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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81화 (81/373)

학사재생 81화

“아주 눈빛이 달라지는구나.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돈이 그렇게 좋은 게냐?”

“돈이 좋은 게 아니라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좋은 겁니다. 필요한 걸 알았으니까요.”

“거, 좋은 말 쓰는구나.”

“그만 뜸 들이시고 말씀해 주세요. 세 권 모두 팔렸나요?”

“그래. 잘 팔렸다.”

“잘하셨어요. 혹시나 해서 한 권쯤 남겨 둘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그것들 다 정말 큰 쓸모없거든요.”

“아무렴 네 앞에서는 가문의 비전무공(?傳武功)도 쓸모가 없지 않느냐. 원래 나이가 차면 일러 주려 했거늘 네 덕분에 창고에서 썩어 나가는 중이다. 연이도 네가 알려 준 무공이 더 좋다고 하고…….”

살짝 한숨을 내쉰 황석후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주먹을 꼭 쥔 황준우를 보며 미소 지었다. 장난도 장난이지만 이제는 진짜로 말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우선 총 판매액은 세 권 모두 합쳐 백만 문이다.”

“백만이요? 우와, 금자로 하면 얼마야. 보자 은자 백문에 금자 한 문쯤 되니까.”

“일부로 기대감 부풀리지 말거라. 네가 처음 생각한 게 맞으니까 말이다.”

“……진짜 금자 백만 문이요?”

“칠야무신의 무공이라고 하니 경매가가 한도 끝도 없이 치솟더구나.”

“허허허…….”

황준우의 얼굴에서 넋이 나갔다.

대충 비싸게 팔릴 것이라고는 짐작은 했다.

이미 선례도 있고, 이름값이란 게 보통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래도 금자로 백만 문이라니, 마치 세상 모든 걸 안다는 듯 잘난 체하는 황준우라고 하여도 예상치 못할 수밖에 없는 금액이었다.

“이윤은 약속대로 오대 오로 나눌 것이다. 꽤나 큰 수익이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말이다.”

“알고 있어요. 상인은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니까요.”

“잘 배웠구나.”

“그나저나 진짜 백만이면…… 반으로 나눠도 오십만 문이네요.”

“어지간한 가문 하나를 통째로 살 수 있는 금액이지.”

아닌 게 아니라, 오십만 문이면 천하십대상단급은 못 되어도, 그 바로 아래 급의 대형 규모 이상의 상가 하나, 혹은 작은 성 하나를 통째로 살 수 있을 지도 모를 돈이었다.

“네 몫의 이윤은 모두 만금전장에 달아 놓았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말이다.”

“감사해요.”

짧게 말하는 황준우의 눈이 답지 않게 살짝 흐리멍덩했다.

황금 오십만 문.

그 엄청난 돈으로 할 수 있는 계획이 여럿 떠오른 탓이었다.

‘이거 단순히 판을 더 쉽게 벌릴 수 있을 정도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큰 계획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남궁세가라는 울타리를 얻었지만 사실상 아쉬운 점이 많다고 생각했던 황준우였다. 만금장에 털린 것도 있고, 남궁전혁의 염전 사건이 드러나며 국가에도 여러모로 큰돈을 징수 당했으니 말이다.

따지자면 현재의 남궁세가는 속 빈 강정.

물론 겉이 화려한 만큼, 오래된 전통, 거기에 더해 신공절학이라 불려도 모자라지 않을 무공 등 그간 해온 것이 있는 만큼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다. 나름대로 쓸 만한 정도의 구색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잃어버린 것들도 복구할 수 있을 터다. 그래서 아쉬웠다. 사마정이 큰 울타리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만금장의 힘을 쓴다면 간단할지도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제 손으로 해내고 싶던 것이 황준우의 솔직한 마음 아니었던가?

한데 조금은 아득하게 느껴졌던 그 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우선 오만 문 정도를 빼고 사마정에게 지원해 줘야겠어.’

금자 사십오만 문.

아마 황준우가 이번에 남궁세가를 통으로 털어먹고자 펼쳤던 정보 싸움에서 쏟아 낸 사마정의 주머니를 몇 배나 두둑이 채워 줄 돈일 것이다.

사마정이 그 돈을 어떤 식으로 쓸지는 그의 능력일 테고 말이다.

‘잘해 내겠지.’

사마정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때로는 그런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하는 황준우였다.

그러고 보니 남은 돈은 금자 오만 문이다.

오십만 문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손에 들어왔던 탓인지 별것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적지 않은 금액. 황준우는 그 돈의 사용처 역시 정해 둔 터였다.

“좋았어.”

“생각이 조금 정리되었느냐?”

황준우의 머리가 바쁘게 회전하는 동안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던 황석후가 질문을 건네 온다.

“네, 아버지.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 경호 봉급은 제가 지급할게요.”

“따지고 보면 제 호위무사잖아요. 앞으로도 제가 더 부려 먹을 일이 많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제가 챙겨야죠.”

“오호…… 그러면 이번에 함께 데려온 홍산도?”

“당연히 제가 챙겨야죠.”

어떻게 보자면 만금장과 선을 긋는 것 같은 황준우의 행동이었지만, 황석후는 오히려 그 편이 만족스러웠다. 이런 작은 결심 하나, 하나가 시작점이 되어 황준우에게 책임감을 만들어 주고 어른으로서 성숙시킨다.

“그래, 스스로 해 보거라.”

어차피 이 역시 언젠가는 했어야 될 일.

점점 커 나가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다정함이 한껏 깃들어 있었다.

