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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504화 (504/530)

504화. 난주 수복

감숙의 대도시, 난주는 관군의 손에 들어왔다.

단 한 번의 전투로 마교의 군세를 몰아내고 난주를 탈환한 것이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엔 정말이지, 아이쿠 이거 큰일 났다 싶었지요.”

박 공공이 찻잔을 쥔 채 말했다.

그는 난주 시내에 있는 한 저택에서 운현과 마주 앉아 있었다.

박 공공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글쎄 마교의 군세를 향해 돌격한 관군의 기마대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 뭡니까.”

마군이 지배하는 마교의 군세는 강력했다.

그들의 방진은 기마대의 돌격에도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기마대에 반격을 가해 큰 피해를 입힐 정도였다.

“그럼 어찌하였나? 기마대가 그리되었다면 사기가 크게 떨어졌을 터인데.”

운현이 묻자 박 공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입니다. 다행히 저희 쪽에 유능한 장군들이 있었기에 즉시 기마대에 퇴각 신호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주력 부대의 진군을 최대한 늦추며 화포로 대처했지요. 그대로 격전을 벌였다가는 우리 쪽의 피해가 어마어마할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박 공공의 휘하에는 유능하고 경험이 풍부한 장군들이 많았다.

그들은 이미 다양한 경우에 대비한 작전을 가지고 있었고, 박 공공에게 즉시 화포의 사용을 제안한 것이다.

박 공공은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것이 운현 일행이 들었던, 예정에 없는 화포 소리의 정체였다.

“화포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벌이에 불과했지요.”

달칵.

찻잔을 내려놓으며 박 공공은 말했다.

화포의 사격은 유효했지만 마교의 군세는 멈추지 않았다.

마군의 지휘를 받는 마병들은 엄청난 포격에도 아랑곳없이 관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화포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고, 마교의 군세는 마치 성난 밀물처럼 관군을 향해 짓쳐 들었다.

“결국 군사들의 엄청난 피해를, 아니 어쩌면 패전까지도 각오해야 했던 때였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몰려들던 마교의 군세가 일제히 혼란에 빠진 것이다.

그들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바닥에 나뒹구는 자도, 혹은 자제심을 잃고 같은 마병에게 덤벼드는 자도 있었다.

“갑작스레 혼란에 빠진 마교의 군세를 보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운 학사님께서 성공하셨다는 것을요.”

박 공공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비록 환마의 죽음이 마병들의 혼란을 가져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 기적 같은 일은 바로 운현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휘하 장수들조차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박 공공은 지체 없이 전군에 진격을 명했다.

퇴각했던 기마대도 급히 출격했고 진군을 늦추던 주력 부대도 전면적인 반격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난주를 탈환하게 된 것입니다. 후후훗.”

“참으로 고생 많았네.”

운현은 찻잔을 쥔 채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박 공공은 웃음을 머금었다.

“저야 뭐 한 일이 있습니까? 그저 장군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었을 뿐이지요. 결정적인 일은 운 학사님이 해 주셨고요.”

겸양의 말이었지만 운현에게는 박 공공의 뛰어남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권세를 잡은 자는 자신의 뜻대로 하려 들기 마련이다.

반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수하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군주의 자격을 지닌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아랫사람에게 복종을 강요하기보다 오히려 귀 기울여 경청하되 명확한 목표를 잃지 않는, 박 공공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혹시 마군(魔君)으로 보이는 자는 잡았는가?”

운현의 물음에 박 공공은 어깨를 으쓱했다.

“격전의 와중에 참했다는 보고는 들어왔으나 확인은 할 수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마병들은 시신이 남지 않아서요.”

마병이 죽으면 그저 부서져 버릴 뿐이다.

심지어 잔해조차 제대로 남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군.”

“문제가 될까요?”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을 걸세. 설령 마군이 살아 있다 해도 마교는 당분간 숨어 있어야 할 테니까.”

“그럼 마교를 완전히 소탕하는 건 쉽지 않겠군요.”

마교는 음지에 숨어 있으며 기이한 사술을 사용한다.

