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재생 3화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아기가 되어 버렸다.
전생의 황준우였다면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며 비웃음을 선물했을 것이다.
하나 더 이상은 농담이 아니었다.
심지어 재미있지도 않았다.
‘재미없어. 아주.’
침대에 누워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꼼지락거리고만 있으니 재밌을 건더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황준우와 같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몸을 썼던 무인의 입장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답답해.’
단순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일단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도대체 몇 주야가 지났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이 들기 때문이다.
‘아기 몸이란 것, 효율이 굉장히 안 좋아.’
도대체 무슨 잠이 이렇게 많은 건지 눈을 뜨기가 무섭게 다시금 감겨 온다. 버텨 보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루 한 시진도 자지 않고, 풀뿌리만 뜯어 먹으며 전 중원무림과 싸워 왔던 칠야무신의 의지력이 어디 보통이겠는가? 황준우는 자신 있었다.
하나 모두 헛된 생각이었다.
한 번 잠이 오기 시작하면 눈꺼풀이 만근추보다 더 무거우니 견딜 수 있을 리가 있나?
게다가 잠만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만 생각을 하고, 깨어 있으면 갑작스럽게 배가 고파 온다. 덕분에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꿈에도 못 꿀 일이었다.
꼬르륵-!
‘……배가 고프군.’
어린아이의 몸이어서인지 허기를 참는 것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애초에 참을 필요도 없지만…….’
단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조금 꼴불견스러운 일을 벌여야만 했다.
아기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의사 표현.
“으아앙-!”
전 중원강호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칠야무신의 자존심이고 명예고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큰 목소리로 울 뿐이다.
다른 말이 안 나오니 수가 있나?
먹고살라면 울 수밖에.
“아이고, 우리 도련님 배고프실 때가 됐네.”
그러고 있으면 가장 먼저 늙은 유모가 다가와 황준우를 품에 안아 산후 조리로 바쁜 서시에게로 다가간다.
“우리 우아(宇兒),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구나?”
유모의 품을 떠나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품에 안긴 황준우가 단숨에 울음을 뚝 하니 그쳤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이상 힘을 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 우는 것도 힘들다고…….’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 울기까지 하면 몇 배는 더 허기지게 된다.
“호호, 도련님이 어머니를 알아보시나 봐요.”
유모의 말에 황준우의 입가로 작은 미소가 번졌다.
‘흥, 당연히 알아보고말고.’
잠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움직이지도 못한다지만 기본적인 정보쯤은 이미 오래전에 알아 두었다.
적어도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과 유모의 얼굴쯤은 확실히 외웠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서시의 경우에는 황준우가 처음 보고 깜짝 놀랐을 정도의 엄청난 미인 엄마였다.
파란만장했던 전생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감히 어머니보다 더한 미인을 본 적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내가 사실 전생에도 어릴 때부터 제법 영특했던 편이거든.’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자니 더욱 배가 고파졌다.
“욱, 우욱…….”
저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이런, 우리 우아 또 울겠다.”
그쯤 되자 황준우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어머니, 서시가 호호 웃으며 슬쩍 젖가슴을 열어 황준우의 입에 물려 준다.
처음 겪었을 때에는 민망하고 어색했던 그조차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워진 황준우가 단숨에 젖을 물었다.
쪽- 쪽-!
‘음…….’
있는 힘껏 빨아들이니 온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모유가 식도를 타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좋구먼, 좋아.’
부드러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을 물고 있자니 가지고 있던 불평불만은 어느덧 날아가고 좋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평안하다.
전생에는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안락한 기분이었다.
덕분에 영 어딘가 어색한 듯도 하지만…….
‘역시 좋다.’
자연스레 황준우의 눈이 다시금 감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더 이상 그런 의문은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흘러갔겠지.’
고민해 봐야 알 수 없는 일을 고민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냥 포기하고 있다 보면 절로 알게 되는 법이다. 육체가 성장하는 것쯤은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지루함도 제법 덜었다.
깨어 있는 동안 무엇이라도 하려고 몸을 마구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힘겹게나마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다.
‘여전히 걷는 것도 무리지만…….’
그래도 손목 발목이 뜻대로 따라 주니 얼마나 좋은지!
“까르륵-!”
흡족스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황준우였다.
“도련님이 웃으시네요!”
“그러게요, 유모. 정말 귀엽지 않아요?”
어느덧 주변으로 다가온 유모와 어머니가 그런 황준우를 지켜보며 밝게 웃는다.
“흠, 흠…….”
매일 저녁때쯤이면 찾아와 멀리서나마 황준우를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도 헛기침을 하며 은근슬쩍 얼굴을 내밀어 황준우를 바라보았다.
입가로는 초승달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미소가 엷게 그려진 채였다.
“큼, 큼. 당신을 닮은 것 같소.”
아버지, 황석후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 본 유모가 큰 웃음을 터트렸다.
“깔깔, 장주님을 닮았을지도 모를걸요? 어릴 때 장주님이 얼마나 귀여웠는데요.”
“뭐, 뭣!?”
당황한 황석후가 말을 더듬는다.