황석후와의 대화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가 졌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의 평화로움을 느끼며 방에서 쉬고 있던 황준우는 곧장 식당으로 향했고, 오랜만에 맛보는 숙수의 음식 솜씨에 연신 감탄을 토했다. 덕분에 배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들 때까지 음식을 먹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맛있으면 장땡이지.’

요즘 강호의 여 무인들 사이에는 음식이 맛있으면 살도 안 찐다는 해괴한 말까지 나돈다고 하던데, 황준우 역시 그 이야기에 대해 꽤나 수긍하고 있는 편이었다. 어쨌든 음식은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폭식과 다름이 없는 식사 시간이 끝나고, 향시 장원 소식을 알리자 황서연과 서시 역시 큰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축하를 표했다.

가족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즐겁게 웃고 떠들고 기쁜 소식을 나누어 행복이 부풀려진다.

“역시 집이 최고야.”

그런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침상 위로 몸을 던진 황준우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하루가 끝나 갈 무렵 몸을 씻고 푹신한 이불에 몸을 맡기는 기분 역시 바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최고의 여흥인 것이다. 때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별것 아닌 이 경험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지곤 하는 법이었다.

“아흐, 좋아라.”

침상에 누워 이불을 감싼 채 푹 퍼진 표정으로 홀로 만의 시간을 즐기던 황준우의 방문 앞으로 문득 인기척이 하나 다가왔다.

“오빠?”

“연이?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들리기 전 이미 상대의 정체를 곧장 알아챈 황준우가 침상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들어가도 될까?”

“당연하지.”

아무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동생이다.

나이가 들며 조금씩 영악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황준우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상인 것이다.

드르륵-!

방문이 열리고 평소와 달리 조금은 상기된 표정의 황서연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순간, 황준우는 그 사랑스럽고 너무나 귀여운 동생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안한 직감을 느꼈다.

“왠지 느낌이 불안한데.”

“어? 갑자기 왜?”

수줍은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서던 황서연이 화들짝 놀라며 묻는다.

“왜긴, 내 동생님 표정이 평소랑 달라서 그렇지.”

“그렇게 표가 나?”

“엄청.”

“나 아마 평생 내숭이란 건 못 할 처지인가 봐.”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이 밤에 여기까지 찾아와서 하고 싶은 말이 뭘까?”

“들어줄 거야?”

“들어는.”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일단은 이야기해 봐.”

평소에는 다정할 수 있지만 지금은 진지하고 엄격하다는 감정을 얼굴 가득 담은 채 팔짱을 낀 황준우가 턱짓한다. 그 모습에 잠시 고민하듯, 양손 검지를 서로 비비며 꼬던 황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나도 소주 밖에 나가 보고 싶어.”

“소주 밖?”

“여행이랄까? 오빠도 이번에 향시 보고 조금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왔잖아?”

“여행이라…….”

이쯤 되면 황준우도 황서연의 부탁이 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이 가자고?”

“엄마, 아빠가 오빠랑 같이면 가도 된대.”

“…….”

왠지 처음 느꼈던 그 불안한 감각의 정체가 황서연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황준우의 머릿속을 스쳤다.

‘아버지.’

인자하게 웃고 있는 상상 속 황석후가 말하고 있는 듯했다.

‘적당히 쉬는 것도 좋지만, 계속 놀 수만은 없지 않느냐?’

학문도 목표했던 성과를 이루었고, 생각보다 큰돈이 생겨 이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만큼 한동안은 정말 마음껏 푹 쉬고 놀려고 마음먹었던 황준우의 마음에 먹구름이 끼일 듯했다.

“조금 쉬고 싶은데.”

황준우는 솔직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잠시지만 참 바쁘게 달렸다.

덕분에 그동안 천조칠무에도 큰 신경을 쓰지 못했고, 짧은 휴식기를 통해 무공에 관해서도 돌아볼 예정이었기에 당장은 정말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꼭 내일 당장이 아니어도 돼. 그냥 조금 나갔다 오고 싶은 것뿐이니까.”

당황하면서도 솔직하게 그리고 나름대로 부담스럽지 않게 이야기하는 황서연의 모습을 보며 황준우의 입가로도 결국 어쩔 수 없는 승낙을 뜻하는 미소가 어릴 때였다.

“그리고 나, 아직 소원권도 남았잖아.”

“소원권? 아?”

아주 어린 시절 했던, 무공 수련 중 황준우를 한 대라도 스칠 경우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던 기억. 그리고 몇 년 후 황준우는 실제로 황서연에게 한 방을 먹었었다.

“그거 지금 사용할게.”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에, 진짜?”

“이미 내뱉은 거니까 물려 줄 생각은 없다.”

“아, 안 돼!”

장난스럽게 웃는 황준우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경악을 하던 황서연이 이내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그러니까 어쨌든, 일단 허락한 거지?”

“그래 뭐,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한번 가 보자. 어디 가고 싶은 데는 있어?”

“얼마 전 효령이가 항주에 다녀왔는데 그렇게 볼 게 많대. 또, 아직까지 북경에도 한 번도 안 가 봤으니까 가 보고 싶고, 에 또…… 아무렴 어떤 곳이라도 좋아!”

“푸하하, 그래. 그래. 알았어. 일단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잘 생각해 놔. 이 오빠가 그 소원 접수한다.”

“진짜지? 꺄아-! 신 난다. 내일 가서 효령이한테 자랑할 거야. 아 참, 오빠. 한 번 시간 될 때 같이 밥 한 끼 먹자.”

“밥이야 매일 같이 먹잖아?”

“아니, 우리끼리 말고. 효령이랑.”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황서연의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이름이었다.

‘많이 친한 사인가?’

아무렴, 여동생이 친한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는데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 시간 한번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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