환마가 죽었다지만 그들을 완전히 뿌리 뽑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드러나게 움직이진 못할 테니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은 없을 걸세. 천하에 많은 피가 흐르는 일만 없다면, 적어도 백 년 정도는 괜찮겠지.”

정사대전 이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마교는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

일대상인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여전히 음지에 숨어 있어야 했을 것이다.

“백 년입니까? 애매하네요. 하지만 뭐 제가 백 년을 살 것도 아니니까요.”

박 공공의 말에 운현은 빙긋 웃었다.

“그러면 자네는 이제 황궁으로 돌아가겠군.”

“아닙니다.”

고개를 저으며 박 공공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까지 왔으니 감숙을 대대적으로 감찰할 생각입니다. 마교가 이 난리를 쳐 놨으니 명분도 충분하거든요. 이 기회에 부패한 관리들과 부정 축재를 한 자들을 남김없이 솎아 낼 생각입니다.”

박 공공의 말은 당연했다.

책임을 묻는다는 면에서도, 그리고 마교와 관의 유착을 끊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 조관 어사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간 자숙하면서 감숙의 관리에 대한 내사를 끝냈거든요. 후후후.”

북경 도찰원으로 소환된 감찰어사 조관은 직무를 정지당하고 자숙의 시간을 명받았다.

그 기간 동안 조관은 감숙의 수많은 관리들에 대한 서류 조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서류상이라 해도 유능한 감찰어사의 예리한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제 관리들과 대면하여 추궁까지 시작한다면 말 그대로 감숙을 손바닥 보듯 감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조관 어사는 이번 감찰이 끝나는 대로 운 학사님께 보내겠습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네. 그는 유능하니 나라를 위해 크게 쓰이는 편이 좋을 것일세.”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박 공공의 말은 곧 감찰어사 조관의 승진을 결정한 것과 같았다.

“아 참, 그리고 공동파에 대한 일입니다만.”

찻잔을 들며 박 공공은 말을 이었다.

“이번 일에 세운 공이 적지 않아 포상을 상신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무당파처럼 도관을 세워 주고 녹읍을 하사할 예정이었습니다만, 완강히 거절하더군요.”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복마의 사명에 헌신한 공동파의 도사들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갈 수는 없지요. 그래서 황상께 부탁드려 친필 휘호라도 내릴까 하는데, 어떨까요?”

“오, 그거 좋군.”

황제가 친필 휘호를 내린다는 건 곧 황실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부에선 사파라는 오해까지 받고 있는 공동파로서는 당당한 정파의 명분과 황실의 보증을 얻는 셈이었다.

“그렇지요? 본래는 편액을 하사할까 했는데 그것도 거절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편액은 건물 입구에 거는 현판 같은 것이다.

황제가 편액을 내린다는 건 단지 현판을 하사하는 것 이상이어서, 토지와 노비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세금까지 면제받는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동시에 황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게 되니, 독자적인 사명을 추구하는 공동파로서는 달갑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컸다.

“그럼 공동파는 그리하도록 하고, 이번 일에 도움을 준 문파들은 창룡맹 전체로 포상하기로 하지요.”

홀짝.

차를 마신 박 공공은 운현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런데 운 학사님께는 무엇을 해 드려야 할까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는 진작에 거절하셨고……. 혹시 황실의 공주는 어떻습니까?”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네. 상이라면 오히려 자네가 받아야지.”

“저는 이미 받았습니다.”

박 공공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운 학사님께서 무사하신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상이니까요. 후후후.”

“그런가? 그럼 나도 이미 받았군.”

운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무사한 것이 내겐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말일세.”

찻잔을 쥔 박 공공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음을 흘렸다.

“후후. 거짓말이라는 건 알지만 기분은 좋네요.”

“거짓말이라니! 이건 진심일세.”

운현은 사뭇 얼굴까지 굳히며 말했다.

하지만 박 공공의 부드러운 미소는 여전히 그의 입가에 머물러 있었다.

***

난주가 수복되었다지만 상황은 비참했다.

오랜 기간 이어진 공방전과 마교의 약탈은 난주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재산과 건물이 불탔으며 관아의 자료들도 대부분 소실되었다.

옛 제독 총병관이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피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난주의 수복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운현 일행은 난주를 떠나기로 했다.

