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하고 황당한 일이었다.
“저, 정말 괜찮으십니까?”
전왕이 물었다.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이미 이렇게 됐는데.”
황준우가 황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전왕이 제 발에 신고 있던 신발을 빠르게 벗어 던졌다.
“하, 한번 신어 보시지요!”
“……맞으려나?”
멋있게 행동하고 싶지만 똥 묻은 신발을 신고 그러기도 참 체면상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황준우와 전왕의 발 크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황준우와 전왕, 둘이 동시에 내쉬었다.
어찌 됐든 그만큼이나 당황스러웠던 사건이었다.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사건을 수습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웃음을 흘렸다.
“헤, 헤헤. 이것 참…….”
“조금 당황스럽긴 하네.”
“무신께서도 사람이긴 하시군요. 실수도 하시고.”
그렇게 말한 전왕의 얼굴이 다시 사색이 되어 가려 한다.
말실수를 했다 여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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