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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502화 (502/530)

502화. 잠입

쿵, 쿠웅, 쿵.

관군의 포성이 지축을 뒤흔들 때 운현 일행은 난주의 북쪽 성벽에 도착했다.

본래 서민들의 거주 구역이던 성벽 바깥은 연이은 싸움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살던 저택도, 물건을 사고팔며 흥정하던 시장도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불에 탄 잔해들뿐이었다.

쿵, 쿵.

포성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마치 세상 전부를 끝내기라도 할 듯, 포성은 한참이 지나도록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포성이 이어지기를 얼마나 했을까?

쿠르르르릉.

묵직한 진동과 함께 서쪽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귀를 울리던 화포 소리가 거짓말처럼 멎었다.

“시작이군.”

폐허 사이에 몸을 감추고 있던 군자검 제갈명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는 환마를 만나겠지. 그럼 나중에 봅시다.”

장로와 가주, 그리고 절정고수 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제히 성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탁, 타닥.

절정고수들의 경신술은 대단했다.

그들은 성벽을 향해 바람처럼 날아들더니 그대로 위로 솟아올랐다.

천수 신니는 가볍게 벽을 박차며 위로 솟구쳤고, 금화영은 아예 땅을 달리듯 성벽을 따라 내달렸다.

태을 진인이나 청송 진인 같은 장로들 역시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유연하게 성벽 위로 날아올랐다.

이래서야 이 거대한 성벽이 존재하는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가자.”

객옹이 문득 말했다.

일행의 경신술을 보고 있던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운현은 몸을 날릴 준비를 했다.

하지만 객옹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슥.

객옹은 운현을 손으로 안고는 가볍게 발을 굴렀다.

탓.

“엇!”

운현은 깜짝 놀랐다.

객옹의 경신술은 다른 절정고수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연이 떠오르듯 객옹은 부드럽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파라라락.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소리를 냈다.

객옹은 운현과 함께 높은 성벽 위로 천천히 다가갔다.

뒤늦게 일행을 발견한 성벽 위의 마병들이 소리를 치며 다급히 활을 겨눴다.

슥.

객옹은 다른 손을 들어 올렸다.

퍼버벅.

마병들은 미간에 구멍이 뚫리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다른 일행들 역시 성벽을 지키던 마병들을 무력화시키고 어느새 난주 시내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턱.

두 사람은 가볍게 성벽 위에 내려섰다.

객옹은 운현을 내려놓고 뒷짐을 지며 난주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아아.”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대도시 난주는 참혹하게 변해 있었다.

언뜻 보아도 파괴된 건물이 즐비했고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전에 보았던 난주의 아름다운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약탈이로군.”

객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재물이 아니라 난주의 거민을 말이다.”

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병이 재물을 탐할 리 없다.

그들이 난주에서 약탈한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피와 생명이었던 것이다.

운현은 난주의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어떠냐?”

문득 객옹이 물었다.

“이상하군요.”

난주의 참혹한 광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운현이 말했다.

“마병들의 기세가 이전과 사뭇 다릅니다. 어쩌면…….”

굳은 표정으로 운현이 말했다.

“마군(魔君)이 깨어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군?”

객옹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서 난주가…….”

비록 옛 제독 총병관이 직무 유기에 가까운 짓을 하고 있었다 해도 어찌어찌 잘 버텨 오던 관군이다.

그들이 갑자기 난주를 빼앗긴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투에서 관군이 낭패를 당할지도 모르겠구나.”

마군은 마병을 총괄하여 다스리는 자들이다.

공동파 도사들은 마군이 마병들을 이끌 때에는 천하에 당할 자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자칫하면 이 전투의 승패가 뒤바뀔지도 모르는 것이다.

객옹은 운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환마가 어디 있는지 알겠느냐?”

대도시 난주에서 기운만으로 한 사람을 찾는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운현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스륵.

운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웅.

무수한 흐름이 운현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빛과 어둠이 명멸하고 각자의 흐름이 서로 부딪히고 혹은 갈라지며 변화했다.

아찔할 정도로 다채롭고 수많은 그 흐름들 속에서, 운현은 그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한순간.

그 무엇보다 이질적이면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흐르는 한 줄기 새카만 기운을 운현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번쩍.

운현은 눈을 떴다.

“찾았습니다.”

그의 빛나는 눈동자는 대도시 난주의 한 곳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가자.”

탓.

객옹은 즉시 운현을 잡고 몸을 날렸다.

아찔할 정도로 높은 성벽 위였지만 객옹도, 운현도 상관하지 않았다.

파라락.

바람 소리가 운현의 귓가에서 세차게 울렸다.

눈 아래로 지나가는 난주의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지만 운현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

철검 남궁벽과 천수 신니, 그리고 빙설은 난주의 거리를 바람처럼 내달렸다.

때로는 지붕을 넘고 안뜰을 가로지르기도 하며 세 사람은 곧장 목표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곧 그들의 눈앞에 커다란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일세.”

천수 신니가 말했다.

저택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탁.

세 사람은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저택 안으로 날아내렸다.

파라락.

세 사람은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그 순간 천수 신니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아무도 없군.”

저택 안은 고요했다.

철검 남궁벽은 검에 손을 가져다 댄 채 주위를 살폈다.

이곳이 마교의 군영으로 사용된 흔적은 주위에 가득했다.

하지만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궁벽은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으음.”

