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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49화 (349/530)

349화. 화산의 변고

항주 무림맹이 무너지던 당시, 화산파의 장문인과 주요 제자들은 큰 변고를 당했다.

화산파는 제자들의 외부 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내부적인 일과와 행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제자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필요했다.

화산파 제자들의 등급이 결정되는 승급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화산은 승급전의 열기로 뜨거웠다.

넓은 연무장을 중심으로 화산파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화산파에 입문한 지 십 년 이상 된, 이제는 당당히 화산파의 제자임을 내세울 수 있는 제자들의 승급전이 열리는 곳이었다.

연무장에 있는 제자들은 사뭇 의연했다. 그러나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추지는 못했다.

“으음.”

젊은 화산파 제자가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너무 긴장 말게.”

옆에 있던 조금 나이 많은 다른 제자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등급은 어차피 무공의 경지를 가늠할 뿐 아닌가? 도사로서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은 아니니 긴장할 것 없네.”

그 말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화산에서 유명한, 소위 잘나가는 이들은 설법에 능한 도사가 아니라 무공의 경지가 높은 이들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화산파 제자답게 청년은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눈을 들어 한창 펼쳐지고 있는 비무를 바라보았다.

“하아!”

챙, 챙, 카앙.

“타앗!”

두 사람의 화산파 제자들이 검광을 번득이며 비무를 펼치고 있었다.

그들의 신법과 검법, 그리고 내력은 화산파 제자라는 이름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이가 승급의 기회를 얻는 건 아니다.

승급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 탓에, 이곳에는 자격을 갖추고도 삼 년 이상 승급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

승급전을 주관하는 소요자의 말에 비무가 멈췄다.

제자들은 검을 갈무리하고 서로 예를 표했다.

“두 사람 모두 잘했다. 너는 작년보다 검 끝이 더욱 날카로워졌구나.”

제자는 소요자의 칭찬에 뿌듯한 눈빛이 되었다.

소요자는 다른 제자에게도 말했다.

“너의 검로 역시 훌륭했다. 수련에 정진하면 내년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제자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소요자의 결정에 이의를 말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제자가 소요자에게 예를 표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도관백과 장진원!”

저벅.

두 사람의 제자가 일어서서 연무장 중앙으로 나왔다.

소요자에게 예를 표하고 두 사람은 서로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시작해라.”

소요자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예를 표했다.

그리고 검을 뽑았다.

칭.

두 사람의 검이 햇빛 아래 빛났다.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그것은 길지 않았다.

“하아!”

채앵.

먼저 달려든 사람은 도관백이었다.

장진원 역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검이 날카롭게 번뜩이며, 두 사람의 검이 현란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흐음.’

소요자는 내심 흐뭇한 마음으로 비무를 지켜보았다.

장진원은 동기들 가운데서도 유독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재능도 있는 데다 집안도 좋아서 앞으로 화산파의 재목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받는 제자였다.

반면 도관백은 재능이나 집안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매사에 성실하고 엄청난 노력가였다.

‘길게 보면 오히려 저런 사람이 저력을 발휘하는 법이지.’

장진원이 화산의 꽃이 된다면 도관백은 그를 든든히 지지해 주는 뿌리가 될 것이라고, 소요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요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사뭇 살벌한 기세로 공방을 이어 가고 있었다.

“타앗!”

쉬익.

장진원의 검 끝이 날카롭게 꺽이며 도관백을 향해 짓쳐 들었다.

도관백은 물러나는 대신 오히려 과감히 거리를 좁히며 역공을 가했다.

팟.

‘응?’

소요자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소요자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분명 진원의 검이 관백을 상하게 한 듯했는데?”

두 사람의 움직임에 가린 터라 명백히 보지는 못했다.

‘요행히 닿지 않았던 것인가?’

소요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장진원과 도관백 두 사람은 천천히 내력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결정적인 한 수를 준비는 것이다.

바로 그때, 소요자는 보았다.

‘피!’

