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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12화 (12/373)

학사재생 12화

“상어입니다! 대형 상어! 얼마 전 주산군도에서 직접 잡아온 녀석입니다! 아직도 싱싱하고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의 녀석입니다!”

어시장의 단상 위로 올라온 사회자의 외침에, 주변에 위치해 있던 장을 보러 나온 이들이 빠르게 몰려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만한 대형 상어는 흔히 보기도 힘들고, 소주에는 그를 구매할만한 여력을 갖춘 집안이나 가문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장주님이 얼마 전 상어 요리를 드시고 싶다고 했는데…….’

재향 역시 그 틈새를 끼어들어야만 했다.

실상 오늘 시장에 나온 이유도 바로 저 대형 상어에 대한 소식을 접한 탓이 컸다.

“좋았어.”

힘찬 목소리로 마음을 다진 재향이 황서연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가씨, 손 꼭 잡으셔야 돼요. 절대로 놓치면 안 되어요. 아시겠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손을 꼭 쥔 재향의 말에 황서연이 힘차게 고개를 주억였다.

“응응! 걱정 마!”

“우리 예쁜 아가씨. 후후.”

언제나 그렇듯 믿음직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랑스러운 아가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재향이 몸을 일으켜서는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우르르-!

갑작스럽게 상어 경매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많은데?’

마음을 다진 재향이 난감해하는 순간.

“악-!”

어깨가 부딪치며 비명을 내지른 청년 하나가 눈알을 부라리며 재향을 노려본다.

“뭐야? 계집이잖아?”

“계집?”

순간적으로 발끈한 재향이었으나 곧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일단은 상어가 급하다.

그리고 황서연도 옆에 있었다.

괜한 분란은 좋지 않다.

재향은 꽉 쥔 황서연의 고사리만 한 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괜찮으시죠, 아가씨?”

“응, 난 괜찮아.”

황서연이 힘차게 대답을 하는 순간, 재향의 시선이 오묘하게 흐려졌다.

목 뒤로 느껴지는 충격이 아릿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어깨를 부딪쳤던 청년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아이야, 이리 오렴.”

동시에 황서연의 뒤편에서 흉악한 인상에 꽁지머리를 한 사내가 손으로 입을 감싸며 그녀를 들어 올렸다.

“읍, 읍!”

놀란 눈을 한 황서연이 재향을 향해 손을 뻗으며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이었다.

“놈을 잡아라!”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만금장의 호위무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주변을 포위해왔다.

“빨리 움직이자, 전이명.”

중년사내의 말에 청년, 전이명이 고개를 주억인다.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한 두 사람의 걸음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랐다.

쫓아오는 호위무사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을 비켜 가며 골목길 솜씨로 비켜 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눈을 부릅뜬 호위무사들이 이를 갈며 그 뒤를 쫓았다.

제법 발이 빠르지만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놈, 소주가 바로 우리 앞마당이거늘.’

달아나는 납치범의 뒤를 쫓고, 또 다른 지시를 내려 앞의 길목에 호위무사들을 더 풀어 포위망을 만든다. 빠져나갈 수 없는 벽을 쌓는 것이다. 덕분에 중년사내와 전이명이라 불린 청년이 동료로 보이는 이들과 합류하는 순간 포위진이 완성되었다.

스스슥-!

골목길 틈새와 빠져나갈 길목까지 순식간에 만금장의 호위무사들이 에워싼다.

무슨 약에 취했는지 잠이 든 황서연을 곁눈질하며, 장년의 호위무사가 검을 뽑아 들며 모습을 나타내며 싸늘한 목소리를 흘렸다.

“당장 아가씨를 이리로 넘겨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 모두 이 자리에서 목을 잃게 될 것이다.”

충분히 위협적인 기세에, 날카로운 충고다.

적의 동료가 늘기는 했지만 기껏해야 다섯.

호위무사의 숫자는 자그마치 삼십이다.

