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개망신
파천은 순간 당황했고 그의 민활한 머리도 이런때는 소용이 없었다. 그는 결국 어쩔수 없이 몸을 다시 욕조안으로 주저앉히고 만다.
"사부님! 내일은 뭐 하실거예요? 소군은 여기저기 많이 많이 구경하고 싶어요"
"그......그래. 많이 많이 구경하자. 근데 너 졸리지 않니?"
"아뇨! 꿈에 그리던 중원땅을 밟아서인지 설레어 잠이 안 와요. 절 데리고 와줘서정말 감사 해요. 사부님이 언제든 제게 말씀하시는 거라면 뭐든 들어 드릴게요."
'나는 네가 빨리 나가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인데......'
"근데 무슨 목욕을 이리 오래 하세요? 때가 많이 나와요? 혹시 등을 못 밀어서그러는 것 아 니죠?"
"아니라니깐!......"
파천의 음성에 슬슬 짜증이 묻어 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붙잡고 화를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사부님! 언제 저는 사부님같은 고수가 될 수 있죠? 나도 빨리 고수가 되었으면좋겠어요."
"...... 너도 고수다. 본교에서의 훈련과정은 인간한계를 뛰어넘는 수준이라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어느정도의 내공만 갖추어지면 상당한 수준에 ......그런데 너 정말 졸리지 않니?
피곤할텐데 그만 가서 자렴."
"싫어요. 중원에 온 첫날을 잠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거든요. 빨리 나오세요.사부님께 물어 볼것이 많다고요."
이제는 그 뜨겁던 물이 모두 식었다. 봄이라고는 하나 아직 저녁날씨는 쌀쌀했고아무리 내 공이 신화경에 다다라 있다고는 해도 그도 인간! 추위를 느끼지는 않으나차가워진 물에 담 그고 있는 것이 그다지 기분 좋을리는 없다.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
소군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아름답고 영롱한 목소리가 지옥의 야차의울부짖 음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파천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다.
"소군아...... 저 미안하지만...... 거기 침대에 옷이랑...... 수건 좀 줄래?"
파천의 얼굴은 벌개져 있었다. 이런 개 망신이 어디 있는가? 천마지존으로서의 권위따위를 소군에게 내 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지만 적어도 스승으로서의 존경정도는받고 싶었던 것 이다. 그런데...... 초장부터 무너지는 스승의 위신이여, 앞으로두고두고 이것 때문에 소군에 게 무시를 당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속으로 뭐 저런게다 있어?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소군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동안파천의 머리를 스쳐간 생각들이었다.
벌컥
"이거요?"
"으악!"
파천이 재빨리 손으로 중요부위를 가린다. 욕조에 앉아 있다고는 하나 통 높이가야트막해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보였던 것이다. 파천은 그녀가 수줍어 하면서손만을 내밀거나, 문 앞 에 두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소군은 그의 예상과는 달리어이없게도 문을 벌컥 열고는 안으 로 들어서고......아니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는파천을 자세히 내려다보며 또 다시 흘려 내는 말!
"이것 맞죠?"
그리고는 그것을 한쪽에 내려 놓더니 손을 욕조 안으로 쑤욱 넣고서는 휙휙휘저어본다.
"너...... 너 대체 뭐하는......거냐?"
"물이 차네요. 뭐하세요? 빨리 옷갈아 입고 나가셔야죠."
그를 빤히 쳐다보는 소군의 눈에는 추호도 부끄러움이나 수줍음, 어색함이 정말!티끌만큼도 떠 올라 있지 않았다.
"네가 나가야 옷을 갈아 입지!"
"왜요?"
파천의 얼굴은 더 이상 어떠한 생각도 떠 올리지 못하는 백치가 되고 만다.
'이것은 꿈일거야. 세상에......스승과 제자간에 이런 상황, 이런 묘한 대화를나누고 있어야 하다니......'
"제가 도와 드려요?"
"도와 주기는 뭘 도와 줘?"
파천이 고함을 빽지르자 그녀는 금방 그 큰 눈에 눈물을 쏟을 듯이 침울해 진다.
"제가 미우신 거죠? 그래서...... 제가 찾아오는 것이 귀찮은데...... 그것도모르고...... 죄송해 요. 그만 갈께요."
그 말을 하고 돌아서는 소군의 눈에는 정말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가지 않는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소군! 소군!!!"
그가 좀더 큰 소리로 부르자 소군의 걸음이 멈춘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는 내 유일한 제자지 않니?"
그 말에 소군의 어깨가 가늘게 떨려오는 것이 파천의 시야에 잡히고,
"정말이죠?"
언제 그랬느냐 싶게 환해진 소군이 활짝 웃으며 보조개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거고, 네가 잠깐 나가줘야 내가...... 옷을 갈아입고...... 나가지 않겠 니?"
"왜요?"
