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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재생-9화 (9/373)

학사재생 9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하지만…… 공부란 건 정말 천성에 안 맞는단 말이야.’

실상 뇌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황준우의 몸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인간의 신체 부위에서도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기관인 만큼 함부로 건드리기 힘들다고 할까? 하나 공부라는 현재 황준우에게 있어 너무나 큰 장벽을 넘어트리기 위해서도, 또한 장기적인 관점에 있어서도 조심스러운 뇌력의 강화는 지속적으로 필요했다.

‘상단전 개발을 드디어 해 보는 거야.’

천조신공이 혈도 전체에 내력을 쌓는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큰 테두리가 되는 뿌리와 기둥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반적인 무림인들이 내력을 쌓는 단전이 바로 그 뿌리다. 아무리 천조신공의 효율이 신공절학급이라 한들 뿌리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법. 때문에 황준우는 전신에 내력을 쌓는 천조신공을 수련한다 한들 단전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단전만큼이나 어쩌면 더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기둥의 역할을 맡는 심장이었다.

전생의 황준우는 이 심장의 내력을 그 무엇보다도 탄탄히 다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심장은 인체의 중심이다.

또한 심장이야말로 사람의 생명을 의미한다.

생명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중요한 것이지만 무림인, 특히 황준우에게 있어서만큼은 그 의미가 더욱 깊었다.

‘생명은 곧 선천지기.’

사람이 처음 어머니의 배 속에서 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생명의 근원. 때문에 선천지기는 인위적으로 쌓는 내공과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힘이라 한들 과언이 아니었다. 중원 곳곳에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평범한 여인이 달리는 말을 맨손으로 멈추었다는 소문 등도 바로 이 선천지기의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 당연히 수많은 중원의 무림인들은 그러한 선천지기를 쌓고, 이용하고자 연구를 감행했다.

아주 위험한 연구였다.

선천지기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곧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한 선천지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된다면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 수많은 무인들이 선천지기를 연구하다 죽게 되었다.

이후 무림 내에서는 선천지기는 강력하지만 사용할 수 없는 금기(禁忌)의 힘이 되어 일부 마공(魔功)에서만 사용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중원 무림인들의 이야기.’

중원의 동쪽.

고려라는 작은 나라에서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중원과 달리 고려에는 무림인이라는 이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양민들뿐만이 아니라, 속히 내로라하는 관인(官人)들조차 무림인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나름대로 스스로를 무림인이라고 지칭하는 무리가 없지는 않았다.

하나 그들의 행동은 실제 무림인이라기보다는 마적 혹은 산적에 가까웠으며 대부분 관에 의해 진압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 무림인이라 불릴 만한 이들이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스스로를 외속인(外俗人)이라 칭하며 산속에 숨은 그들은 고려라는 나라가 세워지기도 한참이나 먼 과거의 삼국시대를 종횡했던 영웅들의 후손이자 천하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기를 희망하는 진정한 무림인이었다.

백제의 싸울아비, 신라의 화랑, 고려의 조의선인.

조국이 멸망한 이후 산속에 숨어들어 오로지 도(道)의 극을 보기 위해 수련을 쌓던 그들은 어느덧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저절로 알게 되었고, 그 기반을 통해 선천지기의 비밀에 접근했다.

먼 과거에만 하여도 서로 다투기만 하였던 세 영웅들의 후손들 중 대종사라 불릴 만한 이들이 모두 모여 자신들이 느낀 감정을 이야기했고, 각자 비슷하나 조금씩은 다른 그 힘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 끝에 선천지기의 존재를 명확히 감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주 힘겹게나마 잃어버린 생명의 근원을 회복할 수 있는 내공심법을 만들게 된다.

삼원신공(三元神功)이라 이름 붙여진 미완성된 무공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황준우는 그러한 삼원신공을 기반 삼아, 그 효율을 더욱 극대화하는 천조칠무를 창안했다.

따지자면 천조신공과 삼원신공은 한 뿌리.

결국 선천지기에서부터 출발한 무공이라는 뜻이었다.

때문에 황준우는 선천지기의 힘을 누구보다도 중요시했다. 그것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곱 번의 밤(七夜)을 거친 그는 무신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준우의 천조신공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심장.’

따지자면 천조신공 내에서도 극의(極意)를 표명하는 삼원(三元) 중, 단전은 뿌리에 속한다. 또한 땅(地)이다. 그리고 심장은 기둥이며 사람(人)이다.

전생의 황준우는 맑은 땅에 사람이라는 단단한 기둥을 박아 넣은 채 무공을 사용했었다.

그것만으로도 중원 무림인 모두가 막을 수 없는 천하무적(天下無敵)이라 여겼다.

하나 결국 황준우는 그러한 무림인들의 협공에 의해 무너지고, 이렇게 어린아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말았다.

‘하늘(天)이 열리지 않은 상태인데, 어찌 되었든 기둥이 하늘에 닿았다고 스스로를 무적이라 착각해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천조신공의 일단공은 솔직하게 말하여 삼원신공의 일단공과 같다.

둘 모두 삼극을 하나로 연결하는 데에서 무공의 관문이 열리는 것이다.

문제는 연결만 했다 뿐이지, 그 길을 뚫는 것은 별개의 일이란 것이다.

일전에 말한, 삼원신공이 미완성의 무공이라 말한 데에는 바로 이 부분의 문제가 있었다.

삼원신공은 익힌다면 가히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는 무공임에 분명했지만 제한이 너무나 많았다.

