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화. 복룡복마검의 비밀
공동파의 객사.
탁자에 앉은 운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말게.”
능세영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네의 행동은 옳았네. 어리석은 자에게는 합당한 징계가 필요한 법이지.”
“감사합니다.”
운현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리 기분이 풀린 것 같지는 않았다.
객사에 조용히 차향만 피어나고 있을 때였다.
“대협.”
밖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열어 주지!”
금화영이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
끼익.
객사 앞에는 후기칠성의 한 사람인 무진이 서 있었다.
그는 일행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복마검에 관련된 일정이 정해졌기에 알려 드리러 왔습니다.”
운현의 시험은 끝났지만 바로 복마검을 볼 수는 없었다.
천기의 움직임을 살펴 가장 길한 때를 택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공동이 도가 문파인 데다가 복마검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부인 능세영이 말했다.
“수고가 많군. 안으로 들어오게.”
능세영의 말에 무진이 객사 안으로 들어서고 금화영이 문을 닫았다.
“앉겠나?”
“감사합니다만 바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진은 자세를 바로 하고 말을 이었다.
“오늘 밤 자시에 복마검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모시러 오겠습니다.”
“오늘 밤이라고? 생각보다 이르군.”
의아한 표정으로 능세영이 말했다.
길한 때가 그리 형편 좋게 있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무진은 슬쩍 웃음을 흘렸다.
“운 대협이시라면 어지간한 길흉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현기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긴…….”
능세영도 피식 웃었다.
운현의 미명이 뿜어냈던 그 기세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현기자가 운현을 배려한 것이기도 할 테고 말이다.
“아, 그리고.”
무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지명이 감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협께서 구해 주신 오행의 여관입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무진은 말을 이었다.
“차마 직접 뵐 면목은 없는 듯합니다. 지명 역시 오행의 한 사람이니까요.”
사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대연무장에서 뿜어낸 운현의 기세를 본 도인들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꼈다.
운현이 창룡맹의 맹주일 뿐 아니라 ‘창룡검주’라는 무인임을 분명히 확인한 것이다.
그 놀라운 광경은 운현에 대해 경외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
지명이 직접 운현을 찾아오지 못한 것도, 객사 주변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렇군요. 감사는 잘 받았다고 전해 주십시오. 나중에 오행 분들도 함께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무진은 일행에게 예를 표하고 객사를 떠났다.
문을 닫은 금화영은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찻잔을 들다가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운현의 표정이 아까보다 한결 좋아진 것이다.
금화영은 노부인 능세영을 돌아보았다.
“크흠.”
가만히 있으라는 듯 능세영이 헛기침을 흘렸다.
금화영은 조용히 차를 음미했다.
차향이 아까보다 한결 부드럽다고, 금화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
밤이 되고 자시가 가까워 오자 무진이 객사를 찾아왔다.
그는 운현 일행을 암벽에 세워진 커다란 도관으로 안내했다.
도관이 암벽에 묻혀 있는 것 같아서 일행의 시선을 끌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등불에 일렁이는 한밤의 암벽 도관은 그 신비스러움을 더했다.
“오오.”
금화영이 놀라운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관을 올려다 보았다.
암벽 도관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아마도 천연 동굴을 확장한 듯했지만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 도관의 유래보다는 곧 보게 될 복마검에 대한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줄지어 일렁이는 희미한 등불을 따라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문득 커다란 문이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이곳입니다.”
무진이 발을 멈췄다.
“저는 아직 이곳에 들어갈 수 없으니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운현의 말에 무진은 웃음을 머금었다.
“천만에요.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대협.”
정중하게 예를 표한 무진은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고 오래된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 너머에는 짧은 복도가 있고 그 뒤로 탁 트인 공간이 보였다.
운현 일행은 문 안으로 들어섰다.
쿵.
뒤에서 문이 닫혔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우와.”
금화영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일행은 커다란 반구형의 공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암벽 안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거대했다.
돌로 된 반구형의 벽에는 도가의 진언들이 날아갈 듯 유려한 필체로 새겨져 있었는데, 높다란 천장까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천장 중앙에 있는 텅 빈 원형의 문양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곳은 복룡복마전이오.”
혼원 진인의 목소리에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십여 명의 공동파 장로들과 함께 혼원 진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고개를 돌리며 혼원 진인이 말했다.
“복룡복마검이라오.”
장로들의 뒤편, 원형의 공간 중앙에 돌로 된 좌대가 보였다.
그곳에 거대한 검이 자리하고 있었다.
“허어.”
노부인 능세영이 탄식을 흘렸다.
“그것이 검이라고?”
그녀가 그렇게 말한 것도 당연했다.
원형의 좌대 위에 놓인 것은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검이었기 때문이다.
놓여 있지 않고 좌대에 꽂혀 있기라도 했다면 영락없이 커다란 상징물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저래서야 영 휘두르기 곤란하겠는데?”
금화영이 중얼거렸다.
‘한 번 휘두르면 삼천세계의 마가 굴복하고, 두 번 휘두르면 하늘의 용들조차 고개를 조아린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슥.
운현이 장로들에게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중한 목소리로 운현은 말을 이었다.
