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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51화 (351/530)
  • 351화. 화산파 장로 회의

    오악 중 하나인 화산은 대륙에서 손꼽히는 산이다.

    깎아지른 듯 수려한 다섯 봉우리가 신비하게 어우러져 선인(仙人)의 손이라고도 불리는 화산은, 그 험준한 산세와 함께 도교의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화산의 도관들 중, 화산파라는 이름을 칭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나였다.

    바로 연화봉에 자리한 화산파였다.

    “이야, 대단한데요?”

    담소하가 산 아래를 살피며 감탄을 흘렸다.

    “깎아지른 듯한 산 모양이 정말 멋지네요. 어우, 저쪽은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데요?”

    “그래서 저쪽에는 잔도도 있네.”

    앞서 걷던 영호준이 말했다.

    잔도(棧道)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길이다. 사실상 나무 발판이라 하는 것이 옳았다.

    “뒤쪽 길로 돌아가면 철로 된 줄을 붙잡아야 간신히 올라가는 곳도 있고.”

    저벅, 저벅.

    영호준은 쉬지 않고 발을 옮겼다.

    화산에 익숙한 영호준이 앞서 길을 안내했고 조관과 담소하, 운현이 그 뒤를 따랐다.

    독선은 아예 여유로워서,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것 같은데도 가장 앞서서 걷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일행은 곧 화산파의 산문에 도착했다.

    돌로 된 커다란 산문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었다.

    산문을 지키던 제자들은 운현 일행의 모습에 잠시 긴장했으나 곧 영호준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사형!”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내려가셨던 겁니까? 그리고 이분들은…….”

    영호준이 산을 내려간 사실을 아는 사람은 화산파 내에서도 장로들과 일부 중직자들 뿐이었다.

    “내가 모셔 온 참배객들일세. 태을 진인께서는 어디 계신가?”

    영호준이 물었다.

    “장로님들께서는 아침부터 자하각에 모여 계십니다.”

    자하각은 상궁과 함께 화산파에서 대단히 중요시되는 곳이다.

    장로들이 모여 있다는 건 그만큼 일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알았네. 아, 이분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게.”

    “아, 네.”

    산문을 지키던 제자들이 당황해하는 사이, 영호준은 일행을 이끌고 화산으로 들어섰다.

    저벅, 저벅.

    높이 솟은 산문을 지나니 화산파의 전경이 펼쳐졌다.

    산봉우리까지 이곳저곳에 지어진 커다란 붉은 전각들의 모습은 가히 산 위에 지어진 궁궐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대단하네요.”

    담소하가 감탄했다.

    “이래서 다들 화산파라고 하는군요.”

    운현 역시 동감이었다.

    커다란 돌계단과 날아오를 듯한 전각들은 화산파의 위세를 말해 주는 듯했다.

    “그런데 수도를 하는 도가 문파가 이렇게 화려해도 되는 거예요?”

    “이왕이면 장엄하다고 말해 주게.”

    말하던 영호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본래 화산파는 순수한 도관이라기보다는 속가 문파와 도가가 결합한 형태일세. 무당에 비하면 계율도 느슨하고 세속적인 모습을 구태여 숨기지도 않는다네.”

    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화산파의 분위기는 소림이나 아미의 것과 달랐다.

    “그래도 도가 문파인 건 분명하지. 스스로 도사라 칭하기도 하고.”

    영호준은 빠른 걸음으로 경내를 가로질렀다.

    앞쪽에는 참배객들도 제법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인적이 드물어졌다.

    가끔씩 지나던 제자들만이 영호준을 알아보고 인사를 할 뿐이었다.

    “어,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나요?”

    담소하가 말했다.

    화산파의 규모에 비하면 지나는 제자들이 너무 적었다.

    영호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닐세. 생각보다 일이 심각한 듯하군.”

    그렇게 영호준을 따라 걷기를 얼마나 했을까?

    이곳저곳의 수많은 돌 계단을 오른 끝에 일행은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한 커다란 전각 앞에 도착했다.

    사뭇 고색창연한 이 장엄한 전각이 바로 화산의 자하각이었다.

    영호준은 문을 지키는 제자들에게 다가갔다.

    “대사형.”