한데 납치범으로 보이는 사내는 전혀 긴장한 표정이 아니었다.

“두목, 아무래도 진짜 큰 건인 것 같은데요?”

동료 혹은 수하로 보이는 자들도 크게 걱정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놈들…….’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린 장년의 호위무사가 불길한 느낌에 손을 들어 올렸다.

주변에 소식을 알리기 위한 신호를 보내란 뜻이다.

“컥……!”

그의 명령을 받고 품에서 폭죽을 꺼내던 무인의 단말마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

생각보다 더한 고수다.

“크흐흐…….”

어느새 검을 뽑아들었는지조차 모를 꽁지머리 중년인의 훤히 드러난 입에서 황금빛이 번쩍인 순간이었다.

“……!”

은은한 은빛을 내는 검기가 앞으로 나선 장년의 호위무사 눈앞으로 다가왔다.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막아내기는 했지만 위험한 상황.

“네놈은…… 누구냐? 무슨 목적으로 아가씨를…….”

놀란 장년의 호위무사를 향해 다시 한 번 웃음을 보인 납치범의 검에서 일순간이지만 검기를 뛰어넘는 강렬한 힘이 솟아났다.

“절정…… 고수?”

검기로는 막을 수 없는, 엄청난 힘의 집결체가 장년 호위무사의 검을 갈랐고 그의 목숨마저 순식간에 앗아간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모두 죽여.”

이후부터는 순식간이었다.

힘을 꽤나 썼는지 조금쯤 지친 표정의 중년인이 명했고, 기다리고 있던 그의 수하들이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달아나라! 달아나서 누구 한 명이라도 장주님께 보고를…… 컥!”

소주의 조용한 골목길.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 비명 사이로 붉은 핏물이 흘렀다.

만금장이 뒤집혔다. 평소 거대한 장원 내에 감돌던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는 씻은 듯 사라졌으며, 얼굴을 굳히지 않은 이가 없었다. 함부로 입을 여는 사람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다.

반각 전, 온몸에 피를 묻힌 호위무사 다섯 명이 돌아와 황서연의 납치 보고를 올린 직후였다.

그녀와 함께 시장에 나섰던 시녀 재향은 목을 쳐달라고 하였다.

하나 황석후는 그저 묵묵히 그녀와 무사히 돌아온 호위무사들의 어깨만을 두드려주었을 뿐이다.

소식이 만금장 전체에 퍼지는 데까지 반각.

또 소주 전체로까지 퍼지는 데 고작 반 시지이면 충분했다.

그 사이 납치범들의 인상착의 등을 조사한 황석후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무섭게 굳어 있었다.

“적리단(赤狸團), 호참검(虎斬劍) 구황, 일 년 동안 모습을 숨기고 있다 다른 지역의 도적들을 통일하고 어젯밤 소주에 입성이라…….”

반 시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상대의 정체와 그의 수하들에 대해 알아낸 황석후가 자신의 집무실 탁자를 두드렸다.

“흑표(黑豹).”

황석후의 사신위 중 하나, 검은 표범 가면을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며 답한다.

“추적은 어디까지 진행됐지?”

반 시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냈다.

남은 것은 추적이다.

“반시진이면 충분합니다.”

거인의 한 걸음은 쉽지 않지만 한 번 움직이면 천릿길을 훌쩍 뛰어넘기도 한다. 만금장이 가진 힘이 그러했다. 고작 도적 떼를 찾는 데 한 시진이나 걸리는 경우가 오히려 특별한 일이다.

인질로 잡혀 있는 사람이 황서연이라는 사실이 그들에게 조심성을 강요한 탓이다.

하나 상대는 반드시 잡힌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흘리는 황석후가 고개를 주억였다.

“바로 뒤따라 움직이지.”

“준비하겠습니다.”

흑표가 고개를 주억였다.

추적이 곧 끝날 테니 당장 따라잡아 꼬리를 문 순간 적을 치고 황서연을 구한다.

