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검전 리마스터-344화 (344/530)

344화. 수군도독 진림

남궁세가를 나온 후, 운현은 감찰어사 조관과 합류했다.

따각, 따각.

마차 안에서 조관이 운현에게 말했다.

“우선 일아영 소저는 댁으로 모시도록 조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시기에 어떻던가요?”

운현의 말에 조관이 답했다.

“아무래도 표정이 밝지는 않았습니다만 충격에서는 벗어나신 듯하더군요. 다행히 문왕이 일아영 소저를 험하게 대하진 않았나 봅니다.”

“……그렇습니까.”

운현은 마음이 착잡했다.

허나 이미 지난 일이다.

마음을 가다듬은 운현은 조관에게 물었다.

“다른 새로운 사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몇 가지 추가 사항들이 있으나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조관은 주변의 어촌과, 섬에 남아 있던 배의 출처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하지만 새로 파악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렇군요. 그럼 수군도독께 바로 찾아가면 되는 것입니까?”

“네. 모든 절차는 마쳐 놓았습니다.”

따각, 따각.

운현 일행이 탄 마차는 남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군의 전선과 군영은 장강 주요 군사 요새에 분산되어 있었지만, 군정을 총괄하는 수군도독부는 남경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군도독 진림이라…….”

영호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군요.”

무림인과 관인은 생각 자체가 다르다.

무림맹을 통해 관인의 행태를 겪어 본 영호준으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요.”

의외로 조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이 통하는 상대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관원끼리도 말이 안 통합니까?”

영호준의 말에 조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관할이 다르면 아예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소 닭 보듯 한다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운 대인과 정치적 입장도 다르다 보니…….”

대놓고 적대적으로 나오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조관은 생각했다.

“어차피 어려움은 각오한 것입니다.”

운현이 말했다.

“하늘의 뜻이라면 어떻게든 길이 열릴 것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갑시다.”

“그럼 안 돼도 하늘의 뜻인가요?”

담소하가 불쑥 물었다.

운현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마음의 평화라도 얻을 테니까.”

“헤헤. 그렇긴 하네요.”

담소하가 웃고 영호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유학을 배운 문사라 그런지 운현의 사고방식은 일반적인 무림인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었다.

따각, 따각.

네 사람을 실은 마차는 쭉 뻗은 관도를 질주했다.

여섯 왕조의 수도로 수많은 영락을 겪어 온 고도(古都), 남경을 향하여.

***

운현 일행은 남경에 도착해 객잔에 숙소를 정했다.

수군도독 진림을 방문하는 날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어서, 운현 일행은 남경의 풍광을 즐기며 여독을 풀기로 했다.

사실 아미산부터 호암상단, 포양호를 거쳐 남궁세가까지 쉬지 않고 움직인 터라 일행에겐 휴식이 절실했다.

“남경은 제게 맡기십시오.”

영호준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호언장담이 결코 과언이 아니어서, 영호준은 화산의 도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남경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었다.

“남경을 모르고 어찌 풍류 공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남경은 항주와 그리 멀지도 않으니까요.”

전혀 도사답지 않은 말이었지만 영호준의 지식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일행은 오랜만에 좋은 음식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운현 일행은 수군도독부를 찾아갔다.

들어서는 운현 일행을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바로 화포의 방포 소리였다.

쿵, 쿵, 쿵.

커다란 화포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장강 변에 자리한 조선소에서 방포한 것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도독부에서도 건물이 울릴 정도로 소리는 컸다.

“이런.”

영호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시작부터 이렇군요.”

하필 운현이 도착하는 시간에 방포를 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수군도독은 운현을 환영하지 않는 것이다.

“들어가지요.”

운현은 수군도독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식 군복을 입은 수군 소속 관리가 운현을 정중하게 안내했다.

황제의 직속 기관인 도찰원 소속 특별 감찰어사에 대한 예의는 갖추는 듯했다.

“손님을 모셔 왔습니다.”

관리의 말에 집무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달칵.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운현의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수군도독의 집무실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과, 뚱뚱한 체격을 가진 수군도독 진림의 모습이었다.

슥.

수군도독 진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황실의 귀인께서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

빙긋 웃으며 뚱뚱한 진림이 말했다.

“이 진림, 송구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진림의 목소리는 사뭇 능글맞았다.

‘귀인’이라는 호칭은 운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의미였지만 진림의 눈빛은 결코 호의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자네는 나가 보고.”

일행을 안내한 관리가 예를 표하고 물러났다.

운현 일행은 수군도독 진림과 마주 앉았다.

“그래, 어쩐 일이시오? 드디어 도찰원에서 이 불쌍한 진림을 감찰하기로 하신 것이오?”

진림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운현이라 합니다.”

“아, 알고 있으니 소개는 필요 없소.”

귀를 후비며 진림이 말했다.

손가락마저 굵어서 귓구멍에 들어갈까 싶을 정도였다.

“이분은…….”

운현은 일행을 소개했다.

아니, 소개하려 했다.

“도찰원 특별 감찰어사께서 한담이나 나누자고 이곳까지 오신 것은 아닐 터.”

진림이 운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용무를 말씀하시지요. 나도 아주 바쁜 사람이라서 말이오.”

진림의 눈동자는 번득이고 있었다.

황제의 명을 직접 받드는 군정의 최고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진림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운현은 진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는 영웅맹이 장악한 장강을 끊으려고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운현이 말했다.

“이 일에 대인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아, 그러시오?”