다만 공동파의 도사들은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감숙 곳곳에 숨어 있는 마교의 잔당들을 토벌해야 합니다.”

공동파의 장문인 대행인 천운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간 감숙 백성들이 겪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천운자는 나지막이 도호를 외웠다.

조정의 입장에서는 대도시 난주를 잠시 빼앗겼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감숙 전체의 백성들이 당해야 할 고통은 컸다.

황실과 조정이 천하의 안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보여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공동이 큰일을 하셨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운현이 천운자에게 말했다.

이번 혈교와 마교의 준동에서 공동파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복마의 사명에 헌신한 그들로서는 의미있는 일인 데다가, 이번 일로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

그간 오해받던 처지에서 벗어나 커다란 명성을 얻었고 황실의 인정까지 받았으니 그야말로 커다란 성과였다.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도리어 맹주님께서 공동에 베푸신 은혜가 참으로 큽니다.”

천운자는 도호를 외며 정중히 예를 표했다.

전임 장문인과 사대 장로의 피습으로 사실상 무력화된 공동파였다.

그런 공동파에 운현이 찾아와 복룡복마검을 깨우고 복마진결을 되찾게 해 주었다.

만일 운현이 아니었다면 이번 혈교와 마교의 준동에서 공동파가 어찌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었으랴?

그러니 은혜라는 천운자의 표현은 전혀 과한 것이 아니었다.

“공동파는 맹주님의 신의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천운자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비록 공식적으로 창룡맹에 들 수는 없으나 공동파는 언제나 운현과 뜻을 같이할 터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오.”

운현은 천운자에게 정중하게 답례했다.

이번 난리가 끝나고 나면 천운자가 정식으로 장문인의 자리에 오를 것이 확실했다.

위기 속에서 공동파를 이끌어 혈교와 마교의 준동을 막아 낸 역량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천운자는 빙긋 웃었다.

“먼 길, 평안하시기 바라오.”

그 인사는 사뭇 의미심장했다.

운현은 담담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저도 떠나겠어요.”

문득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운현은 고개를 돌렸다.

당설련은 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맹주님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비록 이곳 난주에서는 힘이 되지 못했지만, 당문은 맹주님의 생각보다 더 유용할 거예요. 아주 여러모로요.”

“네. 기대하겠습니다.”

운현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힐끔 영호준을 돌아보았다.

영호준은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떠나면 언제 또 연 매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소. 아아, 정말이지 내 마음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영호준의 말을 끊으며 당설련이 말했다.

“가문의 일이 정리되는 대로 항주로 갈 테니까요. 정말 중요한 일은 성도가 아니라 항주에서 벌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그, 그렇소?”

영호준은 살짝 당황한 듯했다.

총괄군사인 그녀가 이토록 쉽게 항주로 오겠다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호준은 곧 미소를 머금었다.

“그 말을 들으니 참으로 기쁘오. 내 연 매가 올 날만 기다리며…….”

“그렇게 될 거예요.”

당설련이 다시 영호준의 말을 끊었다.

영호준은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껌뻑거리는데 당설련은 가늘게 웃었다.

“당문에는 신기한 약물이 많지요. 제가 갈 때까지 준 랑은 다른 여자에겐 눈도 돌리지 못할 거예요. 오직 제가 도착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요. 그래야 서로 공평하지 않겠어요?”

“여, 연 매? 그게 무슨……”

창백한 얼굴로 영호준이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당설련은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

객옹을 바라보며 당설련은 말했다.

“잘 부탁드려요.”

애매한 말이었지만 객옹은 알아들었다.

당문과 그녀 자신의 명운을 지금 온전히 객옹에게 의탁하고 있는 것이다.

“오냐.”

대답은 짧았다.

하지만 당설련에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설련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참.”

운현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일대상인과 문왕에 대해 당문이 알고 있는 것들을 북해일문에 전해 주시겠습니까?”

당설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나지막이 탄식을 흘렸다.

운현이 북해일문을 통해 일대상인을 추적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네. 그렇게 할게요.”

당설련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 눈빛은 당문의 눈꽃이자 총괄군사, 당문설화 당설련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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