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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53화 (353/530)

353화.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운현과 객옹, 영호준은 소요자를 따라 별채로 향했다.

중독자들을 수용한 별채는 본래 객사로 쓰이던 곳이라 외관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는 아니었다.

객사에 들어서자 지독한 악취와 함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금단증상이 나타난 중독자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심지어 자해를 했고, 화산파 제자들은 그들을 제지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소요자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이들은…….”

“쯧.”

객옹은 혀를 차더니 발작을 일으킨 청년에게 다가갔다.

슥.

그가 손을 내젓자 청년이 움찔하더니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소요자는 놀라면서도 즉시 청년을 받았다.

탁.

정신을 잃은 청년은 온몸을 경련하고 있었다.

의식을 잃었어도 금단증상 자체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객옹이 소요자에게 말했다.

“발작을 일으키는 자들에게 우선 기혼단을 복용시켜라.”

“알겠습니다.”

소요자가 기혼단을 가져오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남아 있던 화산파 제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객옹을 바라보았다.

발작을 일으키는 이들은 다른 방에도 있어서, 객옹은 그들의 방으로 가서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객사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후우.’

안도하던 운현은 문득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느꼈다.

밖에서 잠긴 객사의 방문에는 임시로 뚫어 놓은 작은 창이 있었다.

수용된 중독자들을 감시하고 상황을 살필 수 있도록 뚫어 놓은 그 창으로 청년들이 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과 절망이 뒤섞인, 말 없는 그 시선들은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리 와라.”

객옹의 목소리에 운현은 객사의 한 방으로 들어섰다.

엉망이 된 침상 위에 의식을 잃은 청년이 누워 있었다.

본래 훤칠한 모습이었을 청년은 파리한 안색에 초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용태를 살필 테니 너도 보아 두도록 해라.”

객옹은 자신의 손을 청년의 얼굴에 올렸다.

운현 역시 자신의 손끝을 청년의 명치에 대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도, 손끝으로 느끼는 것도 아니다. 너의 심안으로 보아야 한다.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좋다.”

객옹의 말에 운현은 눈을 감았다.

웅.

객옹의 손에 내력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내력은 아무 저항도 없이 청년에게 스며들더니 곧 수십, 수백 가닥으로 갈라져 청년의 기맥을 따라 온몸으로 맥박 치듯 흘러갔다.

‘아.’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독선의 내력을 통해 보는 청년의 상태는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마치 혹사라도 당한 것처럼 기맥이 너덜너덜해져 있는 데다가 중요한 혈도는 막히거나 아예 끊어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가슴 한가운데서 날뛰는 음산하고 폭력적인 기세는 지금도 청년의 생명을 가차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이래서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사락.

“어떠냐?”

묻는 객옹의 목소리에 운현은 눈을 뜨고 손을 거뒀다.

“……처참하군요.”

“그래.”

객옹은 담담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증상을 완화해야겠지만, 상태가 심각하니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겠다.”

“다른 방법요?”

“기혼단의 독기를 태우는 거다. 내 내력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객옹의 내력과 의술이라면 그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운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버텨 낼 수 있을까요? 이미 몸 상태가 말이 아닌 듯한데…….”

“어쩔 수 없다. 일부만이라도 태워 독기의 기세를 꺾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 상황은 바로 실혼인이 되는 것이다.

운현은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독기를 강제적으로 태워 버리는 극단적인 처치를, 과연 이 청년이 견뎌 낼 수 있을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지금 날뛰고 있는 독기의 중심은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슥.

운현의 손끝이 청년의 가슴께를 가리켰다.

객옹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래서?”

“중심을 흐트러트리면, 기세가 사그라들지 않을까요?”

“흐트러트린다고?”

“네.”

운현은 청년을 내려다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의술에 어두운지라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방법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해 봐라.”

운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객옹이 말했다.

“……괜찮을까요? 혹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있으니 그런 일은 없다. 해 봐라.”