왜요라니? 뭐라고 대꾸해야 하나? 이런걸 질문하는 여자가 있을 줄이야.
"이 녀석 자꾸 장난 칠래?"
"아하, 설마...... 스승님도 꼬마들처럼 벌거벗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그러는 것은 아 니겠죠?"
그 말에 파천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일그러진듯도 하고 구겨진듯도 한 것이 묘한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파천이 한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천마교에서는 엄마 젖을 떼게되면바로 훈련 소에 입소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인간이하의 참혹한 훈련만이 기다린다.그들에게는 정상적인 아이들이 가지는 선악개념이라든가. 남녀라는 것, 사랑이나우정등의 감정등이 철처히 배제 되고 거의 매일을 벌거벗고 훈련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남자와 여자라고 하나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지금 소 군이 취하는 태도는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고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이런식으로 교육을 받았으니 방금 젖뗀 아이마저 서슴없이 훈련소에 맡길수 있었고그 아이가 커서도 부모를 찾 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을 모르는 파천으로서는 지금 소군의 반응을 이해 할수도 없었고 그런 소군앞에서 유별나게 구는 자신이 이상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그래도 안 되는 것 은 안 되는 것이다. 그는 점잖은 말투로 소군을 타이른다.
"소군. 어서 나가렴. 사부가 옷을 갈아 입을 때는 제자가 밖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중원의 예 법이란다."
"칫 그런게 어딨어요?"
"어허 어서 내말대로 해야지? 그래야 내가 아주 강한 무공을 가르쳐 주지."
그 말에 금새 희색이 만연한 소군이 깡충깡충 뛰며 좋아한다.
"정말이죠? 좋아요. 기다릴테니 빨리 나오셔야 해요."
그리고는 정말 문을 열고 나간다. 그는 소군이 그렇게 해 주자 고맙기까지 했다.
"후우"
한 숨을 쉬며 일어서더니 수건으로 이곳 저곳을 대충 훔치고는 옷을 걸치기 위해손을 뻗친 다.
벌컥
"참 사부님!"
"으악"
그의 손은 옷으로 뻗쳐진 채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소군의 눈과 파천의눈이 마주 치고 움직일줄을 모르고, 파천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소군의 시선은 금새파천의 아래 위를 순식간에 훑어보는 듯 했다.
"그런데, 어떤 무공을 가르쳐 주실건데요?"
"너 빨리 문 안닫어?"
"알았어요, 뭐"
쾅
'어이구. 이런 개망신이 있나!'
그는 옷을 걸치지도 않고 망연자실해 서 있었다.
★ 소군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파천은 차를 마시고 있었으나 입으로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를 모를 정도였다. 파천은 얼굴이 뜨듯하여 감히 소군과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소 군은 턱을 괴고 그런 파천을 빤히 응시한다.
"사부님!"
......
"사부님!"
......
"빨리 가르쳐 줘요!"
"뭘?"
"조금전에 소군더러 무공가르쳐 준다고 했잖아요?"
'그럼 그것 때문에...... 이 녀석은 대체 어떤 녀석이야? 도무지 종잡을 수가없으니......'
천하에 두렵거나 어려울 것이 없는 파천에게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등장한것이다. 더군다 나 소군은 파천의 절대적인 사랑속에서 그 어떤 어리광이나 무리한부탁도 받아 들여지는 유 일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것을 자신은 알까?
"그래, 가르쳐 줘야지. 그런데 꼭 이런 야심한 시각에 가르쳐야 제맛이니? 차라리내일 아침 에"
"싫어요. 약속은 약속이니 빨리 가르쳐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지금부터 내가 가르치려는 것은 천마삼검이라는것으로 본교의 수백종의 검법가운데서도 최고의 검학이다. 이것을 대성하게 되면심검으로 들어갈수 가 있게 된다."
파천의 눈과 소군의 눈은 닮아 있었다. 지금까지와의 약간은 장난기를 담거나치기어린 눈빛 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열정과 진지함만이 가득하다. 정말 잘어울리는 사제지간이 아닐 수 없었다.
★ 광마존은 거의 60년만에 여체를 대하자 미치고 환장한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흥분하고 있었으며 지나치게 서두른다. 광마존은 조금전까지 그와 함께 대작을 하던미림이라는 기녀 가 욕탕에 들어가 물을 끼얹는 소리를 음미하며 침상에 드러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채 마르지 않은 몸을 살짝 수건으로 가리고 나왔을 때,그는 하마터면 심장마비를 일으킬뻔 했 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볼 것 없다는 듯이 달려 들었고 그녀를 침상에 멋지게 집어던진다. 출 렁대는 그녀의 몸은 약한 미등불빛에 반사되어 굴곡을 더욱 여실히드러내고 그것은 너무나 강한 유혹으로 광마존 담대추광을 이끌어 낸다.
