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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검전 리마스터-339화 (339/530)

339화. 무감(無感)

운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어두운 숲속에 자신의 걸음 소리만이 스산하게 울렸다.

슥.

문득 운현은 발을 멈췄다.

날카로운 천잠사가 정확히 운현의 목 높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늘었지만 운현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다.

툭.

운현은 미명을 들어 천잠사를 끊었다.

내력이 담기지 않은 천잠사는 곧 그 치명적인 예리함을 잃고 아래로 늘어졌다.

‘이상하군.’

운현은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을 바라보았다.

서른 마리의 투견 이후 더 이상의 공격이 없었다.

자신을 상대하려는 문왕의 계책치고는 지나치게 허술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운현이 중독된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 그럴 수도 있다.

서른 마리의 흉포한 투견은, 중독된 운현에겐 그야말로 지옥이었을테니까.

‘하지만.’

어째서 삼태상이 나오지 않을까?

일아영을 인질로 잡고 삼태상이 나왔다면 운현은 과연 그들과 맞설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왜 운현을 암습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쩌면.’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절명비와 이서연의 배신, 그리고 서른 마리의 투견이 현재 문왕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아니었을까?

영호준은 납치를 해야 할 만큼 문왕이 몰려 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일아영의 목숨이 더욱 위험해진다.

궁지에 몰린 인간은 무엇을 할지 모르니까.

문득 이서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도 궁지에 몰려 있었던 것일까?

운현을 배신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큭.”

이서연을 떠올리자마자 가슴에 통증이 내달렸다.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피리리릭.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운현인 고개를 들자 하늘로 오르는 작은 불씨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펑.

밤하늘에 은빛 불꽃이 피어올랐다.

‘저건?’

그건 분명 일종의 신호였다.

문왕이 또 무엇인가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으득.

운현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어 저택을 바라보았다.

불을 밝힌 저택이 마치 거인처럼 운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르듯 운현은 중얼거렸다.

“아영 누이를 구해야 한다.”

저벅.

운현은 걸음을 옮겼다.

망령처럼 떠오르는 이서연의 목소리와 표정을 애써 외면하며, 운현은 저택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문왕은 자신의 대전 앞에서 이서연을 발견했다.

“아, 어서 오세요.”

이서연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이쪽은 준비가 다 끝났는데.”

그녀 앞에 놓인 의자에 일아영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듯 앉아 있었다.

으득.

문왕은 이를 갈았다.

“……너,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이서연은 빙긋 웃었다.

“무사하려고 이러는 거잖아요.”

말하는 이서연의 손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저는 결코 당신을 적대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사락.

일아영의 목에 비수를 가져다 대고, 이서연은 말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려는 것뿐이지요.”

“……당장.”

이를 갈며 나지막이 문왕이 말했다.

“그걸 치워.”

“명을 따르지요.”

슥.

이서연은 순순히 비수를 거뒀다.

그러나 언제든지 일아영의 목을 찌를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서연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일아영은 아무것도 몰라요. 그런데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무슨 뜻이지?”

“상단의 분쟁에 휘말려 납치된 것과 의숙부를 죽이기 위해 인질이 된 건 의미가 아주 달라요. 더구나 친족을 죽이려는 자가 당신이라는 걸 알게 되면.”

이서연은 빙긋 웃었다.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문왕은 흠칫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나지막이 말했다.

“……상관없다. 아영 소저는 인질일 뿐이니까.”

“물론 그래요. 하지만 일아영이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지금, 창룡검주를 죽이는 것이 최선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아, 조금 전 그 신호는 뭐죠?”

“……퇴각 신호.”

주저하던 문왕이 짧게 답했다.

“흐응, 거짓말 같은데요?”

이서연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리 말씀하시니 그렇게 믿도록 하지요.”

슥.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이서연은 말했다.

“경애하는 문왕 저하.”

미소를 머금은 이서연의 시선은 문왕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문왕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

운현은 저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타닥, 타닥.

횃불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저택에선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운현은 조심스럽게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중문을 지나 커다란 대전 앞에 이른 순간, 운현은 이를 악물었다.

으득.

이서연이 웃고 있었다.

가늘게 올라간 그녀의 입술은 분명 조소였다.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

낭랑한 목소리로 이서연이 말했다.

그녀 앞에는 정신을 잃고 의자에 앉아 있는 일아영이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문왕과 그의 수하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수하는 운현을 향해 활을 당긴 채였다.

“이렇듯 다시 뵈니 아주 기쁘군요.”

쉬익.

바람을 찢듯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운현은 슬쩍 고개를 움직였다.

화살이 운현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문왕의 수하가 화살을 날린 것이다.

“놀랍네요. 그런 재주도 있으셨어요?”

이서연이 감탄하듯 말했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피하시면.”

사락.

이서연의 손에서 비수가 번득였다.

“아영이가 대신 아파 할 거예요.”

“설령 인질의 팔다리가 잘리더라도.”

운현이 나지막이 말했다.