    건장한 체격의 제자들은 영호준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에게 답례한 후, 영호준은 말했다.

    “태을 진인을 뵙고 싶네.”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지요.”

    “고맙네.”

    영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자하각으로 들어섰다.

    벌써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듯, 일행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쿵.

    뒤에서 문이 닫혔다.

    담소하가 작은 목소리로 영호준에게 물었다.

    “태을 진인은 누구시죠?”

    “내 스승님일세.”

    영호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신승과 깊은 인연이 있으시지. 화산의 장로이시기도 하고.”

    전각 내부는 생각보다 컸다.

    향 냄새가 풍겨오는 가운데 저 앞쪽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영호준은 앞으로 걸어갔다.

    일행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저벅, 저벅.

    전각의 전면과 좌우 측면에 놓인 의자에 나이 지긋한 도사들이 앉아 있었다.

    도사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심하게 뚱뚱한 사람도, 깡마른 사람도 있었고 귀신을 쫓아내는 검이나, 헛된 생각을 털어 내는 불진을 들고 있는 도사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나이 많은 노인이라는 것과, 그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는 점은 똑같았다.

    척.

    영호준이 멈춰 섰다.

    “제자 영호준입니다.”

    손을 모으고 깊이 고개를 숙이며 영호준이 예를 표했다.

    그러나 그 예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 설마…….”

    “아니, 대체 어떻게…….”

    “맙소사!”

    탄식하던 한 뚱뚱한 도사가 크게 소리쳤다.

    “어째서 당신이 여기 있는가! 독선!”

    도사들의 눈은 하나같이 독선에게 못 박혀 있었다.

    혼란과 경악으로 물든 시선들 속에서 독선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객옹이다.”

    도사들의 시선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독선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슥.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며 독선이 말했다.

    “너무 시끄럽군.”

    도사들의 안색이 일제히 변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르신.”

    운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손가락을 튕기려던 독선은 고개를 돌려 운현을 보았다.

    빙긋 웃으며 운현은 말했다.

    “이제 조용합니다.”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전각 안은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사들은 팽팽한 긴장 속에 독선이 손을 튕기는 순간을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흠.”

    독선은 도사들을 둘러보고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스륵.

    그가 뒷짐을 지자 그제야 도사들은 안도할 수 있었다.

    “후우.”

    대놓고 한숨을 쉬는 사람도, 가볍게 도호를 외는 도사도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곧 운현에게 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크흠.”

    긴 수염을 기르고 불진을 쥔 학자풍의 도사가 물었다.

    “대협께서 창룡검주시오?”

    “네, 그렇습니다.”

    운현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운현이라 합니다.”

    “빈도는 태을이라 하오.”

    태을 진인은 운현에게 답례했다.

    그가 영호준의 스승이자, 신승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태을 진인이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한쪽 측면에 일행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운현과 독선, 조관과 담소하가 의자에 앉고 영호준은 운현 옆에 섰다.

    태을 진인은 운현에게 말했다.

    “먼저 위로를 드리오. 신승께서 입적하신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다른 도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현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또한 창룡맹을 세워 아미를 구하셨으니 또한 축하드리오. 이는 참으로 강호 무림의 복이외다.”

    몇몇 도사들이 도호를 외웠다.

    그들은 여전히 독선을 힐끔거리고 있었지만, 당혹감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태을 진인은 미소를 지으며 운현에게 말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화산 장로 회의는 창룡맹의 가맹을 정식으로 결정하였소이다.”

    운현은 살짝 놀랐다.

    영호준 역시 의외인 듯,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태을 진인은 쓴웃음을 흘렸다.

    “사실 화산의 가맹은 좀 더 늦춰질 계획이었소. 적어도 장문인인 청풍 진인이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는 말이오.”

    화산파의 장로 회의는 사실상 최고 의결 기관이다.

    그러나 장문인이 공석인 상황에서 문파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장로 회의로서도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허나 기혼단이 발견된 이상 더 미룰 수는 없게 되었소.”

    심각한 표정으로 태을 진인은 말했다.

    “그렇소.”

    뚱뚱한 도사가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적에 맞서 분연히 일어서지 않으면, 이 위험은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오.”

    화산파는 화산검파로 불릴 정도로 검법에 정통한 문파다.

