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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84화 (84/373)

학사재생 84화

“음…… 저도 실제로 그런 대련을 본 것이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런 느낌이 확신적으로 든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실제 역사로까지 전해지는 고금 계열의 무기에는 우리가 증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들이 있습니다. 그걸 무어라 해야 할지……. 이름이 가진 힘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름이 가진 힘……. 그게 청동과 강철의 경계를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라 이거지?”

“허허, 예측일 뿐입니다. 실제는 많이 다를 수도 있겠지요. 간장막야가 특별한 경우일 수도 있고 말이죠.”

만총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황준우의 생각은 달랐다.

‘어쩌면 원공 그 양반이 마지막에 보여 줬던 괴이한 힘의 근원에도 그런 이름의 힘이 담긴 물건이 있는 게 아닐까?’

날카로운 감이 선다.

하나 확신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얼굴이 굳어지는 황준우를 향해 헛웃음을 다시 한 번 흘린 만총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부탁하실 일이 있다고 하셨지 않나요?”

“아, 맞아.”

이야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잊었던 사실을 떠올린 황준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당장 알아낼 방도가 없는 종류에 대해서는 책상 자리에 앉은 고민이 큰 의미가 없었다.

“제작 의뢰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총 셋. 내 것까지 포함해서.”

“수왕이 부족합니까?”

황준우의 말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뜬 만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수왕이야 최고지. 영감이 말한 명력(名力)을 가진 무기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본 검 중에서는 이만한 명기(名器)가 없다고 장담해.”

“숨은 천하제일고수일지도 모르는 소장주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장인으로서는 최고의 영광이지요. 허허.”

만총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솔직하게, 황준우의 찬사가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탓이었다.

“단지 너무 좋아서 문제랄까? 검이 가진 의지도 강력하고 말이야. 한 번 뽑아서 쓰는 게 나로서도 부담이 갈 때가 가끔 있거든.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쓰는 기분 들기도 하고…….”

황준우의 중얼거림이 길어질수록 만총의 입가에 머무는 미소는 더욱 커져갔다.

“그거, 들을수록 좋은 이야기군요. 소장주님이 감당하기 부담스러운 검이라니, 제가 뭘 만들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그러게 자신감을 더 가져도 좋아. 내가 아는 장인 중에는 만총 영감이 제일이니까.”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얼굴에 금칠 그만해 주시고, 어쨌든 저로서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 녀석이라면 정말 소장주님 말고는 누구도 사용할 수 없겠지요.”

“아마 그럴지도 몰라.”

“실수가 될 수도 있던 작품을 명작으로 만들어 주신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부탁을 들어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신 무기가 셋이라고요?”

“응. 검 하나, 창 하나, 권갑(拳鉀) 하나.”

“검은 경 무사님이 쓰실 것 같고, 창은 이번에 새로 오셨다는 두 번째 비명귀 님이신가?”

“만총 영감도 소문 들었나 보네.”

“한동안 소식이 참 뜨거웠지 않습니까?”

“그랬나? 흐흐. 그래도 성과는 있으니까.”

“어찌 됐든 만들어 보겠습니다. 권갑은 소장주님이 직접 쓰실 거지요?”

“그렇지. 너무 힘주지 말고 만들어. 또 온갖 힘 다 주었다가 이런 녀석 하나 더 나올라.”

황준우가 허리춤에 달린 수왕을 두들기며 말하자 또 한 번 큰 웃음을 터트린 만총이 손을 내젓는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매영과 수왕은 역작이라고. 아마 다시 하려고 해도 못 할 겁니다. 정말로요.”

“모르는 일이지 또. 시간은 빠를수록 좋긴 한데, 힘들겠지?”

“아닙니다. 마침 떠오른 영감도 있고, 할 일도 없으니 칠 주야 정도면 세 자루 모두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엄청 빠르네.”

황준우의 감탄에 진한 미소를 보인 만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웃옷을 벗어던진다. 옷 속에 감춰진,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두툼한 근육을 가득 뽐낸 그가 망치를 들자 세간에서 말하는 용장의 기세라는 것이 일어나는 듯 보인다.

“정말 믿음직하네.”

완전히 부활한 만총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은 황준우가 읊조린다.

“믿고 맡겨 주시지요.”

자신 있게 팔 근육을 드러낸 만총이 화통한 웃음과 함께 답했다.

곧, 만총의 개인 공방에는 풀무질 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가득 피어올랐다.

삼 주야라는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동안 두 사람을 수련시키느라 자주 보지 못했던 가족 간의 시간을 즐기고, 다시 한 번 황서연과의 약속을 되새긴 황준우는 저녁쯤 무언가에 혼이 나간 듯 걸어오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어-!”

“도련님?”

황준우의 인사에 먼저 눈빛이 돌아온 쪽은 경호였다.

“삼 주야, 푹 쉬었어?”

“아, 예. 정말 말씀대로 푹 쉬었습니다. 아직도 몸이 조금 뻐근하긴 한데…….”

혼잣말을 읊조리던 경호의 시선이 문득 연무장의 정문으로 가 닿자 부르르 떨린다.

그 안에서 펼쳐졌던 지옥 같은 수련과 끔찍했던 기억에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이 갑작스럽게 물밀 듯이 차오르며 그의 정신을 괴롭히기 시작한 탓이었다.

그대로 놔두었으면 자칫 주화입마라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치달을 수 있었으나, 황준우의 손이 어깨에 올라간 후 따뜻한 기운이 차오르는 순간 경호는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도, 도련님…….”

자연스레 경호는 그런 황준우를 눈물 젖은 눈으로 마주한다.

“그래, 우리 경호.”

