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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50화 (350/530)
  • 350화. 한 번 하면 경력자다

    운현 일행은 남궁세가로 돌아왔다.

    총관이 정중하게 맞이했고, 일행은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지나치는 남궁세가의 제자와 중직자 들이 운현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하는 것을 보고 진예림이 감탄했다.

    “남궁세가가 운 대인께 아주 공손하네요?”

    항주의 중소 무가 출신인 그녀에겐 천하의 남궁세가가 이렇게 정중한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아, 누님은 못 보셨죠?”

    담소하가 말했다.

    “처음엔 그야말로 난리가 아니었어요. 남궁세가에 도착하기도 전에 인파 사이로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맹주님 만만세를 외쳤다니까요? 게다가 남궁세가의 제자 백여 명이 한꺼번에 예를 올리는데…….”

    진예림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은 것이다.

    남궁세가 같은 거대 세가의 제자들이 가진 자존심에 대해서는 진예림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 남궁세가 제자들의 공손한 태도를 보면 아주 거짓말도 아닌 듯싶었다.

    저벅, 저벅.

    일행은 어느새 가주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달칵.

    문이 열리고 가주, 철검 남궁벽이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일어섰다.

    “어서 오시…….”

    그러나 그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철검 남궁벽은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철검이라는 호를 가진 불굴의 무인이었지만, 그도 지금만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환우오천존의 한 사람이자, 정사대전 당시 공포의 대명사였던 독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분은 객옹이십니다.”

    운현이 얼른 말했다.

    “당분간 저와 함께 계시기로 했습니다.”

    남궁벽은 당혹스러웠다.

    분명 독선이거늘 객옹이라는 건 뭐고, 당분간 운현과 함께 있겠다는 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남궁벽은 자신도 모르게 독선을 바라보았다.

    “나는 객옹이다.”

    독선이 나지막이 말했다.

    담담한 그 목소리와 눈빛에서 남궁벽은 즉시 독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크흠. 네, 객옹 님.”

    독선이 객옹이라면 객옹이다.

    남궁벽은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남궁세가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면 자리에 앉으시지요.”

    독선을 대하는 남궁벽의 태도는 조심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환우오천존 앞에서는 가주의 지위조차 무의미한 데다, 독선은 까다롭고 변덕이 심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음.”

    독선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의자에 앉았다.

    남궁벽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주님도 앉으시지요.”

    운현의 말에 남궁벽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앉았다.

    일행이 모두 앉자 시녀가 차를 내왔다.

    독선은 느긋이 차향을 음미했다.

    “좋군.”

    지켜보던 남궁벽은 운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일이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운현이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허어.”

    남궁벽은 탄식을 흘렸다.

    그러다 문득 아까 운현이 한 말을 떠올렸다.

    “독……, 객옹께서 맹주와 함께 계시기로 했다는 건,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의미요?”

    “그렇습니다.”

    하긴 환우오천존의 한 사람인 독선이 이제 와서 맹에 소속될 리는 없었다.

    아예 맹을 세우고 맹주가 된다면 모를까.

    ‘그렇군. 그래서…….’

    독선이 객옹을 자처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뜻이다.

    “알겠소, 맹주. 각별히 유의하도록 세가에 명을 내려 놓겠소.”

    젊은이들은 독선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정사대전을 겪은 이들은 다르다.

    그들이 남궁세가 안에서 독선을 마주친다면 그 공포는 상상도 못 할 정도리라.

    “허어, 참으로 맹주께서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오.”

    남궁벽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만일 운현과 함께 오지 않았다면, 남궁벽은 독선이 남궁세가를 진멸하러 온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정사대전을 겪은 이들에게 독선이라는 존재가 가진 두려움은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헌데 수군도독을 찾아간 일은 어찌 되셨소?”

    “다행히 잘되었습니다.”

    운현은 수군도독 진림이 협조하기로 한 내용을 간략히 말해 주었다.

    남궁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곧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수군도독께 보내도록 하겠소이다.”

    말하던 남궁벽이 빙긋 웃었다.