객옹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그건 객옹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독선의 눈빛, 바로 그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운현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뻗어 청년의 가슴 위에 올렸다.

후우웅.

눈을 반쯤 감은 운현의 손끝에 폭풍처럼 날뛰는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디로 튈지, 어떻게 변할지조차 알 수 없는 야수와도 같은 기운이 청년의 기맥을 파괴하고 있었다.

운현은 자신도 모르게 검지와 중지를 세운 형태의 검결지를 취했다.

웅.

손끝에 한기가 서렸다 싶은 순간.

쨍.

날카로운 한기가 청년을 꿰뚫었다.

“컥!”

청년은 크게 경련하며 신음을 흘렸다.

객옹이 즉시 손을 뻗어 청년의 용태를 살폈다.

“괜찮습니까?”

운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객옹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럴 수가.’

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청년의 가슴에서 날뛰던 기운이 거짓말처럼 힘을 잃고 있었다.

마치 균형을 잃은 팽이가 쓰러지는 것처럼, 그 음산한 기운은 스스로 자멸하여 사라져 버렸다.

청년의 경련은 이미 멈췄다.

호흡 또한 규칙적으로 돌아와서, 발작이 끝났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객옹은 청년에게서 손을 거뒀다.

근심이 가득한 표정의 운현을 쳐다보며 객옹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한 거냐?”

“중심을 흐트러트렸습니다.”

운현이 말했다.

“가르쳐 주신 덕분에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의 흐름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허.”

객옹은 헛웃음을 흘렸다.

“……잘했다.”

운현의 표정에 안도가 번져 가고, 객옹은 말을 이었다.

“독기 자체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기세가 꺾였다. 이제는 망가진 몸을 돌보며 자연적으로 독기가 배출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잘됐군요.”

운현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다 문득, 뒤에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던 운현은 깜짝 놀랐다.

‘엇.’

영호준과 담소하, 조관은 물론이고 객사를 지키던 스무 명 남짓한 화산파 제자들이 전부 모여서 운현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화산파 제자들의 눈빛은 의구심과 혼란, 그리고 놀라움이 뒤섞여 있었다.

“……저, 객옹 님.”

영호준이 대표로 물었다.

“사제의 용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아진 것입니까?”

객옹은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답했다.

“몸 상태는 변하지 않았지만 품고 있던 독기가 크게 완화되었다. 금단 증상이 약해진 것은 물론이고 발작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후유증과 평생 싸워야 하는 건 변함이 없겠지만…….”

고개를 돌린 객옹이 영호준에게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한 달 안에 일상으로 복귀할 수도 있겠구나.”

화산파 제자들의 표정에 놀라움이 번져 갔다.

그리고 그것은 곧 기쁨과 환호로 변했다.

“우와아아!”

“감사합니다!”

누군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객사를 지키던 제자들은 객옹과 운현에게 고개를 숙이고 몇 번이나 예를 표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흑흑.”

화산파의 제자가 눈물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절망과 두려움으로 피폐해져 가던 이들은 중독자들만이 아니었다.

객사를 지키던 제자들 역시 사형제였던 이들의 발작을 제지하면서 극도로 마음이 황폐해지고 있었다.

갇힌 자도 가둔 자도 모두가 절망과 두려움에 매몰되어 가던 이곳 객사에 희망이 나타났으니, 그들의 기쁨과 감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객옹 님.”

영호준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하며 운현에게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맹주님.”

운현은 말없이 영호준의 손을 잡았다.

다른 방에 있던 청년들에게도 이 소식이 번져 간 것은 금방이었다.

신음과 비명이 가득하던 객사에 기쁨과 안도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뒤늦게 달려온 소요자가 놀라기는 했지만, 객사의 기쁜 소식은 곧 화산파 전체로 퍼져 나갔다.

***

객사의 소식은 즉시 화산파 장로 회의에 전해졌다.

장로들은 크게 기뻐했다.

직접 객사로 달려온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도 기꺼이 치료를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운현뿐이라, 장로들은 그저 운현에게 거듭 감사를 표하고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큭.”