“어머, 유모. 그건 나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그러는 사이 눈을 빛낸 서시가 유모를 바라보며 귀를 기울인다.
“무, 무슨. 다 옛이야기일 뿐인데…….”
“어서 이야기해 봐요, 유모.”
두 사람의 모습에 유모가 즐겁다는 듯 또다시 웃음을 터트린다.
“까르륵-!”
지켜보고 있던 황준우도 함께 웃었다.
‘거 참, 잘 노네.’
부모님을 보고 할 말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전생과는 확연히 다른 화목한 가정이다.
‘달라도…… 너무 다르군.’
만약 전생에도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요? 이이가 열 살 때까지요?”
“그럼요. 제가 아침이면 그 이불 빨아 드린다고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유, 유모. 그만!”
잠시 떠오른 우울한 생각을 부모님이 내뿜는 행복한 감정이 단숨에 뒤덮는다.
‘아무렴 어떨까.’
당장 현재가 중요한 것을.
시간이 흐르고 길 수 있게 되었다.
네 발로라도 제 의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어찌나 기쁘던지.
황준우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마저 너무 좋아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처음으로 입을 열었을 때는 어떠했던가?
“어마, 아빠.”
솔직히 낯부끄럽고 어색한 말이었다.
전생에서조차 쓰지 않던 말이니 어련하겠는가?
그래도 두 사람을 보면 그리 부르고 싶었다.
불러 보고 싶었다.
그날은 처음 기었을 때보다 더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고 아버지는 얼굴을 붉힌 채 처음 보는 환한 미소를 짓더니, 그날 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큰 연회를 열었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참고 힘겹게 말문을 열었던 가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드디어 처음으로 걷게 된 날. 몸이 힘겹게나마 제 의지대로 모두 움직여지는 것을 느낀 황준우는 다시금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무공을 익히지는 못했다.
주변에서 지켜보는 시선도 있고 아직까지는 거친 행동을 할 정도로 몸이 발달되지도 못했다.
대신하여 내력심법 정도를 운기하기 시작한 것뿐이었다.
물론 그 내력심법도 보통은 아니었다.
자그마치 천조칠무의 기반이 되는 천조신공(天操神功)이다.
‘천조신공은 천하에서 내력을 가장 잘 모으는 무공이지.’
황준우가 이토록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천조신공은 특별한 무공이었다.
아니, 따지자면 무공이라 분류하기도 힘들 수도 있었다. 본래 황준우의 고향인 고려에 있을 때 인연이 닿은 조의선인으로부터 전수 받은 도술(道術)을 기반으로 만든 천조신공은 일반적인 내공심법과 같이 단전에 내력을 쌓지 않았다.
‘물론 단전도 사용하지.’
하나 단전만이 내력을 담는 그릇은 아니다.
천조심공은 인체에 존재하는 육백칠십구 개의 모든 혈도에 내력을 쌓을 수 있었다.
‘천지(天地) 사이에 인(人)이 있거늘, 어찌 단전만이 그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는가, 이거지.’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람이 중심이고 모든 것을 이을 수 있다. 또한 하늘의 숨과 땅의 숨을 함께 받아들이니, 한계란 존재할 수 없다.
황준우에게 도가선기술(道可善氣術)을 일러 준 조의선인이 해 준 말이다.
실제로 도가선기술은 인체 구석구석에서 이루어지는 호흡을 조절하는 공능을 가지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미미하지만 전신 혈도에 내력을 쌓을 수 있는 기반을 가진 것이다.
몇 남지 않은 조의선인들이 가히 일당천이라 할 수 있는 무공을 선보였던 비밀이 바로 도가선기술에 있던 것이다.
하나 도가선기술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었다.
그를 올바르게 활용하고 갈고닦을 수 있는 조의선인만의 특별한 무공이 따로 있다.
고아였던 황준우를 거둔 조의선인은 황준우가 도가선기술의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지면 그 뒤를 일러 주겠노라고 하였다. 너무 급히 먹다 보면 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너무 일찍 죽었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처음 황준우를 거두었을 당시 조의선인 본인의 나이가 백수(白壽)에 달하였다고 했으니, 오히려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해도 너무 짧은 인연이었다.
덕분에 황준우는 도가선기술만을 가진 채 또다시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았지.’
단순히 그뿐이었다면 칠야무신 황준우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터였다. 하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죽은 스승은 자신의 짧은 생을 예감하고 있었다. 또한 늦은 나이에 거둔 황준우의 삶 역시 걱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한 가지 안배를 해두었다. 황준우의 도가선기술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한 가지 보물로 향하는 길을 남겨 둔 것이었다.
그곳에서 찾은 것은 그야말로 보물이었다.
싸울아비와 조의선인, 화랑.
한때 반도의 패권(覇權)을 두고 다투었던 세 집단의 먼 후손들이 만들어 낸 미완성의 무공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감격적인 보물이었지만 미완성의 무공은 이미 나이가 차 버린 황준우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준우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를 기반삼아 자신만의 길을 열었다.
천조칠무의 탄생이었다.
온몸의 모든 혈도를 통해 숨을 쉬고 내력을 다스린다.
때문에 황준우는 젊은 나이에 천하제일의 내공을 갖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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