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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81화 (381/530)

381화. 결전의 밤

장강에 산재한 영웅맹 지부의 수는 삼십여 곳에 이른다.

많은 숫자였지만 대륙을 가로 지르는 기나긴 장강을 생각하면 그조차 많다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조직과 규모를 갖춘 곳은 대도시나 물류가 활발한 하류에 위치한 일부 지부들 뿐, 대부분의 중소 지부들은 예전의 수채들이 깃발만 바꿔 단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영웅맹 지부 총동원령이 내려졌어도 과거 무림맹이 무너질 때처럼 수천의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것은, 설령 관이 아무 제재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깊은 밤, 무한 근교의 한 야산.

‘이런 젠장맞을…….’

장삼채는 속으로 욕을 했다.

무한 지부의 부지부장이었던 그는 수풀 속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는데 다시 사지로 들이미는 건 대체 뭐냐고. 젠장, 젠장.’

무한의 영웅맹 지부가 무너지던 날, 장삼채는 몇몇 수하들과 함께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본래라면 염중부의 책임 추궁이 두려워 그대로 도망쳤을 것이지만, 부상을 입은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지부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책임을 지고 처벌받는 일은 면했다.

하지만 무한 지리에 익숙하다는 것 때문에 이렇게 다시금 길잡이 겸 선봉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벅.

수풀을 헤치자 눈앞이 확 트였다.

화려한 도시 무한의 야경이 멀리서도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저곳이 무한이냐?”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장삼채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네, 그렇습니다.”

눈앞에 있는 뚱뚱한 노년의 사내는 전대 거마로 손꼽히는 황산혈불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과 다르게 손속이 매섭고 심성이 잔혹하기로 소문났던 자였다.

“어머, 무한은 여전히 멋지네.”

사락.

요염한 미소를 흘리며 한 여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중년의 미부인처럼 보이는 그녀는 옥면나찰이었다.

언뜻 기녀처럼 보이는 외모와 옷차림이었지만 수적들조차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지 못했다.

그녀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남자의 정혈을 갈취하고 젊은 여인들의 피로 목욕한다는 전대 거마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가 늦은 건 아니겠지?”

옥면나찰이 장삼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장삼채는 화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창룡맹 임시 총단은 멀지 않으니, 신호만 떨어지면 바로 쳐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옥면나찰은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요염하게 웃었다.

“이왕이면 맹주님께 좋은 첫인상을 심어 드리고 싶거든.”

“그야 당연하오.”

바삭, 바삭.

수풀을 헤치고 십여 명이 넘는 사내들이 나타났다.

“영웅맹에 첫발을 디뎠으니 당연히 우리의 활약을 보여 드려야 하지 않겠소? 크하하하.”

그들은 모두가 전대 마두로 불리는 이들이었다.

이번 무한 공략을 위한 실제적인 무력이자 핵심이라 할 만했다.

그리고 이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황산혈불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클클클. 맹주님께서 오로병진(五路竝進)의 책략을 세우셨으니 우리는 그 한 축으로 마땅히 전공을 거두어야 할 것이다. 보라, 천기조차 우리를 돕지 않는가?”

다섯 길로 한꺼번에 치는 것, 오로병진이 바로 이번 영웅맹의 전략이었다.

장강의 상류와 하류, 그리고 무한 북쪽과 남쪽에도 지금 이들과 같은 무리가 어둠을 틈타 움직이고 있었다.

거마라 불릴 정도의 거물들은 물론이고, 마두들만 해도 이미 오십을 넘었으니 말 그대로 영웅맹의 핵심 전력 전부가 무한에 집결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비라도 왔다면 수적들에겐 지옥 같은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하늘이 도왔는지 구름만 잔뜩 끼었을 뿐 비는 오지 않았다.

야습에 최적의 상황이 된 것이다.

“호호. 창룡검주가 무한 한복판에 임시 총단을 세우지 않은 것이 그들에겐 천추의 한이 되겠군요.”

옥면나찰이 웃으며 말했다.

창룡맹의 임시 총단은 무한 외곽에 있다.

마두들을 가로막을 성곽이나 장애물은 하나도 없었다.

“한복판이면 또 어떤가?”

황산혈불이 비릿하게 웃었다.

“이 기회에 한바탕 무한을 뒤집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지.”

바스락, 바삭.

마두들의 뒤로 수적들이 수풀을 헤치고 나섰다.

칼을 차고 흉흉하게 눈을 빛내는 그들의 수는 백오십여 명에 이르렀다.

