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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76화 (376/530)

376화. 무한의 야경

무당파 본산의 두 고수, 현음 진인과 적양자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청년은 분명 창룡맹의 맹주, 운현이었다.

창룡검주이자 일대 정파맹의 맹주인 그가 이곳 기루에 있었던 것이다.

현음 진인과 적양자는 즉시 검을 거두고 예를 표했다.

“무당의 현음이 대협을 뵙습니다.”

“적양이 대협을 뵙습니다.”

그들의 예는 사뭇 정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운현이 기혼단에 중독된 수많은 무당파의 제자들을 살리고, 무당파 원로들의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게다가 옆에 서 있는 노인은, 약당의 약사들마저 경의를 표했다는 노의원이 분명했으니 두 번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 모습에 크게 놀란 사람들은 바로 무당의 속가제자들이었다.

본산의 고수가 예를 표하는 모습을 본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사문의 법도는 지엄하다.

그들은 일제히 검을 맞잡으며 예를 표했다.

“대협을 뵙습니다!”

“대협을 뵙습니다!”

십여 명이 넘는 속가제자들이 예를 표하는 광경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악사들과 화설, 예향은 놀란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았다.

운현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정중하게 답례했다.

“반갑습니다. 무당의 분들이셨군요.”

현음 진인과 적양자가 고개를 들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현음 진인이 말했다.

“어찌 된 일인가 했더니, 과연 대협께서 두 마두를 처치하신 것이로군요.”

그는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창룡맹은 반영웅맹의 기치를 들었다.

게다가 ‘영웅맹에 맞설 자는 창룡검주뿐이다’라는 소문이 천하에 자자했으니, 운현이 영웅맹의 두 마두를 처치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 이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려던 운현은 멈칫했다.

객옹이 이 일에 연관된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운현은 말을 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 제가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현음 진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아직은 창룡맹이 영웅맹과 전면전에 나설 때가 아니다.

그랬다간 강호 무림이 또 한 번 혈풍에 휩싸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추측한 현음 진인은 운현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곳 일은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네. 부탁드립니다.”

현음 진인은 속가제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마두들의 시신을 치워라. 바로 이곳을 떠난다.”

“네!”

속가제자들은 즉시 현음 진인의 명을 받들었다.

펄럭.

피에 물든 귀면마존과 음산살귀의 시신이 천에 둘러싸이고, 곧 속가제자들의 손에 실려 나갔다.

속가제자들 중 제일 처음 들이닥쳤던 이가 악사들을 쳐다보았다.

“당분간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발설하지 마시기 바라오.”

한 사람, 한 사람 시선을 마주치며 그가 말했다.

그 눈빛이 사뭇 강렬해서 악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영웅맹의 보복 같은 건 걱정할 필요 없소. 두 마두가 죽었으니 이제 영웅맹은 이곳 무한에서 자취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오.”

그건 허세가 아니었다.

무당이 산문을 열었다는 소문은 이미 무한에도 자자했다.

실제로 무당 본산의 두 고수가 그들의 눈앞에 서 있지 않은가?

“대협.”

현음 진인의 목소리에 운현은 고개를 돌렸다.

“저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운현은 객옹을 슬쩍 쳐다보았다.

객옹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지만 이대로 나가는 걸 좋아할 것 같지는 않았다.

운현은 현음 진인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곳에 조금 더 있겠습니다.”

“그렇습니까?”

현음 진인은 속가제자 중 한 명을 바라보았다.

속가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마두의 시신을 이미 기루 밖으로 은밀히 가지고 나갔다는 의미였다.

“그럼 나중에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저희가 머무는 곳은…….”

“괜찮습니다.”

현음 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무당의 속가제자들은 이곳의 사정에 아주 밝으니까요.”

속가제자들이 오랫동안 일구어 낸 무한의 기반은 결코 작지 않았다.

비록 잠시 영웅맹에 빼앗기기는 했지만, 무한에 뿌리를 내린 무당 속가제자들의 인맥은 대단히 깊고 넓었다.

귀면마존과 음산살귀가 이 기루에 있다는 것도 바로 그런 인맥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다.

“두 분을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 그럼 나중에 뵙지요.”

현음 진인과 적양자는 공손하게 운현과 객옹에게 예를 표했다.

운현 역시 정중하게 두 사람에게 답례했다.

탁, 탁.

현음 진인과 적양자는 즉시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속가제자 한 명이 화설에게 말했다.

“기루에 대한 염려는 마시오. 우리가 모두 책임질 것이오.”

“……알겠어요.”

화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속가제자는 운현을 향해 정중하게 예를 표한 후,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마치 한차례 광풍이 지나간 듯했다.

아니, 광풍이라는 표현은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영웅맹의 두 마두가 포악을 부리다가 죽임을 당하고, 무당의 속가제자들과 고수들까지 들이닥쳤다가 떠났으니 말이다.

예향과 악사들은 아직도 놀란 표정으로 운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 무당의 고수들과 속가제자들이 운현에게 공손히 예를 표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

이제 운현이 귀면마존과 음산살귀를 처치했다는 것은, 비록 그들이 본 건 검을 뽑은 모습뿐이었지만, 아예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크흠.”

운현은 헛기침을 했다.

“우선 걸칠 것이라도 드리는 게 어떨까요?”

그건 예향을 위해 한 말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찢어진 앞섶을 붙잡고 있었다.

