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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73화 (373/530)

373화. 폭풍 전의 고요

창룡맹에 화산과 무당이 가맹한 사실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뒤이어 소림과 모용세가까지 가세한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이토록 신속하게 이뤄질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평맹과 영웅맹 사이에서 고전할지 모른다는 일부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창룡맹은 일대 정파맹이자 명실상부 강북 무림의 패자로 올라섰다.

그래도 태평맹과 영웅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눈치 빠른 상단과 문파들은 창룡맹에 줄을 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옮겨 갔다.

바로 창룡맹이 언제 영웅맹을 쳐서 무림맹의 원수를 갚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강호 무림의 이목은 온통 창룡맹과 맹주인 창룡검주에 쏠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 같았다.

항주 영웅맹, 맹주전.

맹주 철혈사왕 염중부는 눈살을 찌푸렸다.

“알아냈나?”

“네. 그렇습니다.”

문사 차림의 수하는 즉시 서찰 하나를 받들어 올렸다.

일전에 염중부가 명한 대로, 남경의 기루를 통해 수군의 훈련 계획을 유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염중부는 거칠게 서찰을 펼쳤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염중부가 이를 갈았다.

으득.

“이런 미친!”

염중부는 분노를 터트렸다.

“무한부터 중경까지라고? 게다가 언제까지 한다는 기한조차 없어?”

파삭.

서찰이 염중부의 손 아래서 구겨졌다.

“이건 우릴 아예 죽이겠다는 뜻이지 않은가!”

쾅.

염중부는 서찰을 구겨 쥔 채 의자의 팔걸이를 내리쳤다.

고급스러운 목재 팔걸이가 박살 났지만 염중부는 상관도 하지 않았다.

그가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무한부터 중경이라면 기나긴 장강의 절반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장강 물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선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장강 하류가 사실상 전부 포함되는 것이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수하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설명했다.

“제아무리 장강 수군이라 해도 어찌 그 기나긴 장강 하류를 전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무한과 중경 사이, 임의의 지역에서 불시에 수군 훈련을 실시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건 언뜻 합리적인 계획이었다.

겉치레만 하던 예년에 비해 보다 실전 상황에 가까운 훈련을 하겠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무한에서 중경이라는 대규모 지역이 지정된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예상 구간이 좁아서야 임의의 지역에서 훈련을 하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상선의 통행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나은…….”

“그걸 말이라고 해!”

염중부가 수하에게 소리쳤다.

“중요한 건 무한과 중경 사이가 수군 훈련 지역이 된다는 것이다! 장강 하류를 지나는 모든 배를 검문하겠다는 뜻이라고!”

수군 훈련 지역은 당연히 군의 통제 구역에 속한다.

무한과 중경에 검문소가 크게 설치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실상 장강 하류를 지나는 모든 배를 수군이 검문, 통제하게 되는 것이다.

“허나 지금도 검문은 받고 있습니다. 그, 늘 하던 대로 돈을 좀 쥐어 주면…….”

“하!”

염중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을 흘렸다.

그리고 수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게 통할 것 같아? 그놈들이 우리 영웅맹의 배들을 순순히 지나게 둘 것 같냔 말이다!”

서슬 퍼런 염중부의 기세에 수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납득한 것도 아니었다.

수군 훈련이 영웅맹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염중부의 말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비약이 심했기 때문이다.

“운현, 이놈…….”

염중부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염중부가 물었다.

“수군 훈련이 시작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나?”

수하가 즉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빠르면 삼 개월, 늦어도 육 개월 안에는 시작될 것 같습니다.”

수군의 대규모 훈련을 위한 준비는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

예년보다 훨씬 방대해진 규모를 감안하면 여러 달에 걸친 준비가 필요했다.

“삼 개월이라…….”

염중부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고뇌는 길지 않았다.

“영웅맹 전 지부에 명을 내려라.”

서늘한 목소리로 염중부가 말했다.

“모든 지부는 삼 개월 안에 올해 정해진 상납금의 두 배를 총단으로 가져온다. 단 하나의 지부도 예외 없이, 무조건 말이다.”

수하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 그건 너무…….”

“수단과 방법은 묻지 않겠다.”

염중부는 말을 이었다.

“못 채우는 놈은, 내가 직접 죽여 주겠다고 전해라.”

살기등등한 염중부의 눈빛은, 그 말이 결코 허세나 과장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수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각 지부에 정해진 상납금은 과중할 정도였다.

그런데 두 배를, 그것도 삼 개월 내에 가져오라는 건 아예 약탈을 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맹에 들겠다는 자들은 아직도 많이 있나?”

예전 무림맹의 위세에 밀려 숨어 지내던 사파의 인물들은 자청하여 영웅맹에 들기를 원했다.

그러나 염중부는 극히 일부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탓에 가맹을 기다리는 사파 고수들이 항주 시내에 넘쳐날 정도로 말이다.

“네. 가맹이 허락되는 경우가 워낙 드물어서 오히려 숫자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전부 다 받아 준다고 전해라.”

수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염중부는 말을 이었다.

“허나 그들은 맹에 기여한 것이 전무하니,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서, 성의요?”

“그래.”

염중부는 턱을 들어 수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장 많이 상납한 자부터 맹의 직위를 하사하겠다.”

수하는 당황했다.

상납이라는 조건도 그렇고 직위를 준다는 말도 난데없었다.

“지, 직위라면 어떤 직위를…….”

염중부는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히 새로 만들어야지. 그것까지 내가 말해 줘야 하나?”

이미 영웅맹에는 이름은 거창한, 그러나 실권은 전혀 없는 직위들이 있었다.

예컨대 과거 수로채 연합의 총채주였던,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무심의 직위 ‘태주’처럼 말이다.

