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101화
제 101화
“가짜라고는 하지만 강기라고 불러 주는 데는 간단한 이유가 있지. 어쨌든 위력만큼은 확실하거든. 기본적으로 강기란 녀석은 천하에서 가장 단단하고, 무엇이든 벨 수 있는 힘이니까. 한데 실제 강기, 그러니까 초절정의 영역에서는 이런 강기를 더욱 수월하게 펼칠 수 있지. 이 원리는 간단해. 이류에서 일류 혹은 일류에서 절정의 벽을 넘어섰을 때 가장 크게 변하는 것. 바로 기의 융통성이지. 쉽게 말해 수발(隨發)이 자연스러워진다고 하지?”
“그러니까, 결국 초절정의 강기는 기를 더욱 잘 다루게 되어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힘이란 것이죠?”
경호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본인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느낀 탓이었다. 방법을 몰랐을 뿐 검기에서 검연, 검연에서 기륜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이루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던 탓이다.
한데 말해 놓고 보니 또 의문이 생겼다.
황준우가 이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 분명히 알았다.
한데 애초부터 왜 간단한 답을 놓아두고 길을 꼬았을까?
“일단 정답. 그리고 우리 경호 표정에 드러난 의문을 풀어 줘야겠지.”
“표가 났습니까?”
“누가 봐도 왜 이렇게 쉬운 걸 복잡하게 알려 준 거야라는 표정이었는데.”
황준우의 말에 경호가 좌우를 둘러본다.
양옆, 홍산과 유지량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끙…….”
“상심하지 마, 경호. 솔직한 남자는 매력이 떨어지는 법이니까.”
“칭찬이 아니지 않습니까!”
“들켜 버렸잖아, 이런!”
“도련님…….”
“큭큭, 어쨌든 말이야. 그 이유는 간단해. 초절정과 절정이 쓰는 강기에는 효율적이라는 것 말고도 한 가지 차이점이 더 있거든. 이거 맞혀 볼래, 경호?”
“어, 음…….”
망설이던 경호의 눈이 반짝 빛났다.
“혹시 특징의 차이가 있는 겁니까?”
“이번에도 정답. 우리 경호 똑똑하네.”
“어, 그렇다면 홍산은?”
“아마 분할……인 것 같습니다.”
홍산이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황준우가 말해 주기 전에는 그 역시 전혀 알지 못한 사실이었던 탓이다.
경호의 눈도 반짝 빛났다.
그러고 보니 홍산은 두 자루 창을 다룬다. 그리고 두 자루에 모두 강기를 씌운다. 당연한 일인 줄 알았는데, 정말 당연한 것일까?
얼굴을 굳힌 경호의 의문을 풀어 주려는 듯 옆에 앉은 유지량이 자신의 검을 건넸다.
그 검을 받아 들어, 강기를 일으키려던 경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오른쪽 손에 든 검에 강기를 일으킨 상태로, 반대편 검에 기륜을 형성시키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이미 오른쪽 검에 기륜을 형성하기 위해 모든 기운을 집중적으로 밀어 넣은 탓이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나니 기륜을 형성하는 게 제법 쉽게 느껴졌지? 아니야. 참고로 말해서 이건 경지가 오른다고 해서 바뀌지 않아. 경지가 올라갈수록 기륜을 구성하는 힘도 더욱 오밀조밀하게 형성돼서 그를 유지하는 데 대부분의 힘을 쏟아야 하거든.”
홍산과 경호, 두 사람의 얼굴에 허탈함이 어렸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고도 그런 사실을 황준우가 말해 주기까지 몰랐다.
“이건 진짜 상심하지 마. 아무리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다고 해도 누가 말해 주거나, 비교 대상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이래서 스승이 중요한 거고.”
황준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주억였다.
스승의 중요성이란 말이 새삼스럽게 깨달아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풍마채주였던 그 작자도……?”
