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화. 추포령(追捕令)
남경, 통판(通判) 서극윤의 저택.
대도시 남경의 한 구역을 다스리는 통판 서극윤의 기분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품으려던 예기, 월향을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쯧.”
서극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부총관 장씨를 쳐다보았다.
장 부총관은 얼굴에 천을 감은 채 죄지은 사람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죄를 지은 것은 맞았다.
주인 서극윤의 명을 이행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고개를 들게.”
서극윤의 말에 장 부총관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었다.
얼굴에 천을 둘둘 감은 것은 코뼈가 깨져서이기도 하지만, 주인에게 자신의 고생을 나타내려는 잔꾀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꾀병만도 아니어서, 부총관의 광대와 턱 주위는 시커멓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맨 얼굴로 바닥을 들이박았기 때문이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열다섯 놈을 데리고 갔는데 단둘을 못 당했단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풀 죽은 목소리로 장 부총관이 말했다.
데려간 하인은 대여섯 정도였지만 상관없었다.
상대가 얼마나 흉악한 놈인지 알리기 위해서 약간의 과장은 필요하니까.
“그자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장 부총관은 말을 이었다.
“그놈들은, 그 뭐냐, 무림의 고수였습니다요. 건장한 하인 열다섯을 순식간에 쓰러뜨리더니, 저마저 이 꼴로 만들었지 뭡니까.”
장 부총관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한껏 억울함을 표출했다.
“무림의 고수?”
서극윤은 인상을 썼다.
갑자기 무림 고수라니 난데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장 부총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네. 바로 그 무림의 고수 말입니다.”
사실 무림의 고수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제대로 본 것이 없는 데다, 고수를 알아볼 안목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 부총관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괴이한 짓을 무림의 고수 외에 누가 할 수 있으랴?
검도 차고 있었고, 노인의 범상치 않은 외모며 문사의 살벌했던 눈빛도 장 부총관의 확신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하고 돌아왔다는 겐가?”
하지만 서극윤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어차피 고수니 뭐니 해도 결국 힘 좀 쓰는 저잣거리 무뢰한들 아니던가?”
서극윤에게 무림이란 관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본질적으로 뒷골목 무뢰한과 같은 존재였다.
고수에 대해서도 언뜻 듣기는 했으나 그저 호사가들의 말장난이라 여겼다.
하지만 장 부총관은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나리. 무림의 고수는 다릅니다요. 내공인지 뭔지를 수련해서 맨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지붕 위를 새처럼 날아다닌다지 않습니까? 그자들이 보이지도 않는 수법으로 건장한 하인 열다섯을 삽시간에 나뒹굴게 하는데, 저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요?”
보이지도 않는 수법인 건 옳은 말이었다.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건장한 하인 열다섯이, 실은 대여섯 명이지만,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책임을 면하기 때문이다.
“저는 의연하게 놈들을 꾸짖었습니다. 너희가 감히 통판 나리의 행사를 방해하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놈들은 제 말을 아주 개똥같이 여기며 끝내는 제 얼굴까지 이렇게……. 크흑.”
서극윤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을 본 장 부총관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우는 시늉을 했다.
자신의 말을 개똥같이 여겼다고 했지만, 사실상 그건 통판 서극윤을 무시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감히…….”
서극윤은 이를 악물었다.
장 부총관은 무림 고수라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서극윤에게는 저잣거리의 무뢰한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이 자신을 업신여겼다고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만 같았다.
“저, 그리고 말입니다.”
장 부총관이 은근슬쩍 말을 흘렸다.
“웬 새파란 젊은 놈 하나가 그 기녀 옆에 딱 붙어 있던데…….”
“뭐라고!”
서극윤의 눈썹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게 정말인가!”
“네, 제가 이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장 부총관은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드득.
서극윤은 이를 갈았다.
“내가 저를 어여삐 여겨 주었거늘 그 은혜를 모르고 젊은 사내를 들여?”
서극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내 가내의 모든 종을 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연놈들을 반드시 잡아 족치고야 말겠다!”
탕.
서탁을 내리치며 서극윤이 소리쳤다.
그의 수염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나으리.”
장 부총관이 서극윤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어찌 번거로이 처리하려 하십니까? 천하의 나리께서 그깟 연놈들을 벌하시는 데 굳이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은근한 목소리로 장 부총관은 말을 이었다.
“그냥 추포령을 내리시지요.”
서극윤의 눈살이 꿈틀했다.
“추포령?”
“네. 그렇습니다.”
추포령(追捕令)은 범죄자들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추포령을 내리려면 남경의 사법을 담당하는 추관(推官)의 재가가 필요했다.
남경의 현 추관은 무척이나 깐깐한 자여서 서극윤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추포령은…….”
“생각해 보십시오. 나리”
장 부총관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관의 추포령이 내려지면 제아무리 무림 고수라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설령 요행히 도망한다 하더라도 온 천지에 발붙일 곳 하나 없을 것이며, 어디를 가든 관의 추적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범죄자들에 대한 추포령은 모든 지방 관청에 전파된다.
말 그대로 천하에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셈이다.
“또한 방자한 월향 역시 그제야 나리의 위세를 실감할 터이니, 결국 스스로 나리께 찾아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런 소란이나 뒤탈 없이 나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서극윤은 장 부총관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소란과 뒷탈이 없다’는 점이 말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남경의 통판인 자신이 고작 그들을 잡겠다고 난리를 피워서야 되겠는가?
“그자들의 이름은 알고 있나?”
장 부총관이 알리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름이나 명호는 알지 못하오나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굴만 안다면 충분히 추포령을 내릴 수 있었다.
