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화. 이후의 일들
대궁주는 운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빙설 역시 운현이 걸어간 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그 빛은 뭐지요?”
대궁주가 북해의 언어로 나지막이 물었다.
운현과 객옹, 사일천이 사라진 방향에서 조금 전 빛이 솟아올랐었기 때문이다.
금방 사라지긴 했지만 아침 햇살 아래 빛나던 그 광채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모르겠습니다.”
빙설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빛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빙설은 이를 악물었다.
빛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전해지는 강렬한 존재감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저곳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담고 있었다.
“역시.”
대궁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푸른 늑대의 곁에 서려면 힘이 필요하군요.”
뜻은 이미 정했다.
빙설에게 ‘내 편이 되어 주겠느냐’고 물은 것은 대궁주가 빙궁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푸른 늑대의 곁에 서려면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춰야 할 테니까 말이다.
“저분이시라면.”
빙설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궁주님을 지금 그대로 받아 주실 것입니다.”
“삼궁주와 똑같은 말을 하는군요.”
대궁주는 헛웃음을 흘렸다.
빛이 솟았던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궁주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나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어요. 나는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빙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도 남녀 간의 일은 잘 모르는 데다가 이런 문제는 대궁주 스스로 정할 일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운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슥.
빙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밖에 있던 이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대궁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파라락.
탁.
가볍게 땅에 내려선 사람은 바로 절정고수인 금화영이었다.
“괜찮나? 운 공자는?”
그녀는 바로 고개를 돌려 빛이 솟았던 곳을 바라보았다.
“저쪽인가? 지금 바로…….”
“기다리세요.”
막 땅을 박차려는 금화영에게 대궁주가 말했다.
“맹주님께서 여기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중한 어조였지만 그녀의 눈빛은 단호했다.
금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여기서 기다리지. 헌데 지금 상황이 어떻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옷자락을 펄럭이며 상승의 경공으로 날아오는 그들은 사원 외곽을 포위하고 있던 장로와 가주, 그리고 절정고수 들이었다.
휘리릭, 탁, 탁.
화산과 무당의 장로들과 아미의 천수 신니가 대궁주 옆에 내려섰다.
천수 신니는 가볍게 합장을 하며 물었다.
“맹주님은 어떠신가?”
“아직 모릅니다.”
대궁주는 가볍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바깥은 어떻게 되었나요?”
“관군이 왔네.”
천수 신니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이 이미 이곳을 포위했으니 그 누구도 달아날 수 없을걸세.”
그 말에 대궁주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일대상인은 대도시 서안에서 지척인 이곳 여산에 자리하고 있었다.
과연 이곳의 관군을 믿을 수 있을지 대궁주가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믿어야지.”
대답한 사람은 군자검 제갈명이었다.
그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설령 유착 관계가 있었다 해도 맹주님이 명을 내린 이상 감히 헛수작을 부릴 수는 없을 걸세. 그랬다간 지방대관의 목이 먼저 날아갈 테니까.”
‘목이 날아간다’는 말은 결코 비유가 아니었다.
특별 감찰어사의 명에 불복하는 것은 반역이나 마찬가지다.
“일대상인은 어찌 되었나?”
관일검 모용단천이 물었다.
대궁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빛이 솟았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두 사람의 격돌이 일으킨 여파를 절정고수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침 햇살 아래 솟았던 광채도, 그리고 지금도 사방을 내리누르는 저 알 수 없는 기세도 말이다.
“객옹은?”
노부인 능세영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대궁주가 막 고개를 저으려던 때였다.
후욱.
문득 주위를 누르던 기이한 압력이 사라졌다.
“저기!”
금화영이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아!’
대궁주는 눈을 크게 떴다.
저 멀리서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문사의 복식을 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는 바로 운현이었다.
그 뒤를 신선같은 풍모의 노인, 객옹이 뒤따르고 있었다.
“맹주!”
“운 공자!”
일행이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운현은 멀리서도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저벅.
두 사람은 금방 일행 앞에 이르렀다.
운현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일행을 향해 예를 표했다.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셨소. 일대상인은?”
천수 신니가 물었다.
운현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건 조금 이상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곧 죽었다는 뜻이니, 일행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천수 신니는 합장을 하고 불호를 외웠다.
“맹주께서는 괜찮으신가?”
“네. 괜찮습니다.”