“주도권을 넘겨 주지 말라는 매화검 대협의 말은 당신도 들었을 거요.”

“어머, 그리 말씀하시니 섭섭하네요.”

이서연은 사뭇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처럼 서연 누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리고 저는.”

쿡.

비수가 일아영의 어깨를 가볍게 찍었다.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못 믿는 성격이거든요.”

이서연은 그대로 비수를 그어내렸다.

“그만해!”

문왕이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찌익.

비수의 칼날 아래 옷이 찢어지고 살결이 갈라졌다.

일아영의 팔은 금방 피로 물들었다.

“이 정도는 괜찮죠?”

이서연이 웃으며 말했다.

일아영은 약물 같은 것에 취했는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였다.

“흉터는 남겠지만 얼굴은 아니잖아요. 물론 죽고 나면 흉터 따위 어디에 있건 소용 없겠지만요.”

운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운현은 이서연에게 끌려갈 생각이 없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운현은 말했다.

“이 자리에서 내가 하려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당신이 목숨이나마 부지하려고 한다면, 아영 누이를 놓아주고 이곳을 떠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아아, 운 오라버니, 운 오라버니.”

이서연은 고개를 저었다.

“허세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랍니다. 오라버니가 검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요.”

슥.

이서연은 일아영의 목에 비수를 대고 지긋이 눌렀다.

피가 천천히 배어 나오며 비수를 따라 흘렀다.

“그러니까 얌전히 죽어 주세요. 이것도 오라버니의 운명 아니겠어요?”

날카로운 눈빛으로 운현을 노려보며 이서연은 말했다.

“쏴.”

“잠깐.”

그 목소리는 문왕의 것이었다.

문왕은 활을 든 수하에게 말했다.

“내가 하겠다.”

수하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곧 문왕에게 활과 화살을 넘겼다.

활을 받아 든 문왕은 능숙하게 화살을 시위에 걸고 크게 자세를 잡았다.

끼익.

활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문왕의 팔이 살짝 경련했다.

이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문왕을 노려보며 이서연은 말했다.

“순서를 착각하지 마세요. 창룡검주가 죽지 않으면, 당신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아요.”

“나도 알아.”

문왕은 이서연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

이서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좋아요. 그럼.”

운현을 똑바로 노려보며 이서연이 말했다.

“창룡검주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지켜볼까요?”

끼익.

문왕의 손에 잡힌 활줄이 팽팽해졌다.

화살 끝에 보이는 운현의 모습을 문왕은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활이라면 이미 여러 번 쏘아 보았다.

이 거리라면 절대 빗나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화살 끝 너머로 보이는 운현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닮았군.’

문득 문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닮을 리는 없었다.

일아영과 운현은 혈연관계라곤 전혀 없는, 구태여 따지자면 의숙부의 관계일 뿐이니까.

끼릭.

손끝에 걸린 활줄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조여 오는 순간.

휙.

문왕은 순간적으로 몸을 틀었다.

화살 끝에 이서연의 모습이 보이는 즉시, 문왕은 손을 놓았다.

핑.

그건 피할 수도, 빗나갈 수도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이서연은 처음부터 문왕을 믿지 않았다.

“미친놈! 제정신이야?”

휘릭.

이서연은 즉시 뒤로 빠지며 몸을 틀었다.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을, 운현은 놓치지 않았다.

팟.

운현의 검, 미명이 이서연을 향해 짓쳐 들었다.

어째서 문왕이 마음을 바꿨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운현은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큭!”

퍼억.

이서연은 이를 악물며 즉시 일아영이 앉은 의자를 운현에게 걷어찼다.

남궁세가에서 수련한 그녀의 발차기는 일아영을 날리기에 충분했다.

파악.

의자와 일아영이 동시에 운현을 향해 고꾸라지듯 날아오고, 이서연은 품에서 또 다른 비수 한 자루를 꺼냈다.

아까 소란을 틈타 회수해 두었던, 운현이 죽은 후 문왕을 처리하기 위해 준비했던 비장의 한 수를 말이다.

‘저건!’

운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즉시 알아보았다.

시커먼 칼날이 번득이는 그 비수는 바로 운현을 찔렀던 절명비였다.

처음부터 두 자루였는지, 아니면 그사이 부두에서 회수해 왔는지 운현은 알 수 없었다.

다시 저 비수에 찔린다면 운현조차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운현은 동요하지 않았다.

방심의 순간을 틈탄 암습이라면 모르거니와, 눈앞에서 날아오는 비수는 운현에겐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서연은 그런 운현을 조소했다.

쉭.

독기 어린 눈빛으로 이서연은 절명비를 날렸다.

그 목표는 운현이 아니라 등이 훤히 드러난 일아영이었다.

운현은 깜짝 놀랐다.

그 찰나의 순간 이서연은 알아차린 것이다.

운현의 검 앞에서 시간을 벌어 줄 유일한 방법을 말이다.

후웅.

미명은 즉시 새로운 흐름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운현은 보았다.

