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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461화 (461/530)

461화. 복마진결

운현 일행은 공동파의 객사로 돌아왔다.

객옹은 운현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노부인 능세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화영은 무언가 묻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그녀도 눈치는 있는지라 우선 찻주전자를 쥐었다.

또르르.

차를 따르며 금화영이 물었다.

“운 공자, 아픈 데는 없는가?”

그녀의 눈빛엔 염려가 가득했다.

운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노부인 능세영은 탄식을 흘렸다.

“허어, 다 컸다고 제멋대로 성을 갈더니만 이제는 스승보다 남자를 더 챙기는구나. 쯧쯧.”

“그, 그런 거 아닐세!”

또르르.

금화영이 항변하며 얼른 능세영의 찻잔에 차를 채웠다.

그러나 능세영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제자든 자식이든 본래 그런 것이다. 또 그래야 하고.”

객옹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금화영이 그의 찻잔을 채우자 향기로운 차향이 피어올랐다.

“품 안의 자식이라 하지 않더냐? 네 품을 벗어나면 이미 독립한 사람이니 쓸데없는 간섭으로 애들 괴롭게 하지 마라. 그건 어른 된 자의 할 바가 아니다.”

찻잔을 들며 객옹은 말을 이었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도와줄 뿐이지.”

후룩.

객옹은 무덤덤하게 차를 음미했다.

능세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혹시 애를 키워 보기라도 한 건가?”

“아니.”

객옹이 담담하게 답했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지금 하고 있지.”

그의 시선은 운현을 향해 있었다.

객옹의 말이 틀리지 않은지라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객옹이 물었다.

“이제 일대상인을 상대할 준비가 된 것이냐?”

그건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능세영도 금화영도 놀란 눈으로 객옹과 운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대답은 능세영과 금화영을 더욱 놀라게 했다.

하지만 객옹은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객옹은 다시 찻잔을 들었다.

능세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운현에게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일대상인을 상대할 준비가 되었다고?”

“아마도요.”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대답이었지만 능세영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허어.”

능세영은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곧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면 빠르게 움직여 그의 허를 찌르는 건 어떤가? 일대상인이 쓰러진다면 혈교와 마교도…….”

능세영의 말은 가장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혈교와 마교의 준동이 일대상인 때문이니, 그가 없다면 모든 위험은 단번에 해소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운현은 고개를 저었다.

“허를 찌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찻잔을 매만지며 운현은 말을 이었다.

“지금 일대상인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도 제 변화를 알아차렸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뭐?”

능세영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일대상인이 이곳 공동파에서, 그것도 깊은 복룡복마전에서 일어난 운현의 변화를 알아차리다니 말이다.

설령 운현을 정탐하고 있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운현은 말없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허어, 참으로 놀랍군.”

탄식을 흘리며 능세영이 말했다.

“한때는 나도 천하를 오시하는 경지에 올랐다 여겼는데, 자네는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군. 마치 하늘 밖의 하늘[天外天]을 보는 것 같네그려.”

그 말에 금화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세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금화영의 목이 쑥 들어갔다.

사락.

노부인 능세영은 두 손으로 가만히 찻잔을 매만졌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복룡복마전에서 일어났던 일은 그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남겼다.

그 여운을 가만히 되새기며 일행은 말없이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후룩.

능세영은 차를 마셨다.

생각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그래도 가슴에는 따뜻한 온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

다음 날, 운현 일행은 공동파 장로회의에 참석했다.

객옹과 능세영, 금화영은 참관인 자리였지만 운현의 자리는 놀랍게도 가장 상석이었다.

“아니, 제가 어떻게…….”

“아니오. 응당 이래야 하니 사양치 마시오, 맹주.”

혼원 진인은 막무가내로 자리를 권했다.

다른 장로들은 물론 장문인 대행인 천운자까지 당연하게 여겨서, 운현은 결국 상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객옹도 참관인 자리에 있는데 공동파의 노도인들을 제치고 상석에 있으려니 영 불편하기만 했다.

“참으로 기쁜 날이오.”

혼원 진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전설 속에 잠들어 있던 복마검이 드디어 깨어났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소?”

“아, 하지만…….”

다시 잠들었다고 운현이 말하려는데 천운자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는 우리 공동뿐 아니라 천하에 큰 복이 아닐 수 없소.”

천운자는 두 손을 모으고 도호를 외며 감사를 표했다.

“맹주께 깊이 감사드리오.”

다른 장로들도 일제히 도호를 외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 역시 다들 표정이 밝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 복마검이 검명을 흘리다니, 대체 어떻게 한 것이오? 이 늙은이가 깜짝 놀랐다오.”

옥로 진인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운현이 답하려는데 문득 혼원 진인이 말했다.

“그뿐인가? 나는 복룡복마전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 뭔가? 생각만 해도 섬뜩하군.”

“나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지. 천문을 살펴보니 하늘의 성좌가…….”

현기자가 점잖게 말했지만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장로는 없었다.

장로들은 밝은 표정으로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의 놀라움이 새삼 되살아나는 듯했다.

“……복마검에 떠오른 구결 말이오만.”

문득 천운자가 말했다.

장로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천운자를 주목했다.

운현도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복룡복마검에 떠올랐던 구결을 운현도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읽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장로들이 연구한 결과 그 구결이 복마심결의 진체(眞體)임을 확인할 수 있었소. 그래서 우리는 이 구결을 ‘복마진결’이라 부르기로 하였소.”

