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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19화 (119/373)

학사재생 119화

제 119화

기실 무기술의 수련으로 심신일체에 대한 필요성을 재자각하고, 조율할 수 있는 자연지기의 양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다.

당장은 이 이상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얻은 것을 소화해야 할 때였다.

“우린 조금 나중에 갈게.”

그래서 황준우는 융중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와룡촌(臥龍村)에 도착한 이후 곧장 주연하와의 작별을 선언했다.

“함께 가지 않는 것이냐?”

“아무래도, 준비를 조금 해야 될 것 같거든.”

만약에 제갈세가에 들어가 술에 대한 지식을 얻더라도 지금 당장은 그를 배울 여력이 없다. 황준우는 이번에 얻은 깨달음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성장을 위해 한 발 멈춰 가는 바를 택한 것이다.

비단 이는 황준우 본인을 위한 선택만은 아니었다.

황서연과 경호, 홍산 모두에게 필요한 일.

시간에 비해 많은 성장을 했기에 돌아오는 역효과에 속했다. 이를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나중에 독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지. 덕분에 즐거운 여정이었다. 또 보자꾸나.”

주연하는 미련 없이 황준우 일행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일단 멈춰 섰지만 황준우 역시 목표는 제갈세가.

그리고 주연하 일행도 현재 제갈세가를 향하는 중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질 인연이라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되리라.

“그래. 또 보자고, 친구.”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멀어졌다.

7. 와룡의 후예들

확실히 고작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얻은 것치고는 너무 큰 성과였다.

작은 마을에서의 일상은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졌다.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를 의식하지는 않았다.

그만큼이나 바쁜 나날이었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황준우는 봉 외에 창, 도, 극, 심지어 단검을 이용한 비도술(飛刀術)과 편(鞭)까지 모두 돌아가면서 익혀 어떠한 상황에서, 무슨 무기를 이용해서든 심상지기를 펼칠 수 있게 스스로를 갈고닦았다.

‘확실히 강해졌다.’

눈을 감고, 스스로를 제량한 황준우는 확신이 들었다.

벽을 넘어선 것이 아님에도 강해졌다.

가장 큰 이유를 뽑자면 역시 다룰 수 있는 무기의 증가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로 인해 전투 시 황준우의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짧은 거리에서는 가장 익숙한 권각, 중거리에서는 검, 과 도, 그 이상 길어지면 창 혹은 봉을 사용할 수 있다. 그보다도 더 넓은 거리를 필요로 한다면? 편, 최종적으로 비도를 날릴 수 있는 영역까지 황준우의 공간(空間)이 형성된 것이다.

‘이게 진짜 제공권(制空圈)의 완성으로 향하는 길인가?’

제공권, 그러니까 한 명의 무인이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은 모두가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다수의 무인들은 이러한 공간을 애매한 수준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천재들 중에는 이런 제공권을 곧장 눈치채고 사용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육감이 극도로 발달했기에 가능한 일.

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다.

따라 하려고 하여도 따라 할 수 없는 종류의 진짜 배기.

황준우 역시 이러한 제공권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아는 무인들 중 유일하게 두 사람 더. 황서연과 진무영 역시 고유의 제공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기본적인 제공권의 크기는 달랐다.

또한 한 호흡에 스스로의 움직임이 닿는 거리를 만드는 제공권의 특성상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다만 전방으로부터 측면, 후면까지의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전투 시 사각(死角)의 구애를 크게 받지 않게 된다는 사실만은 모두가 같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한 명의 무인은 월등히 강해지게 된다. 허초 속에 섞여 사각을 파고드는 실초를 파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기적인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제공권을 가진 무인은 일반적인 무인에 비해 최소 한 수 이상을 앞서게 되어 있다. 황서연이 일류 때부터 이미 절정에 가까운 무위를 보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그런 제공권은 본능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련할 수도 없고 전수할 수도 없다.

경호와 홍산 등에게 이런 설명을 못해 준 이유도 그런 기준이었다. 한데 황준우는 수많은 병장기술을 모두 익히며 제공권의 완성을 떠올렸다.

그 무기가 가진 각자의 거리 감각을 완전히 머리를 넘어 육체에 새겨 버린 덕이다.

이 말은 십팔반병기를 모두 능숙하게 다루게 된다면 누구라도 제공권을 익힐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나중에 한 번 도전해 봐야겠어.’

경호와 홍산을 향한 새로운 임무를 만든 황준우는 다시금 본인의 제공권에 대한 생각을 했다. 본래라면 거리를 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는 제공권의 완성을 말해선 안 된다.

한데 황준우는 분명 완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제공권이란 상대와 자신 간의 실력 격차, 거기에 더해 사용하는 무기의 특징이라는 두 가지 변수를 갖추고 있다.

때문에 본래 제공권의 완성이란 불가능한 것.

황준우의 생각대로 모든 거리에 사용할 수 있는 병기를 챙겨 다닌다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조율의 경지에 오르기 전까진 분명 완벽한 불가능으로 보였지.’

한데 아니다. 분명 완성으로 가는 길이 있다. 황준우는 그를 확인하기 위해 수왕검을 뽑아 들었다.

이후 빠르게 정면으로 내뻗는다. 딱히 기운이 보태지지는 않았지만 빠르고 정확한 일격이었다.

‘여기까지가 검의 거리.’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황준우의 손이 수왕검을 완전히 내려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왕검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채 허공에 떠 있다.

이어서 펼쳐진 것은 황준우의 권각술이다.

파바밧-!

눈을 감은 황준우는 시선보다 감각에 의존했다.

