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무당파의 경우
운현은 객옹과 조관, 담소하를 다루로 오도록 청했다.
청송 진인은 다루로 들어서는 객옹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과연, 화산의 변고가 어떻게 그리 단시간에 진정되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착각하지 마라.”
객옹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환자들을 치료한 사람은 현이다. 나는 그저 통상적인 처방을 말해 주었을 뿐이야.”
“증상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그 통상적인 처방 역시 불가능했겠지요.”
청송 진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객옹의 능력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운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객옹은 대꾸조차 없었다.
“헌데 운 대협을 ‘현’이라고 부르십니까?”
청송 진인의 물음에 일행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렇지 않아도 그 호칭이 다들 생소하던 참이었다.
“그렇다.”
객옹의 답변은 간단했다.
청송 진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다른 인연이 있으셨던 건 아닙니까?”
운현이 신승의 사제이며 한때 검성의 후계자로 알려졌던 것을 청송 진인은 알고 있었다.
그는 혹 운현이 독선과도 무슨 관계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다른 인연?”
하지만 객옹은 눈살을 찌푸렸다.
“없다.”
“그렇군요.”
청송 진인은 가벼운 헛웃음을 흘렸다.
혹 운현과 환우오천존의 비사를 들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허사로 돌아가 버렸다.
“원로원이 대책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뭐냐?”
객옹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기혼단에 대한 대처와 창룡맹 가맹에 대한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숨 섞인 도호를 외우고 청송 진인은 말했다.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검파와 이를 견제하려는 다른 계파의 대립입니다.”
검파는 대대로 무공의 수련을 중시한다.
무림맹 시대를 거치며 검파는 무당의 이름을 크게 드높였지만, 동시에 다른 계파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너도 검파가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청송 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독단으로 일을 벌이면 분명 문제가 될 텐데?”
“마땅히 감수해야겠지요.”
나지막이 도호를 외는 청송 진인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흠.”
객옹은 운현은 돌아보았다.
“네가 하겠다면 반대는 하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운현은 객옹에게 고개를 숙였다.
객옹은 못 본 척 찻잔을 들어 올렸다.
***
다음 날 아침.
운현 일행은 청송 진인과 함께 무당으로 향했다.
무당의 산문인 현악문은 거의 평지에 있는 데다 길도 잘 정비되어 있어서 일행은 산문 바로 인근까지 마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달칵.
마차가 멈추고 제일 먼저 내려선 담소하가 감탄을 흘렸다.
“우와.”
돌로 된 거대한 산문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바로 이곳이 무당임을 말해 주는 현악문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조관은 물론 운현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현악문도 놀랍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무당산의 모습은 정말로 신비스러웠다.
운무에 감싸인 무당산과 봉우리마다 빼곡히 서 있는 붉은 건물들은 마치 산 위에 지어진 도시를 연상시켰다.
심지어 절벽 중간에 지어진 건물들도 있어서, 그야말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담소하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산 위의 광경만큼 눈앞에 보이는 모습도 대단했다.
현악문 바로 너머는 도시의 번화가를 떠올리게 했다.
높이 솟은 붉은 대전들과 서로 잇닿은 수많은 전각들, 그 사이로 오가는 도인들과 분향을 올리는 사람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피어오르는 향으로 앞쪽이 온통 자욱할 정도였다.
“이런.”
마차에서 내린 영호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나지막이 운현에게 말했다.
“왜 무당의 계파들이 서로 싸우는지 알 것 같군요.”
운현 역시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당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다.
유서 깊은 도관이자 황실과도 가까운 무당에 큰 타격을 준 것은, 무림맹이 무너진 것보다 장문인 현허 진인이 쓰러진 일이다.
무당의 원로원은 검파만이 아닌 다양한 계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계파의 의견을 조율하고 의제를 주도할 장문인이 사라지자, 원로원은 오히려 분쟁의 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각 계파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온 것이다.
“마치 현 무림의 상황과도 비슷하군요.”
“세상의 모습과도 비슷하지요.”
영호준의 말에 운현이 나지막이 답했다.
그때 청송 진인이 객옹에게 말했다.
“가시지요.”
객옹은 운현을 돌아보았다.
운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짙은 운무 사이로, 장엄한 무당산이 운현 일행을 굽어보고 있었다.
***
저벅, 저벅.
“일반적으로 세간에 알려진 무당은 무림 문파로서의 무당일 것이오. 허나 무당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소. 본래 이곳 무당산은…….”
청송 진인이 돌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무당산을 오르는 계단은, 담소하의 표현에 의하면 끔찍할 정도로 많았다.
세월의 흐름을 말해 주듯 닳아 있는 돌계단과, 돌난간에 세워진 돌사자의 모습은 사뭇 정취가 있었다.
하지만 무당산 정상, 아니 하늘에 닿을 듯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 앞에서는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물론 조관과 담소하, 그리고 운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이, 이거 언제 끝나요?”
담소하가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반인보다 체력이 뛰어난 담소하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되네.”
말이 끊긴 청송 진인은 슬쩍 헛기침을 했다.
“여하튼, 이처럼 무당은 역사적으로 도가의 다양한 수련법에 따라 많은 계파가 있소. 그중에서 주도적인 계파들은 크게 셋 정도를 꼽을 수 있다오.”
청송 진인은 숨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말했다.
“우선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 무공을 중심으로 하는 검파와…….”
