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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58화 (358/530)
  • 358화. 무당에서 온 소식

    일대상인이 떠난 후, 운현 일행은 인근의 대도시 서안으로 향했다.

    영호준이 구해 온 마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불편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대상인과 마주쳤던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따각, 따각.

    서안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니어서 일행은 곧 서안의 한 객잔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다들 식욕이 없었기에 일행은 인근 다루로 향했다.

    은은한 차향이 주위를 감싸자 그제야 모두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달그락.

    찻잔을 매만지던 담소하가 문득 운현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 일대상인이지요?”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을 담소하가 새삼 묻는 것은 그만큼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대상인이 그런 사람이었다니…….”

    담소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나타난 걸까요?”

    대답은 영호준이 했다.

    “아마도 문왕 때문인 것 같더군.”

    영호준은 찻잔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는 문왕의 죽음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지. 동기는 그것이 확실해.”

    “하지만 정작 문왕에 대해서는 미련의 잔재니, 흔적이니 그렇게 말했잖아요.”

    담소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별로 복수를 하려는 것 같지도 않았고요.”

    “복수보다 맹주님의 검이 일대상인에게 더 중요했다는 의미일세.”

    담소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말이 돼요? 아무리 그래도…….”

    “말이 되네. 무림의 기인들에겐 그리 드문 일도 아닌 데다가.”

    영호준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맹주님이 펼쳐 낸 검 앞에서는 그보다 더한 것도 의미를 잃을 테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일행의 눈앞에 일대상인을 향해 펼쳤던 운현의 검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건 말 그대로 경이(驚異)였다.

    어떻게 그런 검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사람의 손끝에서 펼쳐질 수 있는 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면 일대상인이 나타난 것보다 운현의 검이 준 충격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저는 이해가 안 돼요.”

    담소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게 정상일세.”

    중얼거리던 영호준은 운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맹주님. 몇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운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영호준이 말했다.

    “일대상인은 문서의 주인이 맹주님이라고 확신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더군요.”

    “그가 천지의 조화를 언급한 것을 생각해 보면 문서는 특정한 검보나 비급이라기보다 운명적인 대적자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이 듣기에도 그랬다.

    “그래도 혹시 말입니다. 맹주님이 익힌 백호수련검이 문왕이 말한 문서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운현은 잠시 생각했다.

    “모르겠군요. 하지만 백호수련검이 다른 무공 비급과 크게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애초에 그것은 검보도, 비급도 아니다.

    백호수련검이라는 이름조차 의형 일충현이 붙여 준 것이고, 운현은 ‘보고서 검식’이라 불렀으며 본래는 아무런 이름조차 없었다.

    그러니 그것을 ‘문서’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명칭일지도 몰랐다.

    어째서 평생 황궁에서, 그것도 한직에 있던 학사가 그런 저술을 남길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제 의형께서도 백호수련검에 기를 이끄는 진기도인의 효과가 있다고 하셨고, 와불 선사께서는 마치 하늘 위에 노니는 용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와.”

    담소하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엄청난 검법이네요. 하늘 위의 용처럼 강하다는 건가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객옹이 문득 말했다.

    “사람들은 하늘 위에 용이 있다고 말하지만 천하에 누가 그것을 보았느냐? 와불이 하늘 위의 용이라 한 것은 그만큼 기이(奇異)하고 불가해(不可解)하다는 뜻이다.”

    담소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주아주 어려운 검법이라고요?”

    “아니.”

    객옹은 고개를 저었다.

    “용을 만나는 것은 힘으로도, 지혜로도, 우연으로도 되지 않는다. 현이가 그 검법을 통해 지극한 경지를 엿본 것 자체가 사람의 이치로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일이라는 뜻이다.”

    담담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어 올리며 객옹은 말했다.

    “그러니 운명이라 할 수밖에.”

    객옹은 조용히 차를 음미했다.

    그 설명은 어쩐지 일대상인의 말과 비슷했다.

