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49화
“나이는 많은 놈들이 애 같기는, 어휴.”
몇 번 대화를 나눠 본 결과 알게 되었지만 백흑쌍흉의 본성은 굳이 오흉의 한 자리를 맡을 정도로 새까맣지 않았다. 모순적이지만 오히려 백색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무슨 사건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뇌의 일부에 이상이 왔고 어린아이와 다름없는 정신 상태로 성장이 멈추었다. 그러한 순수함에 더해진 그들의 힘이 화(禍)를 불렀다. 주술과 강시술, 강력한 무공. 거기에 꼽추라는 선천적 병이 더해졌다. 마음껏 살고 싶던 그들에게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욕설이 쏟아졌고, 화가 난 백흑쌍흉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수를 휘둘렀다. 자신들을 놀리고 비웃었으니 죽어 마땅하다 생각한 것이다.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가 곤충을 찢어 죽이듯이 아무 생각 없는 행위.
어찌 보자면 참으로 무섭지만, 누군가 그들에게 똑바로 된 교육을 시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이제는 차차 나아지겠지.’
황준우로부터 억압도 받고 있고, 나쁜 일은 모두 금제 당했다. 그리고 처음 허리를 펴 줄 때 뇌에 생겼던 이상마저 치료했으니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란 것도 성숙해질 것이다. 천하를 떨게 했던 백흑쌍흉이 진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인 셈이다.
“백아, 너는 지금부터 백노(白老)다. 흑아는 그럼 뭘까?”
“흑노(黑老)!”
“정답.”
황준우가 씩 웃으며 말하자 서로를 바라본 백흑쌍흉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너무 늙어 보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너네 늙었어.”
“아닙니다.”
“아직 마음만은 방년입니다.”
“말 안 들으면 다시 허리 접어 버린다.”
“히끅!”
황준우의 무시무시한 협박에 헛구역질을 삼킨 두 사람이 자라목처럼 어깨를 좁혔다.
“어쨌든 이제부터 너희는 합쳐서 백흑쌍노다. 이의 있나?”
“있으면 받아 주십니까?”
“그런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너무하십니다.”
“속상합니다.”
“시끄럽고, 유시까지 연락 온다고 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이따가 연락 오면 백노 네가 날 깨우러 와.”
“주무실 겁니까?”
“그때까진 할 일도 없으니까 조금 쉬어 두려고.”
“알겠습니다.”
“나쁜 짓 하지 말고.”
“안 합니다!”
“백아 아니, 백노가 아까 어린아이 당과 훔쳐 먹었습니다!”
“흑노!”
흑흉 아니, 흑노의 고자질에 백노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도둑질도 나쁜 짓이다. 백노, 넌 가서 그 훔쳐 먹은 아이한테 당과 다시 사다 주고.”
“……알겠습니다.”
“그래, 한동안 말 잘 듣고 착하게 살면 얼굴도 젊게 바꿔 줄게.”
“……!!”
“……!!”
생각지도 못한 황준우의 말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허리는 펴졌지만 이미 두 사람은 노인이다. 정신 상태가 어린아이인 그들은 호수나 동경에 가끔 비치는 자신들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했다. 현실을 부정할 때도 많았다.
한데 진짜 젊게 바꿔 준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믿지 않았을 터다.
헛소리라고 화를 냈겠지.
하지만 황준우라면 믿는다.
이미 그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기적을 보여 준 주인이기에 충분히 따를 자신이 있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정말 착하게 살 겁니다!”
백흑쌍흉, 이제는 백흑쌍노가 된 두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외쳤다.
북경의 밤은 그리 어둡지 않다.
밤이 다가오는 시간에는 그 화려한 밤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황준우는 그 틈새에 섞여 늘어지는 하품을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좌우로는 시장의 광대들이나 쓸 법한 탈을 착용하고 있는 백흑쌍노가 함께였다.
“후후, 이렇게 하면 정말 아무도 우리를 못 알아봅니다.”
“감쪽같지 않습니까? 우린 천재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이 방법은 제가 생각했지 않습니까?”
“둘 다 시끄러워.”
떠드는 쌍노를 가벼운 말로 조용히 시킨 황준우의 턱 끝이 화려한 길거리 중심에 있는 작은 푸줏간을 가리켰다.
“저기 맞아?”
“황아 푸줏간. 저기 맞습니다.”
“분명합니다.”
“지금부터 내가 질문할 때는 흑노만 답한다.”
“알겠습니다.”
황준우의 말에 백노와 흑노, 두 사람의 탈 뒤편 얼굴에 희비가 엇갈렸다. 원체 말하는 걸 좋아하는 두 사람인데, 그 낙이 단숨에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황준우의 말을 거역할 수는 또 없는 노릇이었다.
그사이 황준우는 푸줏간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기 비린내가 가득 밴 푸줏간에서는 웃는 낯을 한 평범한 중년인이 그들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어떤 고기를 찾으십니까?”
“잘 다져진 쥐 고기.”
“네? 우리 가게에서는 쥐 고기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취급 안 하긴 뭘 안 해. 우글우글한 쥐떼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구먼.”
웃는 낯을 한 주인장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동시에 그의 소매 끝자락에서 암기가 터져 나왔다.
촤라락-!
빠른 손놀림에 제법 괜찮은 시점에 터져 나온 암기술이다.
“어딜 감히 주인님께!”
“어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절정에서도 상위의 경지에 오른 백흑쌍노가 동시에 펼치는 호신강기를 뚫지는 못한다. 정면에 나선 두 사람이 비상 장치를 작동시키려는 푸줏간 주인을 단숨에 제압했다.
“크윽!”
안타깝게 쓰러진 푸줏간 주인 앞에 다가간 황준우가 웃음을 보였다.