도관백의 가슴 어림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도복에 번져 가는 그 피는, 상처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도관백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조금 전 베인 순간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멈춰라!”

소요자가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두 사람은 듣지 못한 듯, 이미 서로를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타하아!”

“하아아아아!”

장진원과 도관백이 기합을 토하며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멈추라 하지 않았더냐!”

크게 외치며 소요자는 즉시 몸을 날렸다.

휘릭.

놀랄 만한 신법으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소요자는 즉시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카강.

장진원과 도관백의 검이 뒤로 튕겨 났다.

소요자는 두 사람 사이에 오연하게 서서 외쳤다.

“비무의 흥분에 사로잡혀 사형제를 상하게 하다니! 너희가 그러고도…….”

그러나 소요자의 외침은 이어지지 못했다.

“으아아아!”

쉬익.

도관백이 소요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분노로 일그러진 그 표정은 도관백이 제정신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소요자를 놀라게 한 것은 도관백의 검도, 그의 표정도 아니었다.

‘헉!’

소요자를 노려보는 도관백의 눈은 피로 물든 듯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게다가 그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바늘 끝으로 찍은 듯 너무나도 작았다.

그 모습이 흡사 괴인과 같아서 소요자도 순간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

후욱.

도관백의 검이 짓쳐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놀랐어도 도관백에게 당할 소요자가 아니었다.

“이놈!”

소요자는 도관백의 검을 피하며 즉시 일장을 뻗었다.

퍼엉.

도관백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연무장 바닥에 처박혔다.

소요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후우.”

속으로 도호를 외운 소요자는 남아 있는 장진원을 보았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장진원의 눈 역시 은은히 충혈되어 있었던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장진원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요자는 즉시 사정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두 사람은 사술이나 약물에 손을 댄 듯했다.

화산파가 도가의 수련보다 무공에 더 치중하면서 쌓여 온 폐해가 이런 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소요자는 장진원에게 물었다.

“어찌 된 연유더냐? 너희가 왜…….”

그러나 이번에도 소요자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으아아아!”

쓰러졌던 도관백이 괴성과 함께 달려들고 있었다.

검을 쥔 그는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듯 소요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무슨 짓이냐!”

소요자의 목소리가 연무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즉시 검을 휘둘러 도관백의 검을 걷어 냈다.

아니, 걷어 내려 했다.

쾅.

‘윽!’

예기치 못한 반발력이 소요자를 뒤흔들었다.

막무가내로 내리치는 것처럼 보이던 도관백의 검에 예상치 못한 내력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음!”

소요자는 신음을 흘렸다.

순간적으로 놀라기는 했지만 도관백의 내력은 소요자에게 미치지 못한다.

도관백의 검은 소요자의 검에 가로막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멍하니 있던 장진원이 갑자기 움직였다.

“으아아!”

장진원은 발작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쉭.

“큭!”

소요자가 몸을 피했으나 검상을 면하지는 못했다.

“진인!”

“소요자 어르신!”

당황하고 있던 제자들이 놀라 소리쳤다.

팔에 검상을 입은 소요자는 즉시 외쳤다.

“무엇하느냐! 어서 이들을 제압하라!”

“네!”

연무장 주변에 있던 제자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그러나 장진원과 도관백은 검을 놓지 않았다.

그들의 두 눈은 이미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캉, 차앙.

연무장 한복판에서 난데없는 난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애초에 두 사람이 다른 제자들을 당해 내는 건 무리였다.

장진원과 도관백은 곧 검을 놓치고 바닥에 강제로 엎드려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저항 수단을 잃은 장진원과 도관백은 제자들을 깨물기라도 할 듯 이를 내밀고 있었다.

“이, 이 무슨…….”

한쪽 팔을 감싸 쥔 소요자의 수염이 푸들푸들 떨렸다.

시뻘건 눈으로 발버둥치는 두 제자의 모습이 끔찍한 악몽 같았다.

***

승급전은 즉시 중지되었다.

