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공동파 후기칠성
한밤에 객사를 찾아온 이들은 공동파의 젊은 도사와 여관 들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그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운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창룡검주십니까?”
가장 앞에 선 훤칠한 청년 도사가 물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창룡검주입니다만…….”
그 말에 청년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뒤에 선 다른 도사와 여관 들로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즉시 예를 표했다.
“창룡검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 영광입니다!”
“영광이에요!”
운현은 당황스러웠다.
쏟아지는 초롱초롱한 눈빛도 부담인 데다가, 초면에 이렇게 격한 환영을 받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 선 청년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는 공동의 후기칠성입니다. 평소 강호에 위명이 자자하신 창룡검주님을…….”
“아, 저기.”
운현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밖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우선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아, 감사합니다.”
청년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범상치 않은 기세가 서려 있음을 운현은 놓치지 않았다.
젊은 도사와 여관 들은 객사로 들어섰다.
운현은 그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닫았다.
탁.
그들은 운현의 권유에 따라 탁자에 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크지 않은 탁자에 일곱 명이나 더해지니 단숨에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운현은 먼저 일행을 소개했다.
“이분은 저와 함께하시는 객옹이십니다.”
순간 젊은이들의 눈빛에 긴장이 흘렀다.
객옹의 범상치 않음을 모두가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이분은 과거 천일검의 명호를 쓰셨던 능 여협이시고, 이분이 새로운 천일검이신 금 여협이십니다.”
“오, 바로 그 천일검이시란 말입니까?”
청년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도사와 여관 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그리고 저는 운현입니다.”
운현이 자기를 소개하자 분위기가 단번에 변했다.
그들은 선망의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덜컹.
일곱 청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인사를 했던 청년 도사가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늦은 밤에 찾아와 대단히 죄송합니다. 평소 창룡검주님의 영웅적인 행적을 듣고 흠모하던 중, 공동에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기쁜 마음에 그만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운현은 웃음을 머금었다.
“무례라니요. 괜찮습니다.”
그저 그뿐인데도 여관들은 대번에 눈을 반짝였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그 눈빛에 운현은 헛기침을 했다.
“저는 후기칠성의 무진입니다.”
“후기칠성의 무송입니다.”
“저는 지현이에요.”
청년들은 차례로 자신의 도호를 밝혔다.
일곱 명의 소개가 끝나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예를 표했다.
“공동의 후기칠성이 여러분께 예를 표합니다.”
척.
일곱 청년들의 인사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마치 황궁의 금의위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렇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운현이 그들의 예에 답하자 후기칠성의 표정이 환해졌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또래 젊은이들이었다.
“……그리도 좋은가?”
문득 들린 노부인 능세영의 목소리에 운현이 고개를 돌렸다.
능세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운현은 자신이 계속 웃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크흠. 다들 앉으시지요.”
후기칠성이 자리에 앉고, 운현은 금화영이 그들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금화영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운현을 돌아보았다.
“운 공자. 아까보다 나은데?”
난데없는 말이었지만 운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운현 역시 금화영과 같은 생각이었다.
후기칠성이라는 이 젊은이들의 기세가, 아까 만났던 공동파의 장로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우선 차를…….”
“내가 하지.”
운현의 말에 금화영이 벌떡 일어나서 찻주전자를 쥐었다.
그리고 일곱 명의 젊은이들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그들은 금화영을 경계하거나 적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금화영이 다가오자 은연중에 긴장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놀랍군.’
운현은 감탄했다.
후기칠성이라는 이 젊은이들은 금화영의 경지를 감각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여느 문파의 후기지수들이라면 짐작조차 못할 텐데 말이다.
또르륵.
금화영은 운현의 잔에도 새로 차를 채워 주었다.
옆에 있던 노부인 능세영이 공동파의 젊은 도사들에게 물었다.
“공동은 외부와 교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운 공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무진이라 소개한 청년 도사가 답했다.
“참배객들을 통해 세간의 소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저희가 창룡검주님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복마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복마행은 협객행 비슷한 수련이에요.”
지현이라는 도호를 가진 여관이 덧붙였다.
“강호 무림의 정세를 파악하고 혈교나 마교의 동향을 탐지하기 위해 세상을 순행하는 것이지요. 저희는 얼마 전에 복마행을 했는데 그때 창룡검주님의 영웅담을 듣게 되었어요.”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송이라고 도호를 밝힌 청년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웅맹에 맞설 유일한 사람이라는 소문에 반신반의했었는데, 태평맹에 맞서 홀로 아미를 구하시더군요.”
“맞아요!”
또 다른 여관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反)영웅맹의 기치를 세우시고 소림, 무당, 아미, 화산을 아울러 일대 정파맹을 일으키시더니, 결국에는 영웅맹을 불태우셨지요. 그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그 영웅맹을 말예요!”
“옳습니다. 영웅맹의 죄과를 그대로 갚으셨으니 마땅히 그들이 받아야 할 응보가 아니겠습니까? 창룡검주께서는 천하의 영웅이십니다.”
“저는 창룡검주님을 뵙고 깜짝 놀랐어요. 사실 창룡검주님의 외모에 대해 온갖 소문이 떠돌았잖아요. 그런데 진짜 점잖게 생기셔서…….”
어색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던 운현이었지만 마지막 말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제 외모에 대한 소문요?”
“아, 그게…….”
여관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누구는 관운장 같은 분이시라고 하고, 혹은 나이 많은 고승이라고도 하거든요. 야차같이 무섭게 생기셨다거나, 팔 척 장신의 거한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설마 신승께서 그런 사제를 두실 리가 있겠어요?”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멀쩡한 자신을 두고 야차나 거한이라니?
