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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422화 (422/530)

422화. 공손세가의 변고

광서성 계림, 천화객잔.

운현은 객옹과 함께 감찰어사 조관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공손세가의 외당 당주, 공손위를 습격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습격의 주동자가 죽었다고요?”

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 옥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옥졸의 말에 의하면 투옥될 때부터 상태가 이상했다고 합니다.”

조관의 말에 운현은 잠시 침묵했다.

조심스레 조관이 말을 이었다.

“다른 자들은 아는 것이 거의 없어 배후를 밝히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운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외당 당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함께 포박하긴 하였으나 간단한 상황 진술을 받은 후 곧 방면하였습니다. 공손세가에서 의원의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대인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을 뿐입니다. 마침 관부에서도 대연회로 인한 말썽을 경계하고 있었으니까요. 안찰사가 매우 기뻐하더군요.”

안찰사의 실적을 올려 준 셈이니 기뻐하지 않을 리가 없다.

대부분의 지방 대관들은 공적을 세워 중앙으로 복귀하는 것을 바라니 말이다.

“잘됐군요. 아, 그리고.”

운현은 고개를 들어 뒤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그곳을 향해 운현이 말했다.

“설영대도 수고하셨습니다.”

슥.

아무도 없던 곳에 한 사람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예를 표한 후, 다시 모습을 감췄다.

마치 처음부터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으음.”

감찰어사 조관이 신음을 흘렸다.

“저런 자들이 있었을 줄은 몰랐군요.”

“함께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운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행히 같은 맹원이 되었기에 처음으로 부탁을 해 보았지요.”

당문이 공손세가의 사람들 중 누구를 노릴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운현은 북해 ‘설영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접촉은 어렵지 않았다.

제아무리 은밀한 설영대라도 객옹의 손길을 벗어날 수는 없었으니까.

운현이 조금 억지를 쓴 결과 설영대는 협조에 동의했다.

공손세가의 외당 당주에게 닥친 변고가 감찰어사 조관에게 즉시 알려진 건 그들 덕분이었다.

“덕분에 태원에 갈 일이 생겼군요.”

산서성 태원은 북해일문이 있는 곳이다.

운현은 북해의 대궁주를 만나 직접 설명해 주기로 약속했다.

만일 운현이 푸른 늑대가 아니었다면 설영대는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운현의 말을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가지 말고 오라고 해라.”

객옹이 툭 던지듯 말했다.

“어차피 항주 총단이 완공되면 다 와야 할 테니까.”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의외로 객옹은 누가 움직이는가에 대해 신경을 썼다.

“아, 영호준 총군사 쪽은 어떻습니까?”

운현의 물음에 조관이 답했다.

“전령과 쾌속선을 통해 전달했으니 늦지 않았을 것입니다. 곧 답이 오겠지요.”

당문의 연락이 군의 긴급 연락망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게다가 공손세가의 본가가 있는 남창은 항주에서 대단히 가까웠다.

당문의 본가인 사천이나 이곳 계림에서 남창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행이군요. 영호준 총군사라면 안심입니다.”

당문의 방식, 특히 독에 대해서 영호준은 대단히 잘 알고 있었다.

영호준이 나선 이상 그쪽은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자, 그러면…….”

운현이 무언가 말하려던 때였다.

문득 말을 멈춘 운현은 고개를 돌렸다.

객옹도 눈살을 찌푸리고, 조관과 항장익도 운현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달칵.

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객잔으로 들어섰다.

그중 맨 앞에 서 있던 귀여운 인상의 젊은 아가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로 남해검문의 황보선혜였다.

“오라버…….”

마치 꿀이 떨어지는 것 같은 목소리로 황보선혜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딱.

낮은 소리가 울렸다.

황보선혜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저항하는 듯했으나 곧 스르르 눈을 감았다.

뒤에 있던 다른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털썩.

운현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어르신, 그렇게 하시면…….”

그건 황보선혜를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저벅.

운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섰다.

혁련세가의 무복을 입은 그들은 쓰러져 있는 이들을 발견하고 흠칫 발을 멈췄다.

하지만 그들의 놀라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딱.

“윽.”

제법 내력이 있는 이들인지 그들은 눈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쿵, 털썩.

쓰러진 이들은 혁련세가만이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단목세가의 사람들도 있었다.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시면 이렇게 되는군요.”

객옹은 대답조차 없이 찻잔을 들어 올렸다.

“아, 그래도…….”

운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저벅.

“운 대인!”

그 청년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운현이 그에게 말했다.

“반갑습니다. 파 대협.”

그는 바로 남해검문의 파진한이었다.

조관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객옹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

파진한은 운현이 있을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대인께서 이곳에는 어떻게…….”

들어서려던 파진한이 흠칫 멈춰 섰다.

발 앞에 여러 명의 청년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같은 문파인 황보선혜까지 있었다.

“나가자.”

객옹이 말했다.

어차피 차도 다 마신 터라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현은 파진한에게 말했다.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아, 네. 알겠습니다.”

파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 저벅.

운현 일행은 쓰러진 사람들을 피해 객잔 밖으로 발을 옮겼다.

한구석에서 졸고 있던 객잔 총관이 뒤늦게 깨어나 호들갑을 떨었지만 잠에 빠진 사람들은 일어날 줄을 몰랐다.

***

늦은 밤, 공손세가 계림 지부.

외당 당주 공손위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가주 비검 공손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옆에 있던 부총관에게 말했다.

“잘 보살펴 주게.”