장진원과 도관백 두 사람은 포박되어 계율원에 갇혔고, 소요자는 두 사람의 소지품과 숙소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명했다.

심상치 않은 검은 환약이 발견된 것은 금방이었다.

그 환약은 이번 일이 단순한 두 사람만의 일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소요자는 이 일을 장로회의에 보고했다.

장로회의는 두 제자를 계속 구금하고, 환약의 출처와 입수 경로를 조사할 것을 명했다.

외부로 나갈 수 없었던 제자들이 정체불명의 환약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내부에 제공자가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소요자는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제자들이 이 환약에 대해 들어 보았거나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환약을 준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건 금방이었다.

콰당.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너, 이놈! 조호선!”

소요자가 외치는 것과 함께 화산파 제자 십여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서탁에 앉아 있던 조호선은 고개를 들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소요자는 분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조호선은 담담했다.

“무슨 죄 말입니까?”

그 태연한 모습에 소요자의 수염이 푸르르 떨렸다.

“사형제들에게 독을 먹이고 사문에 큰 해를 끼치고서도 살기를 바랐더냐! 당장 모든 것을 이실직고 하렷다!”

“하하. 독이라고요?”

조호선은 빙긋 웃으며 소요자에게 말했다.

“나는 사제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을 뿐입니다. 따지고 보면 사제들을 그런 지경으로 내몬 사람은 바로 당신들 아닙니까? 권세와 재물에 눈이 멀어 사형제 간의 경쟁을 부추긴, 바로 당신들 말입니다.”

화산파가 무림맹 십팔대 문파에 들면서 도가 본연의 모습은 변질되어 갔다.

인연이 아니라 배경과 가문을 보고 제자를 들였고, 각종 비무와 승급전을 통해 사형제 간의 경쟁을 부추겼다.

그것이 바로 지금 화산파의 모습이었다.

“너, 너 이놈!”

소요자가 외쳤지만 조호선은 사뭇 당당했다.

“그리고 독이 아니라 기혼단입니다. 영약을 당신들만 독점하고 있으니 불쌍한 사형제들은 이것이라도 먹을 수밖에요.”

조호선은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벌써 온 화산이 이 기혼단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조호선은 은근한 눈빛으로 소요자 옆에 있던 제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무, 무슨 소리냐! 나는…….”

슥.

소요자가 손을 뻗어 그의 말을 멈췄다.

“이간책 따위에 흔들리지 마라.”

스릉.

소요자는 검을 뽑았다.

“대체 네가 무슨 의도로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벌인 것이냐?”

온 화산이 이 일로 이미 시끄러운데도 조호선은 도망가지 않았다.

소요자는 느긋하게 앉아 있는 조호선을 경시해선 안 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스릉, 스르릉.

다른 제자들도 검을 뽑았다.

조호선은 피식 웃었다.

“이거 참, 이런 과분한 대접을 받게 되니 놀랍군요. 화산이 진작 우리를 중히 여겼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제자들을 사람이 아니라 그저 소모품 따위로나 여기니…….”

아득.

이를 악물며 조호선은 말했다.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것 아닙니까?”

후우웅.

서탁에 밝힌 등불이 파르르 떨렸다.

소요자는 물론 기명제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조호선이 지금 뿜어내는 내력은 결코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의도냐고 물으셨습니까? 당연히 화산이 망하는 꼴을 보려는 것 아닙니까?”

말하는 조호선의 검은 눈동자가 아주 작게 줄어들었다.

흰자위에 핏발이 서며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재능이 부족하고 가문이 별 볼 일 없다고 날 내팽개친, 당신들의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려고 말입니다!”

콰앙.

탁자가 뒤집어지고 폭음이 터져 나왔다.

조호선은 순식간에 소요자를 향해 짓쳐 들었다.

‘헉!’

소요자는 즉시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조호선은 아예 수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거침없이 일장을 내질렀다.

콰과과곽.

그 순간 소요자가 본 것은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일그러진 악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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