문왕이 한 손에 활을 든 채 일아영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몰랐다.

운현의 분노에서 살아남으려면 도주하든가, 혹은 일아영을 다시 인질로 잡아야 하니까.

다만 그가 짓쳐 드는 절명비를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 의아할 뿐이었다.

카앙.

운현의 미명은 이서연이 날린 절명비를 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대로 문왕을 베었다.

서걱.

“커헉.”

문왕은 무너지듯 쓰러졌다.

“저하아!”

수하가 놀라 외치고, 이서연은 전력으로 경공을 펼쳐 도주했다.

그녀의 경공은 비록 대단치 않았지만 운현으로선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때, 바닥에 나뒹구는 절명비가 보였다.

운현은 손을 뻗어 절명비를 잡았다.

그리고 이서연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흐름 위에 실어 날렸다.

마치 검식을 펼치듯이.

스르륵.

절명비는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그리고 도망치는 이서연의 어깨에 적중했다.

“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이서연은 어깨를 감싸며 아래로 뚝 떨어졌다.

그녀의 모습이 어두운 숲 사이로 사라졌지만 운현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못했다.

“끄아아아아아!”

인태상의 절규가 사방에 쩌렁쩌렁 울렸다.

운현은 미명을 들고 몸을 세웠다.

파라락.

바람 소리와 함께 작고 뚱뚱한 노인, 인태상이 내려 섰다.

“도련님! 도련니이임!”

인태상은 피흘리는 문왕을 붙잡고 절규했다.

그러나 문왕의 눈빛은 이미 꺼져 가고 있었다.

그는 쓰러진 일아영을 향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그의 손은 곧 힘을 잃고 말았다.

스륵.

문왕의 눈이 빛을 잃고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안 돼애애애!”

인태상은 미친 사람처럼 문왕의 요혈을 두드렸다.

그러나 이미 빛이 꺼진 문왕의 눈동자는 다시 되돌아오지 못했다.

“이놈! 너 이노오오옴!”

인태상은 운현을 향해 외쳤다.

“이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이 땅의 주인이 되실 고귀한 분을! 네가! 네가 감히이이이이!”

저벅.

운현은 서늘한 눈빛으로 인태상을 내려다보았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흔들릴 법도 하건만, 운현의 가슴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냉정했다.

마치 북해의 만년빙정처럼.

“그의 목숨이 귀하다면 내 의제의 목숨 또한 그러하다.”

차가운 음성으로 운현은 말했다.

“그는 네가 건드려도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슥.

운현은 미명을 치켜들었다.

“여기서 네 목숨을 거두겠다.”

인태상은 문왕을 안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운현이 멀리서 날린 술잔 하나가 자신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지금 운현이 그를 죽이고자 한다면 인태상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큭.”

운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독고랑을 떠올리며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감정의 격동이, 절명비의 극독을 다시 요동치게 한 것이다.

그 순간을 인태상은 놓치지 않았다.

탓.

인태상은 문왕의 시신을 안은 채 몸을 날렸다.

운현의 검이 그의 등을 벨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그 선택이 인태상의 목숨을 살렸다.

타닷.

인태상의 모습은 순식간에 어두운 숲 사이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운현은 천천히 미명을 내렸다.

대전 앞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문왕의 수하도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저벅.

운현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쓰러진 일아영에게 걸어갔다.

슥.

몸을 굽힌 운현은 손을 뻗어 일아영의 호흡을 확인했다.

다행히 그녀는 정신을 잃었을 뿐, 이상은 없어 보였다.

“후우.”

운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아영을 구했다.

도주하는 이서연에게 절명비를 날렸고 문왕을 베었다.

혈공자 문왕이 자신의 검에 죽은 것이다.

누군가를 죽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욱.’

다시금 가슴에 통증이 내달렸다.

운현은 의식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모든 감정을 가라앉혔다.

사락.

발밑에서 희미하게 서리가 번져 갔다.

그 모습을 운현은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대전은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삼태상은 일대상인이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노기에 삼태상의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대상인이 말했다.

“모두 사실이냐?”

“그, 그렇습니다.”

쿵.

인태상은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쿵, 쿵.

“모두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제가, 제가! 으허어어엉.”

쿵.

통곡하는 인태상의 머리가 터져 피가 흘렀다.

그러나 인태상은 멈추지 않았다.

스륵.

일대상인이 일어났다.

삼태상은 고개를 조아렸다.

인태상 역시 머리를 들지 못했다.

“기묘하구나.”

나지막한 음성으로 일대상인이 말했다.

“내 아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는 내 아들을 죽임으로써 깨닫게 해 주었다. 나조차 모르고 있던 나를 그가 알게 해 주다니…….”

일대상인은 시선을 내렸다.

부복하고 있던 삼태상은 몸을 떨었다.

가장 강한 천태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룡검주.”

서늘한 시선으로 일대상인이 말했다.

“네가 나를 기어이 하늘 위에서 끌어내리고야 마는구나.”

삼태상의 등에 전율이 내달렸다.

2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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