황준우 역시 따뜻한 표정으로 경호를 바라보았다.

“진짜 죽을 뻔했지 않습니까!?”

직후, 경호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닌 게 아니라 첫날 이후의 의식이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본능에 의지하여 몸을 움직이고, 황준우를 향해 검을 뻗고 또 의식을 잃었다.

사후세계(死後世界)란 것을 실제로 몇 번이고 눈앞에서 본 기억조차 아른거릴 정도였다.

“아니, 이건 죽을 뻔한 게 아니라 진짜 죽었던 건가? 그럼 난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어떻게긴, 죽었다 살아난 거지.”

“그게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하실 내용입니까!?”

“덕분에 강해지긴 강해졌잖아?”

“그야…….”

황준우의 말에 또 한 번 눈빛이 멍해지며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경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네요. 저, 엄청 강해졌네요.”

“정확한 건 직접 움직여 봐야 알겠지만 홍산은 생각보다 늦네.”

“정신…… 차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눈에 빛이 돌아온 홍산이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그 역시 경호와 마찬가지로 사후세계를 몇 번이나 보고 돌아온 만큼 황준우를 향해 절로 원망의 눈초리가 떠오르고는 했다.

“두 사람 다 정말. 짧은 시간 내에 강해지려면 그 정도 각오는 당연히 했어야 되는 것 아니야?”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황준우를 향해 주먹이라도 내뻗고 싶은 두 사람이었지만 실제로 몸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모시는 분이고, 도련님이라는 생각을 떠나 이미 그간의 지옥 훈련을 통해 그의 절대적인 경지를 맛보며 그만큼이나 큰 격차를 느껴 버린 탓이다. 황준우라는 인물이 가진 강함은 그들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만약 평소의 인간적인 황준우를 몰랐다면 공포라는 감정마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봤다는 사후세계는 진짜 죽은 게 아니라, 음 망아(忘我)라고 해야 할까. 그런 체험 탓이야.”

“망아는 불가에서나 말하는 헛소리 아닙니까?”

홍산의 질문에 황준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완전히 헛소리는 아니야. 인간의 정신이 극한까지 몰리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니까. 멀리 갈 것 없이, 겪어 봤잖아?”

“음…… 그걸 망아라고…….”

“망아야. 완전히 모든 걸 잊어버리고 스스로마저 놓은 상태로 무언가에 임할 수 있는 만반의 경지. 의도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실제로 힘들지만, 어쨌든 그 시간 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되면 효율은 기존의 몇 십 배를 뛰어넘게 되지.”

황준우의 말에 경호와 홍산 두 사람 모두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찌 됐든 그 말마따나 두 사람은 보름이라는 시간 내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공 상승의 효과를 보았다.

의식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무공을 펼쳐 보기 전에는 무어라 확신할 수 없을 정도지만 황준우가 말한 강기에 대해서도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두 사람을 이 자리까지 부른 이유가 뭐겠어? 대련해 봐, 대련. 그럼 알게 될 거 아냐?”

황준우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두 사람이 마치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뒷걸음친다.

“아니, 무슨 대련이라는 말에 그렇게 겁먹어? 누가 잡아먹는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음…….”

두 사람의 반응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황준우는 이내, 살짝 한숨을 쉬고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반응을 보니 내가 욕심이 과하긴 했었나 보네.”

“두 번 체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도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강해지겠다는 의지와 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지난 보름간의 지옥 대련을 또 경험하고 싶은 마음은 도저히 들지 않는 탓이었다.

“그래도 보상이 없지는 않으니까. 진짜, 한 번 해봐 대련. 애초부터 나랑 할 건 아니었고, 둘이 말이지.”

“둘이요?”

경호가 자신을 가리킨 후 홍산을 바라본다.

“응. 경호와 홍산. 너희 둘이 말이야. 몸에 익었다고 해도 그걸 소화하는 건 또 별개의 일이거든. 그러니까 대련 한 번으로 깔끔하게 해결하자고.”

황준우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킨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본다.

그러는 사이 목검과 목창, 각각 한 자루씩을 집어 두 사람에게 던진 황준우가 그들 사이에 섰다.

“뭐, 부담되면 오늘이 아니고 조금 괜찮아진 이후에 해도 되고.”

그래도 눈치는 보이는지, 혹시나 하는 말투를 비추는 황준우를 향해 미소를 보인 경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지금 당장 확인하고 싶습니다.”

홍산 역시 의지를 불태웠다.

강해졌다.

심적으로 느껴지고,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지만 아직은 어딘지 몽롱한 느낌.

그를 실질적으로 펼치고 느껴 보고 싶은 게 두 사람의 심정이었다.

의지가 가득 담긴 두 시선을 보며 뿌듯한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한 팔을 높이 들었다.

“그러면 우선 준비 운동 하듯이 가볍게 시작해 보는 거야. 알겠지?”

“예, 도련님.”

“명심하겠습니다.”

“자, 시작!”

황준우의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뛰쳐나온 것은 홍산 측이었다.

따다다닥-!

목검과 목창이 부딪치며 연속적인 울림을 만들어 내더니, 두 사람의 위치가 뒤바뀌어 버린다.

고작 눈을 한 번 깜빡일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 가볍게 하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놀란 홍산이 경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래 그가 인지했던 영역의 속도를 훨씬 뛰어넘었다.

마치 그가 기억하는 육체가 전력(全力)을 다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몸을 움직인 것이다.

“아, 아닙니다.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았고…….”

경호 역시 비슷한 생각으로 자신의 목검을 바라보았다.

하나 홍산보다는 받아들이는 것이 빨랐다.

‘또 강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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