“다시 묻지. 쥐 고기 사러 왔는데, 어디 있어?”
푸줏간 주인은 대답 대신 황준우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아, 더럽게.”
가볍게 움직여 그 침을 피한 황준우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직접 말해 줬으면 편했을 텐데. 어디 보자.”
서왕은 약삭빠른 자다.
때문에 약속한 거래에서도 쉽게 얼굴을 보이지 않고 대리인을 내세울 때가 많았다. 푸줏간 주인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때문에 그를 사로잡아 서왕의 위치를 곧장 알고자 했지만 본인은 말할 생각이 없다.
“고문하면 됩니까?”
“역시 고문입니까?”
“됐어. 대충 감은 오니까.”
황준우가 손을 내저었다.
푸줏간 주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겠지만 이 안에는 분명히 비밀 장치가 있다. 그 말은 곧 또 다른 기관도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왕처럼 약삭빠르면서도, 확실한 걸 좋아하는 자라면 그 기관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숨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여전하네.”
푸줏간 주인이 서 있던 단상 바로 아래 측 발판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린 황준우가 씩 웃는다. 언제든지 죽을 각오가 되어 있던 것만 같던 푸줏간 주인의 표정이 창백해진 것도 동시였다.
“그냥 대충 묶어다가 던져 놔. 굳이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뒤끝이 있지 않겠습니까?”
“복수할 수도 있습니다.”
백흑쌍노의 말에 뒤를 돌아본 황준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제깟 놈이? 나한테?”
“…….”
반발을 토하던 백흑쌍노의 입이 깔끔하게 다물렸다.
너무 어린 외모와 여유로운 손속에 가끔 잊고는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그들에게 최악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엄청난 인물이었다. 최소 그와 같지는 않더라도 닮았다. 당장은 칠야무신이 될 수 없겠지만 향후 오 년 아니, 삼 년이면 능히 그만한 경지에 오르리라는 추측도 있었다. 이미 황준우가 전생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뿐만으로도 복수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이 우스워졌다.
천하가 칠야의 난으로 병을 앓을 때 그에게 검을 겨눈 사람이 몇이었던가? 마지막에 나선 이는 만이었지만, 실상 천하구주 전체가 그의 적이었다. 그럼에도 칠야무신은 독보하여 장백산까지 정면으로 길을 뚫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가둘 수 있다는 천라지망도 그에게는 찢기 좋은 종이만 못했다.
만약 불성 원공마저 그를 꺾는 데 실패했다면 그 누구도 칠야무신을 향해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눈을 내리깔며 공포와 경외를 마음에 심었을 것이다.
그것도 가능한 대상에게 하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아직까지도 칠야무신의 죽음이 헛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들어가자.”
덜컥-! 드르륵-!
침묵한 백흑쌍노를 향해 한마디 말을 건넨 후 가볍게 비밀 기관을 작동시킨 황준우가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명령에 따라 푸줏간 주인을 밧줄로 대충 묶어 건물 구석에 내동댕이친 백흑쌍노가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쥐 몰이의 시작이었다.
어둠은 불안하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심연(深淵)과 같은 어둠이라면 불안을 넘어 두려움을 선사한다.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징조도 없음에도 공포를 느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서왕, 사마정에게는 달랐다.
그는 태어나기를 지하 깊숙한 곳에서 태어났다. 습하고, 아주 어둡고, 들려오는 것은 작은 숨소리뿐이다.
갓 태어난 시절의 기억은 없었다. 그저 듣기로는 낳아 준 어머니가 곧장 죽어 대신하여 키워 준 할머니가 있었다고 하더라. 실상 그 할머니조차 오래가지 못해 죽었지만 말이다. 기억이 시작된 시점에서 사마정은 땅을 파고 있었다. 그때가 시작이었지만, 목적은 분명했다. 배가 고팠다. 무엇이라도 먹어야 했고 땅을 파면 나오는 작은 벌레들은 훌륭한 양식이었다. 그렇게 그는 음지와 친해졌다. 어둠이 그의 어머니였고, 침상이었으며, 이불이었다. 주변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숨소리가 하나둘씩 사라지다 못해 몇 남지 않았을 쯤 하늘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햇볕을 등진 무사들이 나타났을 때 다른 이들은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사마정은 기뻐할 수 없었다.
빛은 따가웠고 눈부셨으며 무서웠다.
그는 어둠이 더 편안했고 따뜻했으며 포근했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나 무인들의 손길은 그를 억지로 바깥으로 끌어내었고, 이내는 최악의 세상에 제멋대로 던져 버렸다. 괴로웠지만 다행히 밝은 세상에도 어둠은 있었다. 지붕 아래, 건물 사이, 어두운 다리 밑. 사마정은 그 밑을 기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함께 어둠에서 쫓겨났던 쥐 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영문은 아직도 모른다. 운명일지, 우연일지. 어쨌든 붉은 눈의 쥐들은 지친 그에게 먹잇감을 선물하기도 했으며, 친구가 없는 그에게 동료가 되어 주기도 했다. 십 년을 넘게 쥐와 가까이 지내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재잘재잘.
마치 어린아이들이 떠드는 것 같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재미있는 이야기와 소식이 참 많았다. 사마정이 처음으로 결코 좋아하지 않는 밝은 세상에 눈을 돌린 순간이었다. 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직접 보고 싶지만 빛은 두렵다. 사마정은 고민했고, 어둠 속에서도 그들을 지켜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이번에도 붉은 눈의 쥐 떼가 그에게 길을 알려 주었다.
흑복서왕공(黑伏鼠王功).
처음에는 그 이름이 무공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단지 익히면 햇볕이 비추는 곳에서도 어둠을 기어 다닐 수 있다고 하니 익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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