“저와 같은 분할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문득 풍마채의 습격 때를 떠올린 경호의 말에 홍산이 답한다. 동시에 두 사람 아니, 모두가 눈을 빛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낸 덕이었다.
“강기의 특징이란 건 유일(唯一)하지 않구나.”
황서연의 말에 황준우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홍산이 가진 분할, 그리고 경호가 가진 중(重)의 특징 모두 다른 누군가에게도 발현될 수 있어. 그래서 초절정 이상의 고수들은 자신의 특징을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않지. 아무래도 먼저 알고 있는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아, 그래서 세간에 더 알려지지 않은 거군요.”
이번에는 유지량이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신비롭던 진짜 고수들의 세계, 초절정 이상의 경지가 어딘지 모르게 확 가깝게 다가온 느낌이었다.
“물론 그 외로도 무공이란 것에는 변수가 참 많아. 대표적으로 환경도 그 영향에 속하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알겠습니다.”
황준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경호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어, 근데 그것하고 아까 제 의문하고는 무슨 상관입니까?”
어째서 쉬운 길을 바로 알려 주지 않고 돌아가게 했느냐? 내공의 융통성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가능한 일이라면 경호의 고생은 의미가 없어진다.
“특징을 부여하는 건 자신의 마음이야. 스스로가 제대로 된 깨달음을 없이 첫 강기를 만들어 낸다면 특징이 부여되지 않을 수도 있거든.”
“어? 무(無) 특징도 있는 겁니까?”
“정파 쪽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사파 고수들 사이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야. 정도(正度)가 중요하단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흐흐.”
당연한 이야기지만 특징이 있는 쪽과 없는 쪽의 싸움은 전자가 유리하다. 아무래도 강기에 새로운 힘이 더해지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와…….”
그야말로 신세계.
황준우의 설명에 의해 무공에 관한 견식을 크게 넓힌 장내의 모두가 감탄과 함께 고개를 주억였다. 유지량을 비롯한 표사들은 새삼스레 우스갯소리로 넘겼던 진실을 목도하는 기분도 들었다.
‘정말 소장주께서 두 무사님들을 초절정고수로 만드신 것이란 말인가?’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지만, 또 마음 한편에서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드는 감정은 그들 모두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거인의 옆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흥분이었다.
별것 아닌 여정에서 있었던 불운과 이어진 인연.
과연 가볍게만 여길 일일까?
“자, 설명은 여기까지. 다들 먹던 밥 어서 먹으라고. 아, 그리고 유 표두를 비롯해서 나머지는 집에 서신 보내 놨으니까 내일 바로 소주로 가면 돼.”
“내일 바로 말씀이십니까?”
“그럼 끝까지 쫓아오려고?”
“아…….”
“가서 일해야지. 일해야 돈 벌어먹고 살지. 유 표두는 가장이라며.”
한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 준 황준우의 말에 유지량의 고개가 깊게 숙여졌다.
큰 은혜를 입고, 개안을 하며 역사의 한편에 서 있다는 감정도 느껴 보았다.
그의 짧지 않은 인생에 있어 이런 시절이 있었던가?
“감사합니다, 소장주님.”
“감사드립니다!”
유지량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 그를 따르는 표사들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황준우가 답했다.
“별말씀을.”
다음 날, 유지량과 표사들이 떠났다.
남은 일행은 다시 넷.
황준우를 비롯한 황서연, 그리고 경호와 홍산이 전부였다.
“자, 오늘은 경정산을 오르자고.”
황준우의 가벼운 말에 누군가 침을 크게 삼켰다. 돌아오기까지 미루고 있었지만 경정산에서는 유령인지 요괴일지 산신령일지 모를 존재가 살고 있다는 소문은 여전한 것이다.
“일단 내가 볼일 보러 가기 전에 둘러봤을 때는 아무 것도 없었어.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홍산.”