침상에 누워 있던 청년은 낮은 신음을 흘리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운현이 손을 거두는 사이, 객옹은 즉시 청년의 상태를 살폈다.

“음. 괜찮구나.”

객옹의 말에 운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고 있던 화산의 제자들이 청년을 방으로 옮기는 사이, 옆에서 지켜보던 담소하가 운현에게 물었다.

“힘드세요?”

“아니.”

운현은 고개를 저었다.

“힘들지는 않네. 다만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서…….”

운현은 방으로 옮겨 가는 청년을 쳐다보았다.

발작을 일으키던 청년을 치료한 이후, 운현과 객옹은 상태가 시급한 사람들에게 같은 치료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운현은 발작을 일으키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종류의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같은 방법으로 독기를 흐트러뜨렸다.

그러기를 반복한 결과, 드디어 운현과 객옹은 객사에 구금되어 있던 청년들 모두의 치료를 마친 것이다.

어느새 해가 지고 한밤이 되었지만 객사는 사방에 불을 밝혀 대낮같이 밝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대인.”

조관이 말했다.

운현이 쉬라고 말했지만 조관도, 담소하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담소하는 때때로 운현의 땀을 닦아 주고 마실 것을 가져다주기도 해서 제법 도움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맹주님. 이제 끝난 듯하군요.”

영호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운현과 객옹이 치료에만 전념하도록 상황을 지휘한 사람이 바로 영호준이었다.

그는 객옹의 지시대로 청년들에게 탕약을 먹이고 치료가 끝난 후에는 안정을 취하게 했다.

객사를 지키던 제자들도 교대시키고, 방치되다시피 했던 객사의 방을 치우게 한 사람도 영호준이었다.

“뒷일은 제가 처리할 테니 다들 쉬시지요.”

영호준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간단한 음식과 차가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화산 최고의 숙수가 객옹 님을 위해 준비한 것이니,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흠. 그래?”

객옹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눈빛이 바뀌는 건 운현도 알 수 있었다.

“가자.”

객옹이 일어나고 운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뒷일을 부탁합니다. 총군사님.”

“푹 쉬십시오. 맹주님.”

영호준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일행은 객사를 나왔다.

쏴아아.

시원한 밤바람과 함께 불을 밝힌 화산파의 야경이 일행의 눈앞에 펼쳐졌다.

“오, 대단한 광경이네요.”

은은한 불빛 사이로 화산파의 전각과 대전, 궁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서 있었다.

영호준의 말처럼 사뭇 세속적이지만 또한 아름답고 멋스러운 광경이었다.

“멋지군요.”

운현 역시 나지막이 감탄했다.

“기쁘냐?”

문득 객옹이 물었다.

난데없는 말이었지만 운현은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네.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그래. 그렇겠지.”

객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제자들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더구나. 허나 네가 일 년 만 늦게 왔어도 그들의 태도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 말에 운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객옹의 지적은 옳았다.

이미 객사는 반쯤 옥으로 변해 있었고 내부는 방치되어 있었다.

발작을 억누르기 위해 폭력이 행사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화산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객옹은 담담하게 말했다.

“너를 생명의 은인이라 부르던 이들조차 상황이 변하면 한순간에 돌아서서 널 죽이려 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다.”

어딘가 회한이 섞인 그 목소리에 운현은 나지막이 답했다.

“……연약하니까요.”

그건 객옹이 한 말 그대로였다.

“그래. 사람은 연약하다. 게다가 어리석고 쉽게 변하기까지 하지.”

운현은 탄식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객옹을 돌아보며 운현은 말했다.

“대가 없이 은혜를 베풀고, 변함없이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귀하지.”

희미한 웃음을 피워 올리며 객옹은 고개를 들었다.

“귀하고말고. 캄캄한 밤에 빛나는 저 별들처럼 말이다.”

운현도 눈을 들었다.

어두운 밤하늘 가운데 무수한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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