    “장강을 끊겠다 하시더니, 정말 그리하셨소이다.”

    창룡맹의 기치는 반영웅맹이다.

    남궁벽은 그것이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운현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영웅맹의 세상이라 여기던 장강을 사실상 끊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그저 조정의 전권 대리인이라 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남궁벽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운현은 남궁벽의 찬사에 감사를 표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남궁벽이 문득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맹도 총단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대답은 옆에 있던 총군사 영호준이 했다.

    “아, 당분간 창룡맹은 따로 총단을 세우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소?”

    “지금 맹의 상황으로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지요.”

    영호준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어차피 문파들이 지금 모인다 해도 말만 많이 나올 뿐입니다. 당분간은 맹주님과 각 문파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수준으로 충분합니다.”

    “흠, 그 말도 일리가 있군.”

    남궁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영호준과 운현이 상의를 마친 후였다.

    총단을 영호준이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거대 문파들의 자존심싸움 때문이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운현의 권위가 흔들릴 것을 염려한 것이다.

    창룡맹의 권위는 창룡검주 운현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영호준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남궁세가 내에도 창룡맹 지부를 두는 것이 어떨까요? 아미파도 이미…….”

    “당연히 그리하겠소.”

    영호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궁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맹주님을 위한 전각을 따로 마련하려던 참이니, 건물은 그곳을 사용하시고 필요한 인원은 총감찰과 협의하여 정하시오.”

    “감사합니다. 가주님.”

    영호준이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 모습에 진예림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중소 무관 출신인 그녀로서는, 문턱 넘는 것조차 힘들다는 남궁세가가 이리도 쉽게 건물과 사람을 내놓는 것이 실감 되지 않았다.

    “들으셨죠? 총군사 대행님.”

    갑작스러운 영호준의 목소리에 진예림이 순간 당황했다.

    “네, 네?”

    “여기서도 똑같이 하시면 됩니다. 아미파에서 하셨던 것처럼요.”

    “네?”

    진예림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곧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또 하라고요? 아미파에서도 이미 했는데…….”

    “그러니 더 좋지요. 본래 일이라는 게 한 번 하면 경력자요, 두 번 하면 전문가라지 않습니까?”

    “……그런 말이 있던가?”

    담소하가 옆에서 중얼거리는데 남궁벽이 입을 열었다.

    “호오, 소저께서 아미파 내의 창룡맹 지부를 조직했단 말이오? 아미의 승려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지라 쉽지 않았을 터인데…….”

    남궁벽은 눈까지 빛내며 진예림을 쳐다보았다.

    불가, 도가 계열의 사대문파들은 자존심도 강할뿐더러 고집도 세다.

    남의 말을 듣기는커녕 자신들끼리도 경전의 해석을 놓고 싸우는 판이니, 남궁벽이 관심을 가진 것도 당연했다.

    “아니, 그게…….”

    당황한 진예림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영호준이 끼어들었다.

    “아 참, 온다던 항주 무관들의 서른 정예는 어찌 되었소?”

    “지난번에 도착했어요. 당분간은 소림의 혜천께 수련을 위임했고요.”

    “영웅맹 지부 습격은 잘 끝났소?”

    “네. 어차피 그다지 큰 지부도 아니고, 창룡지회의 습격이 없었던 곳을 골랐던 것이니까요. 이후에 소문이 나도는 것도 확인했어요.”

    “아미파에 별다른 문제는 없소? 예컨대 창룡맹에 대한 불만 사항이라거나…….”

    진예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불만이 뭐가 있겠어요? 그렇잖아도 답답해하던 사람들에게 대외 관련 직책을 안겨 주니 좋아하던데요?”

    말하던 진예림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여기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죠? 이미 다 서면으로 보고한 사항이잖아요.”

    “그렇소. 아주 잘 받아 보았소. 수고하셨소이다, 대행.”

    영호준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궁벽에게 말했다.

    “보셨지요? 기획과 사전 준비, 실행은 물론이고 결과 확인과 보고에 이르기까지 아주 똑 부러집니다. 아미의 깐깐한 승려들이건, 혈기 넘치는 무관의 정예들이건 총군사 대행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지요.”

