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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87화 (387/530)

387화. 황궁의 희소식

북경, 자금성.

도찰원에 도착한 두 권의 보고서는 즉시 동창 병필태감 박 공공이 있는 대전으로 전해졌다.

동창의 수반은 제독동창이지만 황제의 신임과 총애를 등에 업고 실무를 총괄하는 박 공공이야말로 동창의 실세였다.

게다가 박 공공은 황상의 조칙에 따라 임명된, 한때 이름만 남았던 도찰원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총책임자였다.

그러므로 박 공공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별 감찰어사에 관련된 보고서가, 아무도 손대지 못한 채 박 공공에게 올라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탁탁탁.

대전 앞에 도착한 도찰원의 관리는 숨을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살폈다.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관리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채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저벅.

입구 부근에 서 있던 환관이 매서운 눈빛으로 관리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지요?”

관리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사뭇 고압적이었다.

도찰원 관리는 조심스레 답했다.

“특별 감찰어사와 관련하여 도찰원에 올라온 보고입니다.”

환관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즉시 대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박, 자박.

대전 중앙에 마련된 대(臺) 위에서 업무를 보던 박 공공은 고개를 들었다.

환관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공공, 도찰원에서 특별 감찰어사와 관련한 보고가 올라와 있습니다.”

“오, 그래요?”

박 공공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서 들라 하세요.”

“네, 공공.”

환관은 관리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관리는 앞으로 나아와 박 공공에게 예를 표하고는 두 권의 두루마리를 받들어 올렸다.

박 공공 옆에 서 있던 다른 환관이 내려와 그 두루마리를 받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박 공공에게 전했다.

파락.

박 공공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의 눈살이 살짝 일그러졌다.

“운 학사님의 필체가 아니네요.”

관리가 고개를 숙인 채 공손히 답했다.

“네. 하나는 감찰어사 조관이 무한에서 올린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진예림이라 하는 자가 항주에서 올린 것입니다.”

내용은 보지 못했지만 누가 어디에서 보낸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관리의 대답에 박 공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예림. 분명 감찰어사 조관의 보좌였지요?”

“네, 그렇습니다.”

박 공공은 조용히 두루마리의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잠시 후.

“후훗.”

박 공공이 웃음을 흘렸다.

“과연 운 학사님이시네요.”

미소를 머금으며 박 공공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 표정이 어찌나 밝은지 옆에 있던 환관이 놀랄 정도였다.

그러나 박 공공은 웃음을 지으며 두 권의 내용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폈다.

사락.

읽기를 마친 박 공공이 두루마리들을 정리했다.

“좋아요. 아주 좋네요.”

탁.

두 권의 두루마리를 든 박 공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자 전하를 뵈어야겠어요.”

그건 매우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에 되묻지 못했다.

두 사람의 환관은 즉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공공.”

앞에 있던 도찰원의 관리는 살짝 당황했다.

자신도 대답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말이 자신도 따라오라는 의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박, 자박.

그사이, 박 공공은 관리를 지나쳐 대전을 나섰다.

두 명의 환관과 네 명의 금의위가 즉시 박 공공의 뒤를 따르고 대전은 침묵에 잠겨 들었다.

도찰원 관리의 고민은 해소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 이제 돌아가도 되는 건가?’

혹시라도 ‘박 공공이 돌아와서 자신을 찾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 속에 도찰원 관리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의 걱정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는 다음 하늘의 절대적인 신임 아래 황실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동창 병필태감의 직위조차 그저 감투의 하나에 불과한 박 공공이었기 때문이다.

자금성, 황태자궁.

“전하.”

“어서 오게. 박 공공.”

책을 읽고 있던 황태자는 고개를 들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박 공공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영웅맹이 무너졌사옵니다.”

“오오, 그래?”

황태자는 기뻐하면서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니, 벌써 말인가? 게다가 황군이 움직인 적도 없다고 알고 있는데?”

“니예, 그렇사옵니다.”

박 공공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허나 영웅맹이 무너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옵니다. 항주에 있던 영웅맹 총단은 불에 타 무너졌고, 무한에서는 저들의 핵심 전력이던 마두들과 수적들이 모조리 소탕되었다 하옵니다.”

“허어.”

황태자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잘됐군. 아주 잘됐어!”

“감축 드리옵니다. 전하.”

박 공공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영웅맹이 무너졌으니 역적의 무리가 토벌되었으며, 또한 장강을 어지럽히던 우환이 완전히 해소되었나이다.”

영웅맹은 항주 혈사를 주도한 세력 중 하나다.

비록 조정의 눈을 가린 자들은 박 공공에 의해 숙청되었으나 영웅맹 역시 반드시 토벌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강은 대륙의 혈관과도 같은 중요한 물길이다.

수많은 물자가 장강을 따라 오르내리며, 풍요한 강남의 산물이 장강과 대운하를 통해 자금성으로 올라왔다.

그러니 장강을 어지럽히는 영웅맹을 조정이 주시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바로 그 영웅맹을 특별 감찰어사가 무너뜨린 것이다.

그것도 황군이 움직이는 일조차 없이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덕이오니 이제 온 천하가 전하의 혜안을 깨닫게 될 것이옵니다.”

박 공공의 말은 단순한 아첨이 아니었다.

장강에 자리 잡은 수적 떼는 역대 왕조들의 골칫거리였다.

비록 수적들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라지만 그 구심점이던 영웅맹의 총단이 불에 타 무너졌다.

그 자체만으로도 결코 작지 않은 공적인 데다가, 황실의 위엄이 서슬 푸르게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공은, 특별 감찰어사로 운현을 임명하도록 황제에게 진언한 황태자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하하하.”

