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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14화 (114/373)

학사재생 114화

제 114화

“아니, 지쳤어.”

“조금 쉬었다가 지옥으로 가고 싶습니다, 도련님”

“저도 동감입니다.”

“그, 그래.”

하긴, 그만큼 힘차게도 놀았으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럼 나 먼저 갈 테니까 세 사람은 마음에 드는 객점 잡고 있어.”

“아무 곳이나 말입니까?”

그 말과 함께 황준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어떻게 찾아오려고, 라는 고민을 한 세 사람이었지만 그냥 생각을 접기로 했다.

“도련님이 적어도 아무 대책도 없이 가시진 않았겠죠.”

“설령 대책이 없더라도 어디 가서 맞거나 술에 취해 쓰러져 있을 성격은 아니잖아요?”

“맞을 일은 절대 없고, 술도 끊는다고 하셨죠.”

“걱정 끝!”

황서연은 활기찬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오 층 건물의 황학루(黃鶴樓)는 무한에 위치한 고급 주루 중 하나였다. 일단 음식 맛이 좋고 다양한 술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장점이요, 돈을 더 많이 낼수록 상층에 갈 수 있게 구성되어 상류층들의 허영심을 채워 줄 수 있는 장사 수완이 두 번째 장점이다. 이는 어찌 보자면 단점으로 찍힐 수 있으나, 애초부터 고급 주루인 만큼 일반적인 서민들은 몇 오지도 않는 곳이 황학루기에 큰 상관이 없었다.

이른 바 가진 자들에게 있어서만큼은 나름대로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자극도 되고, 스스로의 욕망도 분출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곳이 바로 황학루인 셈.

그 정점에 달하는 황학루의 최상층인 오 층에 도착하면 목도하게 되면 압권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정경을 볼 수 있다.

거대 도시인 무한을 한눈에 가득 담는 그 기분이란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황학루가 무한 제일이라는 말을 입에 달게끔 만들고, 새로운 손님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오 층을 찾게끔 한다.

물론 그만큼이나 훌륭한 술과 음식, 투철한 직업 정식을 가진 직원들도 따로 빼놓을 필요 없는 무한 제일이다.

“어떠십니까?”

그런 황학루의 오 층 전체를 하룻밤 동안 빌린 미중년(美中年)이 창 바깥을 가리키며 묻는다.

“아름답고 멋진 정경인지고. 덕분에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그의 뒤에 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답하는 이는 아름다운 미색을 자랑하는 명 제국의 황녀, 주연하였다.

“내 활협단주에게 큰 은혜를 입고 선물도 받게 되니, 이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도록 하겠다.”

“단주라기보다는 선장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주연하의 말에 활협단주 혹은 선장이라 불리는 이가 짧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딱딱한 명칭보다는 한 배를 탄 사람으로서 동지처럼 불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한 선장이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그렇다고 황녀 마마의 동지라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혹여 오해는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다. 뜻이 옳고, 서로 합이 맞다면 직책을 벗어나 동지 혹은…… 친구도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친구라……. 제게는 너무 과분한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일행 분은 언제쯤 오실까요?”

“인시 말까지 오라고 하였으니 지금쯤이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였던가?

사 층 계단에서부터 인기척 하나가 느긋이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동시에 웃고만 있던 선장의 눈매가 오묘하게 변했다.

‘고수?’

일정 이상의 실력이 되면 단순한 걸음걸이와 호흡에서부터 실력이 판가름된다. 흔히 기세가 드러난다고 말하는 경우가 바로 이에 속한다. 보통 절정의 무인까지가 이런 보이는 기세가 크다. 누가 보아 상대가 고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지. 하나 그 수준을 벗어나 초절정의 경지가 되면 걸음걸이와 호흡으로는 구분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조금씩 변모된다.

나름대로 자신의 기세를 갈무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감추지는 못한다.

따지자면 무림강호에서 늘 숨기라 말하는 삼할 정도로 감출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그조차 넘어서 조화의 경지에 올라서면 드디어 겉으로 보이는 기세가 완전히 사라진다. 비로소 이른 바 반박귀진(返撲歸眞)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무인들은 초인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다. 바로 아래에 속한 초절정의 무인들조차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물의 실력을 판가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 기척에서부터 이미 고수라는 냄새를 풍긴다는 것은 초인이 되지 못한 인물임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이 놀란 것은 다가오는 기척에서 풍기는 그 고수의 냄새가 옅은 탓이었다.

‘조화는 이루지 못했지만 초절정은 된단 뜻인가?’

흥미가 간다.

선장은 인재를 좋아하고, 특성상 무인을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군.’

물론 활협단의 이름 아래 동지로 뭉친 이들 중에는 초절정도 되지 못한 이가 오히려 적다. 하나 주연하에게 듣기로 상대의 나이는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과연…….”

고개를 돌려 모습을 드러낸 황준우를 본 선장의 눈이 곱게 휘어졌다. 이제 고작 약관이나 되었을까? 어리다. 그리고 신선하다.

한데도 강렬하다.

딱 그가 기대했던 젊은 천재를 마주한 느낌이다.

“천하를 떨게 할 청년 고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활협단주직을 맡고 있는, 진무영이라고 합니다. 편히 진 선장이라고 불러 주셔도 됩니다, 하하!”

호탕하게 웃는 그를 기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황준우도 비슷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반가워, 진 선장.”

다소 예의 없는 행동.