“저기, 중간에 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담소하가 다시 말했다.
돌계단은 중간에 전각이나 공터와 이어져 있기도 해서 충분히 쉴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청송 진인은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 멀지 않으니 빨리 가는 게 낫다네. 소형제.”
담소하에게 말한 청송 진인은 설명을 계속했다.
“다음으로는 각종 제사와 길흉화복의 술법을 수련하는 술사들이오. 비록 무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속세의 사람들에겐 가장 친근한 곳이라오.”
객옹은 무표정한 얼굴로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운현과 영호준은 객옹 바로 뒤를 따르고 있었다.
“또한 단약이나 선단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약사들이 있소. 이들은 주로 약당에서 수련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약술에 정진하기 위해 은거하기도 하오.”
청송 진인은 발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운무에 감싸인 무당산을 올려다보았다.
“무당에는 계곡과 절벽에 세워진 작은 도관들도 많은데, 그곳에 약사들이 은거하고 있소.”
저벅.
주저 없이 걸음을 다시 옮기며 청송 진인이 말했다.
“약사들은 검파나 술사들 만큼의 세는 없으나 무당이 자랑하는 태청단이나 소청단 같은 영약들이 모두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라 누구도 약사들을 가벼이 보지 못하오.”
말하던 청송 진인은 슬쩍 객옹을 돌아보았다.
“객옹께서도 과거 무당의 약사들과 인연이 조금 있으신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객옹의 표정은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운현은 역시 ‘과거의 인연’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 밖에도 많은 계파들이 있으나 크게 이 셋으로 보시면 되오. 검파와 술사들, 그리고 약사들이오. 아, 그리고 여관(女冠)들이 머무는 자수궁은 가까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여인들도, 있어요?”
담소하가 숨이 가쁜 중에도 물었다.
“황실의 제사에 종사하거나 속가제자가 되려는 여인들이라네. 검파에 속한 이들도 있지만 주로 술사나 약사 들이지. 마음을 다스리려고 온 이들도 있고.”
“그 자수궁은 어디입니까?”
문득 영호준이 물었다.
청송 진인이 돌아보자 영호준이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조심하려면 어디 있는지 알아야…….”
청송 진인은 빙긋 웃었다.
“옳은 말이나 화산의 매화검께는 알려 드리고 싶지 않군. 매화검의 이름이 나에게까지 들려올 정도니 말일세.”
영호준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너스레라도 떨었겠지만 무당파의 원로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저기요! 도사님!”
담소하가 청송 진인을 불렀다.
“가려는 곳은 아직 멀었나요?”
탁.
청송 진인이 발을 멈췄다.
담소하가 숨을 돌리는데, 청송 진인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아직 멀었다네. 그러니 소형제도 마음 단단히 먹게. 불평과 불만은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무겁게 할 뿐이니 말일세.”
나지막이 도호를 외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청송 진인의 눈빛은 깐깐한 노도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담소하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청송 진인은 몸을 돌려 다시 계단을 올랐다.
저벅, 저벅.
운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담소하를 돌아보았다.
담소하는 한숨을 내쉬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음엔 반드시 진 누님과 함께 와야지.”
굳은 결의를 내비치며 담소하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돌계단이 눈앞에 그 장엄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
청송 진인의 발걸음은 정말로 무당산을 거의 다 올라서야 멈췄다.
거의 쉬지 않고 무당산을 올라온 셈이 된 담소하와 조관은 눈앞에 보이는 돌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숨이 가쁘고 힘든 중에도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무당산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괴이한 봉우리들과 굽이쳐 흐르는 무당산의 산세, 그리고 수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지붕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청송 진인은 근처의 작은 전각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에서 일행은 차를 마시며 잠시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운현과 객옹은 청송 진인과 함께 전각을 나섰다.
태청각에서 열리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무당파 태청각.
이곳에는 열 명의 무당파 원로들이 모여 있었다.
본래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원로원은, 큰 내상을 입은 장문인 현허 진인과 외출했던 청송 진인 두 사람이 빠진 상태였다.
“모든 무당파 제자들의 산문 출입을 금했거늘 원로 된 자가 이처럼 독단적으로 행동하다니…….”
술사인 적풍 진인이 혀를 찼다.
“이래서야 어찌 무당의 기강이 흐트러지지 않겠소?”
“내 듣기로는 해검지에서 검을 풀지도 않았다 하더이다.”
약당 출신의 원로, 영천자 역시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무리 신승의 사제라 해도 이는 지나친 예우가 아니오?”
“허허, 다들 진정하시오.”
검파의 원로 학우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해검지야 예외가 없던 것도 아니지 않소? 무림맹 시절에는 문파 대표급들만 되어도 적용하지 않았으니 말이오. 게다가 청송 진인의 외출은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
학우자가 문득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태청각의 문이 열렸다.
드디어 청송 진인이 신승의 사제이자 창룡맹의 맹주, 창룡검주와 함께 돌아온 것이다.
열 명의 무당파 원로들은 고개를 돌렸다.
청송 진인이 창룡검주와 함께 들어올 것을 예상하던 원로들은, 세 명의 모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원로들 중 몇몇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서, 설마.”
“아니, 하지만…….”
검파의 원로들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청송 진인 옆에 있는 노인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지금 이곳, 무당의 태청각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맙소사.’
검파의 원로 학우자 역시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여기에 독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