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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71화 (371/530)

371화. 무림 대계

하남성 모용세가, 외당 당주 모용미의 집무실.

운현 일행은 모용미와 함께 집무실에 모여 있었다.

“북해일문의 가맹이라…….”

영호준이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이해 못 할 제안은 아니군요.”

“하지만 북해일문은 태평맹에 가려던 것 아니었어요?”

담소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심지어 아미산에서는 태평맹의 비무를 맡기도 했잖아요.”

“정식으로 태평맹에 가맹하진 않았지. 게다가 그사이 강호 무림의 정세가 완전히 바뀌었잖나?”

그렇게 말한 영호준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흐음, 태평맹의 구성은 그런 의미였나?”

“뭔데요? 같이 좀 알아요.”

담소하의 말에 영호준이 눈을 들었다.

“태평맹의 아미파 공략은 실패했네. 맹주님께서 창룡맹을 창설한 덕에 말이야. 그리고 아미와 남궁세가, 뒤이어 화산과 무당, 소림, 이제는 모용세가까지 창룡맹에 가세했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나?”

“창룡맹이 일대 정파맹으로 자리를 잡은 거요?”

“그것만은 아니에요.”

모용미가 나지막이 말했다.

“바로 창룡맹이 강북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뜻이지요.”

“옳습니다. 과연 모용세가의 외당 당주시군요.”

영호준이 빙긋 웃으며 모용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사실 강북의 상황은 대치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컸네. 제갈세가와 모용세가, 북해일문을 내세운 태평맹이 창룡맹의 화산, 소림, 무당과 맞서는 형국 말일세.”

담소하가 영호준의 말뜻을 즉시 깨달았다.

“그런데 모용세가가 창룡맹에 가맹해 버렸군요.”

영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태평맹 입장에서는 시작도 하기 전에 강북의 중심, 즉 중원을 창룡맹에 완전히 빼앗긴 셈이 되는 걸세. 그리고 동시에 북해일문과 제갈세가는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이고.”

지리적으로 볼 때 제갈세가는 오랜 경쟁자였던 남궁세가와 신흥 모용세가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북쪽인 산서성에 위치한 북해일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용세가가 창룡맹에 가세하고 소림, 무당, 화산, 남궁세가까지 버티고 있으니 사실상 남쪽을 향한 길이 완전히 막혀 버린 셈이다.

“지난번에 북해일문에 대해서 잠깐 알아봤네만 아직 산서성 전체를 아우를 정도는 아닌 듯하더군. 지금으로선 기껏해야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 정도뿐이야.”

“그래요? 빙설인가 하는 여인을 보니 무공이 대단하던데 아직 태원만 장악한 정도라고요?”

담소하의 말에 영호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태원만 해도 대단한 거네. 조직이란 게 한두 사람 뛰어나다고 금방 커지는 것이 아니지. 그 대단한 철혈사왕 염중부가 아직까지 고생하는 걸 보게.”

영호준은 무언가 잠시 생각하더니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마 당설련 소저는 강북이 혼란한 틈에 최대한 빨리 세력을 넓히려 했겠지. 굳이 북해일문을 끌어들이려는 것도 화산과 소림, 무당이 움직이지 않는 사이에 강북을 잠식하려던 의도였을 거고.”

무림맹이 무너진 이후 태평맹, 즉 당문의 확장은 강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것도 주로 화산, 무당이 있는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화산과 소림, 무당까지 전부 움직이기 시작했잖아요. 게다가 모용세가도 가맹했고.”

“그렇지.”

영호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마디로 태평맹의 강북 전략은 망한 거네. 그리고 북해일문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고.”

“태평맹으로 가느냐, 창룡맹으로 오느냐인가요?”

담소하의 말에 영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차피 북해일문에겐 창룡맹밖에 없네. 선택은 그저 지금이냐, 아니면 나중이냐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북해일문에 불리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담소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영호준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말했잖나? 태평맹의 강북 전략은 망했다고. 당설련 소저는 한 번 아니다 싶으면 두 번 다시 안 돌아보는 성격일세. 그런 그녀가 손해를 보면서 북해일문을 지원할 것 같은가? 절대 아니지.”