우선 삼원신공을 익히는 이는 최소 십 세 미만의 어린아이여야 한다.

순수한 정수가 가득한 어린아이 때가 아니면 생명의 근원인 선천지기에 닿을 수가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기에 더해, 삼원신공은 스스로 삼원이라 칭한 곳의 끝을 의미하는 상단전에 도달하는 방법이 없었다. 심장도 마찬가지지만 뇌를 자극하는 것은 몇 배는 더 위험하다.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해야 되기 때문에 심장으로 향하는 기운보다도 더 맑고 깨끗한 힘이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상단전이 개통될 때의 고통을 견뎌 낼 수 있을 정도의 인내심 역시 필요하다.

삼원신공은 이 중 첫 번째, 어린아이가 본래 가진 선천지기보다 더욱 깨끗한 힘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때문에 삼원신공은 진정한 삼원을 말하였으나, 그에 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황준우는 그러한 삼원신공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학이란 나이를 넘어 돌파했다.

본인이 무공을 익힌 것 자체가 이미 십 세를 넘은 이후였으니 어떻게 해서든 삼원신공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삼원신공보다 더욱 빠르고 넓게 맑은 기운을 비축할 수 있는 천조신공이 만들어진 것이다.

삼원신공은 시작 자체가 우연에 가까웠던 탓에 오로지 땅과 자연을 보고자 했지만, 황준우의 천조신공은 처음부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사소한 차이가 천조신공과 삼원신공의 차이를 갈랐다.

천조신공은 뿌리에 속하는 삼원신공에 비해 몇 배는 더 빠르게 선천지기를 모았으며,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삼원신공은 하늘의 순리에 수긍하고자 했으나 천조신공은 하늘을 조율하려 하였다.

때문에 누군가는 황준우의 천조신공을 향해 마공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기도 하였다.

‘우스운 질투일 뿐이지, 흥.’

삼원신공은 스스로의 이름이 부끄러울 치만큼 궁극의 삼원을 완성할 수 없게끔 구성되어 있다. 하나 황준우의 천조신공은 몇 가지 제약이 따르기는 하나 분명히 삼원을 완성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전생의 나조차도 중단전에서 멈추어야 했던 거지만.’

너무 늦은 나이에 천조신공을 개발한 황준우는 전생에도 끝내 상단전을 개통하지 못했다.

결국 삼원신공과 천조신공 모두 삼원의 힘에 대해서는 이론만 정립된 상황이었던 셈.

하나 황준우가 다시 태어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아주 어린 나이에 처음 땅을 밟아 삼극을 연결하였으며, 어린아이의 육체로 오랜 시간 정순한 기운을 빠른 속도로 쌓았다.

그리고 드디어 사단공에 이르러 그러한 기운을 직접 이용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가장 정순한 육체의 상태에 놓인 강력한 생명의 기운.’

조금 위험하다 한들 상단전을 포기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주의는 해야겠지.’

아무리 천조신공이 속성(速成)의 무공에 속한다지만 상단전을 뚫는 일마저 그리 쉽게 넘길 수는 없는 법.

‘오늘 밤부터는 천천히 자극을 해 봐야겠어.’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지만 안전하게 해야 한다.

전생,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던 황준우라면 달랐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나 혼자가 아니니까.’

저도 모르게 입가로 미소를 지은 채 기분 좋은 마음으로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황준우가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고 있는 중이었다.

“도련님, 일어나셨습니까?”

너무나 익숙한 반가운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황준우가 방문을 활짝 열며 외쳤다.

“당연히 일어났지. 잘 잤어, 경호?”

누가 보아도 선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인상의 경호가 밝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주억였다.

“예, 간밤은 편안하셨는지요?”

그런 경호를 향해 폴짝하고 뛰어내린 황준우가 자랑스러운 미소를 뽐내며 답한다.

“아주 편안했지.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더라? 특별할 건 없던 것 같은데……”

황준우의 입가로 절로 미소가 어렸다.

특별한 게 없는 날이면 무공을 수련할 수 있다.

사단공의 입구에 들어선 지금, 무공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예, 뭐 특별할 건 없습니다만…….”

“없습니다만……?”

어색한 웃음을 감추지 못한 경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백 선생이 찾아와 계십니다.”

“……?”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전생의 황준우는 부정할 것 없는 천하제일의 무인이었다. 심지어 그 성정이 유순한 것 또한 아니었다. 거칠고 거리낄 것이 없었다. 속된 말로 제 잘난 맛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쓸데없는 오지랖이 커져 무림공적으로까지 몰리게 되었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기가 죽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얼마 전 처음 본 가는눈의 사내, 백교 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지 모를 일이다.

자랑하는 부채를 편 채 살랑살랑 바람을 쐬고 있는 백교와 마주하고 있자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이 내가?’

정말 몇 번을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참을 수 없는 일이기에 주먹을 꽉 쥔 황준우가 입을 열었다.

“저…… 분명 아버지께서 공부는 이 주야 걸러 한 번이라고…….”

각오에 비하자면 제법 작은 목소리였지만 말이다.

“들었습니다.”

“한데 왜 이곳에 계신지?”

“그리되면 쉬는 날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숙제 하나 내놓고 가지 않았지 뭡니까?”

“숙제요?”

황준우의 반문에 입가를 새하얀 부채로 가린 백교가 작은 웃음을 흘렸다.

“네, 후후. 잘 알고 계시는 그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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