    영호준이 자랑스레 남궁벽에게 말했다.

    진예림은 기가 찼다.

    그게 어디 자신만의 능력이던가?

    “저기요, 그건 어디까지나 운 대인께서 맹주시니까…….”

    “그리고 맹주님께 대한 존경심도 확실하고요.”

    “과연 그렇군.”

    영호준과 남궁벽은 서로 고개까지 끄덕이며 말했다.

    진예림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잇지 못했다.

    영호준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이번엔 우리도…….”

    그때였다.

    “가주님.”

    밖에서 총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궁벽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일이냐?”

    이미 방해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긴급한 일이 틀림없었다.

    달칵.

    문이 열리고 총관이 들어왔다.

    “아미에서 온 연락입니다.”

    “아미에서?”

    남궁벽은 물론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총관에게 향했다.

    총관은 얇은 서찰 하나를 공손히 남궁벽에게 전하고는 집무실을 나갔다.

    서찰을 받아 든 남궁벽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맹주께서 보셔야겠소.”

    남궁벽은 운현에게 서찰을 건넸다.

    서찰의 수신인은 남궁세가의 가주와 창룡맹의 맹주였다.

    운현은 서찰을 펼쳤다.

    바스락.

    “음.”

    내용을 살피던 운현이 나지막이 신음했다.

    “무슨 일이오?”

    남궁벽이 물었다.

    “아무래도 화산파에 변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운현은 서찰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네? 변고라고요?”

    옆에 앉아 있던 총군사 영호준이 즉시 서찰을 바라보았다.

    화산파는 바로 그의 사문이다.

    “이건…….”

    영호준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운현은 서찰을 남궁벽에게 건넸다.

    서찰을 살펴보던 남궁벽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운현은 일행에게 말했다.

    “화산파에 기혼단이라는 정체불명의 약이 퍼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독되었다고 합니다.”

    독선의 눈썹이 꿈틀했다.

    굳은 표정으로 운현이 말을 이었다.

    “화산에서는 이 일의 배후를 영웅맹으로 판단하고 소림과 무당, 아미에 위험을 알렸습니다.”

    불가와 도가를 기반으로 한 사대문파는 과거 무림맹 때부터 긴밀히 연계하고 있었다.

    기혼단을 영웅맹의 계략으로 판단한 화산은 다른 문파들 역시 위험하다 여기고 소식을 전한 것이다.

    총군사 영호준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당장 출발해야겠군요.”

    “혜천 스님께 소림의 상황을 파악해 달라고 해야겠어요.”

    진예림이 말했다.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아미 승려들 중에 무당에 인맥이 있는 분이 계신지도 알아볼게요.”

    “그렇게 하십시오. 아주 시의적절한 대처입니다.”

    영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행의 판단과 행동이 이토록 정확하시니 믿고 맡길 수 있겠군요.”

    “저 이제 대행 아니거든요? 그리고 뭘 맡겨요?”

    진예림이 항의했지만 영호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다시 대행이오. 우리는 화산으로 갈 테니, 아까 말한 대로 남궁세가의 창룡맹 지부 구성을 잘 부탁하오.”

    그 말에 진예림의 표정이 구겨졌다.

    하지만 사문이 위기에 처한 영호준에게 무어라 할 수도 없었다.

    운현은 남궁벽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 남궁세가의 상황도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알겠소.”

    남궁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예림에게 말했다.

    “지부 구성과 관련해서 무엇이든 필요하면 말하시오. 적극 협조하겠소.”

    신뢰가 담긴 남궁벽의 눈빛에 진예림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영호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예림에게 말했다.

    “남궁세가의 후원과 가주님의 신임을 한 몸에 받다니, 그야말로 능력을 떨칠 기회가 아니겠소? 그럼 잘 부탁하오. 총군사 대행.”

    구겨진 진예림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달그락.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일행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일 먼저 일어난 담소하가 후다닥 집무실을 탈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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