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4화
‘문제는 천조신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온몸의 감각을 깨어나게 해야 된다는 거지.’
때문에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침대에만 누워 있을 때에는 천조신공을 익힐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인체에 잠든 혈도를 모두 사용하기 위해서는 몸의 감각이 모두 깨어 있어야만 한다. 쉽게 말하자면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몸이란 예민함과는 또 거리가 멀었다.
‘아니지,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예민하지.’
배가 고프거나, 볼일이 보고 싶은 것 하나만큼은 기똥차게도 잘 느낀다는 점은 또 신비할 따름이다.
어찌 됐든, 문제는 그 외의 감각은 모두 둔하다는 사실이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손바닥을 뒤집지는 못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어린아이 인체 비율은 두 발로 걷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나 그러한 시절도 이제 끝!
너무나 길었던 노력의 세월 끝에 황준우는 제 의지로, 두 발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를 가장 처음 발견한 건 다름 아닌 유모였다.
“어, 어머. 도, 도련님이…….”
어설프게나마 양팔을 벌린 채, 붉어진 얼굴로 이불 보 위에 당당히 선 황준우가 힘겹게나마 첫걸음을 떼고 있는 광경이다.
“우리 우아가…… 걷고 있어?”
유모의 놀란 음성에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서시가 박수를 짝 치며 황준우에게로 다가왔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몰려들었지만, 온 정신을 몸의 균형에 유지하고 있는 황준우는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걷는다, 걸어. 걸을 수 있어.’
걷는다는 것은 쾌거다.
유아기를 지나치고 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행위기에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곤 하지만, 인간이 제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랍고도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 다시 태어나서 인생의 대부분을 침대와 유모, 어머니의 품에서 지내 왔던 황준우에게 있이 이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이다.
‘본래 첫걸음마가 어려운 법.’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황준우는 정신을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진중한 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걸음.
“아……!”
넘어지지 않은 채, 첫 발을 떼어 다시 지면에 딛는 순간 서시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도, 도련님이…….”
입가를 손으로 가린 유모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한 채 옅은 눈물을 보였다. 황준우의 첫걸음이 그만큼이나 감격적이었다는 뜻이다.
“어바……!”
황준우 역시 자신의 첫걸음에 크게 만족해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내질렀다.
‘해냈다, 해냈다고!’
예상대로 어려운 것은 첫걸음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은 첫걸음에 비해 몇 배는 더 쉽게 이어졌다.
제 발로 걷기 시작했다.
몸의 감각이 더 깨어났다는 사실도 기쁘다.
하나 그보다 더 기쁜 사실은 이제 제 발로 지면을 디딜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늘을 조율한다는 천조신공이지만, 그 근간에는 땅이 있고 사람이 있었다. 사람은 본인,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지만 땅은 다르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 땅을 직접 밟기 위해서는 걸을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황준우는 다시 태어난 삶에 적응한 때부터 이 순간만을 너무나 고대했었다.
‘드디어 내 발로 땅을 밟을 수 있어.’
이미 일전에도 집 바닥을 네 발로 기어 다닐 수는 있었다지만, 누가 네 발로 기는 아이를 방 밖으로 내보내겠는가? 하나 이제는 다르다. 두 발로 걷기 시작했으니 조금 있으면 방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땅과 살을 맞닿게 할 수 있다.
천조신공의 일 단계, 지양공(地養功)을 수련하여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토대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본격적인 수련의 시작이다.
‘수련을 할 수 있어.’
단지 그 생각을 떠올린 것만으로 전율에 차 저도 모르게 몸을 떠는 황준우다.
누군가에게는 지독히도 싫고 귀찮은 그 행동이 황준우는 너무나 좋았다.
덕분에 전생의 그는 지독한 수련광이었다.
우내십존과 전 중원인에게 쫓길 때마저 틈틈이 하는 수련만은 결코 멈추지 않았으니 그 독기(毒氣)가 어디 보통이겠는가? 다시 태어났고, 팔 개월 동안 침상에만 누워 있었다 하여 가라앉는 게 아니었다.
“우리 우아가 기뻐하고 있는 건가?”
“그렇게 보이는데요?”
수련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마치 몸 전체에 지진이라도 난 듯 부르르 떨고 있는 황준우를 보며 유모와 서시가 웃음을 흘렸다.
어찌 됐든 분명 모두에게 있어 기쁜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황준우의 집에는 다시 한 번 큰 연회가 열렸다.
수련은 힘들다.
지치고, 때로는 그만두고 싶다.
수련을 좋아하는 황준우라고 한들 그러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련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그러한 단점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장점이 수련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우선 첫째로 꼽을 것은 단연지사 성취감이다.
힘들고 고된 과정에서 무언가를 이룩했을 때의 성취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나 그 크기가 모두에게 동일하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 있어, 황준우가 느끼는 성취감이란 것은 보통이 아니었다.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의 쾌감.
처음 걸음마를 떼었을 때와 같은 뿌듯함과 만족감을 황준우는 매 수련의 끝에 느껴 왔었다.
그 감정은 가히 아편과도 같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터다.
사실 전생의 황준우는 이 단 하나의 이유로 수련을 좋아했었다.
하나 다시 태어난 후, 황준우가 수련에 더욱 열을 올리고 싶어진 데에는 두 번째 이유가 따로 존재했다.
수련은 결코 배신을 하지 않는다.
전생의 황준우는 쓸데없을 정도로 오지랖이 넓었다.
그 탓에 전 중원에 쫓기게 되었고, 끝내는 원공에게 당해 다시 태어나고 말았다.
