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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99화 (99/373)

학사재생 99화

콰아앙-!

천둥 수십 개가 동시에 내리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엉성한 높은 돌무덤이 무너져 내린다. 그 앞에서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던 청년은 빠르게 손을 내뻗어 무너지는 돌산의 움직임을 느리게 한 후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미연에 있을 산사태를 막아 낸다.

이후 다시금 몸을 움직여 돌무덤의 형태로 또 한 번 산을 쌓고 그 정상에 앉은 청년, 황준우의 얼굴이 연신 갸웃거린다.

“이상하네. 이거, 많이 이상해.”

벌써 세 번째.

본래는 이름 없던 바위산이었던 곳을 한 번에 무너트린 이후 다시 쌓고 무너트리기만 두 번째. 그야말로 산을 무너트리는 거력을 연신 보인 황준우였지만 마음속에는 의아함만이 가득했다. 일반적인 양민 혹은 다른 무림인이 보았다면 기절할 노릇일지 모르나, 그에게 있어서는 작은 산 하나를 무너트린다는 것이 애초에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 힘이 들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란 뜻이다.

한데 명력을 가진 것이 분명한 청홍검을 휘둘렀는데 애초에 황준우 혼자의 힘을 사용할 때보다 위력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 물론 장점이 없지는 않았다. 비교적 적은 내력으로 큰 힘을 만들어 낸다. 무기라기보다는 농담 삼아 일종의 증폭기(增幅器)라는 느낌이 더 강한 것이다.

한데 그 한계가 정해져 있다.

최대 증폭량 이상을 벗어나면 무기는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그 힘을 버려 버리는 것이다.

결국 내력의 밑바탕과 초식의 이해도가 높은 무인, 황준우와 같은 입장에서는, 차라리 수왕검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깔끔하고 위력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 혹시 나한테 반항하는 거냐?”

우우웅-!

황준우의 물음에, 청홍검이 부정하듯 큰 공명을 토한다.

“아닌 데 왜 그래?”

우우우웅-!

황당한 표정을 한 황준우가 질문을 해 봐야 돌아오는 대답은 변할 것 없는 공명뿐이다.

“어쨌든 이 이상 출력은 안 나온다는 말이지? 네가 창이 아니라 그런가?”

삼국시대 촉한의 명장 조운 자룡은 실상 검보다는 창의 달인으로 유명했다. 그런 의미에 있어 그의 검이었던 청홍검의 명력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황준우의 첫 번째 생각이었다.

청홍검이 불쾌한 듯 어딘지 모르게 반항적인 울림을 토했지만 황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면 대체 뭐란 거야. 흠…….”

황준우는 계속해서 울음을 토하는 청홍검의 검면을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쉽게 이해는 안 됐지만 몇 번을 실험해 보아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상황. 황준우는 아직은 미지(未知)의 힘인 명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무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번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명력은 아직은 황준우가 이름을 알 수 없는 모임 내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듯한데, 정보가 부족하면 불안감을 안고 싸워야만 한다.

“자신은 있지만 또 방심은 안 되지.”

고민만으로는 답이 없다.

혹시 모르는 결과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황준우는 또다시 실험에 나섰고 이름 없는 바위산이었던 장소가 작은 돌무덤이 되기까지 연신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고 황준우는 나름 한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결국 명력을 가진 무기는 일종의 증폭기 개념. 초식을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것 같은 기능도 있어 보이지만 역시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흠…….’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지만, 현재 황준우의 생각에는 가장 신빙성 있는 결론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결국 네가 최고인 것 같구나, 수왕.”

우우우웅-!

황준우의 칭찬에 공명을 토하는 모습에서 수왕검이 콧대를 세우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황준우는 그를 제법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지금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출력이 한정되는 청홍검보다는, 훨씬 더 잘 베고, 튼튼하게 버티면서도 그의 무지막지한 내력을 감당할 수 있는 수왕검이 더 좋은 탓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무인의 기준에서는 다를 터였다.

출력이 한정된다 하여도 말 그대로 산을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은 조화경의 고수라 한들 쉽게 해내지 못한다. 한데 청홍검의 내공 증폭을 받으면 초절정의 고수도 산을 무너트릴 수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관기태의 힘을 황준우가 막지 않았다면 그날, 남궁세가 장원 자체가 통째로 날아갔을 터였다.

거기다 초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 주고 인도까지 해 주니 여러모로 유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게 황준우의 입장에서는 불어넣은 힘이 버려질 정도의 출력밖에 안 되고, 인도해 주는 초식의 방향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정말 딱 이 정도라면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텐데…….”

찝찝함이 남는다.

만약 그렇다면 전생의 마지막 싸움 당시, 원공이 보여준 놀라운 힘은 역시 불가(佛家)의 기적 정도로만 믿어야 된다는 말인가?

“일단은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나.”

더 이상은 정말 몇 번을 실험하고 장고를 해도 모를 문제.

황준우는 깔끔하게 이쯤에서 생각을 접고 본래의 목적대로 다시금 경정산을 향해 달려 나갔다.

‘기다려라, 연이야. 오빠가 간다!’

바람을 가르는 오빠의 귀환이었다.

두두두두.

이십 필의 말이 험준한 산길을 뛰어 내려와 소로(小路)로 진입한다. 말 위에 탄, 죽립을 눌러쓴 이들의 얼굴은 명확히 보이지 않지만 그 행동부터가 다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곧 그들의 눈앞으로 복면을 쓰고 검과 창으로 무장한 무리가 나타났다.