“제게 이 검을 보여 주시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소.”
장문인 대행인 천운자가 말했다.
“대협의 요청은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파를 위한 것이었소. 그러니 감사는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것이오.”
사락.
십여 명의 장로들이 일제히 손을 모았다.
천운자 역시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았다.
“공동파는 대협과 함께할 것을 이미 결의했소. 비록 사문의 율법이 지엄하여 창룡맹에 들 수는 없겠으나…….”
말하는 천운자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창룡맹이 혈교와 마교를 대적하는 그곳에 반드시 공동파도 있을 것이오.”
그것은 공동파가 창룡맹과 손을 잡겠다는 말이었다.
슥.
천운자는 도호를 외며 고개를 숙였다.
그와 함께 십여 명의 장로들 역시 일제히 도호를 외며 예를 표했다.
공동의 장로회의가 운현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운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운현은 고개를 숙였다.
그 예에 담긴 진심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침묵의 예를 나눈 운현과 장문인들은 잠시 후에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제 맹주께서 복마검을 깨워 볼 차례요. 허허허.”
혼원 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와 장로들의 표정은 이전보다 한결 밝았다.
운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 놀랍군요. 이 큰 검이 복마검이라니 말입니다.”
좌대에 놓인 거대한 검을 보며 운현이 말했다.
복마검은 검신과 손잡이까지 통짜로 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고대에 사용된 동검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만 문양이나 장식 같은 건 전혀 없어서 투박한 느낌마저 들었다.
혼원 진인이 왜 ‘무딘 검’이라고 했는지 납득이 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운현은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과연…….’
하늘의 도를 깨달았던 전설의 도인이 남겼다더니 사뭇 범상치 않은 검이었다.
“맹주께서 복마검을 깨우기 전에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소.”
천운자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복마검을 바라보았다.
“복마검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는 들 수 없소.”
“혼자의 힘으로는, 말입니까?”
“그렇소.”
천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하시려는 뜻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소.”
“그렇군요.”
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저 큰 검을 혼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천운자의 말은 납득이 갔지만 혼자 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맹주께서는 내력을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실 것이오.”
“그렇습니다.”
운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기공 중에는 근력을 폭발적으로 강화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 방식이라면 혼자라도 저 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불가능하오. 복마검에는 내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오.”
“뭐라고?”
노부인 능세영이 놀란 표정으로 천운자를 돌아보았다.
금화영은 물론이고 객옹도 눈살을 찌푸렸다.
“복마검은 내력이 통하지 않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떤 내력도 소용이 없소. 제아무리 내력을 가하여도 바닥없는 무저갱처럼 한 줌의 변화조차 일어나지 않소.”
“그럴 리가…….”
능세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천운자는 쓴웃음을 흘렸다.
“아마도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가르치심이 아닌가 생각하오만…….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오.”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으며 천운자는 말했다.
“그러니 맹주께서는 극히 주의하시오. 내력으로 복마검을 깨우고자 하던 많은 사람이 큰 낭패를 겪었소. 만일 이 검이 시조께서 남기신 것이 아니었다면…….”
천운자는 나지막이 도호를 외웠다.
“아마도 마검(魔劍)이라 칭했을 것이오.”
공동의 장로가 할 말은 아니었으나 천운자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이 복룡복마검의 위험에 대해 진심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각별히 조심하지요.”
운현은 감사를 표했다.
천운자는 고개를 숙여 도호를 외웠다.
그리고 다른 장로들과 함께 옆으로 물러섰다.
금화영과 능세영, 객옹도 자리를 비켰다.
운현은 복마검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반구형의 공간에 운현의 발소리가 울렸다.
공동의 장로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운현을 지켜보았다.
운현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커다란 복마검의 검신에 가져갔다.
사락.
운현의 손이 복마검에 닿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흠.’
복마검의 표면은 생각보다 매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차가운 석제 대좌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상하군.’
가까이서 복마검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크고 육중하며 둔탁해 보이는 고대의 검일 뿐이다.
‘……아무래도.’
천운자가 경고했지만 내력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조심해라.”
뒤에서 객옹이 말했다.
운현이 내력을 사용하려는 것을 그도 알아차린 것이다.
“네. 어르신.”
객옹을 돌아보며 운현이 말했다.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은 후, 운현은 가만히 내력을 일으켰다.
후웅.
‘웃!’
단 한 순간이었지만 운현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일으킨 내력이 순식간에 복마검 안으로 사라진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운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운현은 알 수 있었다.
이 복룡복마검이 텅 비어 버린, 가히 ‘바닥없는 무저갱’이라 부를 정도로 거대하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의 한계와 유한함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는 건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복룡복마검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지극히 작은, 티끌 같은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대체 어떻게 이런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음…….’
운현은 잠시 갈등했다.
한번 내력을 쏟아부어 볼까 하는 호승심도 있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북해의 만년빙정에 담긴 내력이 너무나 거대하여 아무도 감당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 복룡복마검을 채울 수 있는 존재는 애초에 인간이라 부를 수조차 없을 터였다.
‘그래도 그때는 낙일검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 단어가 운현의 뇌리를 스쳤다.
“아!”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그 단어는 바로 ‘공명(共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