“흠, 그래서 북해일문이 가맹하겠다고 한 거로군요.”

“그렇지. 우리 입장에서 보면 뒤통수 맞을 염려가 없어지는 셈이니, 시간을 좀 끌다가 가맹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이것저것 받아 내면 참 좋긴 하겠는데…….”

북해의 강인한 준마와 짐승들의 모피, 희귀한 약재, 귀금속은 모든 이들이 탐내는 것이다.

영호준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운현에게 말했다.

“가맹과 탈맹에 관한 권한은 전적으로 맹주님께 있으니, 어떻게 결정하시든 저는 불만 없습니다.”

운현은 모용미를 돌아보았다.

북해일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문파는 모용세가였기 때문이다.

“저희도 상관없어요.”

모용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걸 계산하고 창룡맹에 함께한 건 아니니까요.”

그녀의 말은 운현의 가슴에 따뜻하게 와 닿았다.

“감사합니다.”

운현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모용미가 미소로 받았다.

“북해일문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태평맹은 어떻게 나올까요?”

담소하가 영호준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모용미가 했다.

“강남으로 진출하려 할 거예요.”

“강남요?”

모용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남아 있는 태평맹 문파들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지요. 대표적으로 공손세가, 혁련세가만 봐도 강남의 오랜 강자들이니까요.”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강북은 이미 창룡맹에게 넘어갔으니 남은 선택은 강남뿐이다.

담소하는 놀란 눈으로 운현을 바라보았다.

“우와. 운 대인께서 대단하신 줄은 알았지만 정말 놀랍네요. 이제 수군 훈련이 시작되면 장강도 막혀 버릴 테니, 영웅맹과 태평맹을 한꺼번에 밀어내 버리신 거잖아요.”

“바로 그걸세. 우리 맹주님께서 이런 강호 무림의 대계를 구상하고 계셨을 줄 누가 알았겠나?”

영호준의 말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대상인이 모은 것은 헤치고 이어 놓은 것들을 끊겠다고는 했지만 강호 무림의 대계까지 구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영호준은 놀랍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모용세가에 쪽지를 보내셨다길래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그러셨나 보다 했더니 이런 놀라운 결과가…….”

“사사로운 건 맞습니다.”

운현은 모용미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게는 아주 특별한 분들이시니까요.”

모용미는 빙긋 미소 지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영호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큰일이군요. 맹주님께서 너무 유능하셔서 예상보다 일찍 총단의 기능이 필요하게 되었는데요?”

창룡맹에 가맹한 문파는 소림, 화산, 무당, 아미, 남궁세가와 모용세가로 늘어났다.

앞으로 가맹할 가능성이 있는 북해일문이나 다른 문파들까지 염두에 둔다면 총단의 기능이 필수적이었다.

기본적인 정보 공유와 최소한의 활동 연계만 고려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당장 총단을 세우자는 건 아니고, 우선 총단의 기능을 수행할 곳이 필요한데…….”

“그 정도라면 모용세가에서 하셔도 괜찮아요.”

모용미가 말했지만 영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다른 문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다들 자기 문파로 오라고 난리일걸요.”

영호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지리적 위치로 보자면 모용세가가 참 좋은데 이거, 참…….”

“관부는 어떻습니까?”

문득 감찰어사 조관이 말했다.

“안찰사사라면 조정과 연락도 쉽고 관의 통신수단을 이용할 수 있으니 연락도 쉽습니다.”

감찰어사 조관의 말에 영호준이 눈을 빛냈다.

관부는 사실 천하에서 가장 잘 조직된 통신수단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당장 사방으로 뻗은 관도만 해도 나라의 것이 아닌가?

최근 일행이 장강을 오르내릴 때도 관선을 사용했고 말이다.

운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관의 시설을 사사로이 사용하면 박 공공께 정치적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조관은 고개를 저었다.