“아.”

화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바로 자리를 준비하지요. 아래층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으며 화설이 말했다.

객옹은 운현을 돌아보았다.

그냥 나가자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객옹은 나지막이 말했다.

“너와 어디만 가면 문제가 생기는군.”

아마도 그건 개봉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 것이다.

그때도 개봉 주루에서 사람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쁘진 않다.”

그 말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자신도 객옹의 말에 동의하는지라 아무 반론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운현과 객옹은 온갖 진귀한 요리가 가득한 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난장판이 되었던 주변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악사들도 물렸다.

활짝 열린 창밖으로 펼쳐진 대도시 무한과 장강의 야경은 말 그대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좋군.”

객옹이 나지막이 말했다.

“네. 이곳에서 보는 장강의 야경은 참으로 아름답지요.”

화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락.

객옹 옆에 앉은 그녀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을 들었다.

“마침 좋은 술이 있어요. 한 잔 하시겠어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화설이 물었다.

하지만 객옹의 대답은 무뚝뚝했다.

“아니, 이것으로 족하다.”

그의 앞에 있는 잔에는 차가 채워져 있었다.

“아, 그러시군요.”

화설은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술병을 내려놓고 긴 젓가락을 들어 요리 한 점을 객옹 앞에 놓았다.

“음.”

객옹은 자신의 젓가락으로 음식을 들어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화설은 내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참으로 아름답다고 그녀 자신이 말했던 장강의 야경에는 눈조차 돌리지 않았다.

달칵.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저, 저기…….”

옆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운현이 돌아보자 예향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 한 잔 하시겠어요?”

“아닙니다.”

운현이 얼른 말했다.

“저도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시군요.”

술병을 내려놓는 예향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새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친 그녀의 모습은 아까보다 더 아름다웠다.

운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칠현금을 하십니까?”

“네.”

예향이 대답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한 곡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에요.”

사락.

기쁜 듯 자리에서 일어난 예향은 자신의 칠현금을 들었다.

연주를 위한 받침대에 칠현금을 올려놓은 그녀는 자세를 바로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뭇 진지해진 그녀의 눈동자가 매력적으로 빛났다.

따랑, 땅.

예향의 손가락 끝에서 음이 흘러나왔다.

애잔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칠현금의 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향기로운 차와 부드러운 음식, 그리고 창밖에 펼쳐지는 장강의 야경은 절로 흥취를 돋웠다.

“좋군.”

객옹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든지 오세요.”

화설이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이 오시는 날은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운현은 내심 그녀의 화술에 혀를 내둘렀다.

매력적인 여인이 그런 말을 하는데 즐겁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객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야경이 보고 싶어지면.”

무뚝뚝한 객옹의 말에도 화설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네. 기다릴게요.”

***

다음 날 아침.

객잔에서 식사를 마친 후, 운현은 일행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말해 주었다.

객옹의 일은 대강 얼버무렸지만 일행 중 그 내용을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군요. 어쩐지 늦게 오신다 했더니…….”

영호준이 말했다.

“음, 두 마두가 죽었으니 이제 무당의 속가제자들이 영웅맹 지부를 몰아내려고 하겠는데요?”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속가제자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했다.

“안찰사사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영호준이 묻자 감찰어사 조관이 답했다.

“안찰사사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무당의 속가제자들이 나선다고 하면 안찰사는 오히려 흡족해 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영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이곳의 분쟁에 우리는 끼어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마 무당파도 고수를 보내기는 했지만 두 마두의 처리 정도에만 국한할 뿐, 직접 영웅맹 지부와 싸우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의 분석은 정확했다.

무당도, 영웅맹도 이 일이 전면적인 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정을 살펴보면 무당이 훨씬 유리했다.

“물론 영웅맹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요. 어쩌면 새로운 마두들을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당파와 창룡맹이 버티고 있는 데다 안찰사사까지 나서면 쉽게 움직이진 못할 것입니다.”

“결국 무당의 속가제자들이 이기겠네요?”

담소하가 말했다.

“그렇게 되어야지.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하네.”

영호준은 씩 웃었다.

“안 그러면 이곳에 임시 총단을 두는 우리 창룡맹의 체면 문제가 아닌가?”

그건 끼어들지 않겠다고 한 것과 상충되는 말이었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비록 임시라지만 창룡맹 총단이 있는 곳에 영웅맹 지부가 남아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 그럼 다들 이곳으로 오라고 하면 되겠군.”

“오라고요? 누구를요?”

담소하의 물음에 영호준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야 물론 남궁세가에 있는 진예림 소저지. 아미에 있는 항주 무관의 정예들도 부르고, 소림에 있는 혜천 스님도 빨리 오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독고랑과 함께했던 항주 무관의 정예 서른 명은 아미에서 훈련 중이었다.

임시라 해도 창룡맹 총단이 자리를 잡았으니 그들을 부르는 것이다.

“자, 이제 드디어 무한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되는 건가?”

사뭇 기대된다는 듯 영호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잠 못 이루는 밤’은 유흥이 아니라 야근을 뜻하는 것이리라.

담소하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운현이 쓴웃음을 짓자 영호준이 얼른 말을 이었다.

“아, 걱정 마십시오. 보상은 확실히 할 테니까요.”

영호준은 손으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보였다.

“이걸로요.”

말하는 영호준의 표정은 더없이 환했다.

하지만 담소하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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