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69화
“도련님은 안 타십니까?”
“마차 몰아야지.”
“그러면 저도 마차에 안 탑니다.”
“답답하네, 이 인간들. 됐다, 됐어. 똑같은 녀석들 붙잡고 무슨 말을 하냐. 영 불편하면 둘 다 마차 지붕 위에라도 올라가 앉아 있어.”
“차라리 그렇게 하겠습니다.”
황준우의 말에 곧장 마차 지붕에 올라 창을 품에 안고 우뚝 선 홍산이 정면을 바라본다.
“앉으라니까?”
“주공이 말을 모는데 어찌 이 한 몸 편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명령이야.”
“…….”
그 말이 떨어지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한 홍산이 자리에 앉는다.
“경호 너도.”
“마차…… 몰아 본 적 있으십니까?”
“처음인데?”
“…….”
“걱정 마. 처음이라도 다 잘해. 아, 술 빼고. 아니다, 앞으로 진짜 자만하지 말아야지. 어쨌든 말들이 알아서 잘할 테니까 정말 아무런 걱정 마. 불편하지 않을 거야.”
허공에 든 채찍을 빙글빙글 돌리는 황준우의 모습에, 밧줄에 묶인 말 여섯 필이 연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홍산을 포함한 황준우 일행이 안휘성(安徽省)을 향했다.
거대한 호수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둥근 침상이 천장을 뚫고 하늘로 솟았다.
“우와아아-!”
비명 같기도 또 함성 같기도 한 그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았던 침상이 둘, 넷 아니 열여덟, 이윽고 서른여섯으로 쪼개져 방 안으로 떨어졌다.
쿠구구궁-!
“꺄아악-!”
“조심해-!”
여인들이 비명을 터트리며 방 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떨어진 침상의 나뭇조각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이들 또한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일반적인 사내 셋 이상을 합쳐도 모자랄 것 같은 거대한 체형의 사내가 가는눈에서 불을 토하고 있었다.
“만금장! 만금장! 만금장!”
지옥의 악귀가 불꽃을 토해 내듯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반복하여 외친 사내의 손에 잡힌 검이 큰 떨림을 토하는 가 싶더니 이내 거칠게 휘둘러진다.
이름만큼이나 고귀한 위상을 자랑하던 창궁원의 삼 층이 통째로 잘려 나가 지면으로 떨어진다.
쿠구궁-!
엄청난 소란과 함께 먼지구름이 일었지만 더 이상 비명을 내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목소리를 높이던 여인들의 허리 위로는 더 이상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나뭇조각을 맞아 가면서도 부복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들만이 살아남았다.
“후우, 후우, 이런. 여자들이 죽어 버렸잖아.”
거친 분노를 쏟아 낸 사내는 자신이 벌인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작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쩔 수 없지. 새로 들여야지. 더 예쁘고 참한 아이들로 말이야. 거기, 너.”
사내의 부름에 살짝 눈을 치켜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중년인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외쳤다.
“추, 충!”
“그래.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남궁수. 네 딸이 이제 열여섯이 된다고 했던가? 이름이 영이라고? 피부도 새하얀 게 참 곱고 웃는 모습이 어여쁘다고 들었는데.”
“주, 죽여 주십시오. 소가주를 보필하지 못한 저를 죽여 주십시오!”
남궁수가 바닥에 머리를 연신 내리꽂으며 눈물과 함께 핏물을 쏟는다. 그 모습을 눈웃음 가득 지은 채 바라보던 남궁전혁이 넘실거리는 턱살을 크게 휘저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남궁수 같은 충신을 죽일 리가 없잖아. 암. 죽으면 안 되지. 제 딸까지 가져다 바치는 충신을 누가 죽이나. 그래선 안 되지.”
“죽여…… 죽여…… 주십시오!”
쿵-! 쿵-! 쿵-!
죽여 주지 않는다면, 알아서 죽겠다는 듯 머리를 박아 대는 남궁수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남궁전혁이 어쩔 수 없다는 시선을 비추며 말한다.
“저 새끼 말려.”
후다닥-!
“놔, 놔라! 죽어야 한다! 나는 죽어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머리를 조아린 채 부복하고 있던 다른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남궁수의 양팔과 다리를 부여잡고는 그의 마혈마저 짚어 버린다.
