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검전 리마스터-368화 (368/530)
  • 368화. 개봉의 밤

    하남성, 개봉의 번화가.

    영화각은 대도시 개봉에서도 제법 이름난 주루였다.

    삼 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도 유명했지만,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분위기로 많은 젊은이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대도시 개봉의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영화각은, 오늘 밤에도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하하하.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라고.”

    “안 되기는! 너보다는 잘나가거든?”

    네 명의 젊은이들이 떠들며 영화각으로 들어섰다.

    모두가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외모도 사뭇 준수했다.

    “어서 오십시오. 공자님들.”

    주루 지배인이 환하게 웃으며 젊은이들을 반겼다.

    “오, 장 지배인. 그래, 오늘 분위기는 좀 어때?”

    청년, 소소업이 툭 던지듯 지배인에게 말했다.

    제법 나이 차가 있었지만 소소업의 말투는 거칠 것이 없었다.

    “하하하, 저희야 언제나 최고지요.”

    장 지배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소소업은 눈살을 찌푸렸다.

    “최고 같은 소리 하네. 지난번에도 최고라더니 아주 개판이었잖아!”

    나이 어린 소소업이 윽박지르듯 말했지만 장 지배인은 인상조차 쓰지 못했다.

    소소업의 가문은 돈도 많고 개봉의 다른 유력가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당장 옆에 있는 건장한 청년만 해도 무가인 왕가장의 자제인 데다, 다른 두 사람도 제법 알려진 가문의 자식들이었다.

    “아이고, 그때야 말썽이 일어나서 그런 것 아닙니까? 다른 손님들과 시비가 붙는 바람에…….”

    사실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은 소소업이었다.

    남자와 함께 온 여자에게 추근거리니 당연히 말썽이 안 날 리가 없다.

    “그래서, 그게 우리 잘못인가?”

    왕가장의 둘째 아들, 왕경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장 지배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공을 수련한 왕경은 체격이 크고 눈빛도 강렬해서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기가 죽을 정도였다.

    실제로 무공도 상당히 강했다.

    “당연히 아니지요. 그저 상황이 그러했으니 양해를 해 주십사 하고…….”

    “변명은 됐고, 어서 자리나 안내해.”

    소소업이 장 지배인의 말을 끊었다.

    장 지배인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네, 이리로 오십시오.”

    소소업과 다른 세 청년은 지배인을 따라 자리로 향했다.

    시끄럽게 떠들던 아까와 달리, 네 청년들은 말도 잊은 채 여자 손님들을 살펴보기에 바빴다.

    주루 이 층에 오른 소소업과 세 청년들은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음담패설이나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과장되이 웃곤 했다.

    그러는 중에도 간간이 아래층 손님들, 특히 여자들을 살펴보는 건 잊지 않았다.

    “쯧. 오늘도 영 아니군.”

    소소업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젠 여기도 맛이 갔어. 좀 더 화끈한 데 없나?”

    앞에 앉은 청년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소주나 항주에 가야지. 그곳에 그렇게 미녀들이 많다잖아.”

    “씨앙. 노친네가 보내 줘야 갈 거 아냐?”

    짜증을 내던 소소업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래층을 훑었다.

    “야, 야!”

    다른 청년이 다급하게 말했다.

    “왜?”

    소소업이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그러나 정작 말을 한 청년은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봐! 빨리!”

    “대체 뭔데 그래?”

    소소업은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단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영화각 삼 층, 보통 사람은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그곳에 엄청난 미녀가 앉아 있었다.

    개봉의 어지간한 미녀는 다 보아 온 소소업조차 놀랄 정도로 말이다.

    사락.

    그러나 미녀의 모습은 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시녀로 보이는 여인이 삼 층 입구의 휘장을 쳤기 때문이다.

    본래 늘 가려져 있던 휘장이 어째서 걷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소소업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덜컥.

