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8화
황서연의 말마따나였다.
잡자마자 검이 말을 걸어온다.
단지 매영검처럼 그런 부드러운 속삭임의 느낌은 아니었다.
우우웅-!
모두의 눈에 보이게끔 진동하는 검이 날카로운 예기를 마구잡이로 뽐내며 황준우에게 거칠게 반항한다. 함부로 휘두르려고 했다가는 분명히 사용자가 베일 정도의 험악한 느낌이었다. 검을 만든 만총이 잡았을 때와는 상반되는 반응이다.
“계속 궁금해하셨지요? 그 아이의 이름은 수왕(獸王)입니다.”
만총의 말에 황준우의 입가로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란 건가?”
“소장주님과 닮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만든 검입니다.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더군요. 그만큼 훌륭한 물건이 되었긴 합니다만 솔직히…… 위험한 건 사실입니다.”
만총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스스로 감탄할 만한 훌륭한 검을 만들었지만,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다면 수왕은 마검(魔劍)일 뿐이었다. 누군가 실수가 아니냐고 따진다면 마냥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을 자신도 없을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기대하고 있는 면이 있다면 황준우가 보여 준 놀라운 모습들과, 그가 가진 재능이었다.
‘길들일 수만 있다면 매영검 이상이라고 자신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과연 아직 어린 황준우가 다룰 수 있을 것인가?
“이놈도 뭐 숨겨 둔 힘 같은 게 있나?”
만총의 걱정을 뒤로한 채 즐거운 시선을 한 황준우의 질문이 이어졌다.
“만년한철의 특성상 검기를 주입하면 더욱 예기가 강력해지기 마련입니다. 아마 지금보다 더…….”
만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준우의 검에서 두껍고 기다란 황금빛 강기가 높이 솟아올랐다. 단순히 그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왕의 앞에 놓여 있던 모루와 화로가 반으로 갈라져 쓰러진다. 순식간에 철방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무, 무, 무슨……!”
너무 놀란 나머지 경호가 말을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서연과 만총, 주변에 자리 잡은 채 몰래 지켜보고 있던 대장장이들도 입을 떡하니 벌렸다. 단지 기운을 뽑아내는 것만으로 철과 벽을 가를 정도의 예기라니! 저쯤 되면 달리 더 말할 것도 없이 진짜 마검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 녀석 봐라. 진짜 제멋대로 날뛰어 버리네?”
반면 검을 처음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강기까지 형성해 낸 황준우의 입가로는 어이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단지 강기가 피어오른 것만으로 모루와 화로가 갈린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수왕이 황준우가 밀어 넣은 내력을 하나의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응집해 정면으로 쏘아 보낸 것이다. 자신의 불만을 힘껏 토하듯 말이다.
“위, 위험합니다. 아무래도 수왕은 제 실수…….”
만총이 재빨리 황준우를 말리려고 했다.
황준우가 어린 나이에 강기를 다룰 수 있는 고수란 사실도 놀랍지만 수왕의 위험도는 그보다 더 높았다. 사용자를 죽이는 검을 선물이라고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다려 봐.”
황준우는 그런 만총을 향해 미소를 보인 후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온몸에 황금빛 강기를 둘러싼 수왕이 또 한 번 무형기(無形氣)를 토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물론 황준우는 그를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채였다.
“자자, 누가 이길지 한번 해 보자꾸나.”
활짝 핀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허공으로 수왕을 던졌다.
황준우의 손을 떠난 수왕이 단숨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 뒤를 따른 것이 황준우의 신형이었다.
날아오르는 검보다 더 빠른 속도로 허공으로 치솟은 황준우가 갑작스러운 부유에 당황하고 있는 수왕의 검등을 짓밟았다. 이후 그를 기반으로 다시 한 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지면의 모든 것이 작은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 황준우가 밑을 바라보며 손을 내뻗었다.
“와라.”
웃음을 보인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갑작스러운 일격에 지면으로 떨어질 줄로만 알았던 수왕이 작은 점이 되어 황준우를 향해 쏘아져 왔다.
주인을 따른다기보다는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황준우는 웃었다. 오히려 달려드는 수왕에 힘을 보태 주었다.
동시에 내뻗은 그의 손과 수왕이 부딪쳤다.
공중에서 커다란 폭음이 일었으며 주변을 메우고 있던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그 중심, 황준우의 손끝에 잡힌 수왕이 큰 진동을 토했다. 그러기를 잠시 수왕의 떨림이 잦아져 갔다. 이윽고는 완전히 울음을 멈추고 황준우의 손에 딱 달라붙는다. 그 감촉이 제법 마음에 든다. 그야말로 팔의 연장선과 다름없을 정도로 한 몸 같은 수왕을 바라보는 황준우의 눈에 더욱 큰 즐거움이 깃든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슈우욱-!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황준우의 몸이 몇 번인가 공중을 박차고는 조용히 본래 있던 자리로 착지한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이다.
물론 그 풍경을 멀리서 일부나마 훔쳐본 사람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방금 전까지 벌어진 풍경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몇 번이고 눈을 비빈 만총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이게 무슨…….”
“허공답보? 허공답보입니까!?”