감사의 예를 표한 운현은 눈을 돌려 대궁주를 바라보았다.
대궁주는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든 그녀가 운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는 이만 가 보겠어요.”
운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가십니까?”
“네. 이제 일대상인의 일은 끝난 데다가…….”
눈을 빛내며 궁주는 말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운현은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녀를 만류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다시…….”
“네. 또 봐요.”
대궁주가 살짝 웃었다.
얼음꽃 같은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운현은 잠시 말을 잊었다.
사락.
그사이, 빙설이 대궁주를 안더니 가볍게 몸을 날렸다.
운현이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두 사람은 사원 건물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운현의 귓가에 노부인 능세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는 괜찮나? 보아하니 무리를 한 것 같은데.”
그건 객옹을 향한 말이었다.
객옹은 무덤덤하게 답했다.
“무리한 것 없다.”
“그런가?”
능세영은 빙긋 웃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네.”
객옹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감사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입을 닫고 있을 뿐이었다.
“맹주, 일은께서는 어디 계시오?”
문득 군자검 제갈명이 물었다.
“아, 그분은…….”
“갔다.”
객옹이 운현의 말을 끊었다.
“그는 본래 일은(一隱)이 아니더냐? 이검학이 떠난 것처럼 그 역시 떠났다.”
제갈명은 잠시 의아해 했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환우오천존은 본래 종잡을 수가 없는 이들이니, 일은이 말도 없이 떠났다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제갈명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신비에 싸인 일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바깥은 어찌 되었습니까?”
운현의 물음에 천수 신니가 답했다.
“관군이 이곳을 포위했네. 자네의 명을 기다리는 중이니 어서 가 보세.”
“알겠습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걸음을 옮기려던 운현이 문득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금화영이 그 모습을 보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바로 그때였다.
쿠르릉.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일부가 무너져 있던 대전이 결국 버티지 못한 것이다.
빛이 솟았던 곳에서 먼지가 크게 일어났다.
“허, 저게 무슨…….”
장로들과 천수 신니, 그리고 가주 들은 솟아오르는 먼지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운현은 이미 그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저벅.
운현은 걸음을 옮겼다.
객옹이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쿠릉, 쿵.
굉음은 연이어 들려왔다.
한쪽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연결된 건물들이 차례차례 주저앉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운현도, 객옹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으니까.
***
창룡맹 개파대전은 전례 없는 규모로 성대하게 열렸다.
천하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고, 귀빈으로 초청된 사람들만으로도 회장이 가득 찰 정도였다.
무림 문파와 상단은 물론이고 관의 유력자들도 참가 요청이 쇄도해서, 창룡맹 개파대전에 초청받지 못하면 유력자가 아니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개파대전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창룡검주의 바로 오른편에 현 조정의 최고 실세인 박 공공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후.”
박 공공이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흘렸다.
“참으로 감개무량하군요. 그 운 학사님께서 이런 멋진 모습이라니요.”
운현을 바라보며 박 공공은 눈을 빛냈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그런 말 말게. 어색해서 죽을 지경일세.”
쓴웃음을 지으며 운현이 말했다.
지금 운현이 입은 옷은 오색의 자수와 함께 황실이 특별히 허락한 용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황태자가 하사한 검 용린(龍鱗) 역시, 비록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지만, 운현의 허리에 고이 매여 있는 상태였다.
“뭐 어떻습니까? 보기 좋은걸요.”
박 공공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보다 자네가 내각대학사의 지위를 사양했다 들었네.”
“네.”
박 공공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교의 군세를 토벌하고 난주를 구해 낸 공으로 황제는 박 공공에게 내각대학사의 직위를 내리려 했다.
말 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라는, 그야말로 엄청난 파격이자 보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박 공공은 사양했다.
“저 같은 환관에게 내각대학사가 가당키나 하나요? 그런 자리는 학문이 높으신 운 학사님께나 어울리는 것이지요. 저는 그저 황족 분들의 잔심부름이나 하면 족합니다.”
그 말에 운현의 안색이 변했다.
“그런 말 말게. 자네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지혜롭고 성실하며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박 공공은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허나 저는 환관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답니다. 제가 환관이었기 때문에 운 학사님을 만나게 된 것 아닙니까? 후후후.”
“나도 그렇네.”
운현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창룡전은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니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창룡전으로 가겠네. 그래야 의형과 자네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일세.”