그런 이름뿐인 지위를 더 만들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 맹에 합류시키면 아무래도 말썽이 날 것입니다.”

염중부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었다.

무림맹에 쫓길 정도로 난폭한 사파의 인물들이 조직에 적응하여 고분고분 명을 들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중부는 피식 웃었다.

“걱정할 것 없다. 제아무리 흉신악살 같은 놈들이라 해도 쓸 곳은 많으니까. 아니, 혈기가 넘칠수록 더욱 좋지.”

수하는 염중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흉신악살 같은 자들을 쓸 곳이라니? 무언가 의도가 있는 듯했지만 감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창룡맹의 총단은 어디 있나?”

갑작스러운 염중부의 질문에 수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직 총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흥, 그럴 리 없지.”

염중부는 코웃음을 쳤다.

어떤 조직이건 반드시 지도부가 있어야 유지된다.

거대 문파들을 거느린 창룡맹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설령 당장은 없더라도 분명 총단의 기능을 하는 조직은 있을 것이다. 알아내라. 은밀하게.”

“네. 알겠…….”

“또 하나.”

슥.

수하에게 몸을 가까이 한 염중부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장강 수군도독의 행적을 파악해라.”

“네?”

수하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창룡맹과 수군도독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무얼 하는지, 누굴 만나는지,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전부 알아내. 알았나?”

속삭이듯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수하의 귀에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수하는 덜덜 몸을 떨었다.

그러나 염중부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수하는 고개를 숙였다.

염중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져 갔다.

“당분간 장강 대상단 계획은 중지한다. 나가 봐.”

장강 대상단은 염중부가 가장 신경을 쓰던 계획 중 하나였다.

그것마저 중지하라는 건 염중부가 이번 일에 전력을 쏟으려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표정이 굳어 버린 수하는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뒤 뒷걸음으로 맹주전을 나갔다.

탁.

문이 닫히고 화려한 맹주전에는 오직 염중부만이 남았다.

“이놈, 운현…….”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로 염중부는 중얼거렸다.

“내가 이대로 죽을 줄 알면 오산이다. 죽더라도 결코 혼자 죽지는 않아.”

으드득.

철혈사왕 염중부는 이를 갈았다.

그의 두 눈동자는 마치 독기 어린 뱀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

모용세가를 떠난 운현 일행은 호북성 무한으로 향했다.

대도시 무한은 강남의 명루로 꼽히는 황학루가 있는 유서 깊은 도시였다.

그러나 동시에 천하의 삼대 화로라 일컬을 정도로 무덥고 습한 도시이기도 했다.

따각, 따각.

마차가 무한에 가까워지자 담소하는 혀를 내둘렀다.

“이거 더워 죽겠는데요?”

담소하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창밖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있긴 했지만 그 정도로 더위를 달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습하기까지 해서 흘러내린 땀이 마르지도 않는다.

“이러다가는 더위로 쓰러지는 게 아닐까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영호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매화검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고수인 그에게 더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다 방법이 있네. 그늘에 가만히 있는다든지, 바람이 잘 통하도록 건물을 짓는다거나 말일세. 게다가 날이 더우면 좋은 점도 있지.”

“그게 뭔데요?”

“밤이 되면 다들 밖으로 나온다는 거네. 더위에 지친 여인들이 시원한 밤바람과 짜릿한 즐거움을 찾아 거리로 나오는 거지.”

날이 더우면 번화가의 밤은 더 화려해진다.

무한은 천하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이자 부유한 도시였다.

밤거리가 흥청이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사람들이 시원한 계곡을 찾아 물놀이를 하니 눈이 즐겁기도 하고.”

물놀이라고 해 봤자 계곡에 발을 담그는 정도다.

하지만 영호준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자네는 모를 걸세. 수줍은 아가씨들이 하얀 발을 살짝 내놓은 모습은 정말이지…….”

“이곳엔 큰 문파가 없습니까?”

문득 운현이 물었다.

대화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였다.

“큰 문파는 없지만, 큰 세력을 가진 곳은 있습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영호준이 말을 이었다.

“바로 영웅맹이지요.”

무한은 장강에 접한 대도시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곳은 바로 영웅맹 무한 지부였다.

“그 전에는요?”

담소하의 말에 영호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전에도 비슷했네. 제법 힘을 가진 문파들은 있었지만, 제일 큰 세력을 가진 이들은 무당파 속가제자들이었지.”

영웅맹이 들어서기 전, 무한을 장악하고 있던 이들은 바로 무당파 속가제자들이었다.

각자 소속된 문파나 무관은 달랐지만 그들은 동문의 의리와 뛰어난 무공 실력으로 감히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설령 속가제자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문파들은 꼬박꼬박 무당에 예물을 보냈다.

사실상 무당파와 연관이 없이는 무한에서 현판을 올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무림맹이 무너지고 무당파가 모든 제자들의 산문 출입을 금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 다시 속가제자들이 일어나겠네요.”

담소하가 말했다.

“이제 무당파는 창룡맹 소속이잖아요.”

“그야 당연히 그렇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영호준은 말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네. 특히 강호 무림에서는 언제나 피가 흐르기 마련이지.”

영웅맹 무한 지부가 순순히 물러날 리는 없다.

무한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무당파 속가제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운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따각, 따각.

“그나저나 역시 총단 건물은 무조건 바람이 잘 부는 곳으로 해야겠습니다.”

영호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자들 땀 냄새 속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인상까지 찌푸리며 영호준은 단언했다.

여전히 무심한 객옹과 땀이 흐르는데도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는 감찰어사 조관을 싣고서, 마차는 유서 깊은 강남의 대도시 무한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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