심드렁한 목소리로 진림이 말했다.

“허나 나는 수군도독일 뿐이오. 군정을 관할하기는 하지만 수군을 움직여 전투를 벌일 권한은 없소. 황상의 명을 받든 총병관(總兵官)이 온다면 모를까……. 아, 혹시 귀인께서 나도 모르는 사이 총병관의 직을 맡으셨소?”

평소 군정을 관할하는 사람은 도독이지만 정식으로 군을 지휘하는 사람은 황제의 칙명을 받은 총병관이다.

전시(戰時)에나 총병관이 임명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림의 말은 빈정거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소? 난 또…….”

피식 웃으며 진림이 몸을 의자에 기댔다.

그 행동이 매우 무례했지만 감찰어사 조관도 무어라 하지 못했다.

감찰 대상이 아닌 이상 그에게 관여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제가 바라는 것은…….”

“그럼 내가 협조할 이유가 없군.”

진림은 운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서 황상의 칙명을 받은 후에 다시 오시오. 그때는 내 목이라도 내어 드릴 테니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박 공공의 힘이라면 쉬운 일 아니겠소?”

운현은 진림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진림 역시 지지 않고 운현을 노려보았다.

가벼워 보이는 언행과 달리 그 눈빛은 기개가 있었다.

‘……놀랍군.’

조관이 말한 ‘뇌물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평은 사실이었다.

이런 눈빛을 가진 사람에게 편법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 이상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벽의 말처럼, 진림의 첫인상이나 집무실의 모습은 재물을 밝히는 고위 관리에 다름 아니었다.

“……오늘은 때가 아닌 듯하군요.”

“내일도 때가 아닐 거요.”

진림의 빈정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운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례했습니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뭐, 그러시든가.”

진림은 운현을 쳐다보지도 않고 손톱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 다음부터는 뭐라도 들고 오시오. 그게 수군도독을 방문하는 예의 아니겠소?”

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집무실을 나서는 운현의 등 뒤로 진림이 말했다.

“배웅은 안 하겠소이다.”

탁.

문이 닫히는 순간, 운현은 진림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

“어떻습니까?”

수군도독부를 나서며 조관이 물었다.

운현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쉽지 않은 듯합니다.”

“뭐라도 들고 오라고 했으니까 예물을 주는 건 어때요?”

담소하의 말에 영호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저런 사람에게는 안 먹혀. 보아하니 얼굴이 아주 두꺼워서 받아먹기만 하고 끝이겠지. 완전히 낭비일세.”

“우웅, 그럼 어떡하지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나요?”

운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 조금 더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지.”

네 사람이 그렇게 말하며 수군도독부에서 멀어졌을 때였다.

“운 학사님.”

문득 낯선 목소리가 운현을 불렀다.

운현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부른 사람을 발견한 순간 운현은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장원 교두!”

수군 제복을 입은 무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 이름은 장원이 아니라 관철훈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교두도 아니고요.”

그는 운현이 북해로 가던 중 만났던 상급 무관이었다.

무과에서 장원을 차지했고, 금의위에 들어와 교두로 있었던 관철훈 교두를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이곳엔 어쩐 일이오? 보아하니…….”

운현은 관철훈의 복장을 살폈다.

“수군이 된 것이오?”

“좌천이지요.”

관철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통적으로 육군을 중시하는 풍조로 보면 수군에 배속된 것은 확실히 좌천에 속했다.

금의위에서 국경 상급 무관으로 간 것 역시 좌천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진 도독께서 거두어 주셔서 지금은 보좌관으로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소? 다행이오. 아주 잘되었소.”

그가 운현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수군도독 진림을 찾아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운 학사님.”

관철훈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호칭은 그가 아직도 운현에게 호의와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진 도독에 대하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운현은 그의 표정이 사뭇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알겠소.”

고개를 끄덕이고 운현이 말했다.

“그럼 어디 조용한 곳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아닙니다.”

관철훈이 운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알겠소.”

운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관철훈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었어도 운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

따각, 따각.

말을 타고 앞서가는 관철훈을 운현 일행이 탄 마차가 뒤따랐다.

얼마나 그렇게 갔을까?

일행은 남경 외곽에 있는 오래된 저택 앞에 도착했다.

관철훈은 말에서 내렸다.

“이곳입니다.”

운현 일행 역시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택은 크기에 비해 꽤나 오래되어 보였다.

색이 바랜 것은 물론이고 딱히 관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저벅, 저벅.

관철훈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이곳은 진 도독의 자택입니다.”

“이 저택이 말이오?”

운현은 의아한 눈빛으로 반문했다.

진림의 인상을 생각하면 확실히 의외였다.

그라면 남경 한복판의 대궐 같은 저택에서 떵떵거리며 살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그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관철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보시면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끼익.

관철훈이 저택의 문을 열었다.

총관으로 보이는 노인이 달려 나왔지만, 관철훈이 몇 마디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갔다.

관철훈에 대한 진림 도독의 신뢰가 엿보이는 광경이었다.

저벅, 저벅.

이미 익숙한 듯, 관철훈은 주저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이 저택 뒤쪽의 후원에 들어섰을 때였다.

“아!”

가녀린 목소리가 운현의 귓가에 들렸다.

“관 아저씨!”

낭랑한 목소리가 후원 가운데서 들려왔다.

그리고 곧 작은 발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톡톡톡톡.

후원에서 달려 나온 사람은 아주 작은 여자아이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