용모파기를 그리면 되니까.
“알았네.”
서극윤은 결심을 했다.
“내일 바로 형님을 뵈러 갈 테니 준비하게.”
그가 말하는 형님은 바로 남경의 부승, 서개강이었다.
“네! 나리!”
장 부총관의 대답은 사뭇 힘이 넘쳤다.
통판 서극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으니 이제 일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 만든 놈들과 옆에서 비웃던 월향에게 복수할 날도 머지않다고, 장 부총관은 확신했다.
***
남경의 이인자인 부승 서개강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촌인 통판 서극윤이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찾아온 것인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극윤이 가져온 이야기는 서개강의 예상과 사뭇 달랐다.
“추포령?”
앞에 놓인 두 장의 용모파기를 힐끔 쳐다보고 서개강이 물었다.
서극윤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무림의 고수라 하니 아무래도 영웅맹인가 하는 곳의 수적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개강은 인상을 썼다.
“거긴 이미 무너졌다. 그것도 모르느냐?”
“그, 그렇습니까? 그럼 아마도 잔당인가 보군요.”
잠시 당황한 서극윤은 얼른 말을 이었다.
“이자들은 남경 시내에서 감히 제 종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는 조정과 황실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뭇 비분강개한 목소리였지만 부승 서개강은 탐탁잖은 눈빛으로 서극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앞에서 수적이니, 영웅맹이니 떠든 말들은 다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진짜라면 서극윤이 자신에게 달려올 이유가 없으니까.
“쯧.”
서개강은 혀를 찼다.
“……또 여자 문제냐?”
서개강의 말에 서극윤이 움찔했다.
그는 즉시 부인했다.
“아닙니다. 형님. 제가 무슨 여자를…….”
“네가 기녀 하나를 못 품어 안달이라는 소문이 내 귀에도 들리더구나. 남경의 통판이 그깟 기녀 한 명 어쩌지 못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서개강은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
“게다가 지난번 일을 덮느라 내가 부윤에게 고개까지 숙인 걸 잊었느냐? 기녀 따위야 얼마든지 건드려도 상관없다만 죽이진 말았어야지!”
“죽이지 않았습니다. 형님!”
서극윤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저 버릇없이 반항하기에 한 대 탁 친 것뿐인데……. 게다가 근래에는 기루에 발길조차 향한 적 없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대신 장 부총관을 매일 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서개강은 서극윤을 노려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신변 관리를 철저히 해라. 너도 한낱 통판으로 끝나고 싶지 않거든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하란 말이다!”
서극윤은 여전히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개강은 더 큰 문제를 저지르지만 자신이 말한 대로 철저하게 ‘신변 관리’를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서극윤조차 악랄하고 지독하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서극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쯧.”
서개강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혀를 찼다.
그리고 앞에 놓인 두 장의 용모파기를 쳐다보았다.
젊은 문사 한 사람과 인상이 사뭇 범상치 않은 노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그 기녀의 정인과 후원자쯤 되는 모양이었다.
‘영웅맹의 수적이라…….’
서극윤의 종을 때렸다니 범행은 확실하다.
영웅맹이라는 죄목도 시의적절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정에서 영웅맹 토벌에 대한 평가가 한창 좋은 상황 아닌가?
물론 용모파기만 보아서는 수적과는 한참이나 멀어 보이지만 말이다.
“알았다.”
서개강은 말했다.
“내 추관에게 말해 놓겠다. 늦어도 사흘이면 정식으로 추포령이 내려질 것이다.”
추포령이 내려지면 관이 추포에 나서고 곳곳에 방문(榜文)이 붙는다.
말 그대로 온 천하에 범죄자로 공표되는 것이다.
서극윤의 표정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형님.”
“됐다. 그보다 신변 관리나 철저히 해라. 아, 그리고 이자들의 뒤는 알아보았겠지?”
서극윤은 웃었다.
“이따위 놈들에게 어찌 뒤를 봐주는 세력이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개강은 찌푸린 눈살을 펴지 않았다.
“여긴 남경이다. 무심코 건드렸다가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이 아니더냐?”
남경은 북경과 함께 대륙의 두 심장 중 하나다.
다른 지역과 달리 독립적인 행정기관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황궁에 있는 대부분의 기관들이, 비록 규모는 작지만 모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유한 상인들이 많은 광동성 광주와 빗대어 ‘광주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남경에서 직위 자랑하지 말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유비무환이라 하였으니 반드시 뒤를 확인해 봐라. 알겠느냐?”
“네, 형님.”
서극윤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러다 문득 서개강에게 물었다.
“부윤께는 알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부윤은 대도시 남경의 총책임자다.
하지만 서개강은 코웃음을 쳤다.
“흥, 이제 곧 물러날 퇴물에게 그걸 왜 알린단 말이냐?”
현재 남경의 부윤인 주덕일은 이미 나이가 많고 기력이 쇠했다.
남경부 내에서는 그가 곧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떠돌고 있었다.
실제로 주덕일은 대부분의 업무를 부승인 서개강에게 맡기기까지 했으니, 앞날이 창창한 서개강이 그를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그건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다.”
“네, 알겠습니다.”
웃음을 머금으며 서극윤은 말했다.
뜻을 이루어 한껏 기분이 고양된 서극윤에게, ‘뒤를 확인해 보라’는 서개강의 충고는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흐흐.’
원숙하고 기품 있는 월향의 자태를 떠올리며 서극윤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스스로 찾아와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사흘이라…….’
추포령이 내려지고 두 놈의 용모파기가 그려진 방문이 남경 곳곳에 붙여질 사흘 후가, 참으로 멀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