주먹 혹은 발이 닿는 거리의 정점과 최소화.

‘권각술의 거리. 제일 짧지만 역시 가장 자유롭다.’

그리고 마지막.

눈을 부릅뜬 황준우의 손이 허공을 휘젓자 떠 있던 수왕검이 울음을 토하며 정면을 향해 나아간다. 한데 그 속도가 화살보다도 더 빠르다. 심지어 단순히 그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황준우의 손이 움직이면 그 의지에 따라 다른 검초를 펼쳐 내기까지 했다.

무림인 혹은 무공에 대해 아는 인물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경악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황준우가 보여 주는 무공은 전설로만 전해지는 이기어검(以氣御劍)이었다.

황준우는 그렇게 화살보다 몇 배는 빠른, 마치 빛살처럼 움직이는 검을 길게 뻗어 약 십장(十長)에 가까운 거리까지 단숨에 쏘아 냈다.

쐐에엑- 파바밧-!

공기가 찢어지다 못해 불꽃이 튀었고 귀를 찢는 것 같은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턱, 부르르.

날아간 수왕검이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힌 듯 검극을 떨며 괴성을 토했다.

그렇게 조금 더. 화살이 날아가는 정도의 속도로 일반적인 장정의 걸음으로 약 열 걸음쯤 정도의 거리만큼 더 나아간 후였다.

수왕검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여기가 한계인가.”

눈가 끝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수왕검을 집어 든 황준우의 두 눈에 묘한 아쉬움이 어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육단공의 깨달음을 처음 얻었던 그 순간, 황준우는 하늘을 날며 이기어검의 궁극을 맛본 경험이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에 비하자면 부족한 수준. 그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고 있었다.

큰 깨달음과 함께 잠재되어 있던 한계가 폭발하듯 분출하여 순간적으로 경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그를 온전히 본인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해 버린 경우. 고수의 영역에 도달할수록 이런 경우는 제법 흔히 일어난다.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경호가 한동안 강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로, 인간의 심신이 단번에 그 엄청난 힘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이 부분은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꽤나 극복이 되는 편이었다. 오성이 뛰어나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다음 경지도 이해하고 곧바로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데 천하제일의 천재라고 볼 수 있는 황준우도 조율의 단계가 보여 주는 힘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했다.

실상 십팔반병기의 수련을 끝내고 제공에 대해 생각하기 전까지는 당시 사용했던 이기어검에 대해 잊고 있었을 정도였다.

결국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느껴지는 괴리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다만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분명 똑같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일단은 제공을 반쯤은 완성했으니까 말이지.”

자그마치 십장 내외의 거리.

현재의 황준우는 그 엄청난 만큼의 거리를 단 한 호흡, 또는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시간 동안 지배하듯 움직일 수 있었다. 이는 황준우와 동격 혹은 그 이상의 고수를 만나지 않는 한 불변의 수치였다.

무기의 변수가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황준우의 제공권은 위력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처음 만났을 때 그를 깜짝 놀라게 했던 진무영도, 지금 느껴지는 힘이라면 명력이 깃든 무기를 뽑기도 전에 죽일 자신이 있었다.

수많은 실마리와 단서를 찾아야 했던 시간들. 거기에 더하여 주연하와 함께 이동하였던 한 달에 와룡촌에 머문 시간을 합쳐 삼 개월.

그 수많은 흐름 속에서야 황준우는 천조신공의 육단공 경지에 이른 이후 처음으로 성장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황준우의 한 걸음은 무겁고 거대했다.

반면 다른 세 사람의 걸음은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빨랐다. 황서연은 어느덧 완숙한 절정고수의 기도를 온몸에 풍기고 있었다.

폭발하듯 불어난 내공과 매영검의 공능 덕에 억지로 만든 강기마저도 일반적인 절정고수에 비해 오래 사용할 수 있어 단기전이라면 초절정고수의 목을 베는 것도 가능할지 모를 수준까지 성장한 것이다.

경호와 홍산 역시 추궁과혈 이후 자유로워진 기의 수발을 수련하며 진일보했다. 이제 경호는 청홍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중검의 특성을 가진 강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홍산은 두 자루 창에 동시에 강기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필요할 때 무형(無形)의 기파(氣波)를 쏘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큰 위력은 없지만 격전 중 상대의 자세를 흐트러트리거나 호흡을 꼬이게 만들 수는 있을 수단으로, 치열한 격전에서 아주 훌륭한 무기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결국 무한에서부터 이어진 여정은 일행들은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셈이었다.

“다들 내가 별로 알려 준 것도 없는데 알아서 잘 성장했네.”

실상 가장 마지막으로 수련을 끝낸 것은 황준우.

이미 그 전에 나름의 방법으로 경지를 올리고 황준우가 수련을 끝내기를 기다리던 세 사람의 얼굴에는 일전에 없던 자신감이 가득해 보였다.

스스로의 성장을 확연히 깨닫고 있기에 가능한 일.

“좋아, 그러면 우리도 제갈세가로 가 보자.”

그 자신감은 신비의 영역이라는 융중산, 제갈세가를 향하는 걸음으로까지 이어졌다.

융중산 초입은 일반적인 산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소로(小路)가 마치 입구처럼 만들어져 있고 좌우로는 가득한 수풀로 채 가리지 못한 험준한 굴곡이 가득하다.

솟아 있는 나무들 크기 역시 제멋대로다.

아무리 무공을 익히고 체력이 좋다지만 좁다나마 길이 있는데 험로(險路)를 따를 필요는 없다. 황준우 일행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자취가 남은 소로를 쫓아 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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