그는 바로 덮쳤다. 늑대가 닭을 덮치듯이 그는 한 마리 사나운 맹수가 되어 멋지게몸을 허 공중에 띄웠고 그의 몸은 미림이라는 기녀와 함께 침상위에서 출렁대며물결치고 있었다. 그 는 본격적으로 동굴 탐사를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할아버지. 대체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쾅 쾅
"문 좀 열어봐요."
소군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일단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 몸짓(?!)을 여기서 멈출수는없다.
"씩씩. 아니다. 어서 가서......씩씩......자거라"
"왜 그래요? 많이 편찮으신 것 같은데......"
"아니라니깐!!!!!!"
그가 고함을 치며 몸을 일으키자 밖에서 들려 오는 소리!
"아니면 그만이지, 왜 고함은 치고 그래요?"
그리고는 더 이상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지나치게 흥분한 탓인지 고함을 치느라힘을 쓴 탓인지...... 그의 몸의 일부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고 일은 이미 치른뒤였다.
"이런...... 빌어먹을......"
그것을 보고 있던 기녀 미림 왈,
"쳇 뭐하는 짓이람, 정말 할아버지는 아니겠죠?"
그리고는 돌아 누우며 하는 소리가 왜 그리도 아프게 광마존의 가슴을 찢어놓는지......
"요란한 수레치고 별볼일 있는 것을 못봤다니깐......"
오 신이시여!
무영존도 똑 같은 일을 겪었음은 말해 보았자 피곤한 일! 더 이상 언급함은 피차피곤한 일 이다. 단지 그는 광마존과는 달리 비교적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는것이 달랐고 그와 함 께 침상에 누워 있던 기녀가 한말이 달랐을 뿐이었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
★ 소군은 근 1시진 동안을 파천에게서 무공을 전수받고 나서야 희희낙락해서는돌아갔다. 그리 고 그녀가 파천에게 마지막으로 한말은 이런 것이었다.
"광마존 할아버지하고 무영존 아저씨 한테 가서 자랑해야지!"
소군이 돌아가고 나서도 파천은 쉽사리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는 앞으로의행보를 조심스 럽게 다시한번 짚어본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 무림맹과 마도련 사이를오갈것인지와 어떤 모 습으로, 어떤 처세로 그들을 대할것인지를 꼼꼼히 따져 보고있었으며 이것은 이변이 없는 한, 장차 전무림을 한 명의 희대의 마웅에게 스스로헌납하는 역사적인 일이 될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스스스스
파천은 눈을 번쩍 떴다.
'놈들이다. 지붕위에 다섯, 정원에 열, 입구쪽에 다섯이다. 후후 놈들이 애가닳았나 보군. 많 이도 왔구나. 어서 오너라. 이미 떡밥은 준비되어 있단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다른 세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시버럴 놈들이 감히 지존이 계신곳을 쥐새끼들이 설치고 다니다니...... 안그래도 기분 이 꿀꿀한데 잘걸렸다. 이 놈들아! 아예 피떡을 만들어 주마'
이것은 광마존의 생각이었고,
'호, 이것 재미있는데, 대체 어떤 놈들이 심심하다고 유흥거리를 던져 주시나? 이런것을 거 절하면 무영존이 아니지...... 간만에 땀을 흘렸더니 몸이 찌뿌둥했는데...... 운동거리로는 그 만이겠군'
비교적 흡족한 마음에 미소를 배어무는 이는 무영존이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중원의 무학을 견식할 기회가 빨리도 왔구나. 제발 강한 놈들이기를 바란다.지존께 단장화 가 쓸모없는 수하가 아님을 인식시켜 줄 절호의 기회다. 모두 쓸어버린다. 한 놈도 양보할 수 없어.'
파천의 계산은 초반부터 암초를 만나고 있었으니 그것도 자신의 수하들에 의해서말이다. 지 나친 충정이 때로는 주군의 심기를 건드는 화근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는 화자입니다.
이제 33편, 이 글은 최소한 100회, 많으면 200회정도도 예상하는데 어떻게 될지모르겠네 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지 저로서는 사뭇 궁금함을 참기가힘이 드는 군요.
그렇다고 일일이 확인하기도 뭣하고, 정말 부탁합니다.
비난의 소리도 감사히 받겠으니 비평이든 감상이든 아니면 격려의 메일이라도 보내주신다면 저로서는 그것 이상의 위로가 없겠네요.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매일몇시간을 투자한다는 것,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비축분이 없이 시작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화자의 투정정도로 이해 해 주세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지요.
아시죠? 제 메일[email protected] 아, 참 그리고 하이텔 창작연재의 잡담란에 제글을 추천해 주신 박석홍님 정말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제 목:[연재] 황제의 검 34.마도련의 살검단! 관련자료:없음 [59809]
보낸이:임삼열 (logos333) 2001-01-04 00:15 조회:2444
-황제(皇帝)의 검(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