진체는 곧 진정한 모습이자 실체라는 뜻이다.

이제껏 전해지던 복마심결의 진정한 모습, 즉 복마진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장로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운현은 물론 객옹과 능세영, 금화영도 천운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몇몇 장로들이 직접 복마진결을 따라 내력을 운용했소. 그 결과 내력의 수발이 한결 원활해졌으며, 무엇보다 파사의 기운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음을 확인했소.”

뜻하는 대로 내력을 일으키고 거두는 내력의 수발은 무공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이것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느냐에 따라 무인의 경지가 달라질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파사의 기운이 대단히 강해졌다는 것은 복마진결이 본래 복마의 사명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

객옹이 물었다.

복마진결로 인해 얼마나 강해졌냐고 묻는 것이다.

“복마진결을 운용하면 개인이 능히 혈인을 상대할 수 있고, 후기칠성이라면 혈마인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객옹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에겐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노부인 능세영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하군! 그러면 공동의 힘이 단숨에 몇 계단이나 오른 셈이 아닌가?”

본래 혈마인은 공동의 장문인과 사대장로의 오행진 정도나 감당할 수 있는 상대다.

암천무제에게 장문인과 사대장로가 중상을 입었을 때 사실상 공동파는 무력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분간 혈교와 마교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복마진결로 인해 단숨에 예전 이상의 전력을 되찾게 된 것이다.

적어도 혈교나 마교 같은, 파사의 기운에 영향을 받는 상대에 한해서는 말이다.

혈교와 마교가 준동하려는 현 상황을 생각하면 천운자가 ‘천하에 큰 복이다’라고 말한 것도 과장이 아니었다.

“마교에 비하면?”

객옹이 다시 물었다.

천운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병(魔兵)과 마군(魔君) 정도는 능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허나 육대마신이 나타난다면 어렵겠지요.”

처음 듣는 단어에 운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병과 마군이면, 혈인과 혈마인 같은 것입니까?”

천운자는 대답 대신 옥로 진인을 돌아보았다.

옥로 진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오. 마병(魔兵)은 혈인과 달리 이지를 가지고 있고 때로는 평범한 마교도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소.”

침착한 어조로 옥로 진인은 말을 이었다.

“그들을 총괄하여 다스리는 자들이 마군(魔君)인데, 개인의 능력은 혈마인보다 조금 떨어지나 마병들을 이끌 때에는 천하에 당할 자가 없을 정도라 하오.”

“마치 군대 같군요.”

운현의 말에 옥로 진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그렇소. 그리고 육대마신은 혈마인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존재요. 전설에 의하면 단 한 명의 마신이 능히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듣고 있던 운현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마신이면 천마보다 더 위가 아닙니까?”

“마교에서는 그렇지 않소.”

옥로 진인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의 경전에 따르면 천마는 마천(魔天)의 지배자이자 욕계(慾界)의 왕이며 여섯째 하늘을 다스리는 제육천(第六天)의 마왕이오. 마교도들은 신들조차 천마 앞에 부복한다고 믿고 있소.”

운현은 나지막이 탄식을 흘렸다.

욕계는 욕망이 존재하는 모든 세계를 말한다.

천마라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불가의 경전조차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신화 속에서도 최고위의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 마교와 혈교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매우 좋지 않소.”

대답은 옆에 있던 현기자가 했다.

“혈교는 혈마가 천마와 무관한 파괴신이라 주장하오. 허나 마교는 혈교를 마교의 분파 정도로 여기고 있소. 혈마는 천마의 가장 강한 수하이며 천마의 강림에 앞서 세계를 피로 씻는 역할을 맡은 자라는 논리요.”

현기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마교가 보기에 혈교는 천마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고, 혈교의 입장에서는 혈마를 제 마음대로 격하시킨 마교가 증오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래서 혈교와 마교는 절대로 공존이 불가능하오.”

옥로 진인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교와 혈교, 관군이 한자리에서 만나면 관군을 제쳐 놓고 마교와 혈교가 먼저 싸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오.”

운현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공동파의 장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관군이라도 혈인과 마병을 당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창과 칼로는 죽일 수 없으니까.”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운현이 묻자 이번엔 혼원 진인이 말했다.

“도가와 불가의 제자라면 파사와 항마의 기운이 있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소. 무공을 익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일반적인 무인들이라면요?”

“저들에 대해 미리 알고 침착하게 대응한다면 적어도 위태롭지는 않겠으나, 당황하여 손속이 흐트러진다면 설령 고수라 할지라도 목숨을 잃을 것이오.”

무인들의 싸움에서 순간의 방심이나 판단착오로 목숨을 잃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상대는 상식을 벗어난 괴물이니, 혼란에 빠진다면 제 실력을 내지도 못한 채 당하고 말 것이다.

“허나 침착히 대응하면 일반적인 무인들도 저들을 상대할 방법이 있소. 비록 혈마인이나 마군에게는 무리겠으나…….”

혼원 진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장로님.”

밖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천운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덜컥.

문이 열리고 밖에 서 있던 공동파의 한 도사가 예를 표했다.

“복마행을 나갔던 이들이 급한 전갈을 보냈습니다.”

도사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감숙의 한 마을이 혈교의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어라?”

천운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장로들이 놀라는 가운데, 운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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