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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05화 (105/373)

학사재생 105화

제 105화

주연하의 일행은 본인을 포함하여 총 열세 명.

그중에는 황준우에게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정말 당신이…….”

황준우를 알아본 주연하의 전속 시녀, 소하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자자, 잡담은 배에 타고 하자고. 이 사람들이 한 번에 움직이면 그래도 걸릴 수 있으니까 두 사람씩. 내 손 꼭 잡고.”

황준우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혹은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찌푸리던 황궁무인들은 가장 먼저 주연하와 소하의 손을 잡은 황준우를 보며 더욱 얼굴을 붉혔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황준우가 모시는 황녀의 손을 함부로 잡은 불한당처럼만 보이는 것이다.

설령 만금장 소장주라고 하여도 용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감히…….”

“자자, 서로 좋자고 하는 일이잖아. 흥분하지 말고.”

그 말과 함께 씩 웃어 보인 황준우와 주연하, 소하가 동시에 사라졌다.

눈앞에서 펼쳐진 기행이 믿기지 않아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는 무인들 앞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황준우가 모습을 나타냈다.

“자, 다음.”

또다시 양손을 내미는 황준우를 보며 무인들의 눈이 빠르게 오갔다.

불쾌하고, 의심되지만 지금에서는 황준우를 믿을 수밖에 없는 입장.

애초에 오늘이 오기까지 주연하가 신신당부해 놓은 것도 있어 큰 반발은 없었다.

“만약 황녀께 무슨 변고가 생겼다면 네놈과 만금장 모두 각오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나서 오른손을 강하게 움켜쥔 무인의 말에 황준우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황녀?’

황준우가 알던 주연하는 공주다.

한데 어째서 황녀가 되었을까?

의문이 생겼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게다가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너, 주연하를 지키려는 마음이 기특해서 산 줄 알아.”

협박을 한 무인을 향해 웃어 보인 황준우가 기세를 풀어헤쳤다.

“헉……!”

엄청난 기운의 압박과 살기에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바지에 오줌을 지린 무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더럽게시리. 쯧.”

혀를 차며 쓰러지려는 무인을 발끝으로 툭 쳐 다시금 일으켜 세운 황준우가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빨리 다음. 이 더러운 놈 데려다 놔야지.”

“네놈, 대주께 무슨 짓을 한 거냐!”

“나 성격 그리 좋은 편 아니다.”

한숨을 쉰 황준우가 다시 한 번 기운을 풀어헤쳤고, 나섰던 무인 역시 대주라 불린 인물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황준우의 반대편 손에 잡혔다.

“더러운 놈들.”

그런 두 사람을 데리고 다시 황준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너무 놀라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어쩔 줄 몰라 하던 나머지 무인들의 앞에 또다시 돌아온 황준우가 양손을 내밀었다.

“남들 보는 앞에서 오줌 지리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잡아라.”

저도 모르게 몸을 한차례 떤 나머지 무인들은 감히 입조차 열지 못한 채 손을 잡아야만 했다.

오줌싸개 둘을 비롯한 주연하 일행 전체를 먼저 여객선에 태운 후, 황준우 일행은 느긋한 걸음으로 당당히 선착장에 들어섰다.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감을 입은 데다 선착장의 험상궂은 분위기에 아랑곳 않는 밝은 모습이 주변에 있던 감시자들의 시선을 끌기는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여객선을 타는 사람들이 분위기가 위축된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감시가 엄격하던 동릉현에서 남궁세가의 여객선이 자연스럽게 떠나갔다.

동릉현의 선착장에는 자신들이 그토록 찾고 있는 사람이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만이 잔뜩 남았다.

“쉽구먼, 쉬워.”

면사를 쓴 주연하와 함께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황준우가 웃음 지으며 말한다.

“대체 너는…….”

