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검전 리마스터-364화 (364/530)
  • 364화. 소림의 해후

    무당산을 떠난 운현 일행은 소림으로 향했다.

    따각, 따각.

    “다행히 소림과 아미는 기혼단의 피해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영호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기혼단 자체는 발견됐어요.”

    담소하가 서찰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중독된 사람도, 숫자는 적지만 있긴 했고요. 하지만 실제적인 피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일입니다.”

    감찰어사 조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혼단이 세상에 퍼져 나갈 경우 그 피해는 막대할 것입니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담소하가 곰곰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대책은 두 가지예요. 첫째는 약재가 일대상인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것과, 기혼단을 만드는 곳을 찾아내는 거지요.”

    영호준이 말을 받았다.

    “약재가 흘러가는 경로를 파악하면 기혼단을 만드는 곳도 알아낼 수 있을 걸세.”

    “장소만 파악되면 토벌은 어렵지 않습니다.”

    감찰 어사 조관이 눈을 빛냈다.

    “관군을 동원하여 일시에 타격하면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 하지만 만드는 곳이 사람이 닿기 힘든 오지나 새외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담소하의 말에 영호준이 고개를 저었다.

    “천하에 퍼트릴 목적이라면 그런 곳에 자리를 잡진 않았을 걸세. 차라리 대도시 인근에 숨기지 않았을까?”

    세 사람은 열띤 어조로 기혼단에 대한 대책을 토의했다.

    “객옹 어르신.”

    운현이 문득 객옹에게 물었다.

    “중독자들을 위해 어느 정도의 기혼단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기혼단의 해약은 없다.

    이미 중독된 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이라 해도 기혼단을 복용시켜야 한다.

    “당장은 그렇다.”

    객옹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곧 대체할 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말을 나누던 세 사람이 일제히 객옹을 돌아보았다.

    객옹은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기혼단의 성분을 분석해 보고 있었다. 물론 흉내만 낸 것이라 효과는 크게 떨어지지만 대신 해악도 아주 작다. 그 정도면 치료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지.”

    “우와!”

    담소하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언제 하셨어요? 대단해요, 어르신! 진짜 최고예요!”

    “너희가 잘 때. 그리고…….”

    객옹은 담소하를 돌아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언제나 최고다.”

    “넵!”

    담소하는 환한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반응에 객옹도 만족한 듯 표정이 좋아졌다.

    운현도 미소를 머금었다.

    따각, 따각.

    말발굽 소리가 운현의 귓가를 울렸다.

    일행이 탄 마차는 하남성 등봉현, 소림사가 있는 곳을 향해 힘차게 내달리고 있었다.

    ***

    소림사 지객당에서 운현을 맞이한 사람은 원로인 영허 선사와, 아미산에서 함께 있었던 혜천이었다.

    혜천은 이미 운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지만, 원로인 영허 선사가 운현을 맞이한 것은 소림이 정식으로 창룡맹 맹주를 맞이한다는 의미였다.

    노년의 영허 선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합장으로 예를 표했다.

    “영허라 합니다. 부족한 사질이 이제야 사숙께 예를 올리는군요.”

    영허 선사는 장문인 태허와 항렬이 같았다.

    배분으로 보면 운현이 그에게 사숙이 되는 셈이었다.

    “운현입니다. 일찍 찾아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운현은 영허 선사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전대 대조사께 먼저 인사를 드리시겠습니까?”

    “네. 그래야지요.”

    마땅히 전대 대조사 와불을 제일 먼저 찾아뵈어야 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후에 뵙겠습니다.”

    영허 선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숙께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운현은 짐작할 수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운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조용히 지객당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영호준과 담소하, 그리고 조관과 함께 운현은 와불 선사의 초막으로 향했다.

    와불 선사의 초막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러나 평상에 앉아 있는 사람은 와불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래, 예전에 만든다는 약은 다 만들었냐?”

    와불의 물음에 객옹은 꼿꼿이 앉은 채 찻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직입니다.”

    “쯧, 그거 만든다고 한 지가 언젠데…….”

    와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몸에 좋다는 영약 한번 먹어 보려다 늙어 죽겠다, 이놈아. 빨리 좀 만들어.”

    “드린다고 한 적 없습니다.”

    객옹은 담담하게 말했다.

    “재촉하신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놀랍게도 객옹은 와불에게 존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훨씬 이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듯했다.

    아까 전, 객옹이 등봉현 입구에서 ‘먼저 가 있겠다’고 하더니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때 문득 와불이 고개를 돌렸다.

    “응? 너희 왔냐?”

    와불이 운현과 영호준, 담소하, 조관을 향해 말했다.

    “네, 선사님.”

    운현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강녕 못 하다.”

    와불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하루가 다르게 몸이 쑤시고 힘이 빠지는 것이…….”

    “좋은 차를 가져왔습니다.”

    와불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용정이냐?”

    “네. 용정 중에서도 최고급품이라 하더군요.”

    운현은 등봉현의 다루에서 산 차 꾸러미를 들어 보였다.

    예전에 늘 가던 그 다루의 주인이 특별히 들여온 것이라며 내준 차였다.

    “제가 끓여 올까요?”

    담소하가 얼른 말했다.

    와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지.”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담소하는 차를 받아 들고는 후다닥 초막 뒤로 뛰어갔다.

    이전에 운현과 함께 와 본 적이 있었던지라 담소하는 어디서 차를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요즘 지내기는 어떻냐?”

    문득 와불이 운현에게 물었다.

    “얼굴이 밝아진 걸 보니 여자라도 생겼어?”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승려답지 않은 농담은 와불이나 신승 불영이나 똑같았다.

    “일대상인을 만났습니다.”