경호가 황준우를 향해 달려와 미친 듯이 캐물었다.
“오빠…….”
황서연조차 놀라 입을 벌린다.
이후 경호처럼 재빨리 근처로 다가온 그녀가 물었다.
“괜찮아? 다친 데는?”
그런 세 사람을 향해 웃음을 보인 황준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멀쩡해.”
솔직히 말하자면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라 최상이었다.
황준우는 방금 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천조신공의 육단공을 이룩하였으니 말이다.
수왕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처음으로 도구를 잡는 일이기도 하지만, 만총이 만든 검은 그만큼이나 훌륭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처음 검을 잡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만총은 그가 생각한 것 이상의 물건을 만들어 냈다.
반항하는 수왕이 손에서 날뛸 때 그를 제압하기 위해 천조신공을 끌어올리고 만병총례를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대기를 흐르는 기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지 그뿐이었음에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람과 사람, 검과 검, 또는 기와 기 사이에 연결된 선이 보인다. 일종의 결(結)이었다. 상단전이 활짝 열리며 그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시 재구축한 후 방향성을 제시했다. 동시에 황준우는 확신했다.
지금이라면 날 수도 있다.
신이 난 마음으로 수왕을 내던졌다.
그 뒤를 쫓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내력이 아닌 주변의 기운이 그런 황준우를 밀어 주었다. 그렇게 솟아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했다. 더 이상 자연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높은 곳을 향할수록 선명하게 보이던 결이 흩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닿을 수 없단 건가?’
하늘을 허락할 수 없다는 누군가의 의지일 수도 있었다. 황준우는 그 의지를 비웃었다.
천조신공이 어째서 천조신공이던가?
‘내가 날겠다는데, 네깟 것들이 뭐가 대수라고.’
곧장 발밑에 둔 수왕을 박찼다.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 위 구름을 발밑에 두고 웃음 지은 후 그와 수왕 사이에 연결된 선을 길게 잡아당겼다. 격돌 이후 커다란 반동이 주변을 감싼 구름을 물리고 황준우의 눈에 흐릿하게 보이던 결이 다시금 선명해졌다.
뇌리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청량감이 가득 차올랐다.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던 상단전은 대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천조신공 육단공의 입구에 들어서다 못해 급진하기까지 했다.
신이 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했나?’
자기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날아오르고 사건을 벌여 버렸다.
문제는 그 목격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굉장해, 오빠. 우내십존쯤 되는 초고수는 다 오빠처럼 할 수 있는 거야!?”
황서연의 경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이야기 속에서만 무림을 겪은 그녀에게 있어 황준우의 신위는 그리 놀라울 것도 못 되었다. 이야기 속에서는 누구나 한 번의 도약으로 하늘을 날고 강을 뛰어넘었으니 말이다. 하나 실제 현실을 아는 이들은 달랐다.
“도련님…….”
경호의 눈에 떨림이 보인다.
그가 생각하는 황준우는 분명 대단한 인물이었다.
재능이 엄청나다 못해 비상하다 할 수준이다.
하나 이토록 모든 인과(因果)를 무시할 정도의 무지막지함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고작 열일곱.
황준우는 약관도 되지 않는 나이에 무(武)로써 일가(一家)를 이루다 못해 하늘을 뒤집었다. 무림의 내부 사정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경호여도, 우내십존이라 불리는 인물들조차 황준우처럼은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니, 천하제일고수라 한들 불가능하다. 고금제일을 논하는 전설 속의 장삼봉, 달마, 초대천마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였다. 그런 그들조차 하늘을 뒤집어 놓는 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준우야.”
떨리는 경호의 모습 뒤로 다급히 달려온 것이 분명한 황석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머리를 살짝 긁적인 황준우가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너…….”
황석후가 재빨리 달려와 황준우의 온몸 구석구석을 재빠르게 훑는다. 마지막으로는 이제는 젖살조차 얼마 남지 않은 얼굴을 가볍게 두드린 이후에야 그의 입가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직후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나는 내 아들이 어린 나이에 신선이 되어 버리려는 줄 알았다.”
“네……?”
“정확히 보지는 못했다만 그런 소란을 일으킬 만한 녀석이라고는 너밖에 없는데, 하늘 위에서 그러고 있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아버지?”
“멀쩡하면 됐다. 뭐, 혹시 하늘의 부름이라든가 그런 것을 들은 건 아니겠지?”
“아쉽게도 전혀…….”
“그래, 그러면 되었다.”
황석후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애초부터 사건은 황준우의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그는 보는 눈이 많았다고 생각했지만 명확하게 황준우를 인식한 이는 몇 없었다. 애초에 그 정도 높이의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사람이 벌였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분명 상상외다. 직접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목격한 황서연과 경호, 만총을 제외하자면 누구도 믿지 못할 일이다. 대장간 안에서 몰래 훔쳐보던 대장장이들은 바깥까지 따라나서지 못했기에 상상은 할 수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상상 이상의 현실의 영역으로 넘어올 수 없는 비이상적인 현상. 황준우가 일으킨 사건은 그 정도의 일이었다.
오히려 따지자면 이렇게 곧바로 쫓아온 황석후가 특별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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