너무나 어렵고, 고되게만 생각했던 일이 정말로 눈 깜짝할 새에 아주 손쉽게 해결되었다. 세상일이 이리 쉬워도 되는가 싶을 정도의 간단한 해결에 허탈한 감정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게 말했잖아. 생각보다 능력 있는 친구라고. 이 정도 일 거드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놀라는 주연하를 향해 어깨를 으쓱한 황준우가 말한다.

그를 보며 그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은 단 하나였다.

“새삼스레…… 너를 친구로 삼은 것이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행운이 아닌가 싶구나.”

“당연한 말씀.”

잘난 체는 결코 멈추지 않는 황준우였다.

3. 경호무쌍

때때로 비바람이 몰아칠 때를 제외하고는 일상적으로 장강의 물길은 그렇게 빠르지도, 거칠지도 않다. 때문에 배는 별 어려움 없이 도도하게 물길을 따르면 될 뿐이다. 그래서일까? 황준우가 기대했던 뱃멀미의 희생자는 누구도 없었다.

본래 황준우의 일행이던 황서연과 경호, 홍산을 제외한 주연하 측도 마찬가지였다.

되도록 정체가 노출되면 안 된다고 해서 서로 인사를 시키지는 않았지만 모두 지켜는 보고 있던 황준우는 어딘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는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나쁜 마음, 나쁜 마음. 썩 물럿거라.”

아무래도 근래 들어 경호와 주연하를 번갈아 가며 놀리다 보니 사람 괴롭히는데 취미가 들리려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물론 그 자체가 싫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문제였지만 말이다.

“좋지 않습니다, 도련님.”

“뭘 알고 하는 말이야?”

“어딘지 모르게 사악한 생각을 하고 계실 때의 표정이십니다.”

“음…….”

확실히 방금 전, 아주 잠깐 싫지 않으면 아무렴 상관 없나라는 생각을 할 뻔했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호가 적절하게 끊은 셈이다.

“아, 맞다. 참.”

그러고 나서야, 잊고 있던 생각을 떠올린 황준우가 허리춤에서 청홍검을 꺼내 들었다.

놀란 측은 경호였다.

‘언제부터 도련님이 검을 두 자루나 차고 계셨지?’

매일 보고 있었는데도 몰랐다.

심지어 지금 황준우가 뽑은 검은 척 보아도 범상치 않은 푸른빛이 잔뜩 감돌고 있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경호도 몰랐다면, 다른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진짜 사람 놀라게 하는 데 재주가 있으시다니까.’

감탄하는 경호에게 황준우가 들고 있던 청홍검을 던져 버린다.

“이거 받아.”

놀란 와중에도 초절정고수의 신묘한 몸놀림으로 날아드는 청홍검의 손잡이를 잡은 경호가 소리를 치려 할 때였다.

우우웅-!

청홍검이 공명음을 토한다.

그 순간 몸 내부에서 솟구치는 것만 같은 내력의 흐름에 깜짝 놀란 경호가 황준우와 청홍검을 번갈아 보았다.

“이, 이건 뭡니까, 도련님?”

“청홍검.”

“청홍검이요?”

“몰라?”

“어…… 삼국시대 당시의 청동검 말씀이십니까?”

“그게 청동으로 보여?”

황준우의 말에 푸른빛 검날을 자랑하는 청홍검을 멍하니 바라보던 경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봐도 철이로군요.”

“그렇지? 근데 그때 당시 만들어진 청홍검 맞아. 신기하지. 분명 청동으로 만들었을 건데 말이야.”

“…….”

“어쨌든, 조운 자룡이 사용한 그것 맞아.”

굳이 재질이나, 조자룡의 검이 아니라고 하여도 신기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명하는 검이라든지, 내력이 갑자기 치솟는다든지,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경호답지 않은 자신감이 생기는 기분까지.

‘마지막은 왠지 내가 생각해도 슬프지만…….’

청홍검에서부터 느껴지는 넘치는 힘은 분명 경호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고 있었다.

청홍검만 있으면 진짜 호위무사다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불쑥불쑥 솟아나는 탓이었다.