“네, 가주님.”

부총관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잠든 공손위를 다시 한번 바라본 후, 공손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

가주 비검 공손월은 문을 닫았다.

내내 무표정하던 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으드득.

‘당문이 기어코!’

공손월은 이를 갈았다.

외당 당주 공손위가 내력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틀림없는 중독 증상이다.

비록 의원은 독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으나 외당 당주인 공손위가 착각할 리가 없다.

당문이 분명 손을 쓴 것이다.

저렇듯 깊은 잠에 빠져든 것도 분명 중독의 후유증이고 말이다.

저벅, 저벅.

후원을 지나 집무실로 걸어가는 공손월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당문이 갑자기 외당 당주를 노린 것은 그들이 이미 행동에 들어갔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절대 공손위를 노리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당문의 독심은 그들의 독보다 더 지독하니까.

탁.

문득 공손월이 발을 멈췄다.

‘……설마!’

그의 눈앞에 본가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공손월의 안색이 변한 바로 그때였다.

“왜 그리 놀라시지요?”

낭랑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공손월은 홱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렸다.

파라락.

한 여인이 캄캄한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탁.

그녀는 가볍게 후원 가운데에 내려섰다.

화려한 옷을 입은 그 여인을 공손월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그녀는 오늘도 태평맹 광서 지부에서 보았던 대외 총괄군사 당설련이었다.

사박.

당설련이 미소를 지으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대답이 없으시군요. 설마 제 무례를 탓하시는 건가요?”

짐짓 과장된 태도로 당설련은 고개를 숙였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허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급히 찾아뵈었으니 부디 헤아려 주시지요.”

그녀의 머리 장식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고개를 든 당설련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무엇에 그리 놀라셨던 것인가요?”

공손월은 대답 대신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공손월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아무것도 아니오.”

“아, 아무것도 아니었군요.”

당설련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또 가주께서 벌써 소식을 들으신 줄 알았어요. 공손세가의 본가에서 변고가 발생하려면 며칠 더 지나야 할 텐데 말예요.”

공손월의 표정이 굳었다.

“……본가의 변고라고?”

당설련은 짐짓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먼 곳으로 떠난 지아비와 부친을 그리워하던 이들이 상심하여 병에 걸리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요. 그렇지 않나요?”

뿌득.

공손월이 이를 갈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그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듯한 분노로 가득했다.

그러나 당설련은 여유로웠다.

“무슨 짓을 하려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가주님이시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창룡맹에 가시려는 거지요? 그것도 지금 이 상황에서?”

당설련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공손세가의 가주가 창룡맹의 맹주를 만났다면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장강 일부 지역의 영향력을 돌려받는 것을 조건으로 창룡맹에 가맹하려는 것이다.

창룡맹으로선 전혀 손해날 것이 없을 터이다.

장강의 영향력이야 어차피 공손세가의 것이었고, 그 대가로 공손세가라는 강력한 맹원을 얻는 데다가 태평맹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저도 할 수밖에 없잖아요. 두 번 다시 딴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가주님의 처지를 똑똑히 알려 드려야 하는 수고를 말예요.”

당설련은 이를 갈았다.

공손세가의 가주에 대한 예의는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허.”

공손월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곧 그의 눈동자에 살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접 네가 찾아온 것이냐? 그 잘난 경고 따위를 전하려고?”

“후후후.”

갑작스러운 웃음에 공손월은 눈살을 찌푸렸다.

당설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쉽지는 않았어요. 제가 직접 확인하겠다는 단서까지 붙이고 나서야 간신히 허락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가주가 딴마음을 먹으면 이미 경고 같은 건 쓸모가 없는데.”

그녀의 말은 옳았다.

가주인 공손월이 마음을 굳힌 이상 경고는 의미가 없었다.

당설련은 공손월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 오늘로 공손가의 가주직에서 내려와 주셔야겠어요.”

공손월은 싸늘한 시선으로 당설련을 노려보았다.

“네가 그리 만들겠다는 것이냐?”

“설마 그럴 리가요.”

당설련은 미소를 지었다.

“부탁드려요. 어르신들.”

그 말이 공손월에게 한 말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 즉시 허공에서 바람 소리가 일었기 때문이다.

사라락.

공손월은 즉시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하늘에서 두 사람이 천천히 내려서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공손월의 표정이 굳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커다란 손이 짓누르는 듯한 엄청난 기세가 허공에서부터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락.

두 사람은 거의 소리도 없이 땅에 내려섰다.

그와 동시에 후원에 있던 대나무가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푸르름을 자랑하던 잎들은 어느새 메마른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당신들은 누군가?”

공손월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붉고 푸른 빛의 화려한 옷을 입은 두 노인이 공손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클클. 그건 알아 무엇하겠느냐? 곧 죽을 목숨인데.”

“허나 공손세가의 가주라면 우리의 명호를 들을 자격이 있지.”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은 조소를, 그리고 푸른 옷의 노인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로 반대되는 말을 했지만 두 노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시에 말했다.

“우리는 청홍쌍노다.”

파스스스.

스산한 바람과 함께 대나무가 때도 아닌 마른 잎을 떨궜다.

대나무만이 아니었다.

후원의 모든 풀과 꽃 그리고 나무 들이 순식간에 말라 가고 있었다.

마치 죽음의 기운이 후원을 뒤덮어 버린 것처럼.

“클클클.”

붉은 옷의 홍노가 웃었다.

공손월의 표정은 더욱 굳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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