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검전 리마스터-523화 (523/530)

외전 4화. 후일담(4)

어린 칠부의 자랑은 형 독고랑이었다.

객잔에서 일하다가 가끔씩 고독객이라는 명호가 들려올 때면 칠부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하지만 자랑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객잔의 이야기꾼들을 통해, 소위 무림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자들이며 쉽게 사람을 죽이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이 ‘삼전무적’이라는 새로운 명호를 얻고 수많은 무인들을 구해 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칠부는 오히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작 무림맹은 무너진 데다 자신의 형 독고랑이 행방불명이라니 말이다.

형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알리던 칠부도 그때만큼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불안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형이 보낸 돈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비록 상단 사람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칠부는 알 수 있었다.

무서운 무림인들을 피해 형이 어딘가 숨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엄마와 동생을 지켜야 해.’

칠부는 그렇게 결심했다.

그때부터 칠부는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객잔에서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픈 어머니를 돕는 일도, 칭얼거리는 여동생을 달래는 일도 모두 칠부가 도맡았다.

덕분에 칠부는 나이보다 성숙한, 기특하고 착하다며 이웃들의 칭찬을 듣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그것은 또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천진난만하고 환한 웃음이었다.

“엄마!”

동생 효효가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효효는 항상 오빠인 칠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동생의 말을 들으면서 칠부는 여동생의 고생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것도 집 앞까지의 일이다.

집 앞에 도착하면 효효는 칠부의 손을 놓고 달려갔다.

그리고 누워 있는 엄마의 품에 어리광을 부리듯 안기는 것이다.

그날도 효효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벌컥 문을 열었다.

“어!”

효효가 멈칫했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세요?”

칠부의 표정이 단숨에 굳었다.

그는 얼른 동생에게로 뛰어갔다.

열린 문 앞에 도착한 칠부가 본 것은 한눈에도 강하게 생긴 젊은 청년 무사였다.

칠부는 즉시 어머니부터 찾았다.

“엄마!”

“이제 왔니?”

칠부의 어머니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침상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무사함을 확인한 칠부는 굳은 표정으로 청년 무사에게 물었다.

“누, 누굽니까? 왜 우리 집에…….”

저벅.

청년 무사가 칠부를 향해 걸어왔다.

칠부는 움찔했다.

강인한 눈빛의 청년 무사는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의 허리에 걸린 검은 그가 ‘무림인’임을 분명히 알려 주고 있었다.

저벅.

청년 무사가 칠부 앞에 섰다.

칠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어머니와 동생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칠부 역시 아직은 아이였다.

슥.

청년 무사가 몸을 굽혔다.

그리고 칠부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나는 모용세가의 모용진이라고 한단다.”

웃는 그의 표정은 참으로 온화해 보였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해서, 여동생인 효효는 아까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용진의 다음 말은 칠부와 효효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희가 독고 대협의 동생들이구나.”

칠부는 깜짝 놀랐다.

놀란 것은 여동생 효효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어……. 아야.”

무심코 말하려는 효효를 쿡 찌른 후, 칠부는 모용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라고요?”

‘호오.’

모용진은 내심 감탄했다.

아이가 보는 어른의 모습은 생각보다 위압적이다.

특히나 모용진 같은 무인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칠부는 모용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비록 다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기는 해도 말이다.

모용진은 빙긋 웃었다.

“걱정 마라. 너희에게 해를 끼치려는 건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알죠?”

칠부의 말에 모용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칠부의 눈빛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침상에 앉아 있던 모친이 입을 열었다.

“칠부야. 이분은…….”

“네 말이 옳다.”

모용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으니, 좋은 뜻으로 온 것인지 혹은 해를 끼치려고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는 일이지.”

칠부를 똑바로 바라보며 모용진은 말을 이었다.

“너는 모용세가를 알고 있니?”

모용세가는 객잔 이야기꾼들에게서 종종 언급되던 이름이었지만 칠부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모용세가는…….”

“저는 어린아이라서.”

모용진의 말을 끊으며 칠부가 말했다.

“무사님의 말씀이 정말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그보다 왜 저희 집에 오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칠부의 눈동자엔 경계의 빛이 역력했다.

모용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천천히 말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듯했다.

“알았다.”

슥.

모용진은 몸을 세웠다.

“우선 앉지 않겠니? 내가 권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말이다.”

칠부는 흘깃 모친과 여동생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타탁.

“엄마!”

여동생 효효가 모친의 침상으로 달려갔다.

폴짝 올라간 효효가 엄마의 품에 안기고, 칠부 역시 조심스럽게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 괜찮아요?”

“저분께 무례하면 안 돼.”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네 형의 소식을 전하러 오신 분이란다.”

“엄마!”

모친의 경솔함에 칠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모친은 듣지 않았다.

“앉으시지요. 누추한 곳입니다만.”

그녀의 말에 모용진은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겠군요. 본래는 천천히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슥.