‘더 이상 도련님에게 업혀만 갈 필요가 없겠지?’

검을 바라보는 경호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혀끝으로 살짝 핥는 순간이었다.

“네가 써.”

“예!?”

“그 검, 쓰라고. 변태 같은 표정 짓지 말고.”

“처, 처, 청홍검을 말입니까?”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청홍검을 쓰라니?

삼국시대의 보물이자 명검, 그리고 척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무기를 이렇게 쉽게 주어도 된단 말인가? 아, 물론 황준우의 기행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적응이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옆에 홍산이나 황서연이 있었어도 당황할 것이라 자신하는 경호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말이지. 분명 초절정의 경지가 됐어도 우리 경호는 어디 가서 두들겨 맞을 것 같단 말이야.”

“음…….”

실상 초절정고수쯤 되면 사람 많다고 소문난 드넓은 강호에서도 흔하지 않다.

때문에 고수인 것이고, 모두가 우러러 본다.

그런데도 황준우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고, 경호 역시 어째서인지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런 일이 꼭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랄까?

“그래도 청홍검 한 자루 챙겨 두면 괜찮겠지.”

진동을 토하는 청홍검을 강하게 움켜쥔 경호의 눈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잘 쓰겠습니다, 도련님!”

당당하게 외치는 목소리에는 큰 힘이 담겼다.

황준우로부터 청홍검을 건네받은 경호가 활약할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남궁세가의 표식을 단 여객선을 향해 다가온 다섯 선의 중형 범선.

굳이 정체를 묻거나 따지지 않아도 멀리서부터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적룡(赤龍)이 그려진 돛이 그들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적룡수로채(赤龍水路砦)입니다.”

“나도 보면 알아.”

긴장한 경호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황준우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적룡수로채.

그러니까 강의 녹림이라고도 불리는 이 수적(水賊) 떼가 하는 일은 일반적인 산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길 어딘가에 수채(水砦)를 만들고, 지나가는 행상인 대신 배에게 접근해 통행료 명목으로 돈을 뜯어 간다.

그런 놈들이 자그마치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의 여객선을 막아선다는 것이 황당하게 보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상단을 비롯하여 오대세가, 그리고 구파일방마저도 대체적으로 관행상 그들에게 통행료를 일부 내어 주고는 길을 이어 가는 방식을 주로 택하곤 했다.

놈들도 살자고 수적질하는 거지, 죽자고 하는 일은 아닌 덕에 마구잡이로 요구하는 것 같은 통행료도 사실 적당히 타협할 수준인 덕이 가장 클 터였다.

아무리 오대세가, 구파일방이라 하여도 괜한 피를 보는 것보다는 그 편이 좋았으니 말이다.

평상시였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황준우였지만, 지금은 조금 마음에 걸렸다.

‘저놈들 지금 내 돈 뜯으러 온 것 아니야?’

거듭 말해, 과거였다면 모를까 지금의 남궁세가는 황준우의 것.

곧 남궁세가의 돈이 황준우의 돈이다.

관행상으로 보나, 실리적으로 보나 그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참을 생각은 있지만 은근히 기분이 상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멈추어라!”

남궁세가의 여객선 앞에 선 적룡수로채의 배들 중 중심의 범선으로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몇 번 경험이 있는 듯 남궁세가의 여객선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여 배를 세웠고, 곧 의기양양한 표정의 수적 한 놈이 중앙 범선의 선두(船頭)에 서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다들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장강을 수호하는 적룡의 후예들이시다!”

“지랄한다.”

그 당당한 외침에 저도 모르게 콧방귀를 뀐 황준우의 말이다.

“저놈들 수적이지, 오빠?”

“수적이면 도적이고?”

“그렇지, 우리 연이. 똑똑하네.”

“지켜볼 생각이야?”

황서연은 또다시 나서고 싶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아직 그녀에게 있어 도적과 상인 사이에 있는 관행이라든지 편의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일 테니 말이다.

“응,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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