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42화
표사들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승마 훈련을 한다.
그리고 대다수가 처음에는 당황한다.
말을 탄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도 않고 문제도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난 황준우라고 하여도 처음이라면 고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왠지 경호, 내가 된통 당하는 걸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맞잖아.”
“아닙니다.”
살짝 찔린 경호가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황준우였지만 군말 없이 고삐를 건네받았다. 본인이 아니라는데 더 이상 추궁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은가?
“승마라…….”
단숨에 날듯이 뛰어올라 말 위에 올라탄 황준우가 조심스럽게 갈기를 쓰다듬었다. 다행히 말은 순한 녀석인지 별 거부감 없이 황준우를 받아들였다.
“이거 생각보다 쉬울 것 같은데?”
반짝이는 눈의 황준우가 말하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경호가 답했다.
“그러기를 바라겠습니다.”
“좋아, 그럼 출발해 볼까!”
“출발하자고 하신다!”
“출발!”
“출발!”
황준우의 외침에 기다리고 있던 만금표국의 무사들이 합창하며 말을 몰고 나섰다. 밖으로 나돌지 않지만 집안 내에서는 제법 행사가 많은 황준우였다. 그런 만큼 표사들이 가진 황준우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적지 않았다.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점잖고, 어린 나이에 맞지 않는 출중한 능력을 갖추었다. 아버지인 소주 대인을 닮아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란 이야기가 자주 나도니 아직 경험 없는 황준우의 말에 따른다고 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저렇게 하는 거란 말이지?”
가볍게 고삐를 때려 말이 움직이는 모습을 확인한 황준우가 곧잘 따라 손을 움직였다.
이히힝-!
황준우가 탄 말은 거친 울음소리를 내뱉었으나 이내 안정적이게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 간다. 가.”
황준우가 신기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경호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더 순한 놈인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말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던 경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가는군요.”
“경호, 지금 웃음 되게 음흉해 보이는 것 알아?”
“……아닙니다.”
“역시 내가 당하기를 바랐구먼? 흥, 날 뭐로 보고. 승마쯤이야 간단하다 이거야.”
신이 난 황준우가 콧방귀를 뀌며 고삐를 쥔 채 정면을 바라본다. 그 뒤를 따라 주연하가 탄 마차와 금의위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황준우의 첫 보표행(保?行)이었다.
6. 백흑쌍흉
첫 승마는 생각한 것처럼 쉽지 않았다.
황준우의 말은 얌전했고, 노련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말이다. 오랜 시간 타고 움직이면 불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 첫째는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에 생기는 고통이다. 황준우의 경우는 이쪽에 속하지 않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천조칠무를 통해 육체를 단련해 온 그에게 있어 허벅지와 엉덩이의 부담 정도는 딱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조금 묵직해진다고 하여도 육단공에 이른 천조신공이라면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다.
황준우에게 찾아온 불편은 그보다 더 원초적인 문제였다.
‘지루해.’
말은 편안하다.
처음이라는 사실이 그를 놀랍게도 하고, 감탄하게도 했지만 결국 그조차도 오래가지 못했다. 몸 쓰는 걸 좋아하는 그의 입장에서 오랜 시간 말을 탄 채 정면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답답한 일이었다. 어차피 남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여 싸 온 짐 중 책을 풀어 공부도 해 보았지만 또 그렇게 되니 승마를 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불편했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은근히 책의 글자가 흔들리는 게 그의 신경에 거슬린 것이다.
“안 되겠다.”
결국 두 시진 만에 항복을 선언한 황준우가 말 아래로 뛰어내렸다.
“걸어가시려고요? 갈 길이 제법 멉니다.”
생각보다 편안해 보이던 황준우의 모습에 살짝 아쉬워하고 있던 경호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멀어 봐야 얼마나 된다고. 난 아무래도 걷는 게 편해.”
가볍게 말한 황준우가 말고삐를 경호에게 건넸다.
대신하여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뒷짐을 진 그가 걷기 시작한다.
여유로워 보이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말이 걷는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신통방통하다는 표현도 모자랄 정도였다.
‘책을 보면서 걷는데 저렇게 편안해 보이다니.’
심지어 자세히 보면 걷는다기보다는 바닥을 미끄러지고 있는 듯한 기묘한 신기다.
알고 있었지만 늘 놀랄 수밖에 없는 황준우의 무공에 경호가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른 후 손을 움직였다.
그를 따라 주변에서 말을 몰던 만금표국의 보표들이 황준우 주변을 감싸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감춰 버린다. 그들 역시 경호만큼은 아니지만, 황준우가 비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외부에 있어 이러한 사실이 벌써 알려져서 좋을 것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본래 거래를 하는 상인의 입장에 있어 먼저 패를 보이는 측이 지기 마련. 황준우의 비범함은 현재 만금장에 있어 감춰진 비장의 패였다.
‘알 만큼은 알겠지만 굳이 소문이 크게 날 필요도 없지.’
어차피 움직이기 시작하면 천하가 그를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호는 황준우가 분명 천하를 움직일 그릇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이동 속도였지만 계속 이 상태로 가다가는 노숙할 게 뻔하다.
“속도를 높이실 수 있을까요?”
경호가 한참 책의 글귀에 빠져 있는 황준우에게 질문을 건넸다. 당장이야 노숙 확정이지만, 조금만 더 속도를 높여도 완전히 해가 지기 전에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누가 있어 이 거대 행렬을 건드릴까 싶지만 노숙을 좋아하는 사람 또한 잘 없었다.