모용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칠부는 못 보던 사람들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문사 차림을 한 조용한 분위기의 청년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답고 단아한 젊은 아가씨였다.

“실례합니다.”

정중한 목소리로 문사가 말했다.

침상에 앉아 있던 칠부의 모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시지요?”

“저는 운현이라 합니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운현이 말했다.

“독고 제와 의형제를 맺은 사람이지요.”

“의형제라고요?”

모친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네.”

조용한 목소리로 운현이 답했다.

“무림맹이 무너지던 날.”

입은 열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운현은 말을 이었다.

“독고 제는 많은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를 구하려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칠부의 모친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대체 그게 무슨…….”

“아니야!”

칠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럴 리 없어! 형은 죽지 않았다고!”

“칠부야!”

모친이 소리쳤지만 칠부는 듣지 않았다.

“형이 죽을 리가 없어! 형은……!”

“독고 제는.”

나지막한 음성이 집 안에 울려 퍼졌다.

혼란스러워하던 모친도, 소리치던 칠부도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누구보다 용감하고 기개 높은 무인이었습니다.”

칠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운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고, 칠부의 형이 죽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흑.”

칠부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곤 곧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모친은 손을 뻗어 칠부를 안았다.

칠부는 어머니를 와락 끌어안은 채 울었고, 동생 효효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아앙.”

“으아아아앙.”

집 안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을 감싸 안은 모친의 어깨도 어느새 가늘게 들썩이고 있었다.

한바탕 울음이 지나고 운현은 자리에 앉아 독고랑과 함께 겪었던 일들을 말해 주었다.

어떻게 그를 만나게 되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리고 함께 북해에 다녀온 것과 천하무림대회에서 있었던 일까지 전부 다 말이다.

모친과 아이들은 슬픔 가운데서도 운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놀라워하며 그들은 운현의 이야기를 들었다.

운현도 독고랑에 대해 이렇게 많은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객잔의 이야기꾼이라도 된 듯, 독고랑에 대한 운현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칠부와 효효는 또래 아이들처럼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독고랑이 운현을 구해 낸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눈물을 글썽였다.

옆에서 바라보던 모용진과 모용미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운현은 애써 웃었다.

“독고 제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렇군요.”

모친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고마워요. 제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셔서.”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칠부의 눈가에도 눈물이 가득했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칠부의 눈동자는 자랑스러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형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가 독고 제에게 입은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운현은 조용히 말했다.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 주시겠습니까?”

모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는 말했다.

“고맙습니다. 대협.”

그녀는 이제 알고 있었다.

눈앞의 청년이 바로 창룡맹의 맹주, 창룡검주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자신들을 향한 운현의 마음이 어떠한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아들이 대협을 만나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운현은 나지막이 말했다.

“독고 제를 만나서, 그리고 이렇게 여러분이 계셔 주셔서요.”

비록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남아 있었지만, 운현의 입가엔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 가고 있었다.

***

산서성 태원, 북해일문.

밤이 깊었지만 운현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낮에 독고랑의 유족을 만났던 탓일까?

서탁에 앉아 복잡한 심정에 잠겨 있던 운현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바깥은 달빛이 가득했다.

평소 북해일문을 지키던 이들도 오늘만큼은 운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고요한 밤의 한가운데로 운현은 발을 내디뎠다.

저벅.

이곳에는 귀한 손님들의 휴식을 위해 아담한 정원도 꾸며져 있었다.

기이한 돌로 산을 표현하고, 작은 못으로 바다를 형상화한 그 정원을 보며 운현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락.

가만히 들려온 인기척에 운현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대궁주님.”

놀란 것은 대궁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운 학사님.”

운현이 깨어 있을 줄은 예상치 못한 듯, 대궁주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돌아오셨습니까?”

밝은 표정으로 운현이 말했다.

북해빙궁으로 떠났던 대궁주가 돌아온 것이다.

곧 올 것이라는 이야기는 삼궁주에게 들었지만 이렇게 한밤중에 돌아왔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 네.”

대궁주는 그녀로서는 드물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운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곳엔 왜…….”

대궁주처럼 바쁜 사람이라면 밤길을 재촉하여 돌아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운현이 묵고 있는 곳이다.

이 시간엔 어차피 만날 수도 없을 텐데 왜 찾아온 것일까?

게다가 방금 북해에서 돌아와 무척이나 피곤할 대궁주가 말이다.

“……지나던 길에 잠시 들렀을 뿐이에요.”

어쩐지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궁주가 말했다.

“아, 그러셨군요.”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대궁주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저는…….”

“괜찮으시면.”

부드러운 목소리로 운현이 말했다.

“잠시 걷지 않으시겠습니까?”

대궁주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그녀는 놀란 듯 운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운현의 표정은 여전히 온화하기만 했다.

“……네.”

대궁주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덕분에 그녀의 뺨이 조금 붉어진 것은 다행히도 들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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