“그것도 그렇네요. 호호호호.”

웃던 옥면나찰이 고개를 돌려 장삼채를 보았다.

“신호가 언제 오를 거라고 했지?”

“새, 새벽 즈음입니다.”

“하아, 맹주님께서 직접 쏘아 올리시는 신호라니…….”

옥면나찰은 혀를 내밀어 자신의 빨간 입술을 핥았다.

“아주, 짜릿한데?”

이번 무한 공략은 자그마치 염중부가 직접 나서는 것이다.

영웅맹의 맹주이자 환우오천존의 한 사람인 그가 나선 이상, 실패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마두들은 확신했다.

슥.

황산혈불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살폈다.

“새벽까진 아직 시간이 있으니 다들 쉬게 해라.”

“네!”

장삼채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가 수하들에게 명을 전하고, 백오십여 명의 수적들은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짐은 한곳에 모아라! 어차피 나중에 가지러 올 테니까.”

장삼채가 눈살을 찌푸리며 수적들에게 말했다.

이제 짐 같은 건 필요 없다.

필요한 건 칼과 분노, 그리고 탐욕뿐이다.

수적들이 부스럭거리며 야산에 자리를 잡는 동안, 마두들은 저 멀리 빛나는 무한의 야경을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음, 그런데 혹시 관이 움직이지는 않을는지……”

마두 중 한 명, 독심수라가 무심코 혼잣말처럼 말했다.

황산혈불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헛소리냐! 그래서 밤을 틈타 은밀히 움직인 것이 아니더냐?”

날카로운 그 반응에 독심수라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이면 나중에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해서…….”

“문제라니, 무슨 문제?”

황산혈불은 윽박지르듯 말했다.

“모른다고 잡아떼고 나중에 돈이나 찔러 주면 아무 문제 없다. 관인들은 본래 자신의 보신밖에 안중에 없으니, 죽을 작정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히 우리 영웅맹을 건드리려 하겠느냐?”

말을 꺼냈던 독심수라는 입을 다물었다.

염중부의 명으로 수군도독이 죽었다는 소문은 이미 영웅맹 내에 자자했다.

수군도독마저 죽이는 이가 어찌 지방 관원을 두려워하랴?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공을 세울 생각이나 해라. 알았나?”

독심수라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쯧.”

황산혈불은 혀를 차고는 고개를 돌렸다.

독심수라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감히 황산혈불에게 대놓고 반항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무공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전 중이라면, 그리고 뒤에서 친다면 문제는 다르다.

‘개 같은 놈. 내게 모욕을 주다니……. 어디 두고 보자.’

독심수라는 복수의 때를 기다리며 황산혈불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황산혈불은 아랑곳없이 무한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크크. 이제 곧…….”

저 빛나는 야경은 자신들의 것이 된다.

임시 총단을 세운 창룡맹은 불타 사라지고 대신 영웅맹의 깃발이 펄럭이게 될 것이다.

한때 무림맹의 눈을 피해 살던 자신이, 내일 아침이면 대도시 무한을 마음껏 활보하게 되는 것이다.

“듣기로는 창룡검주라는 자가 아주 젊다던데…….”

옥면나찰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맛이라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 말에 황산혈불은 피식 웃었다.

그 어떤 것을 대도시 무한을 유린하는 희열에 비할 수 있으랴?

저 멀리 반짝이는 무한의 야경을 바라보며 황산혈불은 끓어오르는 탐욕을 애써 참아야했다.

***

같은 날, 밤.

사천성 성도 태평맹 총단.

총단 내 연무장에는 당문의 정예들이 모여 있었다.

당문의 일대제자와 이대제자들로 구성된 그들은 흥분과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이 출정으로 인해 당문과 태평맹, 나아가서는 강호 무림의 판도가 새롭게 짜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힌 연무장에서, 당문의 정예들은 출정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이 이번 강남대계의 핵심입니다.”

당설련은 낭랑한 목소리로 출정을 앞둔 마지막 보고를 마쳤다.

평소의 화려한 옷 대신 그녀는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반짝이는 은실로 수놓은 옷깃과 소매는 그녀의 신분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었다.

“수고했다.”

당문의 문주, 청염군 당천벽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강남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겠구나.”

이번 출정은 문주 당천벽이 직접 이끄는 것이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모두 문주님께서 공손세가와 혁련세가를 설득해 주신 덕분이지요.”

당설련의 말에 당천벽은 웃음을 흘렸다.