하나 선장, 진무영은 아무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젊은 천재는 오만해야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재능 있는 자를 좋아한다. 때문에 재능 있는 사람의 오만 역시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나이에 재능은 있는데 패기가 부족했다면 더 실망했을 터였다.

“저도 반갑습니다. 성함이…….”

“황준우.”

황학루 오 층의 정상.

“황준우…… 앞으로 황 소협이라 부르면 되겠군요.”

“마음대로.”

활협단 선장 진무영과, 황준우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진무영은 황준우를 보고 연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 첫인상과 그가 아직 모르고 있던 젊은 천재라는 놀라움 탓이었다.

두 번째는 이름.

결코 잊을 수 없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강렬한 만남이다.

한데 그조차 넘어서는 무언가가 더 있다.

‘작금의 무림에 이런 잠룡(潛龍)이 있었을 줄이야. 사대무룡(四大武龍)의 이름은 허명에 불과하구나.’

정, 사, 마를 통틀어 이름이 빛나는 젊은 기재들을 한데 묶어 현재의 무림은 사대무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향후의 우내십존은 따 놓은 당상이요, 미래의 무림군주로서 확실히 자리 매김한 인재들이다.

하나 그런 그들조차도 황준우의 나이 때 그만큼을 못했다.

기껏해야 절정의 고수.

그리고 명문대파 혹은 억압 속에서 큰 탓인지 예의는 있으나 패기가 없거나, 반대로 야성적이지만 정도를 몰랐다.

한데 눈앞의 황준우는 다르다.

“황학루가 명물은 명물이네. 이런 좋은 풍경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

말투와 기세는 마치 사파나 마종의 기재처럼 거칠다.

“음식은 추천 받을게. 술은 됐고. 끊기로 다짐했거든.”

그에 반해 행동이나 의사 표현에는 대문파의 제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정중함과 도리가 엿보인다. 아주 짧은 시간, 주루의 점소이를 대하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것이 선장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대기(大器)로군요. 황 소협은 대기예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칭찬에 놀란 표정을 지은 진무영이 자리에 앉았다.

“실례지만 황 소협, 혹시 사사받은 문파를 알 수 있겠습니까?”

과연 어딜까, 이런 뛰어난 천재를 배출한 문파는?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사도이문은 아니다.

그런 대문파나 세력의 기재와 고수였다면 진무영의 눈을 피할 수 없다.

분명 전혀 예측지 못한 제 삼 세력에 속하는 인물일 것이다.

“사사받은 문파 같은 건 없는데?”

“설마 홀로 무공을 익히신 겁니까?”

황준우는 태연하게 고개를 주억였고, 음식이 나오자 여유로운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진짜 홀로 무공을 익혔다고?’

일반적으로 황준우의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의 반응은 비웃음으로 시작된다.

혹은 코웃음을 치거나, 놀리지 말라며 성을 낼 터였다.

하나 진무영은 침착했다. 놀란 것은 사실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조금 더 차분히 황준우라는 젊은 천재를 읽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혹시, 만금장 소장주 아니십니까?”

짧은 고민 끝에 찾아낸 이름을 읊었고, 황준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건 맞아.”

“과연…… 명불허전 소주대인의 자식답습니다. 호부 밑에 견자 없는 법이라 저 진 모, 만금장의 저력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농담이나 과장된 헛소리가 아니었다.

고민 끝에 황준우의 정체를 추론하고, 확신을 가지게 된 진무영은 진심으로 놀랐다.

천하제일의 금력을 가지고 있다는 만금장.

진무영이 오랜 과거부터 활협단에 참가하기를 바랐건만 지속적인 접촉 시도에도 만금장은 늘 거절의 답변을 보내왔다. 일개 상인이 큰물에 끼일 수 없다는 보기 좋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말이다.

‘그런 상인의 자식이 천하에서 제일가는 기재라…….’

더욱 탐난다.

그 말은 곧 눈앞의 청년만 손에 넣으면 만금장까지 통째로 굴러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는 탓이었다.

저도 모르게 말라 오는 입술을 혀로 촉촉이 적신 진무영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이상하게 요즘 남자들 관심을 많이 받네.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하지. 본래 목적은 따로 있잖아?”

황준우가 그런 진무영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고는 말한다.

“아, 황녀마마를 위한 준비라면 이미 모두 끝났습니다. 약속드린 황금은 이미 황녀님 명의로 황궁으로 전달했고, 원하신다면 내일 당장에라도 무리 없이 융중산으로 떠나실 수 있을 겁니다.”

“벌써 끝이 났다고?”

그 말에는 주연하가 놀랐다.

황학루에서 만나 세세한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이미 행로의 끝에 도착해 있다. 어렵게 생각했던 것이 쉽게 풀려 버리는 경우. 마치 황준우의 일처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시기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으니까요.”

“세상일이 나에게만 어려운 것인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아니다.”

손을 내저은 주연하의 눈에 굳건한 빛이 어렸다.

“그러면 내일 당장 융중산으로 가겠다. 그곳에서 꼭…….”

“잠깐, 이 이야기는 나 처음 듣는데 너 융중산으로 가는 거였어? 제갈세가?”

황준우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먼 옛날 삼국시대를 이끌었던 주역 중 하나인 와룡(臥龍), 제갈공명의 은거지였던 곳으로 지금은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의 본가가 위치한 곳이다. 문제는 이 제갈세가란 곳이 그렇게 개방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약 반백년 전, 정확하게 딱 십 년간 세상에 나와 활동하며 오대세가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딱 그뿐. 그 이후로 제갈세가가 세상의 주역으로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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