이 저택에는 환마가 없다.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아 한때 이곳을 사용한 건 사실인 듯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버려진 것이다.

천수 신니가 남궁벽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찌하시겠소?”

그건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향한 곳으로 가겠느냐는 말이었다.

남궁벽은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잠깐.”

빙설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곤 즉시 발을 굴러 날아올랐다.

탁.

빙설은 저택의 커다란 지붕 위에 내려섰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살폈다.

천수 신니와 남궁벽은 묵묵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북해 출신인 그녀의 시력이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좋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휘릭.

빙설은 다시 땅으로 내려섰다.

“이쪽.”

어색한 말투였지만 천수 신니와 남궁벽의 눈빛은 단번에 변했다.

두 사람은 빙설을 따라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잠시 후, 세 사람의 눈앞에 또 다른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기에 남궁벽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었군.”

“참으로 교활한 자요. 이중으로 거처를 숨기다니.”

천수 신니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불가의 심법을 익힌 그녀는 마기에 본능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반드시 여기서 끝을 내야겠소.”

휘릭.

세 사람은 문을 날아 넘었다.

피비비빅.

무수한 화살이 짓쳐 들었다.

그러나 세 사람 중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하아!”

천수 신니가 권격을 내질렀다.

콰앙.

엄청난 기세가 짓쳐 드는 화살을 향해 터져 나갔다.

천수 신니의 권격은 화살을 산산이 흩어 버렸고, 남궁벽과 빙설 역시 검을 휘둘러 화살을 쳐 냈다.

사박.

세 사람은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그들 주위에는 이미 백여 명의 마병들이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후후후.”

느긋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고관대작처럼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죽을 것도 모르고 날벌레들처럼 잘도 날아드는구나.”

눈동자를 번득이는 그는 바로 환마였다.

비록 천수 신니나 남궁벽은 알 수 없었지만 환마의 모습은 이전보다 더 젊어 보였다.

“할(喝)!”

천수 신니가 일갈을 내질렀다.

항마의 기운이 담긴 그녀의 일갈은 마병들의 심령을 뒤흔들었다.

“감히 너희가 하늘을 두려워 않고 패악을 행하느냐!”

내력이 담긴 천수 신니의 목소리는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소리에 마병들이 움찔거렸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병기를 떨어뜨리는 자도, 발작을 일으키는 자도 없었다.

“후후후. 소용없느니라.”

환마는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군이 깨어난 이상 예전의 나약한 모습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흥!”

천수 신니는 코웃음을 치며 자세를 잡았다.

한 손은 환마를 향해 뻗었고 다른 손은 자신의 얼굴 옆에 가져간 천수 신니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우욱.

천수 신니의 주위로 기세가 강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천수 신니는 환마를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타하!”

꽈르릉.

천둥 같은 소리가 천수 신니의 권격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가 환마를 향해 짓쳐 들었다.

하지만 환마는 피하지 않았다.

슥.

환마는 차가운 시선으로 손을 저었다.

그러자 마병들은 천수 신니의 권격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퍼버벅.

무시무시한 권격 앞에 마병들은 단숨에 박살 나 부서졌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퍽.

마지막 마병의 머리가 박살났다.

그리고 권격의 기세는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했다.

환마가 마병들을 방패 삼아 천수 신니의 권격을 막아 낸 것이다.

하지만 남궁벽과 빙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후욱.

철검 남궁벽이 좌측에서 환마를 향해 짓쳐 들었다.

그의 검에는 이미 섬뜩한 검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허공으로 뜬 빙설 역시 두 자루의 소검을 쥔 채 환마를 향해 벼락같이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환마의 조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저벅.

그는 오히려 손을 거두어 뒷짐을 지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마치 두 사람의 검격을 그대로 맞겠다는 듯 말이다.

순간 천수 신니는 무언가 섬뜩한 감각을 느꼈다.

“조심하시게!”

그녀는 급히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큭!”

순간 환마를 향해 짓쳐 들던 남궁벽이 신음을 흘렸다.

그는 갑자기 몸이 굳기라도 한 듯 단번에 균형을 잃었다.

빙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무엇에 묶이기라도 한 듯 허공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방비 상태가 된 빙설을 향해 마병이 검을 뽑았다.

“이익!”

천수 신니가 급히 지풍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천수 신니는 갑자기 온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할!”

천수 신니는 반사적으로 일갈을 내지르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항마의 기운이 그녀를 감싸며 마비가 풀렸다.

하지만 마병의 검은 이미 빙설을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안 돼!”

천수 신니가 소리쳤다.

하지만 마병은 멈추지 않았다.

환마의 입가에 조소가 짙어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퍽, 카앙.

두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검을 쥔 마병의 머리가 박살 나는 것과 함께 빙설을 향해 날아들던 검이 산산이 부서져 나간 것이다.

휘릭.

빙설은 바로 몸을 틀어 땅에 내려앉았다.

그녀를 옭아매던 기이한 힘은 더 이상 없었다.

환마의 시선이 그녀로부터 떠났기 때문이다.

파라락.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땅에 가볍게 내려섰다.

바로 운현과 객옹이었다.

“으음.”

환마가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방금 마병과 그의 검을 부숴 버린 사람은 객옹이었지만 환마의 시선은 객옹이 아니라 운현에게 못 박혀 있었다.

“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환마가 말했다.

운현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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