순식간에 온몸의 움직임을 봉쇄당한 그가 떨리는 시선으로 남궁전혁을 바라보았다.
‘제발…… 제발…….’
그 간절한 두 눈을 마주한 남궁전혁이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뜻이 그리 간절하니, 내 꼭 긴히 여기고 어여삐 보아 주겠노라. 내일까지 창궁원에 들이도록. 또 누가 있더라. 남궁수 말고. 남궁지호, 남궁대우, 남궁찬 또…….”
각자 이름이 불릴 때보다 몸을 흠칫 떤 세 사람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지금 이름 불린 애들은 내일까지 좀 부탁할게.”
“잘 모시라 전하겠습니다!”
“딸이 기뻐할 것입니다!”
남궁전혁이 유난히 예뻐한다고 한 여자일수록 더 빨리 죽는다. 살더라도 반 폐인 혹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꼴이 되어 쫓겨날 때도 많았다.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지켜봤기에 남궁수와 같이 차라리 죽여 달라는 태도를 취할 수도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이곳 남궁세가에서 남궁전혁을 거역할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여자는 구했고, 침상은 새로 사고. 그러고 보니 문제가 뭐가 남았더라?”
“그…… 남궁오래…….”
남궁전혁의 질문에 부복하고 있던 남궁대우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불쾌하네. 남궁대우 너 내가 멍청한 돼지 같다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기억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 거고?”
“아, 아닙니다.”
“정말 아니야? 아니. 불쾌해 역시. 네 딸은 들이지 마라. 그년도 너같이 나를 멍청하고 기분 나쁜 돼지라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 그렇지 않습니다! 부디 말씀 거두어 주십시오!”
“한 번만 더 같은 말 하게 하면 너부터 죽는다.”
“…….”
남궁대우의 입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빠르게 닫혔다.
식은땀을 비처럼 쏟아 내며 숙이고 있는 얼굴 위로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살았다. 우리 회아는 살았어.’
그런 남궁대우의 뒤통수를 모두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 가는눈으로 바라보는 남궁전혁의 두 눈이 또 한 번 미소를 그렸다.
“보자, 그래. 남궁오래. 그리고 남궁문우. 이 멍청한 녀석들이 사고를 쳤지. 그래서 지금 만금장 소장주가 직접 이곳으로 오는 중이고 말이야. 어떻게 해야 할까.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궁전혁의 의문에 남궁지호와 남궁찬, 남궁수 등을 비롯한 제 딸의 목숨이 걸린 이들의 머리가 빠르게 비상했다.
지금은 비상사태다.
남궁전혁이 유래 없을 정도의 큰 화를 낼 정도로 위기의 때.
좋은 꾀를 잘 낸다면 남궁대우와 마찬가지로 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여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로 인한 열기가 장내에 무거운 공기를 만든다. 중심에 선 남궁전혁은 그들 하나, 하나를 바라보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역시 놈들을 출가(出家)시키는 게 좋겠지?”
“하, 하지만 남궁오래는…….”
“남궁오래는 뭐?”
남궁전혁이 웃으며 되물었다.
그들의 뒤에 선 이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던 사내, 남궁찬은 곧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아닙니다.”
“다를 것 없어. 놈들은 가문에 누를 끼쳤고, 이제 해(害)가 되어 다가오고 있지.”
“잘라야겠군요. 냉정하게요. 그들은 처음부터 남궁세가의 식솔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죄를 지었고, 가문에서 쫓겨난 거지요. 눈이 먼 녀석들이 가문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실수를 한 것이기도 하고요.”
식은땀으로 작은 웅덩이를 하나 만들어 낸 남궁지호가 잽싸게 나서며 자신의 의견을 던졌다. 그러자 흡족한 듯한 미소를 언뜻 보였던 남궁전혁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너무 잔인하지 않아? 심지어 없던 이야기도 만들어 내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궁세가를 위해서니까요.”
“…….”
남궁전혁이 침묵한다.
시선을 마주한 남궁지호는 뱀 앞의 개구리처럼 몸을 움츠렸다.
“남궁세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거지?”
