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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417화 (417/530)

417화.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광서성 계림, 태평맹 광서 지부.

따가닥, 따가닥.

이른 새벽부터 대여섯 기의 기마가 태평맹에서 달려 나왔다.

태평맹 소속 각 문파의 지부로 향하는 전령들이었다.

지부들은 대부분 계림 시내나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전령의 내용이 알려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것은 바로 태평맹이 대연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이었다.

공을 세운 이들을 치하하고 모두의 노고를 위로한다는 이 연회는, 바로 당일부터 보름간 이어지는 대연회였다.

갑작스러운 발표였지만 태평맹의 힘을 결집하고 문파 간의 결속을 꾀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환영했다.

사실 연이은 무력 제압과 제자들의 부상, 낯선 기후와 풍토로 인해 다들 지쳐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태평맹의 광서 장악을 대내외에 선포한다는 의미에서도 시의적절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태평맹의 각 문파는 물론 계림 전체가 이 소식으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맹의 모든 이들이 대연회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다.

공손세가 계림 지부, 가주 집무실.

“당문의 문주가?”

가주 비검 공손월이 눈살을 찌푸렸다.

외당 당주 공손위는 고개를 숙였다.

“네. 총괄군사 당설련과 현무대주 당엽을 대동하고 어젯밤 천화객잔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천화객잔이라면 현무대의 한 분대가 의식을 잃었다는 곳이군.”

“그렇습니다.”

“흠.”

공손월은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당문의 현무대에 일어난 사건은 무언가의 오해거나 소문이 와전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도 당문은 어젯밤 천화객잔에서 철수했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그들이 말이다.

그런데 당문의 문주가 총괄군사와 현무대를 대동하고 객잔을 찾아갔었다니?

‘이상하군.’

총괄군사 당설련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오만한 당문의 문주, 청염군 당천벽이 직접 움직였다면 무언가 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대연회의 개최라…….’

그렇지 않아도 당문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던 공손월이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공손월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잠깐.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논리적으로도 이어지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공손월의 동물적인 감은 이것이 무언가의 조짐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창룡맹에서 전해 온 서찰에 적혀 있던 ‘접촉’의 조짐 말이다.

공손월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본 외당 당주 공손위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풀이 움직이면 그 아래 무엇이 있겠나?”

대뜸 공손월이 물었다.

공손위는 어리둥절했지만 즉시 대답했다.

“뱀 아닐까요?”

공손월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도 역시 무인이군. 하고 많은 것들 중에 하필 뱀이라고 답하다니.”

공손위는 살짝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문득 타초경사(打草驚蛇)라는 고사가 떠올라서…….”

“괜찮네. 나도 그리 생각했으니까.”

공손월은 공손위의 말을 끊었다.

달칵.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손월은 말했다.

“천화객잔에 가 봐야겠네.”

“네?”

“풀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으니 뱀인지 개구리인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나?”

“허나 대연회에 참석하시려면…….”

“괜찮네.”

공손월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가는 길에 잠깐 들러 볼 뿐이니까.”

“알겠습니다.”

외당 당주 공손위는 고개를 숙여 가주의 명을 받들었다.

말과는 달리 가주 공손월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하지만 공손세가의 이대제자 중 한 명이 이미 천화객잔으로 향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

계림, 천화객잔.

운현은 객옹과 함께 방을 나섰다.

저벅, 저벅.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기며 운현이 말했다.

“오늘은 이강 유람을 해 보시겠습니까? 그 대나무 쪽배는 저도 한 번 타 보고 싶던데요.”

“조심해라.”

툭 던지듯 객옹이 말했다.

“헤엄을 못 쳐서 물에 빠져죽은 고수도 있다니까.”

“네?”

운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수가 물에 빠져 죽다니?

“뭐, 수공에 능한 놈이 바닥으로 끌고 들어갔다고는 하더라만.”

“아, 그렇군요.”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수라 해도 무한정 숨을 참을 수는 없으니 그런 상황이라면 납득이 갔다.

“하지만 고수라도 항상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강호 무림에서는 자기보다 강한 놈을 만나 죽는 게 아니라 방심하다 죽는 법이니까. 특히 물 근처에선 항상 조심하고.”

물에 얽힌 무슨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지 객옹이 눈살까지 찌푸리며 말했다.

운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탁.

발걸음을 옮기던 운현이 문득 멈춰 섰다.

객옹 역시 발을 멈추고 운현을 쳐다보았다.

운현은 객옹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객옹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운현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흥.”

객옹은 코웃음을 쳤다.

“감사할 것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니까.”

그렇게 말한 객옹은 운현을 앞질러 걸어갔다.

저벅, 저벅.

앞서가는 객옹의 뒷모습을 보며 운현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일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자들이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운현의 귀에 파고들었다.

여러 명의 무사들이 일 층에 모여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운현을 지목하며 소리친 것이다.

스릉.

그는 주저 없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외쳤다.

“저 노인네도 한패다! 놓치지 마라!”

운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바로 지난번 객옹이 잠재운 일행 중 한 명이었다.

그때 있던 당견승이 운현과 객옹을 현무대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한 것처럼, 그들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당문도 풀지 못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기대감으로 그들의 표정은 제법 상기되어 있었다.

“쯧.”

객옹이 혀를 찼다.