    그건 객옹 역시 환우오천존으로 불리던 고수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영호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하늘 위의 일은 용들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땅 위의 일들을 이야기해 보지요. 우선은 일대상인의 목적입니다.”

    눈을 빛내며 영호준이 말했다.

    “그는 천하패령이라는 목적과 하늘 밖의 하늘에 닿는다는 또 다른 이해 못 할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천하패령은 미련이라는 표현을 썼지요.”

    “혹시 천하패령이 역모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담소하가 불쑥 말했다.

    “포기했다는 뜻일까요?”

    일행은 잠시 침묵했다.

    ‘역모’라는 단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영호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자들은 논리도 이상하고 단어의 뜻도 제 맘대로거든. 어쩌면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네.”

    담소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거네요?”

    “아니지.”

    영호준이 고개를 저었다.

    “일대상인에게는 천하패령 외에도 또 다른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나? 문왕을 통해 천하를 도모하려던 자이니, 다른 목적 또한 결코 좋은 것은 아닐 테고.”

    담소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럼 설마 그것도 막아야 하는 거예요?”

    영호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담소하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일이 더 늘어나다니.”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담소하가 투덜거렸다.

    “대체 나쁜 놈들은 왜 쉬지도 않는 거죠?”

    그 말에 조관도, 운현도 쓴웃음을 지었다.

    가만히 찻잔을 매만지던 운현이 문득 물었다.

    “무당이나 소림에 대한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본래 운현 일행은 소림이나 무당을 찾아가 기혼단의 피해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영호준은 잠시 서안에서 기다릴 것을 제안했다.

    무작정 찾아가는 것보다 상황을 살펴본 후에 움직여야 한다는 이유였다.

    소림이나 무당 모두 자존심 강한 곳들인 데다, 기혼단은 매우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운현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 무당의 경우는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화산에서 무당에 서신을 보냈으니 곧 회신이 올 것입니다. 진 소저도 연락을 해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총군사 대행 진예림은 아미와 소림에도 기혼단으로 인한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또한 아미파에 무당파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본다고 했으니 곧 연락이 올 것이었다.

    “괜찮겠느냐?”

    문득 객옹이 말했다.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저 괜찮기를 바랄 뿐입니다. 혹여 기혼단으로 인해…….”

    “아니, 그것이 아니다.”

    객옹은 운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언제 일대상인이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데, 이대로 괜찮겠냐는 말이다.”

    일대상인은 운현의 백호실전검 삼식 중 중검과 예검을 막아 냈다.

    만일 그가 물러나지 않았다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침묵하던 운현이 답했다.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찾아야겠지요.”

    운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하면 일대상인을 이길 수 있을지 말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지 마라.”

    객옹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본디 용이란 초월적이고 신비한 존재다. 그것이 다른 무엇에 얽애이는 순간 용은 더 이상 용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와불 선사의 충고와 똑같았다.

    와불 선사도 말하기를 오직 검만 바라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알겠습니다.”

    운현은 객옹에게 고개를 숙였다.

    비록 심마의 위험은 여전히 있지만,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감사합니다. 객옹 님.”

    객옹은 아무런 말도 없이 찻잔을 들었다.

    부드러운 차향이 다루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운현 일행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소식을 기다린 지 사흘이 되자 누군가 객잔으로 운현 일행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건 서찰을 든 표국 사람도, 남궁세가나 화산의 사람도 아니었다.

    ‘운 대협을 찾는다’는 점소이의 전언에 운현은 영호준과 함께 객잔 식당으로 내려갔다.

    “운현 대협이시오?”

    식당에서 기다리던 사람은 도사 차림의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다.

    긴 수염과 초탈한 분위기의 노인은 마치 신선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네, 그렇습니다.”

    운현은 정중하게 답했다.

    스륵.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도호를 외우며 운현에게 예를 표했다.

    “빈도는 청송이라 하오.”

    “저는 운현입니다.”