“창룡검주님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단신으로 태평맹을 쫓아냈다고 하니 야차나 거한 같은 외모가 아닐까 추측하는 것이지요.”
처음에 인사했던 무진이라는 청년 도사가 말했다.
그 말이 일리가 있어서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진은 열기를 띤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대협께서 보이신 영웅적인 행적은 저희 모두를 감동케 하였습니다. 불의에 맞서 홀로 분투하셨으니 마땅히 우리 모두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혈교와 마교에 홀로 맞서는 공동의 상황 때문일까?
그들은 운현의 행적에 과하게 몰입한 듯했다.
그러나 그 순수한 모습이 또한 싫지 않아서, 운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여러분은 복마행에서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되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무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나 저희가 공동을 비운 사이에 스승님들께서 그런 변고를 당하셨을 줄은…….”
무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젊은이들 역시 침통한 표정이 되었다.
운현이 그들에게 물었다.
“전임 사대장로께서 여러분의 스승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저희가 그분들께 가르침을 받고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장차 공동의 칠성진을 책임질 만하다 하여 후기칠성이라는 명호를 받았지요.”
그들의 눈동자에 자부심이 스쳐 지나는 것을 운현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 실례지만 공동에서 여러분의 무위는 어느 정도입니까?”
그 말에 젊은 도사와 여관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대답은 역시나 무진이라는 젊은 도사가 했다.
“여러분께 비하면 저희 각 사람의 무위는 사실 보잘것없습니다. 허나 저희가 펼치는 칠성진은 스승님들께서도 삼극진을 이루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보잘것없다는 말은 겸양이었다.
운현이 보기에 어지간한 문파의 대제자급과 견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때 금화영이 불쑥 물었다.
“칠성진은 뭔가? 삼극진은 또 뭐고?”
“그것은…….”
무진이 처음으로 주저하는 빛을 보였다.
다른 젊은이들과 눈빛을 나눈 무진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창룡검주께 저희가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삼극진과 칠성진은 공동파의 진(陣)입니다.”
무진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혈교와 마교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니라 진을 이루는 것이 효율적이지요.”
운현은 그 말에 동의했다.
혈교나 마교가 정정당당한 대결을 해 줄 리도 없는 데다가, 신속히 상대를 제압하려면 당연히 진을 이루는 것이 낫다.
즉 공동파는 문파보다는 군(軍)에 가까운 전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동의 제자들은 모두가 진에 능숙합니다. 아니, 어떤 상황이건 기본적으로 진을 이루어 대처합니다. 삼극, 사방, 오행, 칠성의 진이 그것이지요.”
운현은 왜 다른 문파들이 공동파를 정사중간이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정당당한 대결을 선호하는 정파와 달리 합격을 당연시 여기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혈교나 마교와 싸우는 것을 상정하고 있으니 검술에 손속을 둘 리가 없다.
하나같이 급소를 노리는 치명적인 검법으로 여럿이 한꺼번에 덤벼드니 정파의 입장에서는 사악하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듣고 있던 금화영이 물었다.
“그럼 여섯 명이나 여덟 명 이상일 땐 어떻게 하나?”
무진은 빙긋 웃었다.
“여섯일 땐 삼극진 둘을 운용합니다. 몇 명이건 기존의 진들을 조합하면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진이 많아지면 결국 전력이 분산되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오행진 셋을 이루었으면 그 셋을 삼극진의 묘리로 운용하는 것이지요. 네 가지 기본 진에만 숙달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전력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말은 쉽지만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두 해도 아니고 십 수 년을 오직 네 가지 진만 수련하는 것이다.
공동파의 제자라면 자다가도, 아니 무의식중에라도 진을 운용할 수 있었다.
당연히 군의 조직처럼 진을 총괄하는 이도 있고 말이다.
“허나 암천무제는 비겁하게도 스승님들께서 홀로 계실 때를 노렸습니다. 스승님들의 오행진이라면 절대 이 같은 일이 없었을 것을…….”
무진은 비통하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다른 도사와 여관 들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겁하다’는 의미는 세간의 상식과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자네들은 어찌 생각하나?”
문득 노부인 능세영이 젊은이들에게 물었다.
“외부 문파와 협력하자는 의견과, 전통을 지켜야한다는 이들이 있다던데.”
“그것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무진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로님들께서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실 것으로 믿습니다. 저희는 그에 순복할 따름이지요.”
“흐음.”
능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젊은이들이 운현을 찾아온 것에 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허나 창룡검주님과 함께 혈교와 마교에 맞설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네, 맞아요!”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운현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허나 공동의 뜻을 존중함이 우선이니, 그저 장로님들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지요.”
“오오.”
별것 아닌 말인데도 후기칠성은 감탄을 흘렸다.
그들이 보기엔 일대 영웅이 공동파를 인정하고 존중해 준 셈이니 감탄이 나올 만도 했다.
“……저기.”
한 여관이 주저하듯 무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창룡검주께서 복마검을 깨울 수 있지 않을까?”
“사매!”
무진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다른 젊은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건 함부로 입에 올릴 것이…….”
“아니, 지현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무송이라는 젊은 도사가 말했다.
“창룡검주께서 복마검을 깨우신다면 더 이상의 분란은 없다. 스승님들의 부상으로 인한 혼란도 단숨에 잦아들겠지.”
무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어차피 복마검을 깨우는 데 따로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다. 언젠가 장문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걸 똑똑히 들었어.”
무진은 고민했다.
그러나 길지는 않았다.
다른 젊은이들과 시선을 나눈 무진은 고개를 돌려 운현을 바라보았다.
“창룡검주님의 뜻이 확고하시다면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하나 있습니다.”
더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무진은 말했다.
“복룡복마검을 깨워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