    운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젊은 놈이 벌써부터 길 타령은…….”

    와불이 입술을 비죽이며 말했다.

    “늙어 봐라. 그 길이 훨씬 더 멀고 길어 보일 테니.”

    “차 왔어요! 끓인 물이 이미 있던데요?”

    담소하가 찻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왔다.

    “흠. 소형제가 눈치도 빠르고 다도에 제법 소질이 있군. 혹시 출가할 마음 없나?”

    소림의 승려들이 들었으면 기겁할 소리를 하며 와불이 기뻐했다.

    담소하가 새 찻주전자와 찻잔을 내려놓은 사이, 운현은 놓여 있던 찻주전자를 치웠다.

    슬쩍 열어 본 찻주전자에는 몇 번이나 우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찻잎이 들어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짠해서 운현이 물었다.

    “선사님. 이건 너무 많이 우려내신 것 같…….”

    “아, 그거? 이놈 주려고.”

    와불이 턱짓으로 객옹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상에 온갖 영약이며 독초는 다 씹어먹고 다녔을 텐데, 좋은 차 줘 봐야 의미도 없어.”

    악담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객옹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 그리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와불이 운현에게 말했다.

    “올라가면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게다.”

    그가 올라간다고 말한 건 소림사 경내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운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소식요?”

    아까 영허 선사가 말한 좋은 소식은 아마도 소림의 창룡맹 가맹일 터였다.

    하지만 와불의 말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녀석.”

    씩 웃으며 와불이 말했다.

    “너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흘흘흘.”

    대체 무슨 말인지 운현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

    영허 선사가 말한 좋은 소식은 예상대로 창룡맹 가맹에 대한 것이었다.

    열두 명의 소림사 원로들은 장문인을 대신하여 소림의 창룡맹 가맹을 결정했다.

    운현은 정중하게 예를 표하고 말했다.

    “소림의 가맹을 허락하겠습니다.”

    원로들은 한 손으로 일제히 합장하며 불호를 외웠다.

    “사숙께서 참으로 노고가 크십니다.”

    영허 선사가 운현에게 말했다.

    “소림 또한 창룡맹의 일원으로 그 책임을 다할 터이니 사숙께서는 언제든지,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구체적인 것들은 맹의 총군사인 영호준 대협과 상의하시면 될 것입니다.”

    운현 뒤에 서 있던 영호준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매화검 영호준 대협이 총군사셨군요.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영허 선사는 나지막이 불호를 외우고 말했다.

    “부디 창룡맹으로 인하여 이 어두운 때가 속히 지나기를 바랍니다.”

    그의 눈빛에는 사뭇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네. 저도 그리되기를 바랍니다.”

    운현은 예를 표하고 전각을 나왔다.

    이제 남은 일은 매화검 영호준의 몫이었다.

    영호준과 소림사 원로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객옹도 아직 와불과 함께 있어서, 운현은 담소하, 조관과 함께 소림사 경내를 산책했다.

    “여기는 여전히 참배객이 많네요.”

    담소하가 감탄하며 말했다.

    와불의 초막과 달리 소림사 경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피운 향으로 사방이 자욱할 정도였다.

    “소림사인데 무공을 닦는 무승들보다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절하러 온 부인이나 아가씨 들도 많고요.”

    소림은 무당과 함께 강호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린다.

    허나 본래 소림은 사찰이니, 수도하는 승려와 참배객이 많은 것도 당연했다.

    “우와. 저 아가씨는 참 예쁘……. 어?”

    말하던 담소하가 눈을 크게 떴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운현도 눈이 둥그레졌다.

    사박, 사박.

    아름다운 아가씨가 다소곳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우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그녀는 바로 모용미였다.

    “모, 모용 소저…….”

    운현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모용미는 부드럽게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운 학사님.”

    그녀의 웃음에 사방이 환해지는 듯했다.

    “정말 만나기 어려운 분이시네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모용미가 말했다.

    “소림에 오시면서 모용세가에 들르시는 게 그리도 힘드시던가요?”

    “아, 아니 그건…….”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렸다.

    그 모습에 모용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옆에서 담소하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여기서 모용세가면 별로 가깝지는 않은데…….”

    사실이긴 했지만 모용미는 못 들은 척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빙긋 웃으며 모용미는 말했다.

    “이번에는 엇갈리지 않아서요.”

    그녀와 엇갈린 적이 있었던가 하고 운현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이 엇갈린 건 사실 운현이 모용세가를 찾아갔던 처음부터였다는 걸, 운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박, 사박.

    운현은 모용미와 함께 경내를 거닐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밝은 목소리로 모용미가 물었다.

    운현은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모용미가 말하는 그간이란, 아마도 아미산에서 창룡맹을 선언했던 때부터를 말하는 것일 터였다.

    “아,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도무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저벅.

    운현은 발을 멈췄다.

    옆에서 걷던 모용미도 멈춰 서서 운현을 돌아보았다.

    삽시간에 떠오르는 온갖 상념에 운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모용미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고 말았다.

    사락.

    하지만 그녀의 손은 운현에게 가 닿지 못했다.

    손끝이 운현에게 닿기 직전, 모용미가 흠칫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괘, 괜찮아요.”

    모용미는 급히 손을 거두며 말했다.

    “천천히 말씀하셔도 돼요.”

    운현은 고개를 들었다.

    모용미는 두 손을 꼭 모아 쥔 채로 운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기다릴 테니까요.”

    말하는 그녀의 귀밑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어쩐지 운현도 부끄러워져서 그만 말을 더듬고 말았다.

    “……네. 가, 감사합니다.”

    운현은 그렇게 간신히 대답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주위를 떠도는 짙은 향내 속에,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붉힌 채 말없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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