그 과정 중 느낀 게 없다고 한다면 분명 거짓이리라.
개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사실을 또 뽑자면 사람은 배신을 한다는 점이었다.
믿고 싶었다.
도와주웠고, 인연을 쌓았다.
제법 힘겹게 자랐지만 나름대로 올바르게 잘 컸다고 생각했다.
하나 착각이었다.
인간이란 동물은 너무나 영악하고, 모순적이다.
황준우의 본래 고향이던 고려에서는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전생에 몇 번이나 생각했던지.
‘따지고 보면 참 어리석은 삶이었지.’
그런 의미에 있어 수련은 그런 머리 검은 짐승과는 완연히 달랐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가져다주며,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원공에게 당했을 당시에도 황준우 본인의 수련이 더 깊었더라면 그런 꼴을 당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수련, 수련이 답이다.’
수련은 가진 바 스스로의 것을 잃지 않게끔, 지킬 수 있는 힘을 준다.
그것이 목숨이든, 신념이든, 무엇이 되었건.
때문에 황준우는 수련을 너무나 하고 싶었다.
수련이 너무나 좋았다.
두 발로 걷기 시작했으니 시작이다 여겼다.
하나 그로부터 보름이나 지난 시점까지 황준우는 여전히 방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일전에 비해 방 밖으로 나가는 수가 늘기는 했다. 어쨌든 두 발로 걷기 시작한 황준우를 자랑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표출되는 과정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정확하게 문제를 뽑자면 여전히 제 발로 흙을 밟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거 과보호라고! 나도 이제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다 컸는데!’
태어난 지 만 일 년도 되지 않은 황준우가 내심을 열심히 입 밖으로 토해 낸다 한들…….
“이버버 바보보, 두바바로 거바수 있바보!”
“아이고, 우리 우아. 뭐가 또 그렇게 짜증났어요?”
부모님의 귀에는 와 닿지 않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결국 황준우는 다시 태어난 지 일 년 뒤, 다음 해의 생일이 되어서야 제 발로 처음으로 흙바닥을 디딜 수 있었다.
참으로 다사다난한 재생(再生)이었다.
2. 소주제일
시간이란 것이 본래 나이를 먹을수록 배로 빠르게 흐르곤 하지 않던가?
‘아니, 어릴 땐 그냥 다 똑같아.’
어느덧 네 살.
제법 자라난 황준우가 드높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입가로 미소를 그렸다.
‘어찌 됐든 삼 년이란 말이지.’
어느덧 제 발로 땅을 디딜 수 있게 되고, 대지와 공명하여 천조신공의 기틀을 마련한 지도 이 년이 흘렀다. 아주 답답한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하나 단점만 존재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천조신공, 내가 만들었지만 요물이란 말이지. 허허…….’
천조신공의 기반에는 삼극(三極)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하늘과 땅, 사람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천조신공은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 전생 황준우의 몸은 완성된 ‘사람’의 몸이라 부르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한계가 명확했지.’
천하제일이라 불렸고 스스로 완성에 가까운 천조신공을 이룩했다 자신했음에도 끝내 원공의 불성을 부수지는 못했다.
백두산 천지 아래 허무하게 봉인(封印)된 것 역시 사실이다.
그 모든 과정에 있어 황준우의 육신이 완성된 상태였다면 과연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황준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을 수 있었다.
단순한 내공의 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격(格)이 달라.’
아직은 앙증맞기 만한 새하얗고 작은 손을 바라보는 황준우의 얼굴에는 짙은 자신감이 엇비쳤다.
순수한 육체에, 순수한 자연의 기를 머금어 쌓은 천조신공은 그야말로 격이 다르다.
어미의 모유로 자라나 갓난아기 때부터 천조신공으로 기반을 다졌다.
그 결과는 놀랍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제 고작 이십 년 내공인데, 마치 전생에 일 갑자 내공을 이뤘을 때와 같아.’
단순히 내공의 질만 따져도 가히 최상(最上)이라 불릴 만하다.
순수한 몸에 순수한 내공을 쌓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나 그보다 더 황준우를 감탄케 하는 사실은 따로 있었다.
‘벌써 삼단공(三段功).’
천조신공은 황준우가 만든 특별한 심법이었다.
그렇기에 기준 역시 황준우가 나누었는데, 본래의 천조신공은 총 칠단공(七段功)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생에 내가 이룩한 경지가 오단공.’
거기에 천조칠무 중 절반 정도만을 익혔을 뿐이다.
단순히 그뿐으로도 황준우는 천하제일이었다.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절대무적의 존재였다.
원공의 경우는 그야말로 예외. 특이(特異)에 속했다. 아무리 불성이라 불리는 몸이지만 본래 원공의 무공은 황준우에 대항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마지막 그 순간 원공이 보였던 이적은 무공이라기보다는 다른 차원에 속한 신묘한 힘이었다.
‘불심(佛心)이라니…… 우습지도 않은 생각이지만 말이지.’
어찌 됐든 그 놀라운 힘은 천조신공을 칠단공까지 완성시켰다고 한들 막아 내리라는 확신이 없을 정도였다.
‘애초에 착각이었어. 천조신공의 그릇은 훨씬 커.’
고작 칠단공 정도가 아니다.
분명 그러한 과정이 존재하지만 실제 천조신공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경지는 그 정도가 아니다.
칠단공이라는 경계는 어디까지나 전생의 황준우가 이룩할 수 있는 경지일 뿐이었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속도도 훨씬 빠르고, 단단하기도 더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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