    적의 검이 아무리 날카롭게 빛나더라도 맞서 싸우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시기였다.

    당분간 몸을 낮추고 관망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장로들은, 아미파가 무너질 뻔한 데다 기혼단 사건까지 터지자 커다란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이대로 있어선 안 된다. 아니, 이대로 있을 수 없다.

    그 결과 나온 결론이 바로 ‘창룡맹’이었다.

    태을 진인은 눈을 빛내며 운현에게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룡맹과 함께 적에게 맞서 싸울 것이오.”

    으드득.

    오랜 동안 수련을 쌓은 태을 진인조차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감히 화산의 제자를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 주겠소.”

    비록 과도한 경쟁이 부른 폐해는 있었다 해도 화산파의 제자들은 화산의 몸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이 적에게 베였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다른 장로들 역시 같은 뜻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운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창룡맹의 맹주로서 화산파의 가맹을 허락합니다.”

    덜컹.

    십여 명의 화산파 장로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현 역시 몸을 일으켰다.

    태을 진인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산이 맹주께 예를 표하오.”

    장로들이 몸을 굽히며 운현에게 예를 표했다.

    운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그들의 예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화산이 정식으로 창룡맹의 일원이 된 것이다.

    하지만 축하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자리에 앉은 화산파 장로들과 운현은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크흠, 우선…….”

    태을 진인이 슬쩍 독선을 보고는 운현에게 물었다.

    “이분은 어찌 된 일인지…….”

    장로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영웅맹도, 태평맹도 아닌 바로 독선이었다.

    정사대전 당시 공포의 상징이던 독선이 눈앞에 앉아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아, 객옹께서는 저와 개인적으로 함께 계시는 중입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태을 진인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한 번 더 독선, 아니 객옹을 힐끔 쳐다본 태을 진인은 운현에게 말했다.

    “알겠소. 그럼 앞으로 영웅맹과 태평맹에 대해 맹주께서는 어찌 대처할지…….”

    “그보다 먼저.”

    운현이 태을 진인의 말을 끊었다.

    “기혼단에 대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태을 진인은 물론 다른 도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잠시 도호를 외우던 태을 진인이 말했다.

    “……직접 보시는 것이 나을 듯하오.”

    ***

    운현 일행은 태을 진인을 따라 작은 석조 암자로 향했다.

    과오를 생각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암자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니 천 길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매달린 잔도가 있었다.

    쳐다보는 것만으로 눈이 어지로울 정도였지만 태을 진인과 영호준은 가볍게 발을 옮겼다.

    객옹 또한 아무렇지 않게 잔도를 걸어갔지만 조관과 담소하, 그리고 운현의 발걸음은 아무래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내려갔을까?

    낭떠러지 중간에 제법 커다란, 사람 키 정도의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입구는 커다란 석문으로 굳게 막혀 있었다.

    “이곳은 화산의 참회동이오.”

    태을 진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수십 년간 이 참회동이 쓰인 적은 한 번도 없었소.”

    쇠로 된 잠금장치를 푼 태을 진인은 석문을 열었다.

    쿠그긍.

    육중한 석문이 천천히 움직였다.

    어지간한 내력이 없으면 문을 여는 것조차 힘들 듯 보였다.

    저벅.

    태을 진인은 입구에 걸린 횃불을 들고 화섭자로 불을 붙였다.

    화락.

    “으음.”

    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건 악취 때문이 아니었다.

    동굴 안쪽에서 무언가 섬뜩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현 역시 그것을 느끼고 얼굴이 굳었지만 다른 일행은 느끼지 못하는 듯, 그저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태을 진인은 횃불을 들고 앞서 걸었다.

    저벅, 저벅.

    참회동은 생각보다 깊었다.

    텅 빈 옥들을 몇 개 지나자 일행은 곧 참회동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이것이.”

    태을 진인은 횃불을 철창에 가까이 가져갔다.

    화륵.

    “크르르륵.”

    나지막한 짐승 울음소리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태을 진인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혼단에 중독된 자들의 모습이오.”

    “크르르륵.”

    번들거리는 붉은 눈, 무너져 내린 얼굴.

    그것은 바로 무림맹에 나타났던 실혼대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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