    운현이 마주 예를 표하는데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족하나 무당의 원로원에 속해 있소.”

    옆에 있던 영호준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도사께서 청송 진인이시란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놀란 영호준은 급히 예를 표했다.

    “저는 화산의 영호준이라 합니다.”

    “오, 매화검이셨구려.”

    청송 진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영호준에게 답례했다.

    예를 마친 영호준이 물었다.

    “진인께서 어쩐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청송 진인을 수행하는 사람은 종자 한 명뿐이었다.

    무당파 원로의 행차치고는 너무나 소박했다.

    잠시 침묵하던 청송 진인은 나지막이 탄식을 흘리고는 말했다.

    “실은 운 대협께 무당을 구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 왔소이다.”

    그 말에 운현과 영호준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청송 진인이 무얼 말하는지는 너무나 분명했다.

    “그럼 설마…….”

    “그렇소.”

    청송 진인은 도호를 외우고는 말했다.

    “무당 역시 많은 제자들이 기혼단에 중독되었소. 허나 원로들의 의견이 크게 달라서 아직 대책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오.”

    운현과 영호준의 표정이 굳었다.

    “의견이 크게 다르다니요?”

    영호준이 물었다.

    “대체 어째서 그런 것입니까?”

    화산은 기혼단으로 인해 오히려 장로들의 뜻이 하나로 결집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무당은 도리어 갈라지고 만 것일까?

    다시금 탄식을 흘리는 청송 진인에게 문득 운현이 말했다.

    “우선 자리를 옮기시지요.”

    이곳은 객잔 식당이라 은밀한 이야기를 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청송 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인근 다루로 자리를 옮겼다.

    또르륵.

    다루의 시녀가 찻잔에 차를 따랐다.

    찻잔을 채운 시녀가 물러가고, 세 사람은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고맙소, 대협.”

    청송 진인이 운현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무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알겠소.”

    청송 진인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기혼단으로 인한 사건은 화산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저 일부 제자의 일탈로만 여겼던 무당은 화산의 서찰을 받고 나서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화산보다 훨씬 더 많은 중독자가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즉시 중독자를 격리했고, 뒤이어 날아온 화산의 조언에 따라 조처를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무당은 본래 도관들의 연합체로 시작되었소. 때문에 추구하는 바에 따라 많은 계파가 존재하오.”

    무당은 화산과 달리 도관에 뿌리를 둔 문파다.

    무공뿐만 아니라 술법과 축사, 부적, 연단술 같은 수많은 도가의 수련이 무당산 여러 궁(宮)과 전각(殿閣)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계파들 간에 은근한 알력이나 충돌은 물론 있었소.”

    청송 진인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 다툼은 장문인 현허 진인이 쓰러진 이후 크게 격화되고 말았소. 원로원조차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오.”

    하루가 다르게 증상이 악화되어 가는 제자들, 여전히 계파 갈등에 매몰되어 있는 원로원을 바라보며 청송 진인은 결단을 내렸다.

    덜컹.

    청송 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운현을 향해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늙은 몸이 간절히 청하오니.”

    스륵.

    청송 진인은 운현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무당을 구해 주시오. 운 대협.”

    운현은 탄식을 흘렸다.

    머리가 허연 노도사가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 없었다.

    “감히 감당키 어렵습니다. 어서 예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청송 진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수행했던 종자가 놀라 당황하는 것도, 운현이 자신보다 까마득히 어리다는 것도 청송 진인은 상관하지 않았다.

    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고개를 들어 주십시오.”

    청송 진인은 그제야 머리를 들었다.

    그의 주름진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배어 있었다.

    “고맙소.”

    떨리는 목소리로 청송 진인은 말했다.

    “고맙소, 대협.”

    옆에 있던 영호준이 한숨을 쉬었다.

    원로원조차 갈라져 있다는 것은 운현의 방문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도 운현은 무당을 돕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노도사의 눈물 앞에서는 영호준도 차마 무어라 못 하고 애꿎은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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