황태자는 크게 웃었다.

“그게 어디 내가 한 것이던가? 다 자네와 운 학사의 덕이지.”

그는 운현을 운 학사라 불렀다.

박 공공이 그러하듯 황태자는 운현을 이미 자신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옵니다. 제가 어찌 이 일에 감히 공을 말할 수 있으리이까?”

박 공공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전하의 크신 뜻과 혜안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감히 불충한 뜻을 품고 있던 자들 또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옵니다.”

황태자와 그를 추종하는 박 공공이 실세를 쥐었다지만 불만을 가진 자들은 아직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황태자가 황실과 백성을 돌본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명분과 실적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그런 자들이야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인가? 이로써 황상 폐하의 근심을 덜 수 있게 되었으니 다만 그것이 기쁠 따름이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황태자를 향한 황제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황태자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이제 운 학사를 입조토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은 곧 정식으로 관직을 내리겠다는 뜻이었다.

“무엇을 줘야 기뻐할까? 내각대학사나 전각대학사는 어떤가? 당장 수보를 맡길 수는 없으니 우선은 차보 정도로 하고…….”

내각대학사와 전각대학사는 황제에게 옳고 그름을 아뢰는 직위 중 하나다.

나라의 일을 직접 관할하지는 않으나 매사에 황제가 그들의 의견을 묻는 데다가 심지어 황제의 공식 답변까지 초안하니, 이 소수의 대학사들이야말로 관료 중에서는 실세 중의 실세라 할 수 있었다.

비록 수장인 수보가 아니라 그 아래인 차보라 해도 말이다.

“참으로 성은이 망극하신 말씀이옵니다. 전하.”

박 공공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허나 아직 일대상인이 남아 있으며 운 학사의 정식 보고 또한 올라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상을 내리는 것은 그 이후로 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옵니다.”

“흠, 그도 그렇군.”

황태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기쁜 소식을 전하였는데 아무것도 답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우선 자네가 알아서 운 학사의 노고를 위무토록 하게.”

위무(慰撫)는 어려움을 위로하고 달래 준다는 뜻이다.

운현의 공적이 대단히 흡족한 황태자로서는 당연한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니예. 전하의 뜻을 받들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허허허. 그래. 그리하게.”

황태자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참으로 기쁘군. 내게 자네가 있고 또 운 학사가 있으니 천하에 그 무엇이 부럽겠는가? 하하하하.”

환관 조직의 정점에 박 공공이 있고, 관료 조직의 최고위에 운현이 온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은 없었다.

황태자는 참으로 흡족했다.

“전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박 공공은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조아렸다.

그 역시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대전 가득 울리는 두 사람의 웃음은 한동안 끊일 줄을 몰랐다.

***

영웅맹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폭풍처럼 강호 무림을 휩쓸었다.

맹주이자 환우오천존의 한 사람이던 철혈사왕 염중부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항주에 우뚝 서 있던 영웅맹 총단은 불에 타 무너진 채 흉한 잔해만 남았다.

게다가 무한을 습격했던 칠백여 명의 수적과 오십을 넘는 마두들이 죽거나 사로잡혔다는 소식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마두들 중에는 전대 거마라 불리던 이들도 열을 넘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곧 항주와 무한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웅맹 총단이 불타는 것을 항주 모든 주민들이 똑똑히 보았고, 맹주 직속이던 철혈대와 그 대주가 붙잡혀 관아에 넘어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강의 대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영웅맹 지부들은 순식간에 비어 버렸다.

남아 있던 수적들이 돈 될 만한 것을 챙겨서는 모조리 달아나 버린 것이다.

수적과 마두 들이 활보하던 장강 유역은 순식간에 수적들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창룡맹이 반영웅맹의 기치를 내세운 지 불과 몇 달 만에 이루어진,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쾌거였다.

이제 강호 무림의 사람들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창룡맹이 무림맹의 뒤를 이어 강호 무림의 새로운 중심이 되리라는 것을.

항주, 영웅맹 폐허.

“허어, 이거 완전히 다 타 버렸군요.”

영호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잘 사용할 텐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비싼 건물들을 다 태운 걸까요?”

무한에 있던 영호준은 임시 총단에 있던 모든 인원을 데리고 항주로 내려왔다.

소림의 혜천은 물론 감찰어사 조관과 항장익도 함께였다.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운현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염중부는 왜 철수하는 상황에서 구태여 이 건물들을 불태웠을까?

“어, 길이 어두워서 그랬나요?”

담소하의 말에 영호준이 눈살을 일그러뜨리는데, 옆에서 진예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싫어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진예림이 폐허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자기 자리를 빼앗기는 것 같았을 테니까요.”

그건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염중부의 괴팍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뭐, 항주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중얼거리던 영호준은 혀를 찼다.

“어쨌든 이거 다 치우고 다시 지으려면 시간 좀 들겠군요.”

눈앞에 펼쳐진 영웅맹의 잔해는 어마어마했다.

이것을 다 치우는 것만도 제법 큰 일이 될 터였다.

“어쩐지 감회가 새롭네요.”

진예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여기에 창룡맹 총단을 세운다니까 말예요.”

창룡맹 정식 총단은 이곳 항주에 세우기로 했다.

본래 무림맹이 있던 자리이니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고, 장강 하류에 대운하까지 가까우니 실용성으로도 최적의 위치였다.

“자, 그럼 문제는 어느 정도로 크게 지을까 하는 것인데…….”

영호준이 운현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어떻게 할까요? 맹주님.”

말하는 영호준의 눈동자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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