만금장이 전력을 다한다면 아주 손쉬운 일이다.

오히려 불행해질 측은 분명 적리단이었다.

‘오늘 큰 경을 치겠군.’

황석후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사람은 천하에 단 한 명뿐이라고 한다.

고우(故友)인 그의 정체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황궁의 높은 인물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고우마저도 황석후가 화를 낼 때는 두려워 몸을 움츠렸다고 한다.

지금 황석후는 겉으로 그 감정을 표출하고 있지 않았지만, 분명 화를 내고 있었다.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차가울 정도의 무서운 분노.

납치범 들이 어떠한 결과를 맞이할 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죽게 될 터였다.

아니면 살아 있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흑표조차도 처음 느끼는 주군의 분노에 숨을 죽일 때였다.

“위치를 찾았습니다.”

또 다른 사신위 중 한 명이자 유일한 홍일점, 백학(白鶴)이 모습을 드러내며 다급히 말한다. 생각보다 이른 때다.

“벌써?”

흑표의 놀란 질문에 백학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게…… 소주 주민들이 모두 나섰습니다.”

“모두?”

눈 안으로 차가운 분노를 갈무리하고 있던 황석후도 놀라 물었다.

“예.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거리로 나섰고, 흑도 무리들도 소주 근방으로 모두 뛰어나가 놈들을 쫓은 덕입니다.”

그녀는 이제 막 사신위에 합류한, 따지자면 신입이었다.

그래서일까?

보고를 하는 동안 그녀의 두 눈동자 속에 비친 황석후를 향한 존경심이 더욱 커져갔다.

황석후의 이명(異名), 그러니까 별명은 소주대인이다.

괜히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다.

시장의 소상인에서부터 객점 주인, 흑도 무리의 두목, 심지어 부자의 도시 소주 내에서 가장 가난한 측에 속하는 소재로(小財路) 주민들까지 그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실상 소주에서 숨 쉬고, 물을 마시며, 밥을 먹고 살아가는 이들 중 칠할 이상이 직접적으로 소주대인의 은혜를 입었다. 간접적인 부분까지 포함하면 주민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은 은혜로는 한 사람의 목숨을 살렸으며, 큰 은혜는 가족을 구했다. 그보다 더 큰 구명이 있다면 소주라는 도시에 닥친 횡액(橫厄)마저 거두어냈던 일이 있다.

때문에 소주대인이다.

그를 욕하는 사람이 누구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신봉했다.

관아에서마저도 소주대인이라면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그런 거인의 딸이 납치되었다.

은혜를 받기만 해 왔던 소주 주민들이 이참에 빚을 갚기 위해 양팔을 걷어붙인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로군.”

감사한 일이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분노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놈들에게 괜한 자극이 되지 않을까요?”

흑표는 걱정된 음색을 흘렸다.

“자극이 될 수도 있겠지. 하나, 그만큼 부담도 느끼고 있을 거야.”

“……그렇겠군요.”

소주대인의 자식을 납치했고, 소주 전체가 움직였다.

만약 흑표 본인이 상대의 입장이었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말로 다 할 수 없을 터였다.

자극을 벗어난 부담.

어쩌면 스스로 항복을 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만약 놈들이 제 스스로 나온다 한들, 자비는 필요 없다 전하게.”

평소의 그답지 않은 차가운 명령에 놀란 흑표가 고개를 든다.

하나 반문은 없다.

고개를 숙이며 분노의 깊이에 침을 삼킬 뿐이다.

“제길, 큰일 났습니다!”

또 다른 사신위 중 하나, 청송(靑?)이 모습을 나타내며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쏟아지고, 다급한 표정의 그가 평소 쓰고 다니던 사신위의 가면마저 벗어 던지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련님도 사라지셨습니다!”

“준우가?”

잠시 놀란 표정으로 말을 내뱉은 황석후가 턱을 쓰다듬고는 고개를 주억였다.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군. 빨리 가세.”

다급한 걸음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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