    소소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런 미녀는 개봉, 아니 천하를 뒤져도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 어찌 이대로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야, 왜 그래?”

    청년 중 누군가 말했지만 소소업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소소업의 발길은 삼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하고 있었다.

    “크흐흐. 잘됐군.”

    일어난 사람은 또 있었다.

    왕가장의 둘째 아들, 왕경이었다.

    “이 기회에 보여 주지. 누가 더 잘났는지 말이야. 하하하.”

    왕경은 호탕하게 웃으며 소소업의 뒤를 따랐다.

    남은 두 청년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동자 역시 결과에 대한 기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

    운현은 객옹과 함께 개봉에 나와 있었다.

    오색 등이 내걸린 개봉의 거리는 낮에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모두가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저건 뭐냐?”

    문득 객옹이 물었다.

    운현은 고개를 돌렸다.

    “아, 저건 당과군요.”

    “당과가 저리 생겼던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가게에는 일반적인 것과는 사뭇 다른, 특이한 색깔과 모양의 당과가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품입니다.”

    운현도 예전에 개봉에 와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모양은 물론 맛도 독특해서 다들 좋아한다더군요. 저도 먹어 봤는데 괜찮았습니다.”

    운현의 말처럼 당과 가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보시겠습니까?”

    객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과 가게에는 형형색색의 당과들이 놓여 있었다.

    맛도 여러 가지여서, 달콤한 것부터 아주 신 것까지 아주 다양했다.

    객옹은 뒷짐을 지고 물끄러미 당과들을 내려다보았다.

    “다 사자.”

    “네?”

    갑작스러운 말에 놀란 운현이 반문했다.

    그러나 객옹은 무덤덤하게 답했다.

    “꼬맹이가 무얼 좋아할지 모르니 전부 다 사 가자는 말이다.”

    “아니, 저기…….”

    운현은 어색한 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진열되어 있는 당과들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꼬맹이, 그러니까 모용상아가 먹는다면 일 년도 넘게 먹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때까지 제대로 보관할 수도 없겠지만.

    “그보다 몇 가지만 조금씩 사가는 것이 어떨까요? 당과는 모용미 소저도 좋아하고, 가주님도 기뻐하실 것 같으니까요.”

    사실 모용세가 사람들 중에 거절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제자 모용진은 물론이고 젊은 제자들도 단것이 먹고 싶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하지만 객옹은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그냥 다 사 가는 것이 간단하지 않나?”

    “과한 것은 모자람보다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초도 잎을 뗄 때는 뿌리를 남기지 않습니까?”

    “뿌리를 쓰는 것도 있으니 네 예는 옳지 않다.”

    객옹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어린 싹은 남기는 법이지. 네 말대로 하자.”

    “네.”

    운현은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용세가에 오면서 변변한 예물도 준비하지 못했었다.

    물론 당과로 예물이 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예전 무림맹에서, 모용상아에게 선물 사 오겠다고 했던 약속을 못 지켰던 것도 있었다.

    “어르신이 보시기엔 어느 것이 좋겠습니까?”

    “흠. 우선 이것.”

    객옹은 당과 한 종류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이것저것 당과를 고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점점 묵직해지는 당과의 무게만큼, 객옹과 운현의 표정도 밝아지고 있었다.

    객옹과 운현 두 사람은 느긋하게 번화가를 걸었다.

    오색 등불이 내걸린 상점들을 구경하는 운현과 객옹의 손에는 아까 산 당과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선물로 줄 당과가 든 커다란 보따리는 운현이 들었다.

    “이건 살짝 설련화의 맛이 나는군.”

    객옹의 말에 운현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설련화의 맛이 어떤지 모르니 뭐라 말할 것이 없었다.

    애초에 설련화가 뭔지도 모른다.

    매우 희귀한 약초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반응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여긴 주루냐?”

    문득 객옹이 물었다.

    운현은 고개를 돌렸다.

    “네. 그런 것 같군요. 굉장히 화려한데요?”