박 공공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운 학사님의 귀여운 아이만 제 양손에 안겨 주시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네요.”
“크흠.”
갑작스러운 박 공공의 말에 운현은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 보니 모용세가의 참한 아가씨는 저기 계시는데, 북해의 그 어여쁜 분은 어디 계시나요?”
“아, 대궁주 말인가? 북해빙궁으로 돌아갔다네.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라 하더군.”
“호오.”
박 공공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운현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북해빙궁을 오래 떠나 있었으니 여러 가지 살펴야 할 일이 있겠지. 이번에 북해일문의 도움이 작지 않았으니 돌아오면 크게 보답을 하려고 하네.”
“아하, 그렇군요.”
박 공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현은 눈을 들어 모용미를 바라보았다.
당당한 모습으로 개파대전을 진행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말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운현의 입가에 번져 가는 미소를 보며 박 공공은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제 소원이 이뤄질지도 모르겠군요. 후후후.”
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박 공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박 공공은 말을 돌렸다.
“자, 이제 곧 맹주님께서 나설 차례이신 것 같으니 준비하시지요.”
운현은 눈을 들었다.
개파대전을 진행하던 모용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시선 역시 운현을 향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다녀오겠네.”
저벅.
자리에서 일어서는 운현에게 박 공공이 말했다.
“잘하십시오. 이 한 번으로 끝내셔야 하니까요.”
운현은 박 공공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박 공공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저벅, 저벅.
화려한 옷을 입은 운현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박 공공의 입가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
초여름, 황궁.
장엄한 자금성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 고즈넉한 한때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헉, 헉. 이거 큰일 났는데.”
관복 차림의 한 문사가 낭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덥지 않은 날씨였지만 문사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앳된 얼굴과 어딘지 어색한 관복은 그가 황궁에 초행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러다간 시간에 맞출 수 없겠군. 대체 어디에…….”
초조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문사는 문득 한 사람을 발견했다.
빠른 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그는 붉은 태감의를 입은 환관이었다.
붉은색의 태감의는 신분이 높다는 의미였지만 문사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그 환관은 호위도 없이 혼자였으니까 말이다.
“저기, 이보게!”
환관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문사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문사는 급히 외쳤다.
“혹시 창룡전이 어딘지 알려 줄 수 있겠는가?”
거리가 멀었지만 환관이 웃는 것을 문사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환관은 허공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듯 하더니 종종걸음으로 문사에게 다가왔다.
“창룡전을 찾는다 하셨습니까?”
환관의 목소리는 가늘고 여성스러웠다.
문사는 환관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그렇소. 크흠.”
짐짓 헛기침을 한 후 문사는 말했다.
“이번 전시에 장원을 하여 황태자 전하를 모시게 되었다오. 헌데 정작 창룡전이 어디인지 몰라서…….”
문사는 말끝을 흐렸다.
길 좀 가르쳐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 건 장원급제자의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붉은 태감의를 입은 환관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하, 그러시군요. 이리도 젊으신데 장원급제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문사는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엔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렇다면야 당연히 제가 도와드려야지요. 자, 저를 따라오십시오.”
문사는 반색을 했다.
황궁에서 길을 잃은 터에 이곳에 익숙한 환관의 도움이라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명줄이 아닐 수 없었다.
“고, 고맙…….”
탁탁탁.
문사가 채 감사를 표하기도 전에 환관은 종종걸음을 시작했다.
체구도 작은 환관은 의외로 발이 빨라서 순식간에 저만치 앞서가 버렸다.
“자, 잠깐 기다리게. 가, 같이…….”
문사는 얼른 환관을 뒤따랐다.
다급히 뒤따라오는 문사를 힐끔 돌아보며 박 공공은 웃음을 머금었다.
“지난번에 심심하다고 하셨지요?”
발을 옮기며 박 공공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운 학사님의 무료함을 달래 줄 신입을 데려가니 잘 가르쳐 보시지요. 후후후.”
낭패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운현을 떠올리며 박 공공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일도 없는 창룡전에 무슨 신입이냐며 한숨을 쉴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책임감 강한 운현이 이 신입 문사를 그냥 내칠 리도 없을 테고 말이다.
탁탁탁.
경쾌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앞서가는 박 공공을 젊은 문사는 숨을 헐떡이며 뒤따라갔다.
창룡전의 단 한 명뿐인 학사, 운현에게 새로운 후배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