“걱정 말고 가. 난 알아서 쫓을 테니까.”
“그러면 속도를 조금 높이겠습니다.”
본래 이번 보표행의 책임자는 황준우였지만, 그가 제대로 지휘를 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결국 경호의 손짓에 보표들이 움직였고 곧 마차를 감싼 뒷열까지 속도를 높일 것이 전해졌다.
자연스레 행렬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그 속에 녹아든 황준우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행렬을 따랐다.
평범한 사람이 뛰는 것에 비견하자면 빠른 속도임에도 흔들림이 없는 황준우의 모습에 주변 보표들의 눈에도 감탄이 흘렀다. 이쯤 되자 오히려 고생을 시작한 것은 경호였다.
‘이거 말 두 마리를 신경 쓰려니 엄청나게 힘들구나.’
타고 있는 말을 몰면서 황준우가 맡긴 말까지 신경 써서 이끌어야 한다. 행렬이 느릴 때야 큰 불편함이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경호는 쥐고 있던 말의 고삐 하나를 놓치고 말았다.
동시에 뚫어져라 책만 보고 있던 황준우가 조금은 피폐해진 눈으로 책장을 덮으며 한숨을 내쉬고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파라락-!
당황하는 말 위에 올라타 날뛰기 전 단숨에 진정시킨 황준우가 경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역시 경호는 내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
“……애초부터 그 말 도련님 책임이었는데요?”
“흐흐, 쑥스러워할 필요 없다고.”
“제가 언제 쑥스러워했습니까?”
“지금 쑥스러워하고 있잖아.”
“자꾸 그러시면 오늘부터 칠 주야 내내 잔소리할 겁니다.”
“윽…….”
“적당히 놀리시라는 말입니다. 이래 보여도 제 나이가 이립(而立)을 넘어선 지 오래인데…….”
“그때까지 노총각인 건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닐까 역시?”
“도련니임!”
“다들 어떻게 생각해? 우리 경호 장가 한번 보내야 하지 않겠어?”
주변을 둘러보며 묻는 황준우의 물음에 몇몇 보표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소장주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한번 크게 밀어 보겠습니다.”
“푸하하! 경 무사가 나이가 차긴 많이 찼지.”
“쉽진 않겠는걸. 하하!”
“다들……!”
주변에 위치한 표사들이 웃고 표두 몇몇은 거기에 더해 말 한마디를 더 건넸다.
황준우의 호위무사직을 가장 오래 소화하고 있는 경호였지만 그 역시 가끔 표국의 실무에 나서고는 했다. 스승이 만금표국에서 이십 년이 넘게 근속한 유영명 표두이니 당연한 부분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만금표국의 표사들과 제법 친해질 수 있었다. 사람 좋은 경호와 친해지는 것은 신경이 날카로울 수도 있는 표사들에게도 기꺼운 일이었다.
“다들 너무합니다그려!”
“아, 거 우리가 도와주겠다는데 왜 그렇게 속상해해.”
“경 무사, 솔직히 장가가고 싶지 않아?”
“하하하!”
황준우 역시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이야 이렇게 웃고 떠들지만 실제 지휘를 할 때나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이면 누구보다 믿음직하게 나설 표사들이다. 또한 황준우가 지휘권을 넘긴다면 경호의 명령이 사지(死地)로 뛰어드는 것이라 할지라도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그것이 의(義)와 협(俠)을 어기지 않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표사들의 답은 같을 터였다.
그게 바로 만금표국의 기강이었다.
“제 장가는 제가 알아서 갑니다. 이래 보여도 아직은 인기가 있는 편이라고요.”
“오오…… 우리 경호!”
“진짜입니다.”
경호가 진지한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그럴 수 있지.”
“우리 경 무사가 나이에 비해서는 조금 어려 보이잖아?”
“솔직히 사람도 좋고, 그럴 수 있어.”
동시에 황준우와 표사 모두의 시선이 오갔다.
“그런데 왜 아직 장가를 못 갔을까?”
짧은 한마디의 비수를 가슴 한곳에 깊게 꽂은 경호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다들 너무하십니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경 무사, 삐진 거 아니지?”
“보표행이 끝나면 술 한잔 거하게 살 터이니 삐진 것 풀어!”
“정말이십니까?”
표두들의 물음에 경호의 고개가 은근슬쩍 다시 돌아온다.
그 순간 황준우가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오 표두, 그 술자리에 소개시켜 줄 소저도 한 분 계시는 거지?”
“물론입니다, 소장주님!”
민머리에 꽤나 험한 인상을 가진 오 표두의 외침에 경호의 얼굴이 다시 크게 돌아갔다.
그래 보여도 오 표두는 약관도 되기 전에 인근에 소문난 미녀와 결혼한 능력자였던 탓이다.
조금은 소란스럽고 즐거운 행렬이 안전하게 목표한 마을까지 이어졌다.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주변을 감시하는 표사들의 눈은 매보다도 날카롭게 움직이니 위험이 될 일이 있다 한들 결과는 같았을 터였다.
마을에 도착한 표사들은 놀린 것을 달래고자 더 친근하게 대했으며 사람 좋은 경호는 또 금방 웃으며 그들과 어깨동무를 둘렀다. 황준우 역시 공부에만 집중하느라 열이 올랐던 머리를 덕분에 제법 식힌 터라 기분이 좋았다.
“생각보다 이것도 좋네.”
표사들을 비롯한 금의위 행렬이 객점 하나를 통째로 빌려 들어간 이후 홀로 바깥으로 나온 황준우가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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