    번화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그 주루는 ‘영화각’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었다.

    삼 층 누각으로 되어 있는 데다 슬쩍 보기에도 사람들로 가득해서 근방에서 제법 유명한 곳 같았다.

    “들어가 볼까요?”

    “필요 없다.”

    객옹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객옹은 영화각 안쪽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술은 안 마시지만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확실했다.

    “잠깐 들어가시지요.”

    “왜?”

    “모용세가의 가주께 드릴 예물로 술을 좀 사면 어떨까 해서요.”

    사실 찾아보면 전문적으로 술만 파는 곳도 있겠지만 어차피 객옹을 위한 핑계라 상관없었다.

    실제로 유명 주루의 술은 그 자체로 고급 예물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음.”

    객옹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루로 걸음을 옮겼다.

    운현은 빙긋 웃으며 얼른 객옹을 따라갔다.

    퍽.

    운현이 막 영화각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사람들의 소음들 사이로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에 운현은 고개를 들었다.

    부우웅.

    청년 한 명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날아가 처박히고 있었다.

    너무나도 의외의 광경이라 운현은 물론 객옹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콰장창.

    “꺄악!”

    식탁이 부서지고 그릇이 박살 났다.

    놀란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다른 이들도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뭐야?”

    “무슨 일이지?”

    청년이 날아온 곳은 위쪽이었다.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사이, 일행인 듯한 이들이 화급히 이 층에서 뛰어 내려와 쓰러진 청년을 부축했다.

    “저건 뭐냐?”

    객옹이 물었다.

    “아마 다툼이 난 모양입니다.”

    운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 했다.

    휘장이 걷힌 삼 층의 모습이, 정확히는 그곳에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엇!’

    운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보이는 건 뒷모습뿐인 데다 그것도 상반신 정도여서 정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순간 운현의 가슴은 세차게 뛰고 있었다.

    저벅.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운현은 이 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탁, 탁, 탁.

    운현은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그 뒤를 객옹이 뒷짐을 지고 무심한 듯 따랐다.

    이 층으로 올라간 운현은 그대로 삼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그 순간 운현의 눈에 삼 층의 모습이 들어왔다.

    “네가 왕가장의 자제라고?”

    백색 무복을 입은 무사, 빙혼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 그렇다!”

    한쪽 무릎을 꿇은 건장한 청년이 외치듯 말했다.

    피는 흐르지 않았지만 손으로 옆구리를 붙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모용세가와도 교분이 있다! 네가 나를 건드리면…….”

    “그래?”

    빙혼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결코 좋은 뜻이 아니었다.

    “힘을 가진 놈의 패악은 그 죄가 더욱 중하다.”

    서늘한 눈빛으로 청년을 내려다보며 빙혼이 말했다.

    “네가 알량한 힘을 믿고 귀하신 분을 모욕했으니.”

    스륵.

    빙혼이 검을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운현은 즉시 알 수 있었다.

    “목숨으로 그 죄를 갚아라.”

    “그만두시오! 빙혼!”

    운현이 외치는 것과 동시에 작은 소리가 울렸다.

    딱.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컥!”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청년이 입을 벌리더니 그대로 모로 쓰러졌다.

    쿵.

    그는 눈조차 감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빙혼은, 검을 들어 올린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떨리는 그의 눈빛이 아니라면 시간이 멈춘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사락.

    시녀처럼 보이는 여인, 빙설이 검에 손을 가져가며 대궁주를 지키듯 섰다.

    계단 중간에 있던 운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감사합니다.”

    “별것 아니다.”

    슥.

    객옹이 손을 내리며 말했다.

    “일 층도 처리해 주랴?”

    객옹의 말에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한 운현은 고개를 돌렸다.

    빙설 뒤로 눈꽃처럼 빛나는 여인의 눈동자가 운현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가 환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의 그녀는 바로 북해빙궁의 대궁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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