“저놈들이……. 다들 죽을 각오로 싸움에 임해라!”

정면에서 말을 몰던 이가 당황한 듯한 목소리를 흘린 직후 빠르게 무기를 뽑아 든다.

“이럇!”

말 없는 기합을 내뱉은 십여 명이 그 뒤를 따랐다.

“이쪽으로.”

그러는 사이, 남은 무리에서 전면으로 나선 이가 또 다른 방향으로 말 머리를 돌리며 외친다. 그 뒤를 따라 남은 열 명이 빠르게 말을 박찬다.

“이 길도…….”

방향을 틀고 빠르게 앞을 나아가던 중,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복면인을 보며 매복의 수가 범상치 않음을 직감한 선두의 무인이 이를 악물 때였다.

“돌파한다.”

그의 뒤, 죽립을 다른 이들보다 유독 깊게 눌러쓴 이가 차가운 목소리를 흘렸다. 놀라운 것은 그 음성이 명백한 여인의 것이란 사실이었다.

“하나…….”

“어차피 또 말 머리를 돌린다고 하여 적들의 매복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놀란 선두의 반응에 냉정하게 말한 여인이 검을 뽑아 든다.

“알겠습니다.”

결국 선두의 무인이 고개를 주억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전력을 다해 돌파한다!”

“우와아-!”

이번에는 함성을 감추지 않았다.

어차피 나아갈 길이라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뚫는다.

“놈들을 죽여!”

“놓쳐선 안 된다!”

매복을 하고 있던 복면인들이 그 앞을 다급하게 막아섰지만 말의 기동력과 뛰어난 무인들의 실력 앞에 속속들이 무너져 내린다. 곧 매복하고 있던 복면인들의 틈새로 작은 구멍이 생겨났다.

“지금입니다!”

다급하게 땀에 전 죽립을 벗어 던진 중년인이 여인을 향해 외쳤다.

“무운을 빌겠소.”

여인은 그런 그를 잠시 곁눈질로 바라본 후, 짧은 말을 남긴 채 앞으로 나아간다.

“안 돼! 한 명도 놓쳐선 안 된다!”

“잡아!”

다급한 복면인들이 빠르게 길을 막아서려 했지만 중년 사내의 검이 그 틈새를 무섭게 파고들었다.

“한 놈도 이 길을 지나갈 순 없다-!”

장판교의 앞에 선 장비가 된 심정으로, 무수히 많은 복면인들의 앞길을 막아선 그의 일갈에 커다란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전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한 여인을 붙잡기에는 늦은 시각.

“젠장!”

“저놈이라도 사로잡아라!”

욕을 내뱉는 복면인들을 보면서도 입가에 그려진 미소를 지우지 못한 중년 사내가 솟아오르는 검기를 흩날리며 대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

설령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들 후회는 없다.

지금 그의 바람은 단 하나뿐이었다.

‘무사하셔야 합니다, 마마.’

매서운 검풍이 몰아쳤다.

달려 나가던 말들이 소로를 지나 대로로 들어선다.

“이제 곧 동릉(銅陵)입니다, 마마.”

옆에 선 또 다른 여인의 말에, 쓰고 있던 죽립을 살짝 들어 올려 땀방울이 흐르는 눈가 끝으로 흐르는 강물을 확인한 여인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제 곧 장강에 오를 수 있겠구나.”

“장강만 타면 호북까지는 금방입니다.”

말을 거는 여인의 목소리에서 작은 안도감이 느껴진다.

하나 그 말을 듣는 여인 측은 차마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분명 힘든 여정이었다.

북경을 벗어나 이곳까지.

적지 않은 방해가 있었고, 무수히 많은 생명을 잃어야 했다.

한데 장강을 올라탄다 한들 고작 목적지까지의 여정은 아직까지도 한참이나 남는다.

그래도 그녀는 가야만 했다.

‘융중산(隆中山).’

얻어야 할 사람과 물건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희생한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돌아갈 수는 없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그녀는 잠시 죽립을 벗어 올리고는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오랜 여정에 지친 기색과 고된 모습에서 미모가 많이 바라였으나, 이 자리에 황준우가 있었다면 그녀가 주연하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을 터였다. 그리고 때마침 주연하 역시 오랜 친구의 얼굴을 잠시 떠올린다.

애초부터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이고된 요정이 조금 나았을까?

‘아니다.’

주연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째서인지 그의 손을 빌리는 것에는 큰 부담이 느껴졌다. 작은 것을 바라여도, 감당할 수 없는 큰 바람이 되어 돌아올 것 같은 기묘한 기분. 때문에 그녀는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되는 것은 역시 바라지 않았으니 말이다. 옆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서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는 법이다.

“그래도 조금 낫구나.”

삶에 있어 유일무이한 친구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린 덕일까?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다. 엉킨 실타래 같던 감정이 차분히 정리되어 간다.

멀게만 느껴졌던 장강의 모습은 더욱 가깝게 보이는 것 같다. 달리는 말 위에서 다가오는 시원한 바람도 한 몫 거들었을 터였다.

“마마, 죽립을.”

“알겠다.”

짧은 기분 전환을 마친 주연하가 다시금 죽립을 눌러쓴다. 동시에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으며 마음에는 강철처럼 단단한 의지를 일으켜 세운다.

더 강하고, 더 냉정해져야만 한다.

그녀는 더 이상 공주도 아니었다.

차라리 그쯤이면 어리광을 피워 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황제의 간택을 받게 된, 대 명제국의 황녀.

더 큰 업을 등에 지게 된 주연하의 걸음이 장강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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