“겸양할 필요 없다. 네가 이번 일을 계획한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당설련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문주 당천벽은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에 푸른 옷과 붉은 옷을 입은 두 노인이 앉아 있었다.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풍기는 기세는 전혀 다른 달랐다.

“청홍쌍노께서 큰일을 맡아 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클클클.”

붉은 비단 옷을 입은 노인, 홍노가 웃음을 흘렸다.

“감사할 필요 없네. 이 또한 당문을 위한 것이니.”

푸른 비단 옷을 입은 청노는 허연 수염을 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주 당천벽은 또 다른 노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바로 독기공의 고수, 당벽후였다.

당설련과 함께 아미산으로 향했으나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던 그도 이번 출정에 나서는 것이다.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비록 이번 출정은 내가 이끄나 그 성패는 자네에게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야.”

노년의 당벽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전의 추태를 만회할 기회를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벽후는 비록 문주보다 나이는 많으나 항렬이 낮다.

가문의 규율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당문에서는 당연한 태도였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군. 수고해 주게.”

문주 당천벽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당설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좋다. 그럼 이제…….”

그때였다.

“문주님.”

나지막한 목소리가 회의실 밖에서 들렸다.

당천벽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급보입니다.”

당천벽은 당설련에게 눈짓을 했다.

당설련은 즉시 회의실 문을 열었다.

달칵.

밖에 서 있던 사람은 당문의 총관이었다.

그는 공손히 예를 표하고 당설련에게 한 장의 서찰을 전했다.

당설련이 서찰을 받자 총관은 다시 예를 표한 후 회의실의 문을 닫았다.

서찰은 즉시 문주 당천벽에게 넘겨졌다.

바스락.

당천벽은 서찰을 펼쳤다.

서찰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썹이 꿈틀 경련했다.

“……쯧.”

문주 당천벽이 혀를 찼다.

당설련은 움찔했다.

아니나 다를까? 당천벽은 서찰을 탁자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살펴보아라.”

당설련을 향한 당천벽의 눈빛은 불쾌감을 가득 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가득하던 흐뭇한 미소는 더 이상 없었다.

사락.

당설련은 서찰을 들었다.

그리고 문주 당천벽이 불쾌해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북해일문이 서안을 지나 한중으로 향했다. 대체 그들이 왜 한중에 발을 들인단 말이냐?”

당천벽의 목소리는 사뭇 거칠었다.

한중은 사천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군대가 바로 이 한중을 통해 사천으로 쳐들어왔다.

당문의 문주로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설련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지금…….’

서찰에는 한중으로 향한 북해일문의 무사들이 백여 명에 가깝다고 적혀 있었다.

태평맹을 도우려는 의도일 리는 없었다.

북해일문은 이미 창룡맹에 가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아득.

당설련은 이를 악물었다.

당천벽은 서늘한 시선으로 말했다.

“강남을 도모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북쪽을 소홀히 했구나.”

소홀히 한 것이 아니다.

사천성의 북동쪽, 서안은 본래 화산의 영역이다.

영웅맹의 무한 공략 때문에 화산이 정예를 무한으로 급파한 사실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화산에 뒤를 찔릴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해일문이라니.

바스락.

서찰이 당설련의 손에서 소리를 냈다.

어쨌든 북해일문이 태안을 출발해 서안을 지나도록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과가 이러니 문주에게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너무 노하지 마시게, 문주.”

푸른 옷을 입은 노인, 청노가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대사를 앞두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좋지 않네.”

“클클, 그렇다. 북해일문의 백 명 따위가 무슨 위협이 될까?”

붉은 옷을 입은 홍노도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 이 당벽후로도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을. 클클클.”

그의 말은 옳았다.

북해십이비의 한 사람인 빙설만 제외한다면.

“……알겠습니다. 청홍쌍노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 일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문주 당천벽이 말했다.

하지만 그의 굳은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슥.

당천벽은 당설련을 돌아보았다.

“대책을 마련해라. 예정된 출정까지 이제 한 시진이 남았으니, 그 사이에 만족스러운 대안을 가져오지 못하면 이번 일에서 너를 제외시키겠다.”

그건 이번 대계를 위해 쏟아부은 당설련의 노력을 송두리째 빼앗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러나 당설련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사락.

“네, 알겠습니다.”

굳은 목소리로 당설련은 말했다.

고개 숙인 그녀의 눈빛은 원독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너…….’

그녀의 원독이 향하는 대상은 바로 창룡맹 맹주, 운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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