명확하게 침을 크게 삼킨 누군가를 지칭한 황준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어진 채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 홍산의 표정은 쉬이 풀어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진짜 요괴가 나오면 어떻게 할 거야, 오빠?”
반면 어린 황서연은 오히려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즐기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 하긴. 잡아야지.”
황준우 역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무슨 수로요?”
경호는 의문을 표했다.
딱히 홍산만큼 긴장되지는 않았지만 요괴란 존재가 그리 쉽게만 보이지는 않은 탓이었다.
“때려서?”
“…….”
“어떻게든 되겠지 뭐. 자자, 다들 너무 걱정 말고 갑시다.”
황준우가 선두로 나아가자 황서연이 신나게 뒤를 따르고 경호가 고개를 내저으며 쫓는다. 홍산은 마지못해 무거운 걸음을 힘겹게 이끌었다.
그렇게 일행들이 경정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별일은 없었다.
분위기가 잔뜩 굳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언제든지 창을 뽑을 자세를 한 채 사방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는 홍산 탓이었다.
“오빠, 요괴가 나오지 않아.”
“그러게. 역시 안 보이네.”
“요괴 아저씨가 겁쟁이인가?”
황준우와 황서연이 대수롭지 않게 대화한다.
“요괴가 아저씨라는 건 어디서 나온 발상입니까?”
중간에 끼어든 경호가 어딘지 모르게 발끈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 뭐라 불러요, 경호 아저씨? 음…… 요괴 할아버지? 요괴 아주머니? 아니면 요괴…….”
“그냥 요괴라고 부르시면 될 것 같은…….”
경호가 대답을 하던 중이었다.
수풀이 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와아악! 무르랏그아라, 요그아이야!”
동시에 창을 뽑아 든 홍산이 비명 섞인 괴상한 언어를 흘리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수풀을 헤치고 얼굴을 내밀던 청년의 눈이 크게 뜨인 순간이었다.
“진정해, 홍산. 요괴 아니고 사람이야.”
어느새 움직여, 뻗어진 홍산의 창을 한 손으로 잡은 황준우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어, 음…… 죄송……합니다.”
여전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홍산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홍산 아저씨도 귀여워.”
그 모습을 보며 황서연이 킥킥거리는 웃음을 흘린다.
지금 이 순간 홍산은 가능하다면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으아……!”
놀란 것은 홍산뿐만이 아니었던 듯, 갑작스럽게 몰아친 살기와 엄청난 기세에 놀란 청년 역시 괴상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는다.
“아이고야.”
그를 받쳐 들며 기운을 불어넣은 황준우가 물었다.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다행이네.”
황준우와 또래 혹은 기껏해야 한두 살 많을 것 같은 청년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사,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감사할 건 없고. 그보다 복장을 보아하니 표사?”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 와서 눈치챈 듯했지만 처음 청년을 본 순간부터 가졌던 의문이다.
허리춤의 검과 익숙한 복장.
불과 아침까지만 해도 같이 있던 인물들과 너무나 같은 모습이다.
“아, 예. 저는 전화상단의 표사입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답을 들은 황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파는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아무것도 없어?’
청년 외에 또 다른 기척은 없다. 수많은 의문과 가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표행 중이었나 봐?”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자 청년이 고개를 주억였다.
“아, 네! 분명히 표행 중이었고 이 근방 어디에선가 쉬기로 했었는데…….”
말을 하는 청년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흐리다.
이어서 나오는 말은 횡설수설에 가까웠다.
“갑자기 막 눈앞이 하얗고, 뭔가 막 세상이 뒤집힌 듯 했고, 하늘을 날았나? 어, 그리고…….”
“그만.”
타인은 물론, 본인조차도 못 알아 들을 말을 하던 청년 무인의 눈이 황준우의 그 말에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아……, 혹시 제 일행들을 못 보셨습니까?”
이상하다.
분명히 냄새가 난다.
‘진짜 요괴? 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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