“예. 남궁세가를 위해서.”
“흐음…….”
제멋대로 자라난 거친 턱수염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남궁전혁이 고개를 주억였다.
“좋아, 그러면 남궁지호 너만 믿어 보겠어.”
“그러면 제 딸은…….”
기대감 가득 담은 시선을 한 남궁지호의 말에 남궁전혁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딸? 아…… 글쎄. 아직은 모르겠는걸. 딱히 불쾌한 기분도 들지 않았고 말이야.”
“꼭, 해내겠습니다.”
“그래 꼭 해내. 그래야지만 될 거야.”
남궁전혁이 뱀처럼 웃었다.
소문이 하나 떠돌았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쯤은 생기는 것이 소문이라는 놈이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특별했다.
남궁세가에서 쫓겨난 남궁오래가 가문의 복귀를 위해 구벽신권 남궁문우와 손을 잡고 만금장 소장주 암살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만금장주와 그 식솔들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있다.
남궁세가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남궁오래를 향해 분노를 표했다.
미래라고 믿었던 놈들이 일을 그르치고 남궁세가를 망치고 있다.
아무리 직계 혈족의 자손들이라 하여도 이번만큼은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서는 안 된다.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래도 진위만큼은 어떻게 안 되겠느냐?”
넓은 장기판 앞.
고심 끝에 졸(卒) 하나를 전진시킨 백발의 노인이 말한다. 그 건너편에서 진중한 표정을 한 남궁전혁은 단숨에 그 졸을 마(馬)로 집어삼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틈을 보이면 안 됩니다. 보이는 순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참고 있는 장로들이 먼저 들고 일어날 겁니다, 아버지.”
“그래도 숨겨 볼 수는 있지 않느냐?”
남궁전혁의 아버지.
지금의 거대한 남궁세가를 만든 주축이자 남궁이라는 이름에 집결한 모든 권력의 중심지인 남궁세가주 남궁호량이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세가 강렬한 부리부리한 눈으로 남궁전혁을 바라본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아시지 않습니까.”
남궁전혁이 웃는다.
시선을 마주한 남궁호량도 웃었다.
“지독한 놈.”
“지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아버지십니다.”
“클클. 그랬지, 그랬어. 잘 컸구나.”
“이제는 잘 컸다는 소리를 들을 나이도 지났지요.”
“이놈, 결혼이나 하고 말해라.”
“누가 시집이나 오려고 하겠습니까? 몸뚱이가 이런데?”
피식 웃음을 보인 남궁전혁이 제 두터운 뱃살을 두드린다.
“그 속의 진짜를 알아볼 줄 아는 계집이라면 능히 곁에 있으려 들겠지. 단지 아직 짝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겁도 없어야겠지요. 모두가 저를 무서워하니까요.”
“그래도 난 결혼은 했다. 그래서 너도 낳았고.”
“아버지는 저만큼 무섭지는 않았지요.”
“예끼, 이놈이!”
성을 내듯 목소리를 높인 남궁호량이 가늘게 눈을 떴다.
남궁전혁이 그대로 빼다 닮은 것이 분명한 뱀과 같은 사이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시선이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는 게냐?”
“설마요.”
피식 웃음을 보인 남궁전혁이 고개를 내저었다.
“더욱 무섭고 두렵게 만들 겁니다. 적에게는 우습게 보여 방심을 만들고, 내 사람에게는 군림(君臨)하라. 그것이 제왕의 검 아니었습니까?”
“그래. 그것이 바로 남궁. 네가 그 뜻을 잊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제왕검형을 눈앞에 둘 수 있을 게다.”
“아버지는 못 하신 일이지요.”
“이놈이 끝까지…….”
“흐흐.”
“그래. 아무렴 상관없다. 나보다 더 악독하고, 무서워져라. 더 못되고 지독해도 좋다. 오로지 남궁이라는 이름만이 천하제일이 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해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입니다.”
“오로지 남궁만이 제일이다.”
“푸른 하늘 아래 남궁만이 유일(唯一)하다.”
“만금장 애송이 녀석, 찾아온다면 똑똑히 알려 주어라.”
“예. 제왕의 검을 똑똑히 보여 주겠습니다.”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두 부자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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