“운 대인께서는 정식으로 관직을 제수받은 분이시고 창룡맹의 활동 또한 업무와 무관치 않으니 문제 될 것 없습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관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박 공공께서 조금 불만스러워하시더군요.”

“네?”

놀라는 운현에게 조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소식이 뜸하시다고요.”

“아…….”

자주 소식을 보내지 못하긴 했다.

조관이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고 있으니 상황을 모르진 않겠지만 굳이 저런 말을 전하는 것은 운현을 향한 박 공공의 마음이 그만큼 깊기 때문일 터였다.

“좋은 생각이군요.”

무언가 생각하던 영호준이 문득 말했다.

“하지만 안찰사사에 들어가는 건 모양이 좋지 않으니 관부의 통신수단만 빌리는 걸로 하지요. 건물 정도야 우리도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요.”

현재 창룡맹의 재정은 매우 풍족했다.

총단의 기능을 수행할 어지간한 장원 정도는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디로 가자는 건가요?”

담소하의 물음에 영호준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무한일세.”

“무한요?”

“무한?”

담소하뿐만 아니라 조관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한은 모용세가의 남쪽에 위치한 호북성의 성도이자 장강에 위치한 대도시다.

“왜 무한입니까?”

조관의 물음에 영호준이 답했다.

“무한은 지리적으로 중앙인 데다 장강에 있어서 연락이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호준은 씨익 웃었다.

“장강의 남쪽, 즉 강남입니다. 공손세가가 자리잡은 남창이 바로 코앞이지요.”

사실 코앞이라 할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다.

호북성과 강서성으로 각기 속한 성도 다르며 거리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렇다 할 큰 문파나 세력이 없는 것도 분명했다.

“후후후.”

영호준은 정말로 즐겁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당설련 소저의 간담이 아주 서늘해지겠는데요?”

그제야 일행은 영호준의 의도를 이해했다.

말하자면 이것은 공손세가와 태평맹에 대한 선전포고인 것이다.

잠시 후,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회의가 끝났다.

달칵.

용무가 끝난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 학사님.”

모용미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운현에게 말했다.

그녀의 호칭이 변한 건 사적인 용무라는 의미다.

“네.”

“예전에 가르침을 주셨던 본문의 제자들이 뵙고 싶다고 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아, 그렇습니까?”

운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찌 그들을 잊을 수 있을까?

비록 시작은 좋지 않았어도 그들은 운현이 직접 가르친 이들이다.

단 사흘뿐이었지만 늦은 밤까지 함께 수련을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좋습니다.”

운현은 흔쾌히 수락했다.

“고마워요. 오후에 수련이 있으니 그때 함께 가시지요.”

환하게 웃으며 모용미가 말했다.

그녀의 미소는 오전의 햇살처럼 밝고 부드러웠다.

***

그날 밤.

모용세가의 숙소에서 운현은 객옹과 함께 앉아 있었다.

예전에 가르쳤던 이들을 만났던 탓인지 운현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갓 들어온 태를 벗지 못하던 그 제자들이 지금은 다들 강렬한 눈빛의 무사들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운현을 향한 존경의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운현도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다들 놀라울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예전이라고?”

객옹의 물음에 운현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네. 사실 제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상황이 아주 달랐습니다. 그때는…….”

“음?”

찻잔을 들던 객옹이 문득 손을 멈췄다.

운현도 즉시 하던 말을 그쳤다.

슥.

객옹은 창문 쪽을 돌아보았다.

“누군가 오는군.”

“네, 저도 느꼈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객옹과 운현은 여전히 창문을 주시했다.

그러다 잠시 후, 문득 객옹이 눈살을 찌푸렸다.

“또 저 아이냐?”

운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운현에게도 친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톡.

그사이, 방문 앞에서 작은 인기척이 났다.

그 작은 소리에는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뚜렷했다.

저벅.

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초대받지 않은 방문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문 앞에 있는 사람은 북해십이비의 빙설이었다.

여전히 무표정한 그녀 뒤로, 검은색의 긴 너울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바로 며칠 전, 개봉의 누각에서 헤어졌던 북해빙궁의 대궁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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