운현도 난감했다.

일 층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운현과 객옹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서로 무관한 손님들이 아닌, 대부분 태평맹의 무사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정도지만 위안은 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운현이 난감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딱.

나지막한 소리가 울렸다.

그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풀썩, 퍽, 쿵.

여기저기서 소리가 나며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서 있던 자들은 의식을 잃고 무너지듯 풀썩 쓰러졌고, 앉아있던 자들은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긴장이 팽팽하던 객잔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정적에 잠겨 들었다.

“……어르신.”

“왜?”

운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도리어 일이 커지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당문의 현무대 제삼분대가 영문도 모르고 의식을 잃은 장소다.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 분명했다.

“커지면 또 어때서?”

객옹은 운현을 돌아보았다.

“그런 걱정은 네가 아니라 저놈들이 해야 한다.”

당연하다는 듯 객옹은 말했다.

“일이 커져서 누군가 계림을 떠나야 한다면, 그건 우리가 아니니까.”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객옹의 말이 옳았다.

당문의 문주도 눈 아래로 보는 객옹이 태평맹의 다른 문파들을 신경 쓸 리 없었다.

“그렇군요. 그럼 가실까요?”

“오냐.”

운현은 객옹과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쓰러진 사내를 지나치며 흘깃 쳐다보았지만, 의식을 잃은 사람에게 ‘누구에게 함부로 노인네라 하느냐’고 따져 봤자 의미는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탁.

두 사람은 발을 멈췄다.

“흥.”

객옹은 코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알아서 찾아올 줄은 아는구나.”

달칵.

객잔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들어섰다.

바로 공손세가의 가주 비검 공손월과 외당 당주 공손위였다.

그들 역시 이미 운현과 객옹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굴 가득한 놀라움을 감추지는 못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공손세가의 이대제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설마…….”

공손세가의 가주, 비검 공손월이 탄식처럼 말했다.

“독선이십니까?”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환우오천존의 한 사람, 독선의 존재였다.

하지만 객옹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객옹이다.”

공손월은 객옹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전히 놀라워하는 그를 보며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 대나무 쪽배를 타기는 틀린 듯했다.

***

계림, 이강(離江).

운현은 대나무 쪽배를 타지 못했다.

대신 그리 크지 않은 유람선을 타고 이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는 있었다.

공손세가의 가주 공손월이 배를 탈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끼익.

죽립을 눌러쓴 늙은 뱃사공이 긴 장대를 들고 배를 움직였다.

배는 굽이쳐 흐르는 이강을 따라 느긋하게 떠가고 있었다.

“참으로 놀랍군요.”

공손세가의 가주 공손월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곳에서 어르신을 뵐 줄은 몰랐습니다.”

공손월은 정중한 어조로 객옹에게 말했다.

객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공손월은 전혀 불쾌해 하지 않았다.

공포의 대명사이던 독선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공손월은 운현을 돌아보았다.

“맹주께서 접촉해 오실 것이라는 연락은 받았소만, 이곳으로 오실 줄은 상상도 못 했소이다.”

운현은 미소를 지었다.

“한 번 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명승지인 계림에 대한 것인지, 혹은 태평맹 강남 공략의 거점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허허, 그렇소?”

공손월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속으로는 제법 놀라고 있었다.

‘보통 배포가 아니군.’

창룡맹의 맹주가 태평맹의 세력 한복판에, 그것도 강남 공략의 거점에 찾아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운현의 모습은 유람이라도 온 듯 여유롭기까지 했다.

공손월 뒤에 앉아있는 외당 당주 공손위 역시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어르신의 모습을 보고 당문이 제법 놀랐을 것 같소만…….”

“이분은 객옹이십니다.”

운현은 조용히 말했다.

“그저 그뿐입니다.”

그 말은 공손월에게 여러 가지를 확인시켜 주는 말이었다.

‘역시.’

독선은 강호 무림의 일에 나서지 않는다.

그는 객옹이니까.

당문이 갑작스레 대연회를 여는 이유 역시 분명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이 두 사람의 존재를 덮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공손월이 막 입을 열 때였다.

슥.

객옹이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공손월과 공손위는 즉시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객옹이라 말했지만 독선을 눈앞에 두고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쳐다본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기묘한 봉우리가 수려한 풍광을 뽐낼 뿐.

“쯧.”

객옹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그러자 운현이 말했다.

“쫓아낼까요?”

“아니다. 신경 쓸 것 없다.”

객옹은 다시 흐르는 경치로 눈을 돌렸다.

운현 역시 고개를 돌려 공손월을 바라보았다.

“떠난 것 같군요. 하지만 앞으로는 조심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말하는 운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하지만 공손월의 눈살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운현의 말대로라면 누군가 자신들을 미행하고 있었던 데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는 뜻이 된다.

“으음.”

공손월은 신음을 흘렸다.

외당 당주인 공손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독선의 말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공손월과 공손위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러면 왜 저를 만나고자 하셨는지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운현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손월은 눈을 들어 운현을 바라보았다.

초로에 접어든 그의 수염이 강바람에 흔들렸다.

“대협.”

굳은 표정으로 공손월이 말했다.

“부디 공손세가를 도와주시오.”

뒤에 있던 외당 당주 공손위의 눈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운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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